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라는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 제이크 설리는 ‘전쟁에서 이길 수 있게 해 달라’고 에이와에게 기도를 합니다. 여기서 ‘에이와’는 인디언들의 표현으로 한다면 ‘어머니의 대지’, 혹은 근원적인 ‘진리의 본성’이고, 종교적으로는 ‘신성’이나 ‘불성’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 기도를 듣고는 여주인공인 네이티리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 에이와는 누구의 편도 들지 않아. 오직 삶의 균형을 맞출 뿐이지.”
이 우주법계의 근원적인 진리의 에너지는 어느 누구의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다만 우주적인 에너지의 균형을 맞추고, 삶의 균형을 맞출 뿐이라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시험을 보는 학생들 중에 시험에 붙게 해 달라고 기도 잘 하는 사람이 합격을 하겠어요, 공부를 열심히 한 사람이 합격을 하겠어요? 당연히 공부를 많이 한 쪽일 것입니다. 또 그게 맞지요.
이 우주의 본질적인 에너지는 누구의 편을 들어주지 않습니다. 편은 커녕 진리는 그 어떤 것도 둘로 나누어 편들거나 차별하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불교만이 무조건 진리이고 다른 종교는 진리가 아니라거나 혹은 우리나라만이 옳고 다른 나라는 다 틀리다거나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저 이 우주법계는 항상 균형을 맞추는 쪽으로 흐를 뿐입니다.
예를 들어 직장 상사와 부하직원이 있습니다. 그런데 직장 상사가 부하직원을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또 돈을 빌려갔는데 의도적으로 안 갚고, 승진 리스트에서도 누락을 시킵니다. 그러면 직장상사와 부하직원, 이 둘 사이의 에너지가 어떻습니까? 상사는 괴롭히면서 힘을 쏟아내어 속이 좀 후련해지겠지만, 욕설과 괴롭힘을 당한 부하직원은 아주 억울하고 답답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둘의 에너지 균형을 깨졌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런 에너지 불균형의 상태에서,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거나 그 두 사람이 헤어졌다고 칩시다. 헤어지고 이번 생에 만나지 못했어요. 그럼 어떨까요? 둘 사이는 이미 에너지 균형이 깨졌습니다. 그럼 다음 생에 만날까요, 안 만날까요? 당연히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우주법계는 이 둘 사이의 에너지 균형을 이루게 하기 위해서 다시 만나게 해줍니다. 그 만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게 바로 이 우주법계 진리의 ‘법칙성’입니다.
그럼, 다음번에 이 두 사람이 만났을 때는 어떻게 만나겠어요? 반대 입장에서 만납니다. 상사가 부하직원이 되고, 부하직원이 상사가 되어 거꾸로 똑같은 괴롭힘을 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이 둘 사이의 에너지 균형이 이루어질 것 아니겠습니까? 이처럼 단순히 이 우주법계는 항상 에너지 균형을 맞출 뿐입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인과응보, 업인과보, 업보라고 설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우주법계의 가장 근원적인 법칙이지요. 이를 타종교에서는 황금률의 법칙이라고도 하고, 또 유유상종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으며, 끌어당김의 법칙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설명하는 언어가 아니라 그러한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우주적인 대평등의 원리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쉽게 말해 이 세상은 절대자가 모든 것을 다 주관하는 것도 아니고, 운명이나 우연으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며, 자신의 자유의지로써 스스로 만들고 스스로 받게 된다는 가장 근원적인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스스로 자신의 삶을 책임지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BBS 불교방송 라디오 '법상스님의 목탁소리'(평일 07:50~08:00) 방송중에서
첫댓글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우주적인 대평등!...
스스로 자신의 삶을 책임져라.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우주에너지 균형의 법칙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균형을 맞춘다...
자신의 자유의지로써 스스로 만들고 스스로 받게 된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