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일 : 2024년 9월 13일
40번째 성지순례는 1.풍수원 성당 성지 입니다.
순례를 떠나면서 바치는 기도
† 자비로운신 주님
약속의 땅을 향하여 떠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친척 엘리사벳을 돕기 위하여 길을 나선
겸손 과 순명의 여인 마리아의 발걸음을 인도하셨듯이
지금 길을 떠나는 저희 가족(신 다빗, 김 소화데레사, 신 미카엘)을 돌보시고
안전하게 지켜주시어
목적지까지 잘 도착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또한 주님께서 언제나 저희(신 다빗, 김 소화데레사, 신 미카엘)와
함께 계심을 깨닫게 하시고
길에서 얻는 기쁨과 어려움을 이웃과 함께 나누게 하시며
하느님 나라에 대한 희망과 믿음, 사랑의 생활로
참다운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바나이다.
아멘.
" 숨어 신앙을 유지한 산골에 세워진 강원도 첫 번째 성당 "
풍수원 성당 성지
[원주교구]
성지 알아보기
한국 천주교회의 특징은 첫째, 성직자의 도움 없이 평신도들이 자발적으로 창설했고 둘째, 학문 연구에서 출발한 것이 종교와 신앙으로 발전했으며 셋째, 신앙이 교우들에게 뿌리내리면서 성직자를 영입하려 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강원도 지역에 복음이 전해지기 시작한 것도 역시 같은 양태로 이루어지게 되며 그 대표적인 곳이 바로 풍수원 성당이다. 1888년 6월 20일 본당이 설립되어 풍수원에 세워진 현재의 성당은 1909년에 낙성식을 가진 건물로서 한국인 신부가 지은 첫 번째 성당이고, 강원도 최초의 서양식 벽돌 조적 건축물이자 한국에서 네 번째로 지어진 고딕 · 로마네스크 양식의 벽돌 조적 성당이다. 이런 이유로 성당 건물은 1982년 11월 3일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되었고, 성당보다 5년 늦은 1912년 건립에 들어가 이듬해 완공하여 현재는 유물관으로 사용하는 구 사제관 또한 2005년 4월 15일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163호로 지정되었다. 구 사제관은 원형이 잘 남겨진 벽돌 조적 사제관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다.
시기적으로 볼 때 강원도 지역에 천주교가 전래된 것은 신유박해가 일어나던 1801년경으로 보인다. 이때 서울과 경기도 용인 등지에 살던 교우들은 박해의 칼날을 피해 강원도나 충청도의 산간 지역으로 숨어들게 된다. 식솔을 이끌고 혹은 혈혈단신으로 관헌의 눈을 피해 산으로 계곡으로 피난처를 찾던 이들 중에서 복자 신태보 베드로(申太甫, 1769?-1839년)는 40여 명의 교우를 이끌고 강원도 횡성군의 풍수원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여기에서 교우촌을 형성하면서 강원도 최초의 본당 설립을 위한 기반을 닦았다. 바람 소리 새 소리가 유난하고 사람들의 발길이 감히 다가들지 못하는 첩첩산중에서 이들 신앙 공동체는 소박하지만 평화롭게 기도와 생활을 영위했다.
1866년 병인박해와 1871년 신미양요는 또다시 수많은 교우들을 고향에서 떠나게 만들었다. 이때 풍수원에 정착한 교우들은 사방으로 연락을 취해 피난처를 찾던 신자들을 불러 모아 큰 촌락을 이루었다.
이렇게 같은 신앙을 가진 이들끼리 모인 공동체는 한편으로는 화전(火田)을 일구고, 다른 한편으로는 옹기를 구워 생계를 유지하면서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1886년 한불수호통상조약으로 신앙의 자유를 얻게 된 교우들은 처음 풍수원으로 찾아든 이래 무려 80여 년 동안을 목자 없이 오로지 평신도들로만 신앙 공동체를 이룬 채 믿음을 지켜 왔다.
하지만 신앙의 자유가 확보된 그 이듬해 교우들은 목자가 없는 양 떼들을 위해 신부가 상주해 돌봐주기를 열망하였다. 그에 대한 응답으로 1888년 당시 조선 교구장이었던 뮈텔(Mutel) 민 대주교는 풍수원 본당을 설립하고 초대 주임으로 파리 외방전교회의 르 메르(Le Merre) 이(李) 신부를 임명했다. 르 메르 신부는 이로써 춘천, 화천, 양구, 홍천, 원주, 양평 등 12개 군을 관할했고 당시 신자 수는 약 2,000명에 이르렀다. 아직 서양식 성당 건물을 알지 못했던 이들은 초가집 20여 칸을 성당으로 사용했었다.
그러다가 1896년 제2대 주임으로 부임한 정규하 아우구스티노 신부는 중국인 기술자들과 함께 현재의 성당을 1905년에 착공해서 1907년에 준공했고 2년 뒤인 1909년에 낙성식을 거행했다. 이 성당은 신자들이 직접 벽돌을 굽고 아름드리나무를 해 오는 등 건축 소재를 스스로 조달했는데 그 열성은 가히 오늘날 신자들이 본받을 만한 것이었다.
풍수원 성당의 교세는 크게 확장됐고 원주, 춘천, 양평, 횡성, 평창, 홍천 등 주위의 본당들은 모두 풍수원으로부터 분가되어 나온 것이다. 이처럼 강원 지역 전교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던 풍수원 성당에는 오랜 세월 성숙된 신앙의 유산을 배우고 묵상하고자 지금도 많은 신자가 찾아오고 있다.
풍수원 성당은 개인이나 가정 또는 단체로 피정을 할 수 있는 피정의 집과 1997년 구 사제관을 대대적으로 개조하여 1999년 5월 11일 유물관을 개관하였다. 유물관에는 초기 한국 교회의 역사와 신앙 선조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유물과 역대 본당 신부들이 사용했던 제의와 제구 등 다양한 역사 유물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전시하였다.
풍수원 성당과 횡성군은 2000년부터 강원도 유형문화재인 성당 일대에 유현 문화관광지(바이블 파크)를 조성하는 사업을 시작하였다. 성당 일대에 조성되는 유현 문화관광지는 성지를 방문하는 신자들을 위한 대형 광장과 진입로, 유물전시관, 피정의 집과 휴양촌, 지하성당과 가마터를 복원한 역사마을 등을 순차적으로 마련할 계획을 세웠다.
2002년부터 본격화된 유현 문화관광지 조성 사업의 하나로 그해 5월 23일 십자가의 길 축복식을 거행하고 진입로 확장 공사도 마쳤다. 2003년에는 금대리에 있는 유현 초등학교 금대 분교(2001년 폐교)를 임대하여 생명학교를 운영하며 귀농학교를 설립하였다. 개인과 가정, 단체로 피정이 가능한 청소년 야영장도 마련하고, 십자가의 길이 끝나는 산 정상에는 회개동산을 조성하였다.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사업이 지연되는 등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성당 뒤편에 강론광장을 조성하고 그 옆에 신앙 선조들의 일상을 볼 수 있는 농기구와 민속품, 성물과 기도서 등을 전시하는 유물전시관을 건립하여 2013년 4월 30일 축복식을 가졌다.
이로써 유현 문화관광지 1단계 조성 사업을 마친 원주교구와 횡성군은 2단계 사업 또한 지속적으로 진행하기로 하고, 성당 건축을 위해 벽돌을 구웠던 가마터와 말을 세워 놓고 쉬어 가던 원(院)터와 쉼터 등을 조성하였다. 2018년 6월 20일에는 본당 설립 130주년을 경축하며 유물관으로 사용하던 구 사제관을 복원하여 축복식을 갖고 역사관으로 새로 개관했다.
풍수원 성당에서는 한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성체 현양 대회가 매년 열리는데, 제1회 성체 대회가 1920년에 실시된 이래 6 · 25로 빠진 3년간을 제외하고는 매년 열려 왔다. 오랜 역사만큼 30여 명이 넘는 사제를 배출한 성소의 못자리로서도 풍수원 성당은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출처 : 주평국, 하늘에서 땅 끝까지 - 향내나는 그분들의 발자국을 따라서, 가톨릭출판사, 1996, 내용 일부 수정 및 추가(최종수정 2019년 12월 29일)]
성지 둘러보기
오전 11시 미사 참례합니다.
† 순교자 성월
한국 순교자들에게 바치는 기도
○ 이 땅의 모든 순교자여,
당신들은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굳은 신앙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과 교회를 위하여
피를 흘리셨나이다.
● 저희는 현세에서 악의 세력과 치열하게 싸우며
당신들이 거두신 승리의 영광을 노래하고
모든 선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찬양하오니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 위대하신 순교자들이여,
천상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와 함께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시어
하느님의 자비를 얻어 주소서.
● 지금도 어둠의 세력이
교회를 박해하고 있사오니
하느님께서 전능하신 팔로 교회를 붙들어 보호하시며
아직 어둠 속에 있는 지역에까지
널리 펴시도록 빌어 주소서.
○ 용감하신 순교자들이여, 특별히 청하오니
우리나라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 주소서.
● 당신들은 이 땅에서
많은 고난을 겪으며 사시다가
목숨까지 바치셨으니
○ 전능하신 하느님께 빌어 주시어
교회를 이 땅에서 날로 자라게 하시며
사제와 수도자를 많이 나게 하시고
● 신자들이 주님의 계명을 잘 지키고
냉담 교우들은 다시 열심해지며
갈린 형제들은 같은 믿음으로 하나 되고
비신자들은 참신앙으로 하느님을 알아
천지의 창조주
인류의 구세주를 찾아오게 하소서.
○ 참으로 영광스러운 순교자들이여,
저희도 그 영광을 생각하며 기뻐하나이다.
간절히 청하오니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께 빌어 주시어
저희와 친척과 은인들에게
필요한 은혜를 얻어 주소서.
● 또한 저희가 죽을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한결같이 믿어 증언하며
비록 피는 흘리지 못할지라도
주님의 은총을 입어 선종하게 하소서.
○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이여,
●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성체 조배실
구)사제관(역사전시관)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163호
한국천주교 세번째 신부 - 정규하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1863년 8월 18일 출생(충남 아산군 신창면 남방리)
1884년 페낭(Penanag) 유학
1891년 귀국
1896년 4월 26일 사제서품(중림동 약현성당, 뮈텔주교 집전,
강도영 마르코/강성삼 라우렌시오 신부와 함께 서품)
1896년 6월 10일 풍수원본당 보좌로 부임
1896뇬 8월 17일 풍수원본당 제2대 주임으로 부임
1907년 11월 22일 풍수원본당 성전 착공
1910년 성전 완공
1910년 삼위학당(광동국민학교의 전신) 설립
1911년 3월 11일 성부안나회(안나회) 설립
1920년 6월 3일 제1회 풍수원 성체헌양대회 거행
1943년 10월 23일 선종
초가 사랑방
풍수원 성당 전경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9호
식당 / 야외 테이블
풍수원 십자가의 길
▲ 무명의 묘 들이 있다.
회개 동산
조이분(마리아)할머니의묘
풍수원성당의 의인
조이분마리아 할머니
조이분마리아 할머니는 1891년에 태어나 6살 때 아버지를 잃고 의붓아버지 밑에서 고생하다 9살의 어린 나이에 민며느리로 보내졌다.
시가에서도 시어머니의 학대와 구타로 한쪽 눈을 실명하고 고관절 파열로 절름발이가 되어 쫓겨나 전전하다 풍수원에 당도하였다. 남의 애보기와 살림을 거들다
당시 정규하 신부님의 배려로 '안나의 집' 문간채에 살며 소량의 쌀을 지원받게 되자, 고아와 장애인 등 7명을 데리고 산나물을 듣고 델감을 손수 장만하면서 공동생활을 꾸려가는 봉사와 희생을 실천하였다.
1910년 한일합병이 된 이후에도 4명의 고아를 돌보고, 반신불수와 중증치매인 등 두 할머니의 밥을 떠먹이고 대소변을 받아내며 수발하였다. 6.25전쟁 때는 피난도 가지않고 성당 성물을 항아리에 담아 땅에 묻어둠으로써 성물들을 지켜내었다.
조 할머니는 동네 노인임종 때마다 며칠씩 밤을 새며 유족과 함께 하고 돌보았으며, 살림이 어려운 집 아이을 돌봐줌으로써 부모들이 안심하고 농사일을할수있도록 도와주는 등 고귀한 희생과 봉사를 평생토록 실천하다가
1971년 6월 24일 임종하였다.
풍수원성당 뒤편 십자가의 길에 할머니의 묘소가 안치되어있다.
성모 칠고
강론광장
유현 문화관광지
▼ 유물전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