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아! 아! 천지(天池)
백두산 밑 이도백하 골목길 / 눈 덮인 백두산 천지(6월) / 북한 땅 장군봉
하늘에 구름이 좀 끼기는 했지만 제법 맑은 날씨로 백두산 전체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백두산 정상부근에 기상대(氣象臺)가 있는데 거기에서 언덕을 오르면 곧바로 천지(天池)가 조망된다.
천지를 마주하자 엄청난 장관(壯觀)에 숨이 막히고 민족의 영산(靈山)에 올랐다는 감회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이곳 백두산은 날씨가 너무 변덕스러워 3대가 덕을 쌓지 않으면 맑은 날씨에 천지를 볼 수 없다는데 조상님들의 음덕(陰德)인지, 운이 좋아서인지, 화창한 날씨는 아니었지만, 6월이지만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천지와 그 둘레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높고 낮은 눈 덮인 봉우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하늘 호수 천지(天池)는 둘레의 길이 14km, 깊이는 평균 수심이 200m로 가장 깊은 곳의 수심은 384m 나 된다고 하는, 세계에서 가장 수심이 깊은 화산호수(칼데라호)라고 한다.
가이드는 빨리 사진이나 찍고 서둘러 내려가자고 연신 성화다.
날씨가 어떻게 변덕을 부릴지 알 수 없으니 안전을 책임질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얼마나 벼르고 온 민족의 성산 백두산이고, 천지(天池)인데 금방 내려가자니...
벅차오르는 감회를 억누르지 못하고 일행 중 한 명이 두 손을 번쩍 들고 ‘만세’를 외치자 가이드는 질겁하며 절대로 만세를 부르거나 태극기를 흔들면 안 된다고 한다. 이 백두산과 천지는 예전에는 모두 한국 땅이었는데 한국전쟁(6.25)이 끝난 후 김일성이 백두산을 반을 나누어 새로운 국경을 긋는 바람에 천지도 절반만 한국 땅, 절반은 중국영토가 되었다고 하고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은 중국 땅이다.
우리가 서 있는 중국령 천문봉(天門峰)에서 천지 건너편으로 보이는 북한 쪽 백두산은 최고봉인 장군봉이 높이 솟아있고 조금 낮은 곳에 북한 초소(哨所)가 어렴풋이 보이는데 초소에서 천지로 내려오는 가파른 계단도 가물가물 보인다.
<4> 백두산 녹용(鹿茸)
백두산 관광을 마치고 저녁에 쇼핑을 갔는데 가이드가 데리고 간 가게는 시골 한약방을 연상케 하는 어두컴컴한 가게로, 백두산 산삼(山蔘), 녹용(鹿茸), 모피(毛皮), 이름 모를 한약재(韓藥材) 등을 팔고 있다.
백두산 산삼이라고 내놓은 상품은 이끼를 깔고 하얀 수염뿌리가 온전하게 보존된, 제법 통통한 산삼인데 진위(眞僞)를 알 수는 없지만 제법 귀한 약재로 보였고 우리 돈으로 20만 원쯤 한다.
그리고 젓가락같이 가느다란 산삼 뿌리를 수북이 쌓아놓고 한 뿌리에 우리 돈 천 원이라며....
주인 말로는 백두산에서 캔 진짜 산삼이라지만 장뇌삼이겠지... 나중 한국에 온 후에야 그까짓 천원인데 몇 뿌리 사서 씹어 먹을 걸 후회를 했다. 나는 이곳에서 큰맘 먹고 녹용을 하나 샀는데 두 갈래로 갈라진, 보송보송 솜털이 있는 30cm가량의 녹용인데 우리 돈으로 8만 원 정도 주고 샀다.
한국으로 입국할 때 문제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며 안기부(安企部) 직원을 쳐다보았더니 그냥 눈을 꿈적이며 고개를 끄떡인다. 그런데 이 녹용이 엄청난 효과가 있을 줄이야....
귀국 후 잘 아는 한의원에 가서 녹용을 보여주었더니 꽃사슴 뿔이라며 한국에서도 요정도면 10만 원 정도에 살 수 있다며 별로라는 표정이어서 조금 떨떠름했었다.
아들을 먹이려고 사 왔으니 우선 아들 먹일 한재를 먼저 짓고 나머지는 내가 먹을 것인데 적당히 배분해서 한재를 짓던지, 몇 첩을 마음대로 하랬더니, 알았다고 하며 무게를 달아보더니 아이들은 7첩이 한재이고 어른들은 20첩이 한재인데 조금 모자라겠다고 한다.
그러더니 아들과 나를 각각 한재씩 지어준다.
그때 아들 녀석이 중학교 1학년이었는데 어릴 때부터 잘 먹지 않아 빼빼 말랐다. 초등학교 때에는 키도 반에서 제일 작았고 혈액순환이 좋지 않아 겨울이면 입술이 새파래지고 추위를 견디지 못했다.
의사가 추울 땐 보온을 잘 해주고 바깥에 나가지 못하게 하라고 해서 겨울이면 옷을 겹겹이 껴입히고 마스크에 장갑에... 그래도 행여 동상(凍傷)에 걸릴까 항상 노심초사했었다.
그런데 이 녹용을 먹고 나서 완전히 체질이 바뀌고 건강해졌으니 기적 같은 예상외의 결과를 가져올 줄은 정말 몰랐다.
아들 녀석이 갑자기 살이 오르기 시작하고 혈색이 돌아왔음은 물론 겨울이 되면 오히려 덥다고 옷을 벗어 던지고 바깥으로 뛰어나가고.... 키도 1년에 20cm 가까이 자라고 체중도 불어났다. 완전히 체질이 바뀌었으니 보는 사람이 신기할 밖에...
대학 때 아들 녀석은 키가 180cm, 체중이 80kg이 넘었다. 나도 몇 년간 눈에 띄게 건강이 좋아져서 녹용의, 백두산 녹용의 효과를 톡톡히 본 셈이다.
◆ 이도백하에서의 에피소드
이도백하(二道白河)에서의 이른 아침, 친구와 둘이 호텔을 나서 산책을 했는데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이른 아침인데도 광장 한쪽에서는 손수레에 국수와 만두, 빵, 우유 등속을 차려놓고 장사를 하고 있고 몇몇 사람들이 둘러서서 아침 식사를 하고 있다. 중국은 어디를 가나 이렇게 아침 식사를 집에서 하지 않고 길거리에서 사 먹는 풍경을 많이 볼 수 있다.
우리는 옆에 서서 구경을 하고 있는데 30대 후반쯤, 머리는 언제 감았는지 떡처럼 굳어있고 얼굴도 땟국물이 꾀죄죄, 옷차림도 언제 세탁했는지... 그런데 갑자기 나한테 뭐라고 말을 건다.
‘노, 아이 캔트 스픽 차이니즈(No, I can’t speak Chinese/나는 중국어를 못해요...)’
그런데 또 뭐라고 중얼거리는데 가만히 들어보니 우리나라 말이다.
알고 보니 조선족으로 나보고 한국에서 왔느냐고 물어보는 거였는데 강한 북한식 사투리의, 어물거리는 말투로 물으니 꼭 중국말을 하는 것 같다. 오히려 내가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다.
너는 무슨 일을 하나? 벌목하는 일을 한다. 한 달 수입이 얼마냐? 200위안(30만 원)이다.
그것으로 생활이 되나? 아내가 식당에서 일하는데 월급 90위안(13만 5천원)인데 먹고 사는 데는 일없다.(넉넉하다) 집은 어떤가? 정부에서 배정해 준 집에서 산다.
북한 사정을 아는가? 묻지도 마라. 사는 게 말이 아니다.
어떻게 아나? 북한에서 식량을 구하러 이곳까지 오는데 이곳에 사는 친척들은 곡식을 보내면 국경에서 다 빼앗기니 밥을 누룽지로 만들어서 싸 보낸다. 그러면 국경에서 걸리지 않고 가지고 갈 수 있다. (바로 이 시기가 북한의 ‘고난의 행군’이 막 시작되던 때였다.)
그리더니 이 친구 한 가지 제안을 한다. 개 한 마리를 이만 원만 내면 모두 손질해 양념까지 해서 먹게 해 주겠다. 단돈 이만 원이면 모든 일행이 포식(飽食)하겠지만 일정이 맞지 않아 포기... 아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