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렀다.
산약초 책 3권이 비닐에 감싸였다. 무척이나 크고 두께도 엄청났다.
무겁다. 억지로 책 더미를 밀어서 뒷면을 보니 책값이 80,000원으로 보였다.
퇴직한 지 10년째로 접어드는 나한테는 비쌌다.
다른 책을 살펴보다가 아무래도 그 책이 아른거렸다.
중고가격을 알고자 서점 안에 있는 컴퓨터에 책 이름을 검색했더니 최소가격이 400,000원이다.
놀라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정가는 800,000원.
중고가격이 400,000원이라고?
내가 왜 처음에는 80,000원으로 보았는지 황당했다. 두 번째에는 800,000원이다.
내 시력과 뇌 인식력에 이상이 있다는 증거였다.
가격도 입이 쩍 벌어질만큼 비싸다.
예전 직장 다닐 때라면 까짓것이지만 지금은 전혀 아니다.
백수건달이고, 연금은 한 푼도 없다.
연금은 아내가 알아서 처리하기에 내 지갑의 두께는 자꾸만 얊아지고 무게는 가벼워진다.
가벼워진다는 사실이 문득 슬펐다. 조만간 아내한테 손 내밀어야 하겠지.
한 질 3권의 두툼한 책은 한약초에 대한 큰 사전이다.
내가 한의학에 관련 있는 사람도 아닌데 약초, 들풀 산꽃, 나무에는 관심을 조금 가졌다.
직장 다닐 때부터, 오십 살 전후부터, 이십여 년 전부터 식물에 관심을 가졌으나 크게는 아니다.
텃밭에서 숱하게 자생하는 잡과 잡풀이 무엇인지가 궁금했고, 등산 다니면서, 들판을 걸어다니면서 보이는 나무와 풀 이름이 궁금했다. 나무와 풀의 생리를 더 알고 싶어서 시골 장터, 서울 양재동 꽃시장에서 모종 한 두 개를 사다가 심었다. 많이는 아니다.
아쉽게도 어디에 심었는지 기억도 하지 못했다. 다른 일을해야 했기에. 식물에 관심을 가졌다고 해도 직업이 없는 나한테, 돈이 없는 나한테 책값이 400,000원(정가의 반액)이라면 지나치다.
아쉽다.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쉰 살 때쯤부터 산약초에 관한 책을 사기 시작했다.
풀과 묘목을 구해서 시골 텃밭에 조금씩 심었으나 숱하게 죽였다. 재배기술 부족이었다.
그나마 몇 년 전부터는 텃밭가꾸기를 많이 포기해야 했다. 아흔여섯 살, 치매증세가 진행 중인 늙은 어머니를 서울, 지방의 종합병원에 입원시키고는 여기에만 매달려야 했다. 아들이 나 혼자뿐이기에 더욱 고단했다. 그 결과로 텃밭 세 자리에 심었던 나무와 풀들은 제멋대로 크거나, 죽거나를 거듭했다.
몇 년만에 실패한 귀향, 좌절한 귀촌으로 변질되었다.
2015년 2월 말. 아흔일곱 살을 막 맞이한 어머니를 흙속에 묻고는 나는 그참 서울로 올라왔다.
상속세로 빈털이가 된 내가 또다시 농업 책을 사려면 먼저 주머니 사정을 헤아려야 한다. 값이 싼 책은 살 수 있지만 위처럼 책값이 무려 400,000원이라면? 정가의 반인데도 구입할 꿈도 접었다.
서점 바깥으로 나왔다. 내 모습이 초라했고, 마음이 씁쓸했다.
퇴직한 뒤에는 무척이나 가난해졌다.
자식 셋을 결혼시켰으며, 어머니의 병원비와 장례비, 특히 상속세때문에 부동산을 저당잡혀 빚 냈다. 내 통장은 비었다. 죽으라는 법은 없던가? 지난해에 내 고향 마을에 일반산업단지가 들어섰다. 선산(종산)과 밭, 논이 토지수용되었기에 보상금을 조금 받았다. 상속세 내려고 대출받았던 빚을 청산했더니만 토지보상금도 사라졌다. 이런저런 이유로 내 수중에는 남는 게 없었다.
그런데도 돈 쓸 일이 아직도 있다.
막내아들이 결혼한다면? 결혼비용과 월세방 한 칸이라도 보태주려면 그게 다 돈이다.
나한테는 마땅한 방안도 계획도 없다. 그냥 답답할 뿐이다.
텃밭농사를 짓는 데에 책이 꼭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식물 종류(이름)와 특성만 알면 그뿐이다.
산약초, 산야초, 정원수, 텃밭농사에 관한 지식은 아마츄어 수준이면 족하다.
이런 류의 농업책, 산야초 책은 시골집에는 제법 있다.
지나치게 비싼 위 전문서적은 아쉽게도 마음속에서 접어야겠다.
2.
책값에 기가 눌려서 알라딘 서점을 벗어났다.
잠실역과 통로가 연계된 교보문고잠실지점에 들렀다.
시 쓰기, 수필 쓰기, 소설 쓰기 등에 관한 책들은 무척이나 많았으나 '산문 쓰기' 책은 눈에 띄이지 않았다.
소설은 예전부터 제법 많이 읽었다. 직장 도서실에서 빌려서 읽었기에 소설이 무엇인지는 조금은 짐작을 한다. 시와 수필은 전혀 아니다. 글 숫자가 100에서 1,000인 짧은 글인데도 이해하지 못한다.
수필도 모른다. 원고지 200자 기준 20매인 짧은 글인데도 수필의 본질은 모르겠다.
시 쓰기, 수필 쓰기 이론은 지나치게 어떤 형식(틀)에 갇혔다고 단언한다.
나는 생각, 영혼, 행동이 조금은 엉뚱하기에 못질한 것 같고, 밧줄에 묶인 듯한 형식과 틀은 맞지 않는다. 마치 무거운 쇳덩어리 같으니까. 그것도 녹이 쓸어버린 고물같으니까.
나는 촌태생이었기에 농사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조금은 알고 있기에 퇴직한 뒤에는 텃밭농사를 짓는 체한다.
일하면서 느끼는 생각과 농사에 실패한 경험들을 낙서하는 것처럼 자유롭게 글 쓰기를 좋아한다.
아무런 형식도 없다. 그냥 잡글 수준이다. 다만 글자를 덜 틀리려고 애 쓰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제약도 받지 않는다.
생활에서 늘고 느끼는 모두가 나한테는 훌륭한 글감이다.
어떤 수필쓰기 책에서는 '글감이 숱하게 많다'는 생각이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수필의 소재가 적여야 하는가 하는 의문도 생긴다.
또 어떤 수필쓰기 책에서는 '한자어, 존댓말을 써야 한다'고 했다.
왜 우리말이 있는데 구태여 한자어(한문자를 한글로 쓴 것) 위주로 글 써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존댓말을 많이 써야 품위가 있다는 논리도 나한테는 웃긴다.
존댓말을 글로 쓰는 게 무척이나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예컨대 이렇다. 막 결혼한 새댁이 시아버지를 보고 '시아버님 진지 드세요'라고 말한다.
이 말을 영어로 번역하면 과연 존댓말이 제대로 될까 하는 의문이 든다.
시아버지, 시아버지님, 시아버님, 아버지, 아버지님, 아범님 등 다양한 명칭이 영어에도 있는가?
'님'을 영어로는 어떻게 표현하는가?
여기에 '밥'을 표현하는 말이 여러 개나 된다.
'먹다'에 대한 말도 여러 가지나 된다. 먹다, 자신다, 드신다 등.
'밥' 대신에 '진지', 제사 지낼 때의 밥은 '메'라고 한다. 임금이 먹는 밥은 '수라'라고 한다.
밥(맘마, 진지, 메, 수라 등)에 해당하는 한자, 영어 단어가 있을까?
존댓말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한자를 숭상한다.
우리말을 중국 글자인 한자로써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
예컨대 아버지, 애비, 아비, 아범, 아범님(존댓말) 등을 한자로 표현하면 어떤 글자가 됄까?
없다. 영어이든 한자이든 간에 없다.
지나친 존댓말에 고개를 내젖는다.
우리말은 동사가 무척이나 발달하였다.
동사어미에 '~시'를 붙이면 존댓말이 된다.
예컨대 '간다'는 '가신다'로, '온다'는 '오신다'로 쓰는 이치다. 동사마다 이렇게 '~시'를 덧붙이면 정말로 글 길이가 길어지고, 온통 '시'로 변하는 꼬라지가 된다. 글 읽을 맛이 싹 가신다.
나는 언어의 민주화를 원한다.
우리말은 평어체, 생활어가 더 가치 있다고 본다.
존댓말을 써서 수필 품위를 높여야 한다는 어떤 수필쓰기 이론에 나는 거부한다.
수필 품위를 가리키는 방법은 다양하다.
우선 우리말로 쓰고, 오탈자가 적어야 하고, 띄어쓰기 맞춤법에 적합해야 되며, 내용이 진부하지 않고 싱싱해야 되고, 우선은 이해하기 쉽고, 재미가 있어야 한다 등이다.
내가 원하는'산문 쓰기'에 관한 책은 비치되지 않았다.
있을 법도 한데... 이미 책으로 나왔을 것 같은데...
나는 정년 퇴직한 지가 10년 째이니 실제 나이는 많다.
시골로 내려가 텃밭농사를 짓는 체했다.
그나마 어머니 돌아가신 뒤에는 서울로 올라왔기에 일할 일거리는 크게 줄었다.
나한테는 '세상사는 이야기'가 줄었다.
바쁜 삶에서 떠났으니, 날마다가 일요일, 날마다가 쉬는 날, 날마다가 노는 날인 나한테는 글 소재가 빈약하다. 더우기 게을러서 집안에서만 쑤셔박혔다. 글 쓴다면 예전(과거)의 일이나 회상하고, 점잖은 체하는 말이나 주어올 뿐이다. 무미건조하고 밍밍한 내용으로 산문 쓰는 체한다.
소위 '잡글' 수준이다.
그런데 나는 잡글이 훨씬 재미난다. 살아서 파닥거리는 생선처럼.
2017. 7. 9. 일요일.
00: 30.
자야겠다. 이런 것도 잡글이다. 나한테는 글감이고...
자고 난 뒤 내일 보태자.
'언어의 민주화'를 원한다.
평범한 이야기로도 훌륭한 글감이 된다고 반박하고 싶다.
하나의 사물/사건인데도 에둘러서 표현하는 시의 형태가 마음에 들지 않고,
보이지 않는 어떤 틀(상자 속에 갇힌)에 얽매인 수필 쓰기 이론에도 별로이다.
글은 살아 있어야 한다.
재미가 최우선이어야 한다.
읽어서 쉽게 이해해야 된다.
실생활에 도움이 되면 더욱 좋고...
이런 생각을 동조하는 산문책이 있었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