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가정
엡 6:1-4
부모의 삶을 통하여 가르쳐야할 하나님을 경외함, 이웃을 위한 배려, 자기희생의 삶 등이 마음 깊이 새겨지지 않으면 자녀들은 사회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물론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이 잘되기를 위해 기도할 뿐 아니라 많은 수고와 희생을 아끼지 않습니다.
사무엘하 21장에는 슬프면서도 감동적인 모성애를 보여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윗은 3년간이나 계속되는 심한 기근을 겪었습니다. 하나님은 기근의 원인이 사울과 그의 집안사람들의 범죄 때문이라고 알려 주셨습니다.
그들이 가나안 정복 당시 기브온 사람들과 맺은 평화조약을 깨뜨리고 기브온 사람들을 많이 죽였습니다.
하나님은 기브온 사람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이스라엘을 자연재해로 징계하셨습니다.
이에 다윗은 기브온 사람들을 불러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었습니다. 그들은 이 문제가 돈으로 해결될 수 없다고 하면서 사울 집안 남자 7명의 목숨을 요구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한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제외하고 사울 집안에서 7명의 남자들을 넘겨주었습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그들을 산 위에서 목매어 달아 죽였습니다. 아무리 죄의 대가를 치른다지만 자식의 죽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부모는 없습니다.
사울의 딸 메랍의 다섯 아들과 첩이었던 리스바의 두 아들을 목 매달았습니다. 졸지에 아들을 잃은 리스바의 슬픔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시체를 밤새도록 나무 위에 매달지 말라고 명하는 신명기 21장의 말씀과 대조적으로 리스바의 아들들과 다른 사람들의 시체는 나무에 달린 채 4월말이나 5월부터 여름 내내 새들과 들짐승의 먹이가 되도록 방치되었습니다.
리스바는 굵은 베로 만든 천을 가져다가 바윗돌 위에 쳐 놓은 다음 그 때부터 비가 쏟아지는데 낮에는 공중의 새들이 그 주검 위에 내려앉지 못하게 하고 밤에는 들짐승이 달려들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행여 아들들의 시신이 짐승들에게 찢길까 하여 짐승을 쫓는 어머니의 마음이 어떠할까요?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리스바에게서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마침내 이 소식을 들은 다윗은 일곱 사람의 시체와 더불어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로부터 사울과 요나단의 뼈들을 가져와 합동 장례를 치르게 함으로써 사울 집의 수치를 가려 주었습니다. 이로써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가 그치고 땅이 회복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어머니의 사랑보다 더한 사랑을 보여주신 분이 계십니다. 포로로 끌려간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이 자기들을 버리셨고 완전히 잊으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절대로 잊지 않으신다고 하시면서 그 사랑을 어머니의 것과 비교하십니다.
(사 49: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이 세상에 쉽게 끊을 수 없는 것이 혈연관계요, 그 중에서도 가장 강한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어머니와 자식의 관계라 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는 자기 배로 잉태하여 낳았고 어렸을 때부터 젖을 먹여 키웠기에 절대로 자식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잊지 않겠지? 그런데 어머니가 혹시 자식을 잊을지라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결코 잊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도리어 구원 받을 자들의 이름을 손바닥에 새겨 놓고 늘 보시며 그들을 통하여 회복될 성벽을 눈앞에 그리셨다고 합니다.
그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의 극치가 십자가 사건입니다.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셔서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시고 우리 죄를 위하여 대신 죽게 하셨습니다.
첫째 : 자녀에게 주 안에서 순종하라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1절)
로마서 1장 28-30절을 보면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 즉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자들의 죄들이 열거되는데 그중에 ‘부모를 거역하는 자’가 있습니다.
디모데 후서 3:2에서는 말세에 나타나는 현상들이 언급되는데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부모를 거역’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말세에도 부모를 잘 섬기는 것이 자식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그런 가정이 건전한 가정이요 그런 가정으로 이루어진 사회가 건전한 사회입니다.
본문은‘자녀들아’부르면서 시작되는데 여기에서 자녀들이란 단지 나이가 어린 자녀들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성인 자녀들을 포함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주 안에서 순종하라”‘순종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밑에서’라는 단어와 ‘듣는다’라는 두 단어가 합성된 것입니다.
겸허한 경청의 자세입니다. 부모에 대한 자식의 자세를 잘 표현합니다. 순종한다는 것은 자녀가 부모의 권위를 인정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주 안에서”라는 단서가 붙습니다. 즉, 주를 경외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순종이라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려면 주님께서 부모에게 주신 권위를 인정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5:22절에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복종 (submission)은 남편에 대한 사랑의 표현으로 아내가 남편에게 자발적으로 자신을 드려 섬기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자식들에게 권면할 때 바울은 자발적인 의미의 ‘복종’대신 강제적인 의미가 담긴 ‘순종’(obey)을 사용합니다.
둘째 :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있는 첫 계명이니“(2절)
바울은 자녀들이 부모에게 보여야 할 바른 태도가 무엇인지 구약성경에 근거하여 교훈합니다. (출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신5:16)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물론 이 말씀이 나온 배경은 오늘날의 상황과 다릅니다. 그 당시 농사나 목축을 하면서 가족들이 서로 의지하고 함께 일하지 않으면 살 수 없었기에 경제적 필요에 의하여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 자식 심지어 일가친척들까지 모여 살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함께 살다보니 자연 가족 간의 위계질서가 필요하였고, 윗사람에 대한 절대 순종을 요구했습니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뿐 아니라 할아버지와 손주, 친척과의 다양한 관계에서 오늘날 젊은이들이 배울 수 없는 정서적인 안정감, 소속감과 정체성을 배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구약 시대의 히브리 가정은 종교적 공동체로서 자녀의 신앙을 책임지는 교육의 살아 있는 현장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도시화 산업화의 과정에서 현대 가족은 확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전환되었습니다.
다만 오늘날의 상황에 그 변하지 않는 진리를 어떻게 적용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울은 부모를 공경하라는 명령을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고 합니다.
문맥상으로 볼 때 말씀대로 순종하면 복을 받는 아주 중요한 계명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공경에 해당하는 헬라어가‘높이 평가하다, 영화롭게 하다’는 뜻을 가집니다.
이 ‘공경’이라는 단어가 요한복음 5:23에서는 하나님을 공경하라 할 때 사용됩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듯이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을 하나님이 보십니다.
셋째 :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4절)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정을 세우기 위해 자녀들에게 권면한 바울은 이제 부모에게도 자녀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교훈합니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여기서 ‘아비들’은 문자적으로 아버지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대표하는 차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자녀를 키우는 것은 어머니만의 책임이거나 아버지만의 책임이 아니라 부모가 함께 이루어 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1세기 로마제국에서 아버지는 자녀에 대하여 법적으로 절대적인 권력을 가졌습니다.
아버지는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 아이의 생사를 결정하는 권위가 있었습니다.
아이가 마음에 들지 않아 자기의 자식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면 그 아이는 팔리거나 버려지거나 심지어 죽게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사회적인 상황 속에서 바울은 아이를 부모의 소유물이 아닌 존엄성을 가진 인간으로 대접해야 한다고 도전합니다.
바울은 권면하면서 부모의 권위보다는 부모로서의 책임을 더 강조합니다.
부모는 자녀에 대해 절대적인 위치에 있기 때문에 그 권위를 잘못 사용하면 자녀에게 상처를 주고 분노를 안겨 주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자 상급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자신들의 지나친 요구나 욕심에 의하여 때로는 감정을 자제하지 못하여 자녀들에게 분노를 일으키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