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다는 것...
걸핏하면 나는 남들을 따라해본다. 무슨 지조*가 없어서 그런가? 귀가 얇아서인가?
책을 한권 읽을라치면 의례히 책속의 인물이 되고 싶어진다. 정확히 말하자면 책속의 인물이 하는 행동을 하고 싶어진다.
그래서일까,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 습관이 있다. '저 사람도 분명히 이 책을 읽었을 터인데 우째서 이런다지?'
걷기를 시작하게 되고 좋아하게 된 것은 순전히 책 한권때문이었다. 그책은 2004년 국내서 출간된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 였다.
이 책은 한마디로 '유레카!*' 였다.
제1권을 읽는 도중에 걷기를 시작했다. 가능한 차를 집에두고 걸어다니기 시작했다.
모임에는 넉넉한 시간을 준비해서 걸어갔다. 그랬더니 걸을수록 마음이 넉넉해져 갔다.
그 당시 난 부산대구를 왔다갔다하는 주말부부라 기차를 줄곧 이용했는데 걷기가 좋아지자 이 구간을 걷고싶어졌다.
매주 주말 무궁화호를 타고 중도에 내려 다음 역까지를 걸었다.
이 구간은 구포-물금-원동-삼랑진-밀양-상동-청도-경산-동대구로 총 9개 구간이었고
한 구간은 대게 16km 내외, 아주 천천히 걷는 내 방식대로 걸어서 5~7시간이 소요되었는데 기차로 가면 10분내의 시간이었다. 역시 기차선로가 도로보다야 훨씬 직선에 가깝다.
이즈음부터 아침걷기, 때때로 산책, 주말걷기들이 습관화되었고 자연히 책들도 걷기에 관한 것들이 많아졌는데 특히,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걷기예찬*'과 '플래닛 워커*'이다.
걷기를 좋아하고 십수년이 훌쩍 넘었는데 내게 걷는다는 것은 이러이러한 것 같다.
걷는다는 것은 곧 '자유(freedom)' 이다.
걷는다는 것은 느림을 받아들이는 연습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와 어릴적부터의 교육으로 빠른것이, 바쁜것이 좋은 것으로 세뇌된게 아닐까? 걸음(walking)은 느릴수밖에 없다. 제 아무리 빨리걸어도...
걷는다는 것은 '자신과의 대화' 이다.
특히, 혼자 걸으면* 결국은 자신과 얘기를 나누게 된다. 옛일을 추억하여 후회도 하고, 반성도 해보게 되고 앞으로의 일들도 계획하게도 만든다. 자신을 거울보듯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고.
걷는다는 것은 '자연을 이해하고 존중과 함께 경외심' 을 생기게 한다.
차를 타고 보는 풍경과 그 풍경 속에 직접 있어보는 것 만큼 다른게 또 있을까? 터벅터벅 자신의 발자국 소리에, 스쳐가는 바람소리에, 온갖 자연이 내는 소리를 듣다보면...
걸어온길과 앞으로 걸어야할 아득한 길을 품고있는 자연을 보자면... 자연히 자연을 이해하고 그 장엄함에 자연히 경외심이 들게된다. 겸손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걷는다는 것은 '원초적인 본능을 느끼게' 한다.
나를 감싸고 있는 모든 조건들* 은 그 의미를 잃는다. 단지, 내겐 두 다리와 걸어가야할 길만 있을 뿐이다.
갈증과 허기 그리고 달콤한 휴식에의 갈망은 원초적이다, 인간으로서, 생명체로서. 그리고 그 다음순간... 그토록 바라던,
'자유' 를 맞닦뜨린다.
......
지조*... '정체성(identity)' 이라고 해야하나?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 Bernard Olivier, 1936 프랑스 망슈지방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나 신문기자를 마지막으로 62세에 은퇴한 이듬해인 1999년부터 1099일, 4년간 1만2,000킬로의 실크로드를 걸었다.
효형출판사 2004년 출간. 전4권.
유레카!*... eureka! 고대하던 뭘 발견했을때 외치는 소리(interjection). 고대 그리스 시대때 수학자 알키미디스(Archimides)가 목욕탕에서 처음 외쳤대나?
걷기예찬*... 다비드 르 부르통 David Le Breton 'Eloge Dr la marche'. 걷기에 대한 철학적이고도 미학적인 글이다. 이 저자의 또 다른책 '느리게 걷는 즐거움' 도 좋다.
플래닛 워커*... Planet Walker, John Francis. 17년을 말없이 침묵을 하고 22년동안 오직 걸어서만 생활했다. 그는 이시기 동안에 학업도 마쳤고 결혼도 했다.
모든 조건들*... 우리가 살면서 소유하거나, 쌓아올린 모든 것들.
혼자 걸으면*... 나는 대체로 혼자 걷는다. 등산이나 산행보다는 들판이나 비포장길, 옛 국도가 좋다. 요즘의 고속화국도를 보자면 울화가 치민다. 걷기침해라고 데모하고 싶다.
둘이서 걷기의 최고의 추억은 큰애(당시 초5년)와 함께 부산대구간 걷기의 한 구간, 밀양에서 상동까지였는데 한여름 뙤약볕에 수건을 머리에 뒤집어 쓰고 걸었던 우리애의 그날의 일기장은 이랬다.
'아빠에게는 재밌었다고 얘기했지만... 죽는줄 알았다. 다시는 걷나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