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 수북이 쌓인 은행잎을 보며 이른 출근을 했다. 사무실에 특별한 볼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들렸다 나가야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직업병이다. 오늘부터 2박 3일 제주도에 간다. 광주공항 주차장은 이미 만차다. 코로나19로 움츠렸던 것들이 조금씩 깨어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최근 급증하고 있는 코로나19 확진자로 인해 신경이 쓰인다.
비행기 트랩을 밟으며 마주한 제주도의 첫인상은 매서운 바람과 추위였다. 점심 후 느긋하게 돌아본 성읍민속마을과 제주민속촌은 제주인의 삶과 문화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흥미로웠던 것은 집 뒤안에 있는 똥돼지를 키우는 공간이었다. 어렸을 때 어느 친척 집 변소에 갔다가 발아래 있던 똥돼지 때문에 볼일을 보지 못한 일이 떠올랐다.
저녁 식사는 재작년 제주도에 왔을 때 드렸던 한아름식당으로 왔다.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 식당으로 두터운 생오겹살은 맛은 물론 가격도 착했다. 숙소에 도착하니 오늘 하루 만 보를 넘게 걸은 탓인지 피곤하다. 여행은 어차피 걷는 만큼 보이는 것이다.
둘째 날은 신천리 벽화마을을 걷는 것으로 시작했다. 걷다 보니 바닷가에 이르렀다. 이번 여행에서 첫 번째로 만난 제주바다를 보며 실로암사람들과 여행을 위해 기도를 드렸다. 걷는 것에 대한 부담 때문에 별생각 없이 찾은 섭지코지는 최고의 순간을 선물해 주었다. 섭지코지는 좌우 200도가 넘는 시야에 펼쳐진 수평선과 눈이 닿는 곳까지 섬 하나 걸쳐있지 않고 탁 트여 있었다. 방두포등대를 향하여 걷다 보니 노랗고 보랏빛 들꽃이 발아래 펼쳐져 있다. 섭지코지에서 바라본 성산일출봉의 자태는 장관이었다.
한화 아쿠아플라넷을 거쳐 숙소로 왔다. 오늘은 동네 한 바퀴를 돌 요량으로 나섰더니 바닷가로 이어졌다. 금세 어둠이 내렸다. 절벽을 때리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한참을 걸었다. 혼자서 걷기 좋은 밤이다.
셋째 날은 새벽 6시에 일어나 성산일출봉 입구를 찾았다. 이미 일출을 보기 위해 올라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해안도로를 따라 걷다가 이생진 시인의 그리운 바다 성산포 시비에서 잠시 쉬었다. 오르다카페를 지나며 언젠가 카페계단에 앉아 책장을 넘기며 바닷가를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4.3 평화기념관은 일찍 찾은 탓인지 해설자가 없었다. 몇 년 전 장휘국 교육감과 함께 4.3항쟁 연수 때의 기억을 되살려 해설 아닌 해설을 하게 되었다. 4.3이 5.18이고 제주가 광주였다. 안타깝게도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참혹한 비극은 계속되고 있다. 한순간 시간과 공간이 멈춘 듯 한참을 서 있었다. 백비! 아무것도 새겨지지 않은 하얀 대리석이 누워 있었다. 높은 천장에서 쏟아지는 햇살은 살아있는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언젠가 이 비에 제주4.3의 이름을 새기고 일으켜 세우리라."
이번 여행을 통해서 장애인 주차장 운영에 대한 개선의 필요성을 실감했다. 랜트카를 이용하다 보니 참여자 대부분이 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장애인 주차장을 이용할 수 없었다. 현재 차량에 발부되는 장애인 차량 스티커를 장애인 당사자를 중심에 놓고 이루어져야 함을 확인했다.
"진정한 여행의 발견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다."(마르셀 푸르스트) 가까이 있지만 함께할 기회가 없었던 회원들에게 좀 더 다가갈 수 있어서 좋았다. 후원해 주신 기아자동차 밀알회에 고마움을 전한다. 여행의 마지막 코스는 광주시청 선별진료소에서 PCR 검사를 했다. (2021.11.2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