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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르브뤼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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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르브뤼켄 | |
Saarbrücken | |
자르브뤼켄 북위 49° 14′ 00″ 동경 7° 00′ 00″좌표: 북위 49° 14′ 00″ 동경 7° 00′ 00″ | |
행정 | |
독일 | |
자를란트주 | |
인구 | |
178,151 명 (2015년) | |
1,100 명/km2 | |
지리 | |
167.07 km2 | |
230.1 m | |
기타 | |
중앙유럽 표준시 (UTC+1) | |
66001–66133 | |
0681, 06893, 06897, 06898, 06805 | |
http://www.saarbruecken.de/ |
자르브뤼켄(독일어: Saarbrücken [ˈzaːɐ̯ˈbrʏkn], 프랑스어: Sarrebruck, 룩셈부르크어: Saarbrécken)은 독일 자를란트주의 주도이다. 인구는 약 18만 명이다.
목차
역사[편집]
중세 시대에는 라인 강 유역과 플랑드르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교역로의 중심지로 여겨졌다. 1815년부터는 프로이센 왕국의 지배를 받았고 나중에 북독일 연방, 독일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된다.
제1차 세계 대전의 종전과 함께 체결된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국제 연맹이 관리하는 지역인 자르 지역의 수도가 되었지만 1935년에 실시된 주민투표를 통해 독일의 지배를 받게 된다.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에는 계속된 공격을 받았고 전쟁의 종전과 함께 프랑스가 관할하는 자르 보호령의 수도가 되었다. 자르 보호령에서 실시된 주민투표에 따라 서독 편입이 결정되면서 1957년 1월 1일을 기해 서독에 편입되었다.
지리[편집]
프랑스 국경과 가까운 편이며 모젤 강의 지류 가운데 하나인 자르 강 연안과 접한다. 풍부한 지하 자원으로 인해 옛부터 광업, 철강 산업의 중심지로 널리 알려졌다. 자르브뤼켄과 인접한 주요 도시로는 독일 트리어, 카를스루에, 만하임, 카이저슬라우테른, 프랑스 낭시, 메스, 룩셈부르크 룩셈부르크 시가 있다.
자매 도시[편집]
외부 링크[편집]
분류:
자를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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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를루이(독일어: Saarlouis [zaːrˈlʊɪ], 프랑스어: Sarrelouis)는 독일 서부 자를란트주에 있는 도시이다. 인구 37,328(2009)[1].
프랑스 국경 근처, 자르브뤼켄 서북쪽의 자르 강 연안에 위치한다. 1680년 프랑스 루이 14세 때 세워져서 자를루이라 부르게 되었고, 요새가 구축되었다. 1697년 이후 로렌 지방은 독립적인 지위를 유지했으나, 자를루이 일대는 프랑스의 고립영토로 프랑스 동쪽 국경의 요충지였다. 프랑스 혁명 기간 중 자르리브르(프랑스어: Sarre-Libre)라 명칭이 변경되었다가 1810년 원래 명칭으로 환원되었고, 1815년 프로이센에 양도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에 점령되었다가 1935년 다시 독일로 넘어왔다. 그 다음해, 나치 독일은 프랑스식 명칭을 독일식 명칭 자를라우테른(독일어: Saarlautern)으로 변경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원래 명칭으로 환원되었고, 프랑스가 다시 점령했다. 프랑스가 철수하고 1957년 자르 지방이 독일 연방 공화국의 정식 주 중 하나가 되면서 자르루이도 다시 완전히 독일에 속하게 되었다. 인근 석탄·철 생산과 관련 공업으로 발전하였고 그 외에도 다양한 공업이 이루어진다.
각주[편집]
외부 링크[편집]
전거 통제
분류:
자를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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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를루이(독일어: Saarlouis [zaːrˈlʊɪ], 프랑스어: Sarrelouis)는 독일 서부 자를란트주에 있는 도시이다. 인구 37,328(2009)[1].
프랑스 국경 근처, 자르브뤼켄 서북쪽의 자르 강 연안에 위치한다. 1680년 프랑스 루이 14세 때 세워져서 자를루이라 부르게 되었고, 요새가 구축되었다. 1697년 이후 로렌 지방은 독립적인 지위를 유지했으나, 자를루이 일대는 프랑스의 고립영토로 프랑스 동쪽 국경의 요충지였다. 프랑스 혁명 기간 중 자르리브르(프랑스어: Sarre-Libre)라 명칭이 변경되었다가 1810년 원래 명칭으로 환원되었고, 1815년 프로이센에 양도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에 점령되었다가 1935년 다시 독일로 넘어왔다. 그 다음해, 나치 독일은 프랑스식 명칭을 독일식 명칭 자를라우테른(독일어: Saarlautern)으로 변경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원래 명칭으로 환원되었고, 프랑스가 다시 점령했다. 프랑스가 철수하고 1957년 자르 지방이 독일 연방 공화국의 정식 주 중 하나가 되면서 자르루이도 다시 완전히 독일에 속하게 되었다. 인근 석탄·철 생산과 관련 공업으로 발전하였고 그 외에도 다양한 공업이 이루어진다.
각주[편집]
외부 링크[편집]
전거 통제
분류:
비트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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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부르크
비트부르크(Bitburg)는 독일 라인란트팔츠주의 도시로, 인구는 12,773명이다.
1985년 비트부르크 논란[편집]
1985년 미국 레이건 대통령이 비트부르크 국립묘지를 참배했다.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와 같은 곳으로서, 2차대전의 나치 독일의 독일군묘지이며. 다수의 나치 친위대 고위장교들이 매장되어 있었다.
1984년 서독 헬무트 콜 총리는 백악관을 방문하여, 미국 레이건 대통령에게 비트부르크 묘지 참배를 건의했다. 1985년 독일 본에서 개최된 G7 정상회담을 위해 방문한 레이건 대통령이 콜 총리와 함께 비트부르크 묘지에 헌화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Kolmeshöhe Cemetery에서 겨우 8분간 있었으며 간단히 헌화만 하고 나갔다.
당시 미국에서는, 히틀러 장병들의 묘지에 대한 참배에 대해 큰 비판이 일어났다. 홀로코스트의 희생자들도 크게 비판하였다.
전거 통제
분류:
바트크로이츠나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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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표:
바트크로이츠나흐(Bad Kreuznach)는 독일 라인란트팔츠주 바트크로이츠나흐군의 도시이다. 다리 위에 건물이 있는, 세계에서 얼마 남지 않은 다리들 가운데 하나인, 1300년 즈음부터 Alte Nahebrücke라는 이름의 중세 다리로 잘 알려진 스파 타운이다.[1]
2018년 12월 31일 기준으로 인구수는 50,948명이다.
기후[편집]
접기Bad Kreuznach의 기후월1월2월3월4월5월6월7월8월9월10월11월12월년일 평균 기온 °C평균 강수량 mm일 평균 기온 °F평균 강수량 인치평균 일일 일조시간
0.5 | 1.9 | 5.3 | 9.1 | 13.5 | 16.7 | 18.4 | 17.8 | 14.4 | 9.7 | 4.8 | 2.0 | 9.5 | |
32.8 | 34.6 | 33.8 | 37.3 | 47.1 | 59.0 | 50.3 | 55.4 | 40.0 | 40.0 | 45.8 | 41.0 | 517.1 | |
32.9 | 35.4 | 41.5 | 48.4 | 56.3 | 62.1 | 65.1 | 64.0 | 57.9 | 49.5 | 40.6 | 35.6 | 49.1 | |
1.29 | 1.36 | 1.33 | 1.47 | 1.85 | 2.32 | 1.98 | 2.18 | 1.57 | 1.57 | 1.80 | 1.61 | 20.33 | |
1.1 | 2.5 | 3.7 | 5.2 | 6.4 | 6.6 | 6.9 | 6.5 | 5.0 | 3.1 | 1.6 | 1.1 | 4.1 | |
출처: [2] |
각주[편집]
외부 링크[편집]
전거 통제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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