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봉려관 스님 추모다례제 및 행적비 제막식
/이병철 기자 승인 2012.07.18 10:43 댓글
지난 17일 관음사 경내서…“스님의 희생정신의 불씨 퍼뜨려야”
제주불교 중흥조 안봉려관 스님 열반 74주기 추모다례제 및 행적비 제막식이 지난 17일 조계종 제23교구 본사 관음사 경내에서 봉행됐다.
이날 추모다례제 및 행적비 제막식에는 성효 스님(관음사 주지)을 비롯해 연종 스님(일붕선교종 종정), 종호 스님(제석사 주지), 일조 스님(대원정사 주지), 일현 스님(불탑사 주지), 혜전 스님(해월문도 대표․도남 보덕사 주지) 등 대덕 스님과 오홍식 제주시부시장, 윤두호 제주도교육의원 등 기관단체장, 오영호 봉려관선양회장, 양방규 관음사거사림회장 등 불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범패의 대가 범진 스님(수정사)의 헌공으로 진행된 행적비 제막식에 이어 추모다례제로 진행됐다.
오영호 회장은 경과보고를 통해 “봉려관선양회는 제주불교를 크게 일으키기 위해 희생하신 제주불교 중흥조 해월당 봉려관 스님의 뜻을 기리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그동안 봉려관 스님에 대한 역사적 조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안타까웠다”며 “오늘 행적비 봉안은 도내 불자는 물론 관음사를 찾는 관광객과 도민들에게 봉려관 스님의 업적을 많이 알리기 위해 추진된 가운데 건립에 힘써주신 김수진 회장님과 글을 써주신 현병찬 선생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성효 스님은 인사말에서 “비구도 하기 힘든 수많은 난관을 비구니의 몸으로 극복하고 제주불교를 중흥하는데 큰 원력을 세운 봉려관 스님은 제주도가 유일하게 내세울 수 있는 분”이라며 “제주불교 중흥의 큰 뜻을 지닌 봉려관 스님의 정신을 우리는 더욱 퍼뜨려 스님의 희생정신을 받들어 나가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봉려관 스님의 행적비에 새겨진 내용은 다음과 같다.
봉려관 스님은 1865년 제주시 화북동에서 태어났다. 34세가 되는 1899년 우연히 한 노인으로부터 관음보살상을 받은 인연으로 출가, 해월굴에서 6년여 용맹정진 끝에 크게 깨달았다. 이에 제주불교를 중흥코자 서원, 1907년 12월 전남 대흥사를 찾아 믿기 어려운 기적을 행함으로써 청봉화상을 계사로 유장 스님을 은사로 비구니계를 수계, 이듬해 1월 제주로 내려와 1908년 관음사를 창건, 개산조가 되었다.
법화사, 불탑사, 법정사, 월성사, 백련사 등을 중창 또는 창건하고 국내 대덕스님을 초청, 정법홍포에 매진하였다. 또한 법정사 무오항일항쟁의 중심에 서서 활동자금을 지원하는 등 여성의 사회참여에 선구적 역할을 하였다. 1936년 세수 71세, 법납 37세로 입적하시니 슬퍼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봉려관 스님은 조선조 억불정책으로 인한 200여년 간의 무불시대를 마감하고 이 땅에 불교를 일으켜 세운 제주불교 중흥조요, 선각자요, 애국자이시다.
다음은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頌)다.
오동송
구름 걷히니 낯이 붉음을 보네
구름 있을 적엔 구름이 붉을 줄 알았다.
봉우리 오르려는 참 뜻을 아는가
무주공산이란 이런 것이로구나
열반송
이 몸 타는 것이 걱정이 아니라
연기가 고르게 오르지 못할까 걱정이다
낙조의 붉음을 따라 갔다가
또한 붉음을 보거든 나의 원력이 그런 줄 알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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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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