아빌라(Avila)는 Spain의 수도 마드리드(Madrid)에서 북서쪽으로 약 85km 지점에 위치해 있는 해발 1,000m의 고원도시며, 아빌라현의 현도인 인구 약 2만5천명의 조그마한 도시이다. 로마시대에 건설된 도시로 아직도 로마식 성벽이 완벽하게 보존되어 도시를 둘러싸고 있다. 중세적 분위기가 그대로 남아 있고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 빈센트 대성당과 성 베드로 대성당, 그리고 13세기부터 르네상스까지의 조각품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궁전이 있다.
로마의 식민도시 아빌라에서 비롯되는데, 사도 성 베드로의 제자가 전도한 곳이다. 714년의 이슬람 점령에서부터 11세기 말의 그리스도교도에 의한 국토회복전쟁까지 양 세력의 최전선에 위치하여, 11세기 후반에 국왕 앙퐁소 6세의 사위인 우 르고위 백작 라이문도가 도시를지 배하는 이슬람 세력을 추방하고 북부 로부터 그리스도교도를 끌어들였으며, 1090년부터 9년에 걸쳐서 2,000명 을 투입하여 높이 12m, 평균 너비 3m, 둘레 2,526m의 시벽으로 도시를 완전히 둘러쌌는데, 타원형 탑이 88개소, 성문이 9 개소가 있었다.
1120년경에 주교좌가 설치되었으나 대성당은 12세기 중엽에 착공하여 16세기에 완성됨으로써 명실공히 리지외 교구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성당은 시벽의 반원형 탑을 형성, 시벽 밖을 향해서 무게있게 자리잡고 있어, 요새의 본진과 같은 구실을 하고 있다.
■ 성녀 대 데레사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역시 동명의 예수 아기의 성녀 데레사와 구별하기 위해 대 데레사라고 부를 때도 있는데, 그 이름에 못지 않는 대성녀이며 교회와 종교를 위해 큰 업적을 남겼다.
데레사는 1515년 3월 28일, 스페인의 아빌라에서 태어났다. 양친은 신심이 두터운 귀족으로 자녀들을 모두 가톨릭 정신에 입각하여 교육시켰다. 12세 때 어머니를 여윈 데레사는, 성 예로니모가 성녀 바울라와 성녀 에우스토치움에게 보낸 서간을 읽고 수녀가 될 것을 결심하고 19세 때 아빌라에 있는 가르멜 수녀원에 입회했다. 그의 영성생활은 미지근한 편이었으나 45세 때 주님의 현시를 받게 되면서 회개하여 신비적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 후부터의 내 생활은 내 안에 계시는 예수의 생활이었다. 자기 안의 예수의 생활, 이것이 바로 유명한 데레사의 신비생활의 기본이 되었다.
그 때 그녀가 느낀 것은 가르멜회의 개혁이었고, 초창기 정신으로 복귀하는 것이었다. 더욱 엄격하고 봉쇄적이고 청빈을 실천하며 묵상기도에 전념하는 소수의 공동체로서의 수녀원으로 개혁코자 결심했다. 많은 반대와 오해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1562년에는 성 요셉 새 수도원을 세웠으며, 그 후 20년간 17개의 수녀원을 설립하였고 남자 수도원 개혁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녀의 표어는 활동하고 고통 당하고 사랑하는것이었으며 죽을 때까지 이를 생활화하였다. 또한 바쁜 생활 가운데서도 편지를 쓰고 글을 썼다.
그녀의 저서 중에는 [자서전], [영혼의성], [완덕의 길]이 유명하다. [완덕의 길]은 영성생활의 초보자에게, [영혼의 성]은 기도 생활을 더 깊이 하기를 원하는 자들을 위한 것이고 그녀의 문장은 뛰어나 읽는 이들을 매혹시켰다. 그녀의 저서는 지금까지 신비신학의 기초로서 존중되고 있으며 이는 전지하신 하느님께서 그녀에게 심오한 진리를 계시 하시고 가르쳐 주시는 대로 기록한 책으로서, 말하자면 그 안에 계신 주님 자신의 저작이라고도 한다. 그녀의 신비 생활의 기본이 되는 것은 하느님 없는 나는 무(無)요, 나에게 하느님이 전부(全部)라는 사상이며 모든 것에 있어서 주의 뜻을 이행함이었다.
그녀는 주님을 뜨겁게 사랑했기에 주님의 고통에 동참하기를 원했다. '주여! 당신을 위해 고통을 받겠나이다'라고 기도하며 고통 아니면 죽음을 간청할 만큼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고통을 기원했다. 고통 받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 받는 생활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임종 전에 남긴, 내 영혼아! 아무것도 근심말고 아무것도 두려워 말라. 모든 것은 지나가고 하느님만이 변함이 없으시다. 인내는 모든 것을 얻는다. 하느님을 얻는 사람은 그 외 아무것도 필요치 않으며 하느님만으로 충분하다는 말로 주님께 대한 절대적 신뢰를 표현하였다.
1582년 10월 4일 저녁, 알 바 데 또르메스에서 67세로 세상을 떠났고, 1617년 스페인 국회는 그녀를 스페인 주보로 선언하였으며, 교황 바오로 6세는 그를 교회학자로 선포하였다.
■ 아빌라 대성당 (Avila Catedral)
아빌라 대성당은 1090년 아빌라 시벽 건설과 함께 알바르 가르시아의 설계로 착공하였다. 공사는 16세기에 들어서서 필역하였으나, 완공되지는 못했다. 건축양식은 로마네스코에서 고딕으로 옮겨가는 과도기적 양식이 채택되었다. 오랜기간에 걸쳐 축조된 성당 벽은 한눈에 구별되는 여러종류의 벽돌이 사용되었고, 좌측량의 소성당은 후년에 증축된 것으로 르네상스 양식이 완연하다. 정면 출입문 왼쪽에 우람한 종각과 쌍종각 위에 왕관탑이 씌워져 있고 오른쪽에는 종탑 부분이 미완성인채로 있다. 산 안드레드 소성당을 통해 올라갈 수 있는 이탑은 아빌라 도시 전부를 전망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 시벽 안팎을 살펴보기에 안성맞춤이다.
아빌라 대성당이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은 대데레사가 출생한 곳에 세워져 있음은 물론, 일찍이 갈멜 수녀회를 중심으로 수도원 개혁운동이 일어나서 수도자의 엄격한 규율과 경건한 생활이 널리 알려졌으며, '성인들의 아빌라'라는 소문과 함께 수도자가 늘어났고, 십자가의 성 요한 같은 분이 배출되었기 때문이다.
■ 엔까르나숀 수도원 (Convento La Encarnacion)
아빌라 성벽의 북쪽 300m에 있으며, 1515년 4월 4일 문을 열었는데, 이 날은 데레사가 세례를 받은 날이기도 하다. 데레사는 이 수도원에 입회 하여 27년간 수녀생활을 하였고, 이곳을 떠나 산 호세(성요셉) 수도원을 설립, 운영하다가 다시 이 수도원에 돌아와 14년간 원장직을 지냈다.
데레사는 1555년과 1556년 사이에 환시를 보고 신비스런 음성을 들었는 데, 너무도 두렵고 벅차서 불안에 떨었다. 아빌라의 고해 신부 겸 상담 자인 알칸타라의 성 베드로에게 영적 지도를 받은 후, 그 환시가 진실 임을 확신하게 되어 반대를 무릅쓰고, 그 당시의 다소 해이해진 수도 생활보다 더욱 엄격한 봉쇄생활을 원하는 수녀들을 위하여 아빌라에 성 요셉 수녀원을 세웠다.
1567년 갈멜 수도원의 총장인 루베오 신부가 성 요셉 수도원과 같이 엄 격한 규칙을 따르는 다른 수도원을 세우도록 그녀에게 허락하여, 메디 노 델 깜뽀에 제 2의 수도원을 세울 때 청년 수도자인 십자가의 성 요 한을 만났다. 1568년에는 두렐로에 남자를 위한 최초의 수도원을 세웠는 데, 이것이 최초의 개혁 갈멜 수도원이다. 데레사는 스페인 전역을 순회, 갈멜 수도원의 개혁에 전념했으나 1575년의 총회가 그녀의 개혁활동을 제한하였다. 1580년까지 갈멜 수도원 내부에는 보수파와 개혁파 간에 투 쟁이 격심하였으나, 이윽고 교황 그레고리오 13세가 맨발의 개혁파를 독 립관구로 인정하게 되었다.
데레사는 수많은 편지와 저서를 남겼는데, 영성문학의 고적이 되어 오 늘날 널리 읽혀지고 있다. 신비가의 한 사람인 데레사는 지적이고 빈틈 없는 분으로서, 깊은 영성을 지녀 차원높은 관상생활과 실천생활을 성 공적으로 조화시킨 위대한 성녀다.
알바 데 또르메스에서 선종했으며, 1622년 교황 그레고리오 15세에 의하 여 시성되었고, 1970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하여 최초의 여성 교회 박사로 선언되었다. 스페인 도처에서 성녀 데레사의 행적이 기려지고 있 는데, 특히 엔까르나쑌 수도원에는 역사적 유품과 기풍이 이어지고 있어, 순례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 산타 데레사 수도원 (Convento Santa Theresa)
역사상 아빌라가 낳은 최고의 인물로 성녀 데레사가 있다. 1515년, 유다 계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18세 때에 갈멜 수도회에 들어가서 하 느님의 사랑에 가까이하기 위한 영혼의 완벽화를 추구하며 보다 엄격한 수도 규율로의 개혁을 추진하고 별도의 카르멜리타스 데스칼사스 (Carmelitas Des Calzas, 맨발의 갈멜회)를 만들었다. 그것은 엄동설한에도 샌들만 신고 다닌데서 유래하는데, 데레사는 하느님과 영혼과의 만남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열정이 극에 달하면 몸이 바닥에서 떠올랐다고 한다.
그녀의 종교 활동의 발자취는 거리의 도처에 남아 있는데, 그 중에서도 유서깊은 곳으로 산타 데레사 수도원, 엔카르나숀 수도원, 산 호세 수도원 등이 있다.
시의 남쪽에 있는 데레사의 생가 터에 1636년에 건립된 바로크식 성당으로, 데레사가 태어난 방이 성당으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