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프랑스 파리를 거쳐 네덜란드 몇 도시를 여행하고 돌아왔습니다. 주로
고흐와 관련해 그림과 관련 장소를 보기 위함이었는데 그림은 비교적 만족스럽게 보았지만 장소는 늘 여행 때마다 느끼는 체력 문제 때문에 계획의 절반만
채울 수 있었습니다.
고흐의 그림을
집중적으로 전시하고 있는 미술관으로 크뢸러 뮐러 미술관(Kröller-Müller Museum)이 있습니다. 1938년 미술품 수집가 Helene Kröller-Müller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넓은 공원(Hoge Veluwe 국립공원, 이후 제가 네덜란드 발음을 몰라 그냥 네덜란드어 문자를 그대로 씁니다) 속에
위치한 미술관은 현대식의 심플한 단층 건물로 되어 있습니다

암스테르담에서 가는 길은 복수가 있는데 저는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기차로 Ede-Wageningen역까지
가서(56분 걸립니다) 그 곳에서 버스 108번을 탄 다음 Otterlo에서 내려(15분 정도 걸립니다) 106번 버스로 갈아타는 경로를 택했습니다.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저는 100유로 고액권 밖에 가지고 있지 않음을
알고 당황했습니다. 버스 탈 때 승차를 거부당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역 구내 상점들 여러 곳을 돌아다녔지만 100유로 지폐 사용을 거부당한
후 어찌되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기차에 올랐습니다. 이미 기차표는 예매해 둔 상태였습니다.
Ede-Wageningen역에 도착했으나 여전히 고액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버스 기사에게는 물어보지도 않고 지레 짐작으로 사용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이 곳 저 곳 수소문을 해보다 역 구내 매표창구에 가서 풍채 좋은 그러나 좀 신경질적으로 생긴 중년 여성 판매원에게
버스 표 끊으려고 하니 소액권으로 좀 교환해 달라고 했더니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1시간 간격으로 있는 버스 출발 시간이 다 되어 급한 마음에 ‘좀 바까도’ 했더니 이 판매원이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더니 ‘버스는 버스 문제지 와 여기 와서 지랄이고’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니 물어 볼 수도 있지, 아줌마야 말로 와 목소리를 높이고 지랄인데’하고 답했습니다(속으로. ㅎ ㅎ, 제가
아직 그 정도의 말을 영어로 할 능력이 못되어서요, 판매원은 영어를 잘 해요 ㅋ)
할 수 없이 좀 떨어진 시가지로 가서 중형 쇼핑몰에서 생수와 미안한 마음에 초콜렛을 더해 계산대 앞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100유로 지폐를 내었습니다. 그런데 계산원 청년은
아주 밝은 모습으로 계산을 해 주었습니다.
다시 역 앞 버스 정류장으로 왔지만 이미 버스는 떠난 뒤였습니다. 여행자에게
시간은 곧 황금이라 눈물을 머금고 택시를 타고 거액 35유로를 지급했습니다. 다행히 택시는 108번 버스 꽁무니에 따라 붙었습니다. 왜냐면 108번 버스가 빠르게 달리고, 106번 버스가 108번 버스 오기를 기다렸다 승객을 태우고 바로
출발하기 때문에 108번 버스를 놓치면 결국 1시간을 기다려야
하고 택시 탄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크기가 108번 버스의 반쯤 되는
106번 버스는 길어야 약 5분 정도 걸려 공원으로 들어가 미술관 입구에 세워주는데 버스비에
공원입장료가 포함되어 있고 왕복권이라 올 때는 따로 요금을 낼 필요가 없습니다.
미술관에 도착 한 저는 고액권 문제와 버스 시간 때문에 긴장한 탓인지 소변이 몹시 마려워 우선 화장실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저는 좌절감을 맛보았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의 소변기
높이가 높은 것은 이미 경험했지만 이곳 미술관 소변기는 높아도 너~무 높은 것이었습니다. 다른 유럽 도시에서는
높아도 까치발을 해서 안간힘을 주면 볼 일을 볼 수 있었는데 여기 소변기는 아무리 기를 쓰고 까치발을 해도 제 거시기가 소변기 위에 올라 가지를
않는 겁니다. 잘못하다간 제 거시기가 소변기에 닿을 것 같아 할 수 없이 포기하고 대변기에 소변을 보았습니다.
다른 곳에는 그래도 유아용 소변기라도 있는데(좀 굴욕적이지만) 여기는 그것도 없어요. 그래서 참담한 열패감을 느꼈습니다. ㅜ ㅜ 키 작은 자의 슬픔. 도대체 네덜란드 사람들은 얼마나 키가
큰거야? 하긴 대체로 남녀 할 것 없이 대체로 키가 크고 체격이 좋긴 했습니다.
크뢸러 믤러 미술관에는 고흐의 그림이 260여 점 있다는데 제가 모두
전시되고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물어나 볼 걸.
그 중 유명한 그림을 들라면 –저는 그냥 유명한 그림만 썩~ 보고 나오는 허랑한 여행자입니다. ㅋ-
이 미술관에 전시되고 있는 고흐의 유명 작품으로는 ‘자화상’, ‘감자 먹는 사람들’, ‘조제프 룰랭(JOSEPH ROULIN)의 초상’, ‘유모 룰랭부인(MADAME ROULIN)의 초상화’, ‘숲 속의 소녀’, ‘아를 여인 (마리 지누의 초상)’,
‘네 송이 해바라기 정물’, ‘아를의 랑글루아 다리’, ‘밤의
카페 테라스’ 등이 있습니다.

왼쪽부터 ‘조제프 룰랭(JOSEPH
ROULIN)의 초상’, ‘아이보는 여자, 룰랭부인(MADAME ROULIN)의 초상화’, ‘아를의 여인 (마리 지누의
초상)’ 입니다. 모두 아를 시대의 작품인데, 고흐는 이 시기 초상화를 많이 그렸습니다. 우체부인 룰랭은 부인과
함께 고흐를 따뜻하게 대해 준 이며 지누는 정신발작 이후 병원에서 고흐를 돌보아 주었던 여인입니다. 지누를
통해 그는 아를 여인의 진수를 그렸다고 합니다. 아를 여인들에서 고흐는 모성애을 표현했습니다. 그것은 또한 성스러운 성녀의 모습이기도 하였습니다.

‘아를의 랑글루아 다리’는
다른 고흐 그림처럼 여러 점이 있는데 실제 다리는 제2차 세계대전 때 고흐가 고갱과 함께 살던 ‘노란집’처럼 파괴된 것을 지금은 복원해 놓았습니다.(노란집은 복원 안되고 표시도 없음) 제가 몇 년 전 아를 시내에서
왕복 2시간의 거리를 걸어 갔던 기억이 생생하군요. (2013년 5월 31일 촬영) 그 때만해도 제 체력이 괜찮았는데요.

그리고 많이
알려진 ‘밤의 카페 테라스’입니다. 이젠 많이 알려졌지만 신기하게 그 가게에는 손님이 없습니다. 이웃 가게는 손님으로 북적이는데요. (2013년 5월 29일 촬영)

그리고 가장 기억되는 것이 ‘감자 먹는 사람들’입니다. 어찌 보면 같은 이름의 그림으로 암스테르담 ‘고흐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것이 더 유명할 수도 있지만, 제가 이번
여행에서 고흐미술관을 방문했을 때 공교롭게도 그 작품은 다른 대표작들과 함께 (25점 이나) 노르웨이 여행 중이었습니다. 어찌 이런 일이! ‘이건 배-배- 배-신이야!!’ 정말 허탈했습니다. 그래서
‘크뢸러 믤러 미술관’에서 본 ‘감자 먹는 사람들’이 더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미술관에는 전시 그림 위 벽에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의 구절들이 적혀있습니다. 제 생각에 영어를 ‘개무시’하는
경향의 이 나라에서 편지 글은 영어로 적혀 있어 신기했습니다.
‘감자를 먹는 사람들’ 위에는
다음과 같은 빈센트 고흐가 동생에게 1885년 4월 30일 보낸 편지의 일부가 적혀 있습니다.
‘Anyone who would rather see insipidly
pretty peasants can go ahead. For my part, I’m convinced that in the long run
it produces better results to paint them in their coarseness than to introduce
conventional sweetness.
감성적이고 나약하게 보이는 농부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다른 대상을 찾겠지. 그러나
길게 봤을 때는 농부를 전통적인 방식으로 달콤하게 그리는 곳 보다, 그들 특유의 거친 속성을 살려내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을 것이다. –2005 개정판, 신성록
옮기고 엮음, 반고흐, 영혼의 편지, 예담. 에서 인용
제가 가지고 있는 다른 영역본 (VAN GOGH’S LETTERS, Anna
Suh 편, 2006)에는 이렇게 번역해 놓았네요.
But if anyone prefers namby-pamby peasants,
it is up to them, For my part, I am convinced that in the long run it gives
better results to paint them in their roughness than to introduce conventional
prettiness.
고흐는 또한 이 편지의 다른 부분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램프 불빛 아래에서 감자를 먹고 있는 사람들이 접시로 내밀고
있는 손, 자신을 닮은 바로 그 손으로 땅을 팠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 주려고 했다. 그 손은, 손으로 하는 노동과 정직하게 노력해서 얻은 식사를 암시하고
있다.’ –신성록 앞의 책
빈센트와 테오의 형재애, 특히 테오의 형에 대한 사랑은 애틋한 면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형이 죽고 1년 후 테오도 죽어 빈센트
반 고흐가 마지막을 보낸 파리 근교 오베르 수르 우아즈(AUVERS-SUR-OISE)의 공동묘지에 형과
함께 나란히 묻혀 있습니다.


저 멀리 담장이 쳐져 있는 곳이 오베르 공동묘지입니다.
파리에서 오베르 수르 우아즈로 가는 길은 우선 파리 북역에서(메인
매표구가 아닌 매표구가 따로 있습니다. H라인을 찾아야 합니다) Pontoise로 가는 기차를 탄 후 (약 40분
걸림) 그 곳에서 오베르 수르 우아즈 행 기차를 갈아타면 됩니다.
(13분 정도 걸림) Pontoise역 바로 전역인 SAINT-OUEN L'AUMONE에서 내려도 되지만 어차피 Pontoise에서 출발하는 기차이니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제 경우는 기차에서
내리니 오베르 수즈 우아르로 가는 기차가 승강장을 바꾸지 않고 맞은 편 선로에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역에서 맞은 편 좁은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고흐의 그림으로 유명한 오베르 교회(파리, 오르세미술관)가
나오고 다시 오른쪽으로 양쪽으로 나무가 많은 길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탁 트인 들판이 나오는데 바로 유명한 고흐의 그림 ‘까마귀가 나는 밀밭’의 장소입니다.
그 들판 오른쪽에 크지 않은 공동묘지가 있고 거기에 고흐 형제가 묻혀 있습니다. 특별한
표시가 없고 입구에서 들어가서 왼쪽 벽 끝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국기가 게양되어 있길래 거긴 줄 알고 갔더니 아니더군요. ㅎ
고흐의 동료화가 베르나르는 묘지를 '드넓은 푸른 하늘 아래 들판이 굽어보이는 곳'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마침 멀리서 까마귀가 날고 있네요.

‘까마귀가 나는 밀밭’은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데 다행히 노르웨이로
가지 않고 그대로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사진을 찍지 못했습니다. 제가 이번 여행에서 방문한 여러 미술관 가운데 유일하게 사진 촬영이 금지된 미술관이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그림을 퍼왔습니다.
글이 길어졌네요. 제가 좀 무리를 한 것 같습니다. 쓸 말은 더 많은데 인터넷 글은 짧은 것이 미덕이라 ㅋ 제거 아직 독수리타법이라 쓰다 쉬다 했습니다. 그리고 오타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양해해 주십시오.
첫댓글 감사합니다.
좋은 공부 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