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해 연중 제21주일 강론 : 베드로의 고백(요한 6,60ㄴ-69) >(8.25.일)
* 오늘 복음에서 사도 베드로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신앙고백을 합니다. 시대와 상황은 다르지만, 우리도 우리 신앙을 당당하게 표현하기로 결심하면서 오늘 미사를 봉헌합시다!
1. 8/19(월)-23(금) 포콜라레 사제 하계연수를 사제 26명, 광주대교구 군종후원회 14명과 함께 했습니다. 19(월)은 우리나라에서 레지오 마리애가 제일 먼저 도입된 목포 산정동본당 연수원에서 잤고, 다음날 아침에 흑산도로 갔습니다. 흑산도 가는 것은 제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였는데, 드디어 이번에 그 꿈을 이뤘습니다.
흑산도의 첫 신자는 1801년 신유박해와 황사영 백서 사건으로 흑산도에 유배된 정약전 안드레아였는데, 유배생활 중 아이들을 가르치고, ‘자산어보’ 등 다양한 저술활동을 하며 천주교를 전했습니다. 흑산도의 유일한 본당인 흑산본당은 1958년에 골롬반수도회 신부님에 의해 돌로 튼튼하게 지어졌는데, 한때 교우들이 아주 많았지만 현재 교우는 총 58명입니다. 흑산본당 옆에 흑산문화관광호텔이 있는데 시설이 좋고, 전라도 음식과 홍어를 많이 먹었습니다. 매일미사, 기도, 운동도 하고, 가수 이미자가 부른 ‘흑산도아가씨’ 비석 공원에도 갔습니다. 이미자 씨 손바닥 크기는 제 손바닥보다 두 마디 짧을 정도로 아주 작았습니다.
9호 태풍 종달이 영향으로 홍도에 못 갈뻔했지만, 8/23(금) 아침에 흑산도에서 홍도로 갔다가 목포항에 도착하니 오후 6시 10분이었습니다. 즐거운 4박 5일간 하느님 안에서 형제애와 일치를 다질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연수 때 가장 연장자 신부님은 79세의 춘천교구 김택신(요셉) 신부님인데, 재작년 10월 말에 신부님의 춘천 아파트에 가봤습니다. 작년에 사제 금경축(사제서품 50주년)이고, 올해 사제서품 51주년인 김 신부님은 1946년 강원도 양양에서 태어나 1973년에 사제가 되어 홍천본당 보좌로 사목을 시작했고, 군종교구, 로마 유학을 거쳐 본당사목, 교구 관리국장, 총대리, 사무처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교구 성사전담사제로 활동 중이십니다.
전 춘천교구장 김운회 주교님과 서품 동창이라, 작년 10월 17일 춘천교구 죽림동주교좌성당에서 금경축 축하식을 함께 하셨는데, 김 신부님은 축하인사말로 “전깃불도 없던 두메산골에서 태어나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사제가 됐고, 주님 은총과 사랑, 은혜로 50년간 사제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남은 생애 동안 예수님을 모시고 행복하게 살며, 하느님께로 걸어가겠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연세가 많아도 이렇게 겸손하신 김 신부님 곁에서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2. 제 가족 중 제일 먼저 신자가 된 분은 모친입니다. 모친 덕분에 천주교를 알게 된 저는 여동생들과 함께 1979년 4월 5일 봉덕성당에서 故 강찬형(빠스칼) 신부님께 세례를 받았습니다. 모친이 우리 친가에 전교해서 다 신자가 되었지만, 외가에는 신자가 없습니다. 조카들까지 3대 천주교 집안이지만, 신심의 뿌리가 아직 약한 것 같습니다.
신교우 집안이 아무리 열심하다고 해도 구교우 집안의 신앙을 능가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교구의 故 김경식(보니파시오) 신부님 (1939.6.5.- 2010.4.27./ 향년 72세)의 사제성소에 대한 고백을 소개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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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내 생명이 내 것이 아님을 철저히 가르쳐주셨다. 나는 건강한 우량아로 태어나서 할아버지는 대장군이 될 정도로 건강한 아이라고 기뻐하셨지만, 자라면서 건강이 좋지 않았다. 생후 1개월 때 일본에 가서 풍토관계로 백일해에 걸려 고생했고, 3살 때는 마루에서 떨어져서 머리와 어깨를 다쳐 한 달 동안 병원에 다녔다. 6세 때는 홍진을 앓았는데, 병이 낫기 전에 일본에서 마지막 연락선을 타고 가족 모두 귀국했다. 당시 우리 집은 히로시마에 있었기 때문에 1개월만 더 있었어도 원자탄을 맞았을 것이다.
7세 때는 뇌막염에 걸려 죽을 뻔했다. 온 몸이 뒤틀리며 열이 43도까지 올라가 며칠간 정신을 잃었다. 해방 후, 콜레라와 장티부스 등 전염병이 돌던 7세 때도 병을 앓았는데, 집집마다 환자들을 찾아내 트럭에 실어 어디로 호송했다고 하는데, 그때 실려간 대부분의 사람은 거의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우리 집에서는 어머니와 내가 장티부스에 걸렸다. 10세 때는 복막염에 걸려 1년 이상 고생했지만, 중학교 때는 결석 없이 기적적으로 학교를 마쳤다. 하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는 늑막염에 걸려 몇 달 앓았다. 다행히 고 3은 무사히 넘기고, 신학교에 입학했다.
서울 신학교 2학년 때 세면대에 침을 뱉으니 가래와 피가 섞여 나왔다. 폐결핵이었다. 폐위에 달걀만한 구멍이 생겨 4.19 때 금오산에서 요양했다. 다행히 9월에 복학했지만, 결핵약이 위장에 부담되어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소화시키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러다가 군에 입대하여 잘 참고 견뎠는데, 급성신장염에 걸렸다. 그 때문에 루마티스 관절염을 앓기 시작했는데, 그때가 1964년 봄이었다. 그 후 33년간 약을 먹었다.
병을 앓으며 난 늘 죽음을 준비했다.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마음으로 시간을 아껴 썼고 바쁘게 움직이며 충실히 일했다. 덤으로 사는 삶이라 여기고 무슨 일이든 주어진 일을 순명하며 받아들였다. 이처럼 하느님은 질병을 통해 나를 구원사업에 불러주셨다. 제일 작은 본당에서 제일 큰 본당에 이르기까지, 꾸르실료, ME 지도, 200주년 기념 사목회의 주관, 사목국, 관리국, 관덕정, 한티, 신학교에 이르기까지 여러 곳에서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했다.
- 청도 각북 명상의 집과 병원을 오가며 투석하다가 선종.
3.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신앙고백을 했던 사도 베드로를 교회의 반석으로 세우고, 천국의 열쇠를 주셨습니다. 집 열쇠를 아무한테 주지 않고, 믿을 만한 사람에게 맡기죠? 저도 그렇습니다.
지난 8/20(화) 성전과 마리아관의 7개 방에 냉난방기를 설치했는데, 소중하게 잘 사용하고, 스위치 잘 끄고, 문단속도 잘하며, 성당 곳곳을 아끼고, 신앙을 늘 고백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