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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5. 묵상글 들 ( 성모 승천 대축일-인격적인 승천의 행복. 등 )
인생에서 최고의 행복은 우리가 사랑받고 있음을 확신하는 것이다(빅터 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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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5.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
성모 승천 대축일-인격적인 승천의 행복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엘리사벳은 마리아가 여인 중에 가장 복되다고 합니다.
언젠가 예수께서 말씀을 선포하실 때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고 한 여인이 말한 적도 있지요.
오늘 승천 대축일을 지내며 마리아가 어째서 행복한지 생각게 됩니다.
그것은 물론 마리아를 칭송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마리아의 행복을
그저 부러워하기 위해서도 아니며 우리가 그 행복을 살기 위해서지요.
그렇다면 마리아는 왜 복되고 행복합니까?
저는 마리아가 아니라 어머니만 되어도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주 얘기하는 바이지만 저는 여자가 되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지만
어머니는 되고 싶은데 그것은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그 행복 때문입니다.
나의 젖으로 한 아이가 사랑을 먹고 생명을 먹고 자란다면
그 얼마나 흐뭇하고 행복하겠습니까?
그런데 복음의 어떤 엄마는 자기도 얘기를 먹인 젖을 가졌으면서
예수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하다고 얘기합니다.
그러므로 이는 자기 아이의 엄마로도 행복하지만
예수님의 어머니로 더 행복함을 말하는 거겠지요.
실로 이 세상의 모든 부모는 아이들로 행복하기도 하고,
아이들로 불행하기도 하는데 특히 엄마들이 더 그러하고,
엄마들 중에서 마리아가 더 그러합니다.
사실 마리아가 여인 중에 행복하다고 하는데
무엇을 보고 그렇게 얘기할 수 있습니까? 그 반대가 아닙니까?
어머니 마리아도 복되고 태중의 아드님도 복되다고 하지만
아드님도 이 세상 사는 동안 일생 떠돌이에다
십자가에 달려 죽었으니 얼마나 불행하고,
그런 아들을 봐야 하는 어머니와 수난을 동반한 어머니는
그 고통이 얼마나 크고 그 인생이 얼마나 불행합니까?
그러므로 두 분의 행복은 지상의 행복이 아니고 천국의 행복입니다.
오늘 성모 승천 대축일을 지내는 의미도 바로 이것입니다.
지상에서 인간적으로 보면 불행한 마리아가 어쩌면 그 덕분에
하늘에 올라 사실은 이미 지상에서부터 시작된 하느님 나라의
행복을 완성하고 완전하게 누리게 되신 겁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행복이 지상의 행복이 아니라
천상의 행복이라는 말도 우리는 잘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지상과 천상이라는 공간적인 의미,
마치 산 위에 오르니 세상의 복닥거림에 초월하여 행복한,
그런 의미의 행복으로 이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마리아는 아드님 그리스도가
하늘로 오르지 않으셨으면 당신도 승천치 않으셨을 겁니다.
그러니까 아드님께서 먼저 하늘에 오르셨기에
아드님을 따라서 오르신 것이고 거기서 아드님과 함께 계시는 행복이고,
장소적이고 공간적인 행복이 아니라 인격적인 행복이라는 얘기입니다.
마리아는 지상에서도 아드님과 늘 함께하셨고,
제자들이 다 도망쳤어도 마리아는 아드님의 수난에 동참하셨습니다.
아드님의 Passio에 마리아도 Compassio하신 것이며
그래서 하늘로 오르는 것에도 동참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리아처럼 이 지상에서부터 저 천상에까지
주님과 함께 하는 인격적인 승천을 갈망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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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5. 일어나는불꽃.(O.F.M 김기환 베드로 마리아)
성모 승천 대축일 복음 나눔 -몽소 승천을 사는 사람들-
T.평화를 빕니다.
오늘은 성모 승천 대축일 입니다. 보통 성모님 승천을 몽소 승천이라고 합니다. 몽소 승천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승천과는 다르게 스스로가 아닌 하느님에 의해서 하늘로 들어높여져 하늘로 오르셨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셨기 때문에 누구에로부터 들어높여지신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늘로 오르셨지만 성모님의 승천은 스스로가 아니라 하느님의 의해서 하늘로 들어높여졌기 때문에 몽소 승천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몽소 승천은 성모님에게만 국한된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하느님을 믿고 바라고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성모님과 같은 몽소승천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에 의해서 하늘로 들어높여진 삶은 반듯이 몸째 하늘이라고 하는 곳으로 올라가는 것만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라고 말씀하신것과 같이 하느님에 의해서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하느님에 의해서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신 것처럼 하느님에 의해서 들어 높여진 삶은 몸째 하늘로 올라가는 승천의 의미를 넘어서 넓은 의미로 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로 볼때 우리는 이미 몽소 승천의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는 순간 죄와 세상의 욕망의 삶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뜻안에서 기쁨을 찾는 사람들이니 우리는 영적으로 하느님에 의해 몽소승천의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일상 생활 안에서 몸으로는 비록 이 지상에서 살고 있을 지라도 기도와 미사와 끊임없는 묵상을 통해 하느님과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이니 영적으로는 몽소승천의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우리가 이 세상에서 만족할수 있는 쾌락을 쫒고 만족하기보다는 성령안에서 누리는 기쁨을 찾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영적으로 하느님에 의해서 들어 높여져 하늘나라의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들어 높여진다는 뜻을 몸째 하늘로 올라가는 것의 의미를 넘어서서 우리의 마음이 하느님께로 향하고 그분의 뜻을 살아가려고 할때, 마음으로 영적으로 하느님께서 함께 계심을 믿으며 살아간다는 것이 우리는 성령에 의해서 우리는 이 지상에서 하늘나라로 들어 높여진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모님의 승천 대축일은 단지 성모님께서 하느님에 의해서 몸째 하늘로 들어 높여진 삶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교회의 대축일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우리가 친히 몽소승천의 의미와 영성을 이 삶안에서 살아가야 함을 기억하는 대축일인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성모님의 몽소 승천을 기억하며 교회가 기념하는 대축일을 넘어서서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O.F.M 김기환 베드로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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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5. 성모 승천 대축일. 송영진 모세 신부님.
♣ 우리도 승천에 참여하기 위하여 ♣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 때,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요한 14,3).”
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예수님께서 어머니를 하느님 나라로(아버지의 집으로)
모시고 가신 일이고, 신앙인들에게 하신 당신의 약속을
틀림없이 지키신다는 것을 보여주신 일입니다.
그런데 우선 먼저 ‘승천’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승천은 지상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일로 표현되지만,
그 하늘이 우리가 늘 보고 있는 그 하늘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승천은 ‘하느님께서 계시는 곳’으로 가는 일입니다.
그곳을 인간들이 생각하는 공간 개념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하느님의 오른쪽으로 가신 일, 즉 원래의 당신의 위치로
되돌아가신 일이고, 하느님이신 당신의 본 모습으로 되돌아가신 일이고,
인간의 한계를 초월해서 언제나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해서
존재 방식을 변화시키신 일입니다.
그래서 ‘승천하신 예수님’은 ‘우리를 떠나신 예수님’이 아니라,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시는 예수님’입니다.
성모님의 승천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승천하신 성모님은 우리를 떠나신 분이 아니라,
언제나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어머니로서 자녀들의 회개와 구원을 위해서 끊임없이 기도하시고,
자녀들을 보살피고 계신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이 회개해서 구원을 받는 것,
즉 우리도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모 승천을 경축하는 것은 단순히 경축하고 기념하는 것으로
그치는 일이 아니라, 우리도 성모님처럼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기 위해서
노력하겠다고 다짐하는 일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 여러분, 죽은 이들의 문제를 여러분도 알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희망을 가지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처럼 슬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셨다가 다시 살아나셨음을 우리는 믿습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죽은 이들을
그분과 함께 데려가실 것입니다(1테살 4,13-14).”
‘죽음’은 끝이 아니라 인생의 한 과정이고,
새 생명으로 가는 관문이라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누구든지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면 ‘죽음’이라는 문을 통과한 다음에
예수님, 성모님과 함께 살게 될 것입니다.
“명령의 외침과 대천사의 목소리와 하느님의 나팔 소리가 울리면, 주님께서 친히
하늘에서 내려오실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이들이 다시
살아나고, 그다음으로, 그때까지 남아 있게 될 우리 산 이들이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들려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맞이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늘 주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1테살 4,16-17).”
일부 사이비 종파에서 ‘들려 올라가’ 라는 말 때문에 ‘휴거’ 라는 이상한 말을
만들어서 세상을 시끄럽게 한 일이 있는데,
우리 교회는 휴거가 아니라 승천을 믿고 있습니다.
실제로, 또는 구체적으로 재림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자격 없는 사람들’은 주님을 맞이하지 못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주님을 맞이하고, 주님과 함께 살기를 바란다면, 합당한 자격이 있어야 하고,
그 자격은 ‘지금, 여기에서’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잠들지 말고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도록 합시다(1테살 5,6).”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진노의 심판을 받도록 정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차지하도록 정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살아 있든지 죽어 있든지 당신과 함께 살게 하시려고,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1테살 5,9-10).”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구원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나 아무나 그 생명을 누리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생명을 누리려면, 항상 깨어 있으면서,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십자가에 참여해야 합니다(마태 16,24).
신앙생활은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생활인데,
성모님은 가장 먼저 예수님 뒤를 따라가신 분이고,
영원한 생명을 얻으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 입장에서는 “성모님 뒤를 따라가는 일”로 바꿔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성모님은 “자신을 버리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른 일에서
모든 신앙인의 모범이 되시는 분입니다.
성모님께서 누리시는 영광을 찬양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만,
만일에 그것으로 그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입니다.
찬양만 하지 말고, 우리도 그 영광 속으로 들어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아버지의 집에서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사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 안에 영원히 머무르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요한 15,9-10).”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요한 14,23).”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을(계명을) 지키는 것이 곧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고,
당신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당신의 계명’을 지켜야만
‘당신의 사랑 안에’ 머무를 수 있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성모님의 승천에 참여할 수 없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고,
예수님과 함께 살 수 없다는 경고 말씀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특별히 강조하셨습니다(요한 15,12).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은 예수님 입장에서 하신 말씀이고,
우리 입장에서 생각하면 ‘내가 먼저’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면 이웃 사랑 실천만 잘하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가?”
그것은 아니고, 신앙인으로서 해야 할 일들을 다 잘해야 하고,
그리고 ‘사랑 실천’으로 그 일들을 완성해야 합니다(로마 13,10).
만일에 다른 일들은 다 잘하면서도 사랑이 없다면 그 일들은 아무런 가치가 없고, 다른 일들은 하나도 안 하면서(믿음도 없고, 기도도 안 하고...)
사랑 실천만 잘한다면, 그 실천은 위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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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5. 성모 승천 대축일 / 박기석 사도 요한 신부님.
오늘의 묵상
“가톨릭 교회가 마리아에 대하여 믿는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마리아에 대하여
가르치는 것은 또한 그리스도 신앙을 밝혀 준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487항은 그리스도교 신앙 고백 가운데 성모 마리아에 대하여 이렇게 언급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성모 승천에 대해서도 966항에서 다음과 같이 분명히 합니다.
“마침내, 원죄의 온갖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시어 티 없이 깨끗하신 동정녀께서는 지상 생활의 여정을 마치시고, 육신과 영혼이 하늘의 영광으로 올림을 받으시고, 주님께 천지의 모후로 들어 높여지시어, 군주들의 주님이시며 죄와 죽음에 대한 승리자이신 당신 아드님과 더욱 완전히 동화되셨다.
거룩한 동정녀의 승천은 당신 아들의 부활에 특별히 참여한 것이며,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부활을 앞당겨 실현한 것이다.”
그렇습니다. 마리아의 승천은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셨고, 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셨으며, 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로마 8,30)라는 말씀이 마리아에게서 실현되었음을 뜻합니다.
따라서 마리아의 승천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순종, 헌신적인 태도, 그리고 이로 말미암아 겪으신 몸과 마음의 수고와 시련의 삶이 무위로 돌아가지 않고 온전히 하느님 안에 받아들여져 완성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늘 복음은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을 전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어머니께 드리는 엘리사벳의 인사에 대한 응답으로 마리아께서는 하느님을 찬양하십니다.
따라서 성모님의 겸손함이 드러나는 이 노래가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비천한 여종을 굽어살피시는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크신 자비로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십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비를 기억하도록 성모님께서는 맏물이신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오게 하셨고,
또한 재림하시도록 ‘가난한 이들’의 희망을 노래하셨기 때문입니다.
- 박기석 사도 요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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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5. 새벽을 열며. 성모 승천 대축일. 빠다킹신부님.
농장을 운영하던 농부가 있었습니다. 그의 노력으로 농장은 점점 커졌고, 이제 더는 혼자 운영하기 힘든 상태가 되었지요. 그래서 관리인을 공개 모집했지만, 워낙 일이 많은 농장 일이기에 관리인을 해보겠다고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것입니다.
얼마 뒤에 드디어 한 명의 지원자가 나타났습니다. 농장 주인이 그에게 자신의 장점이 무엇인지를 묻자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태풍이 몰아치든, 눈보라가 몰아치든 아주 편안하게 잠을 잘 잡니다.”
이게 무슨 장점인가 싶었지만, 다른 지원자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이 사람을 채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 이 사람은 아주 성실했고, 이 모습에 농장 주인은 만족스러웠습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이 농장에 커다란 폭풍이 덮쳤습니다. 폭우와 거센 바람에 놀란 농장 주인은 서둘러 농장에 가서 관리인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관리인은 너무 편안하게 자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너무 화가 나서 흔들어 깨웠지만, 관리인은 잠에 취해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할 수 없이 농장 주인 혼자서 걱정되는 축사와 밭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깜짝 놀랐습니다. 축사 지붕은 단단하게 묶여 있었고, 밭 주변은 배수로를 넓게 파서 태풍으로부터 피해를 보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면접 당시에 태풍, 눈보라에도 편안하게 잠을 잘 잔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만큼 철저하게 준비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걱정과 불안으로 힘들어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바로 철저한 준비가 아닐까요? 준비 없이 걱정과 불안으로 지금 해야 할 것을 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의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오늘 우리는 지상 생애를 마치신 다음 하늘로 불려 올라가신 성모님의 승천을 기념합니다. 성모님께서 이런 영광을 얻으실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단순히 하느님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이것도 이유가 되기는 하겠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어떤 상황에서도 무조건 하느님과 함께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잉태 소식을 들었을 때도, 예수님을 낳았을 때도, 에집트로 피난 갔을 때도, 성전에서 예수님을 잃어버렸을 때도, 사랑하는 아들의 수난과 죽음을 목격할 때도……. 그의 기준은 늘 하느님의 뜻이었습니다.
이것만큼 이 세상을 잘 사는 길이 있을까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가장 크고 철저한 준비였습니다.
우리 역시 바라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철저하게 해야 합니다. 성모님의 모범을 본받아 철저히 하느님과 함께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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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최고의 행복은 우리가 사랑받고 있음을 확신하는 것이다(빅터 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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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모래알 하나를 보고도
너를 생각했지
풀잎 하나를 보고도
너를 생각했지
너를 생각하게 하지 않는 것은
이 세상에 없어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정채봉 시인의 시입니다. 이 시를 읽으면서 큰 공감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저 역시 사랑하는 어머니를 주님 곁으로 떠나보내고 나서 무엇을 보든 어머니가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묵상 글을 쓰면서도, 묵주기도를 하면서도, 전화기를 봐도, 또 예전에 어머니와 함께했던 장소를 가도 어머니가 생각났습니다.
사랑하는 관계는 이렇게 내 일생을 만듭니다. 그러나 그 사랑을 생전에는 제대로 표현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후회입니다. 그러나 기도 안에서 만난다는 희망을 품게 됩니다. 그리고 언젠가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리라는 기대 속에서…. 그 사랑을 간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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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5. 성모 승천 대축일 /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8월 15일은 광복절이며 성모승천 대축일이다. 성모승천에 대한 것이 성서에 나타난 근거는 없지만, 초대교회에서부터 이에 대한 신앙을 간직해 왔고 1950년 11월 1일 교황 비오 12세가 ‘대자대비하신 하느님’(Muniticentissimus Deus)이라는 칙서를 통해 믿을 교리로 선포하셨다. 교회는 2000년간을 마리아의 승천을 기념했으나 정식으로 신앙 교리로 선포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교회는 오늘 하느님의 모친,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의 가장 큰 축일을 지내고 있다.
복음: 루카 1,39-56: 마리아의 노래
주님의 천사가 성령으로 하느님의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전갈을 마리아에게 전한지 얼마 안 되어서였다. 그리고 불가능한 상황에서 아이를 낳게 하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을, 즉 남자가 없는 처녀가, 그리고 아기를 낳을 수 없던 엘리사벳, 노인 즈카르야의 아내가 아기를 가졌다는 것과 마리아도 아기를 가졌다는 것을 보증해 주었다.
마리아는 천사에게 즉 하느님께 충실히 그 뜻을 받아들이고 있다. “말씀하신 대로”, 즉 하느님의 말씀대로(38절). 하느님의 말씀을 잉태하고 즉시 집을 떠나 엘리사벳을 방문하고, 도와주기 위해 서두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먼저 “엘리사벳에게 인사한다.”(aspázomài).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한 마리아는 이제 성령으로 가득 차 있다(35절). 그리고 엘리사벳이 당신 친척의 “인사”(aspamós)(36절)를 들었을 때, 먼저 당신의 태중의 아기가 성령으로 가득 차 기뻐하였다. 마리아의 방문과 인사는 엘리사벳에게 또한 성령의 충만함을 주었다(41절).
이렇듯 마리아는 첫 번째로 성령을 받은 분이셨으며, 엘리사벳은 두 번째 성령을 받으신 분이시다. 이분들은 바로 성령을 전달해 주는 분들이다. 이 두 여인은 함께 태어날 아기들에게 있어 주님의 공동체, 구원의 공동체, 위대한 왕의 거룩한 나라의(참조: 시편 47,3; 마태 5,35), 성령으로 준비된 성전의 처음의 중심인물이 된다.
마리아 승천 축일의 의미
오늘 축일은 마리아의 신앙과 삶의 승리와 영광을 드러내 주는 동시에 구원역사의 완성에 희망을 준다. 성모승천은 예수님 부활의 은혜를 입은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언젠가 성실한 신앙인 모두에게 주어질 부활의 영광을 마리아를 통하여 미리 앞당겨 이루신 사건이다. 즉 성모승천은 예수님 부활의 재확인이며 미래에 이루어질 우리의 부활의 보증이다.
여기서 예수님과 마리아의 관계는 스스로 당신을 비우시고 낮추신 하느님께 당신의 육체를 내어드림으로써 하느님의 아들이 완전한 인간이 되게 하셨기에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셨다. 이 완전한 인간인 그리스도는 세상의 구원이시다. 우리도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그 말씀을 생활하면 우리도 그 말씀을 세상에 다시 낳아주는 마리아가 된다. 마리아를 닮는 삶으로 우리가 모두 같은 영광에 참여할 것이다.
마리아는 믿음의 여인
이렇게 마리아를 보면 모든 것이 믿음에서 출발하여 완성에 이르는 모습이다. 즉 천사의 알림에서 십자가 사건 그리고 성령강림까지 믿음으로 가득한 분이시다. 아브라함보다 더 자신을 하느님께 내맡긴 믿음으로 아드님의 구원사업에 협력하신 분이시며, 하와의 불순종의 매듭을 당신의 순종으로 풀어주시고 세상에 구원을 얻을 수 있게 한 새로운 하와이시다.
마리아는 우리에게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르쳐 준다. 하느님의 위대하심과 그분의 역사를 인정하며, 감사와 찬미를 드릴 수 있게 해준다. 마리아는 단순히 예수님을 낳으신 그 혈연관계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던 신앙의 여인이었기 때문에 복된 분이시다. 그러나 그분의 생애에 언제나 칭송과 영광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분은 어머니로서 또한 많은 고통을 받으신 분이시다. 그러나 항상 하느님께 대한 변치 않는 믿음이 모든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우리 신앙인의 모델인 성모님께서 인간으로서 당신이 하늘의 영광에 첫 번으로 주어졌다는 사실이 우리 모든 믿는 이들에게 마리아와 같은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준다.
우리의 생활이 마리아의 삶을 따를 때, 우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으며,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낳아줄 수 있다. 마리아로서 살도록 노력하자. 그것이 우리 신앙인들이 가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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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5. 방효익 바오로 신부님. - 성모 승천 대축일.
성모님의 승천 대축일을 맞아 화답송을 집중해서 묵상하겠습니다.
“능숙한 서기의 붓”(시편 45,2)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시편 45장의 저자는 구체적으로 어떤 임금의 혼인예식을 보고 노래를 지었는지 밝히지는 않지만, 전체적인 내용에 비추어볼 때 솔로몬과 여인들에 관한 노래이거나 아합 임금과 혼인한 페니키아 여인 이제벨의 이야기가 핵심주제인 듯합니다. 솔로몬과 아합은 이방인 여인과 정략혼인을 한 뒤에 그 여인들의 콧소리와 어깨 흔들음을 못 이겨 우상숭배를 했던 것 때문에 교훈으로 남기고자 노래를 지은 것입니다. 이방인 여인이 이스라엘 임금과 혼인을 하려면 먼저 해야 할 일을 계몽적인 노래로 지어 민중에게 유포시킨 것이라 생각됩니다.
오늘 읽혀진 화답송은 시편 45장의 셋째 부분(9-16절)으로서 화려한 혼인예식과 축제를 부분적으로 묘사하는데 등장인물들을 먼저 소개합니다. 임금의 사랑을 받는 여인들, 이웃나라 임금(제왕)의 딸들, 그리고 최고로 아름답게 단장한 왕비가 임금의 오른쪽에 서 있습니다. 혼인예식에 여인들이 이렇게 많이 나타나는 것은 일부다처제의 상황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임금의 오른쪽에 오피르 황금으로 단장하고 서 있는 왕비는 시편에서 벌어지는 혼인예식의 주인공이 아닙니다. 시편 저자는 임금의 아내가 될 여인을 딸(11절)이라고 부릅니다. 왕비가 임금(남편)에게 “나의 주인”이라 부를 수는 있을지라도 임금이 자기 부인(왕비)이나 부인이 될 사람에게 “딸”이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왕비”와 “딸”이 서로 다른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순결한 처녀로 그리스도와 혼인하려는(세례를 받으려는) 우리에게(2코린 11,2) 승리의 화관을 씌워주려고(2티모 2,5) 기다리시는 성모님을 상징합니다.
시편 45장의 핵심 내용은 11절에 있는 네 가지 중요한 동사들입니다.
“들어라”는 유다인들이 매일 새벽에 외쳐야 하는 말로써 “내가 오늘 너희의 귀에 들려주는 규정과 법령들을 들어라. 이것을 익히고 성심껏 지켜라.”(신명 5,1; 4,1)라는 뜻입니다. 이방인 여인이 이스라엘의 왕비가 되려면, 먼저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그분께서 명령하시는 것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솔로몬의 그 많은 부인들과 아합의 부인 이제벨처럼 자기가 친정에서 섬기던 신들을 끌어들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왕비가 되려면 먼저 이스라엘의 하느님의 뜻대로 살 수 있도록 “그분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며, 하느님의 길을 걸어가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서 하느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보아라”는 세 가지 의미가 있는데, 첫째, 이방인 여인이 이스라엘의 주님께서 이 세상에(이스라엘과 함께) 이루어놓으신 업적을 잘 살펴보라는 것입니다(집회 33,15). 둘째,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하신 말씀은 그대로 실행되고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고 또 믿으라는 것입니다(토빗 14,4; 에제 12,25). 셋째, “네가 더럽히지 않은 자리가 어디 있는지”(예레 3,2) 확인해보라는 것이며, 이제껏 저지른 악하고 역겨운 짓들을 돌아보라는(에제 8,9) 것입니다. 하느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될 임금의 부인, 왕비가 될 자격을 갖추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절대적인 조건입니다.
“귀를 기울여라”는 왕비가 되거들랑 “가난한 이의 살길을 막지 말고 궁핍한 눈들을 기다리게 하지 마라.”(집회 4,1)는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합 임금의 아내가 된 이제벨은 아합의 왕권을 빙자해서 나봇의 포도밭을 빼앗았습니다(1열왕 21장). 그래서 이방인 여인으로서 왕비가 되려면, 이제벨처럼 하지 말고, 힘없고 가난한 이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입니다.
“네 아버지 집안을 잊어버려라”는 하느님의 백성을 대표하는 임금을 “내 남편”(호세 2,18)이라 부르기 원한다면, 친정의 나라는 물론 거기서 섬기던 낯선 신들을 모두 잊어버리라는 것입니다. 솔로몬과 아합 임금의 어리석은 전철을 밟지 않도록 왕비가 될 이방인 여인은 친정 국가와의 모든 관계(정치, 종교, 경제)를 끊어버리라는 것입니다. 자기 친정 나라의 신을 그대로 섬기거나 우상을 숭배하던 예식을 끌어들여 주님을 섬기게 함으로써 낯선 신들 때문에 주님께서 질투하시게 하지 말고, 역겨운 짓으로 그분을 분노하시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제벨의 친정 국가들의 여인들과 부자들이 뇌물을 들고 온다는데(13절), 이는 왕비가 되어서 친정 국가에게 이스라엘의 온갖 경제적 이권을 넘긴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임금과 이방인 여인 사이에서 태어나는 아들들이 대대로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책봉되기 위해서라도 친정 국가와의 관계를 끊어버리라는 것입니다(17절).
혼인한 여자들이 화가 나면, 가끔 “이 집안사람들은 이해가 안 돼!”라고 말을 합니다. “이 집안이라고 하는 그 집안은 누구의 집안입니까?” “자기 집안 아닙니까?” “이 집안사람들은 이해가 안 돼!”라는 표현 속에는 “나는 아직도 남편의 집안에 동화되지 못하고, 친정을 잊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동화되지 못한다면, 우상숭배와 직결되고, 이스라엘의 흥망성쇠가 달려있는 문제입니다. 이방인 여인과 혼인한 임금들은 여인의 콧소리와 어깨 흔들음 한 번에 신당을 하나씩 지어주었고, 결국 이스라엘 백성은 주님과 바알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고 살게 했습니다(1열왕 18,21). 아합 임금의 아내 이제벨의 바알신 숭배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바꿔놓을 정도였습니다. 엘리야가 그토록 투쟁을 했건만, 끝내는 하느님으로부터 예언직을 빼앗기고 맙니다(1열왕 18-19장).
이렇게 중요한 네 가지를 말한 뒤에 “엎드려라”(12절) 합니다. “엎드리다”는 마치 다윗의 심부름꾼들이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에게 “다윗 어르신께서 부인을 아내로 삼으시려고 저희를 보내셨습니다.”라고 말을 했을 때 아비가일이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한”(1사무 25,40-41) 것처럼 다위 임금의 청혼에 동의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나라 전통 혼례식에서 교배례(交拜禮)가 있는데 남자는 양(陽: 홀 수)이기 때문에 일배(一拜)를 두 번, 여자는 음(陰: 짝 수)이기 때문에 재배(再拜)를 두 번 합니다(경기도 화성에서는 신부가 세 번, 신랑은 두 번과 반절; 전북 순창에서는 신부는 재배, 신랑은 일배). 절하는 숫자의 차이는 남존여비사상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것 역시 구약성경에서 말하는 혼인 승낙의 의미로 엎드려 절을 하는 것으로서 백년해로를 서약하는 것입니다.
시편 45장의 저자는 이스라엘 임금이 청혼한다면(하느님의 부르심을 듣는다면) 이방인 여인은 그 혼인을 승낙하기 전에 먼저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고, 하느님께서 이루신 업적을 잘 보면서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잘 알아야 하며, 혹시 왕비가 되더라도 거들먹거리거나 남의 것을 착취하지 말고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하고, 친정의 정치경제적 세력을 끌어들이지 않겠다는 각오가 서 있다면, 그때에 임금의 청혼에 승낙하기(세례를 받기) 위해 “엎드리라”는 것입니다.
오늘 성모승천 대축일을 맞이해서 마리아처럼 “기쁨과 즐거움으로 인도되어 왕궁으로 들어가려면”(16절), 성모님처럼 승천의 영광을 누리고 싶다면 시편 45장의 저자가 말하는 네 가지 조건을 먼저 갖춘 다음에 하느님께 엎드리라고 합니다. 결국 세례를 통하여 하느님과 사랑의 짝이 된 자신의 신앙생활을 철저하게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우리 신앙생활의 모범이십니다. 결국 마리아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고, 하느님께서 이루신 업적을 잘 보면서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잘 알며,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세례받기 전에 지니고 있던 악습을 끊어버린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새로운 신앙인들을 탄생시킵니다. 마리아께서 가브리엘 천사가 전해준 하느님의 받아들여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낳아주셨듯이, 교회는 말씀을 들려주어서 구원의 길로 새로운 신앙인들을 탄생시킵니다. 그래서 새로운 신앙인을 탄생시키는 교회는 예비신자들이 하느님께 엎드릴(세례를 받을) 수 있도록 위해, 먼저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들려주어야 하고, 하느님께서 이루신 업적이 무엇인지 잘 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고,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알게 하고, 세례받기 전에 지니고 있던 모든 악습과 우상숭배를 끊어버리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성모님의 승천 대축일을 맞이해서 “들어라, 보아라, 귀를 기울여라, 네 아버지 집안을 잊어버려라, 그리고 엎드려라”라는 말씀을 잘 되새겨 봅시다.
- 방효익 바오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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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5. 한상우 신부님. 성모 승천 대축일.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습니다.(루카 1, 52)
어머니의
이름을 다시
불러봅니다.
어머니의
사랑에서 진실로
아름다운
사람의 삶을
만납니다.
하늘을 닮은
사랑입니다.
하늘과 땅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을 낳으셨고
예수님과 함께
끝까지 낮아지신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에서
산다는 것이
견디며 또
견디는 기도임을
배웁니다.
아픔이 아픔을
일으켜세우고
비천함이 비천함을
달래어줍니다.
간절한 사랑이
하늘과 땅을
이어줍니다.
애달픈 사랑이
애타는 십자가의
절절한 봉헌이
됩니다.
올바른
사랑만이
십자가의 길을
끝까지 가게 합니다.
참된 사랑은
모든 벽을 허물고
하늘로 오릅니다.
하늘을 품은
사람에겐
모든 것이
기적입니다.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길
그 길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그길이
삶의 승천이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모든
여정 모든 삶이
하늘로 오르십니다.
지극한 사랑이
지극한 승천의
기쁨이며
승리임을 믿습니다.
(한상우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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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5. 성모 승천 대축일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끌림과 떨림’은 비슷한 면도 있고, 다른 면이 있습니다. 처음 본 사람인데도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사람처럼 끌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격이나 취미가 비슷하면 더 끌리기도 합니다. 음식도 그렇습니다. 맛이 있는 음식도 있지만 입맛에 끌리는 음식도 있습니다. 술도 비싼 술이 좋지만 입맛에 끌리는 술이 있습니다. 저는 해산물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예수님께 마음이 끌린 사람이 있습니다.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소리쳤던 소경, 깨끗해지기를 바랐던 나병환자, 부하의 병을 고쳐달라고 찾아왔던 백인대장, 딸의 병을 위해 찾아왔던 여인, 예수님을 집으로 초대했던 자캐오, 예수님께 시중들던 마르타, 예수님의 발치에서 말씀을 듣던 마리아가 있습니다. 세상의 욕망과 권력에 끌리기보다는 우리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끌리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청혼하는 연인은 마음이 떨릴 것입니다. 서품식에서 바닥에 엎드려 성인호칭기도를 듣는 서품자의 마음도 떨릴 것입니다. 둥지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하늘을 나는 새도 떨릴 것 같습니다. 드디어 새집을 마련해서 입주하는 아내의 마음도 떨릴 것입니다. 처음 무대에서 노래하는 가수의 마음도 떨릴 것입니다. 저도 첫미사를 봉헌할 때 무척 떨렸습니다. 무서워서 떨리는 것이 아니라 가슴이 벅차서 떨리는 것입니다. 하혈이 멈추었던 여인의 마음도 떨렸을 것 같습니다. 들것을 들고 걸을 수 있었던 중풍병자도 떨렸을 것 같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으로 만났던 막달라 마리아도 떨렸을 것 같습니다. 다락방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던 제자들도 떨렸을 것입니다.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께 말씀을 들었던 제자들도 떨렸다고 합니다. 익숙함으로 소중함을 잊어버리기보다는 처음 성체를 모셨던 그 설렘과 순수함으로 신앙을 간직하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성모승천 대축일입니다. 초대교회는 성모님께서 죽음을 거치지 않고 하느님께로 가셨다고 믿었습니다. 교리적으로는 성모님께서는 원죄 없이 잉태되셨기 때문에 원죄의 결과인 죽음을 맞이할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신학적으로 예수님께서는 인간이면서 하느님이라고 선포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성모님은 이제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셨다고 이야기합니다. 성모님께 대한 이 모든 찬사와 공경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요? 우리는 그것을 천사 가브리엘과 성모님의 대화에서 알 수 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성모님께 아이를 가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이끄심이며 하느님의 뜻이라고 하였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이 몸은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성령의 이끄심을 받아들이면서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면서 성모님께 대한 찬사와 공경은 시작된 것입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우리들 모두 언젠가 하느님의 품으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의 표징입니다. 누군가 이야기 했습니다. 영원한 것은 끝도 없는 시간의 연장이 아니라, 영원한 것은 채워짐이라고 했습니다. 희망이 채워지고, 사랑이 채워지고, 믿음이 채워지는 것이 바로 영원함입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끝도 없는 시간의 연장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 속에서 우리 모두는 사랑으로 채워 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우리 신앙인이 가야할 미래를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성모 마리아의 일생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충실한 응답이었습니다. 성모님은 자신의 삶보다는 하느님의 뜻을 먼저 찾으셨습니다. 우리도 성모 마리아처럼 자신보다는 이웃과 하느님의 뜻을 먼저 찾는다면 이 세상에 더 많은 평화가 이룩될 것입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많은 문제와 어려움들이 교회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의 도우심으로 지혜롭게 극복되기를 기도드립니다.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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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5. 성모 승천 대축일 /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영적 승리의 삶 - 찬미, 겸손, 우정 -
요즘은 뉴스 보기가 두렵습니다. 대부분 국민들이 어두운 분위기에서 힘겹게 지내고 있습니다.
전례 없던 코로나19 펜데믹 감염병과 홍수피해로 참으로 심신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마스크를 쓰는 것이 일상화되었으니 노래도 못하고 운동도 못하니 보통 재앙이 아닙니다.
이런 와중에 맞이하는 성모승천 대축일이 참 고맙습니다.
희망과 기쁨의 태양이 세상의 어둠을 환히 밝히는 느낌입니다.
우리 믿는 모두의 영원한 삶의 모범인 성모 마리아입니다.
말그대로 성모님의 영적 승리의 삶을 경축하는 날입니다.
구약의 에녹, 모세, 엘리야에 이어 신약의 예수님에 이은 성모님의 승천입니다.
믿는 이들의 영적 승리의 삶을 상징하는 성모님의 승천입니다.
바로 우리의 미래에 대한 희망의 표지가 성모님의 승천이요 오늘 지금 여기서 우리 모두 승천의 삶을,
영적 승리의 삶을 살도록 우리를 분발케 합니다. 영적 승리의 삶은 그대로 하느님의 승리를 뜻합니다.
성모승천 대축일 새벽 성무일도시 초대송 후렴과 찬미가로 하루를 시작한 우리 수도자들입니다.
참 아름다운 전례가 우리 영혼에 활력을 줍니다.
-“오늘 그리스도의 모친 마리아 하늘에 오르셨으니 어서와 우리 주께 조배드리세”-초대송 후렴
-“태양의 빛입으신 동정녀시여 열두별 머리위에 꾸미신이여
저달을 발판삼아 우뚝 서시니 환하게 빛나도다 당신의 광휘
죽음과 지옥권세 쳐부순이여 우리를 마음여겨 보살피시니
주님의 곁에 앉은 당신우러러 모두가 여왕으로 찬양드리네”-
바로 제1독서 묵시록을 근거한, 성모님의 영적 승리의 삶을 경축하는 찬미가입니다.
2절까지만 소개했지만 5절까지 내용이 참 깊고 풍부합니다.
방금 미사중 흥겹게 부른, “왕후가 당신 우편에 서 있나이다.”
화답송 후렴도 우리를 희망과 기쁨으로 가득 채우는 느낌입니다.
이번 8월16일자 카톨릭 평화신문은 온통 지난 8월2일 선종한후 8월8일 죽림동 주교좌 성당에서
장례미사를 봉헌한 제6대 춘천교구장 장익 주교님 기사로 가득했습니다.
그대로 영적 승리의 삶을 신자들에게 선물로 남기고 떠나신 향기로운 주교님입니다.
마지막 유언인 시편과 남기신 말씀도 아름답고 감동스럽습니다.
-“나 무엇으로 주님께 갚으리오? 내게 베푸신 그 모든 은혜를
구원의 잔 들고서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네.”(시편116,12-13)-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반세기 이상을 부당한 사제로 살도록 허락하신 과분한 은총을 입은 주님의 종,
죄인 장익 십자가의 요한 저는 그저 더없이 고맙고 송구한 마음뿐입니다.”-
아, 어떻게 성모님처럼, 장익 주교님처럼 영적 승리의 삶으로 인생을 마감할 수 있을런지요.
어떻게 하면 희망과 기쁨으로 빛나는 영적 승천의 삶을 살 수 있을런지요.
첫째, 찬미입니다.
참으로 살아있는 삶은 찬미의 삶입니다. 찬미의 삶이 영적 승리의 삶의 기초입니다.
삶과 죽음의 차이는 무엇이겠는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요즘 골똘히 묵상하는 주제입니다.
먹고 자고 일하고 숨쉰다고 살아있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살아있으나 죽어있는 존재감 없는 삶도 많습니다.
바로 하느님 찬미가 진짜 살아있음에 대한 생생한 증거입니다. 사랑의 찬미가 삶의 의미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은 하느님 찬미로 표현되기 마련입니다. 찬미의 승리, 찬미의 기쁨, 찬미의 행복입니다.
하느님 찬미의 맛으로 살아가는 우리 수도자들입니다. 우리의 무지와 허무의 어둠을 몰아내는 찬미의 빛입니다.
오늘 복음의 후반부는 성모님의 영적 승리의 삶을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찬미가입니다.
2천년 동안 가톨릭 교회가 저녁 성무일도때 마다 성모님과 함께 영적 승리의 삶을 간원하며 부른 찬미가입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나이다.”로 시작하여,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로 끝나는 마니피캇 찬미가는 말그대로 찬미의 절정입니다.
샘솟는 희망과 기쁨으로 영적 승리의 삶을 살도록 이끌어 주는 찬미의 은총입니다.
둘째, 겸손입니다.
바로 겸손이 영적 승리의 삶의 빛나는 표지입니다.
온유와 겸손으로 요약되는 예수 성심이 바로 영적 승리의 삶을 입증합니다.
죽어서가 아닌 이미 살아서 영적 승리의 삶을 살게 하는 겸손입니다.
회개의 열매가 겸손입니다. 끈임없는 회개와 함께 깊어가는 겸손입니다.
참으로 끊임없이 바치는 찬미와 감사의 기도와 삶이 겸손과 더불어 영적 승리의 삶을 살게 합니다.
다음 행복기도 내용 그대로입니다.
-“끊임없는 찬미와 감사의 삶중에 당신을 만나니
당신은 우리를 위로하시고 치유하시며, 기쁨과 평화, 온유와 겸손, 희망과 자유를 선사하시나이다.”-
성모님에게 겸손의 절정은 태중의 예수님과 함께 엘리사벳을 방문한 것입니다. 겸손 자체가 이미 축복입니다.
성모님의 겸손한 방문에 감격한 엘리사벳이요 성모님의 겸손을 통해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엘리사벳입니다.
셋째, 우정입니다.
홀로의 여정이 아니라 홀로와 더불어의 여정중의 영적 승리의 삶입니다.
영적 승리의 삶에 결정적인 요소가 도반과의 영적 우정입니다.
성모님께서 수태예고후 즉시 찾은 것이 영적 도반 엘리사벳이었습니다.
성모 마리아를 만난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성모님을 격려합니다.
성모님의 내면의 어둠을 환히 밝힌 엘리사벳의 고백입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평생 영적 승리의 삶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영원히 잊지 못할 엘리사벳 도반의 위로와 격려였을 것입니다.
도대체 영적 도반 엘리사벳이 없었다면 어디서 이런 은혜로운 축복의 말씀을 들을 수 있을런지요.
참으로 두 분 어머니의 우정이 얼마나 아름답고 깊은지 깨닫게 됩니다.
두분의 영적 우정에 필히 전제되는 바, 영원한 평생 도반이신 주님과의 우정입니다.
참으로 두 분이 주님과 우정이 깊은 주님의 종, 성령의 사람이었기에 이런 서로간의 우정도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서로간의 우정의 성장과 성숙과 함께 가는 것이 영원한 도반 주님과의 우정임을 깨닫습니다.
영적승리의 삶에 결정적 요소가 수직적 차원의 주님과의 우정, 수평적 차원의 인간 도반과의 우정입니다.
부전자전이란 말도 있지만 영적 삶에서 모전자전이 더 어울립니다.
성모 마리아 어머니에 예수님이요, 엘리사벳 어머니에 세례자 요한이기 때문입니다.
하여 성모 승천 대축일, 꼭 우리 어머니들 축일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알게 모르게 영적 승리의 삶을 사셨던 어머니들이 있기에 오늘의 우리도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영적 승리의 삶의 빛나는 표지는 성모님의 아드님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제2독서 바오로 사도를 통한 주님의 말씀이 우리의 영적 승리의 삶에게 큰 격려와 힘이 됩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원수를 그리스도의 발아래 잡아다 놓으실 때까지는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셔야 됩니다.
마지막으로 파멸되어야 하는 원수는 죽음입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그의 발아래 굴복시키셨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찬미와 겸손, 우정의 삶에 항구하고 충실함으로 영적 승리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겠지만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16,3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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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5. 오 상선 바오로 신부님. 성모 승천 대축일
오늘 미사의 말씀은 성모님을 기립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45)
마리아께서 천사의 방문을 받고 성령으로 예수님을 잉태하신 후 사촌 엘리사벳을 방문했을 때 들은 인사말입니다. 엘리사벳이 성령의 감도를 받아 외친 이 말씀은 성모님은 물론 교회가 받은 커다란 선물입니다.
인간이 느끼는 행복의 조건은 매우 다양합니다. 어떤 이는 재물에서, 어떤 이는 명예에서, 어떤 이는 쾌락에서, 어떤 이는 관계에서, 또 어떤 이는 지적 성취와 깨달음에서 행복을 느낍니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은 성모님께서 그러셨듯 믿음 때문에 행복한 존재일 것이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성모님은 인간 사고력의 한계 안에서는 믿을 수 없는 주님의 뜻을 믿음으로써 구원에 협력한 믿음의 여인이십니다. 그분의 생애는 믿음으로 견고하고 아름답게 짜여진 지성소의 휘장과 같을 겁니다. 그 휘장을 통해 성자께서 보호를 받으셨고, 그 휘장이 열림으로 구원자께서 세상에 드러나셨습니다.
제1독서에서는 마리아를 떠올리게 하는 여인이 등장합니다. 그녀는 "모든 민족을 다스릴 분"(묵시 12,5)을 낳은 뒤 악을 상징하는 용에게 쫓깁니다.
이는 "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창세 3,15)고 뱀에게 이르신 주님의 선고를 떠올리게 합니다. 요한 묵시록에서는 아이를 삼켜버리려는 악한 힘인 용과 여인의 대치가 숨막히도록 급박하게 펼쳐집니다.
"여인은 광야로 달아났습니다. 거기에는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 처소가 있었습니다."(묵시 12,6)
여인은 이집트의 추격을 피해 갈대바다를 건너 광야로 달아난 이스라엘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주님의 백성인 우리까지도 그녀 안에 있는 셈이지요.
말씀이신 주님을 잉태하고 출산하고 양육하며 살아가려 애쓰는 우리를 악은 가만히 두지 않으려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방해하고 공격하는 세상의 온갖 악에서 우리를 피신시켜 활짝 열어젖힌 당신의 "처소"로 받아들이십니다. 그 처소는 우리에게 가장 안전하고 평화롭고 거룩한 주님의 '심장'이고 '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이들을 이야기합니다.
"각각 차례가 있습니다. 맏물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그분께 속한 이들입니다."(1코린 15,23)
사도는 모든 원수들이 그리스의 발 아래 굴복될 때, "그분께 속한 이들"이 주님과 함께 영광 안에 들어갈 것이라고 합니다.
성모님은 그 모든 때를 초월하여 마지막으로 파멸되어야 할 원수인 죽음의 부패를 겪지 않으시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가장 철저히 속하셨던 마리아에게 특별한 은총을 베푸신 것이지요.
주님께 속한 우리 역시 그 희망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비록 실패와 상실로 삶의 밑바닥까지 곤두박질쳤더라도 우리의 본래 자리,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열어두신 "처소"는 모든 원수를 이기신 주님의 '곁', 승천하신 성모님의 품이라는 희망입니다.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루카 1,52)
이토록 상상할 수 없이 놀라운 하느님의 자비를 오늘 마리아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그분은 들어 올리시는 분, 들어 높이시는 분입니다. 인간 실존과 죄악과 나약함으로 끝간 데 모르고 추락하는 우리를 친히 당신 곁으로 들어 올려 제 자리를 찾아주시는 분이시지요.
사랑하는 벗님! 오늘 우리의 어머니신 마리아와 함께 이 희망을 노래합시다. 코로나19와 수해, 혐오와 분열, 가난과 소외 와중에도 지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주님 곁에 마련된 우리 자리를 바라봅시다. 그리고 천상으로 성모님을 모셔들이는 천사들과 성인들의 기쁨을 관상합시다. 마리아를 맞이하시는 성삼위 하느님의 사랑에 머무릅시다. 우리의 심장에서 희망의 빛이 꺼지지 않도록 멈추지 말고 기도합시다.
▶ 작은형제회 오 상선 바오로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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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5. 이병우 루카 신부님. <성모승천대축일>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루카1,42)
오늘은 하느님의 어머니요, 우리의 어머니, 나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서 하늘로 들어 올려지신 것을 기념하는 '성모승천대축일'입니다.
'성모승천'은 성모님의 4대 핵심 교리 중 하나입니다.
성모님의 4대 핵심교리는 성모님께서,
1)'하느님의 어머니'이시고(1.1),
2)'평생 동정'이시고(3.25),
3)'하늘로 들어올려지셨고'(8.15),
4)'원죄없이 잉태되셨다'(12.8)는 교리입니다.
성모승천은 인간의 지위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광이자, 우리의 희망이고 목적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예수님 탄생 예고에서 "예!"라고 응답함으로써 '순종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성모님은 '믿으신 분'입니다.
"예!"라는 대답을 시작으로 십자나무에서 예수님의 시신을 내려 품에 안으실 때까지 끝까지 믿으셨습니다.
성모님은 '견디시고 자신을 감추신 분'입니다.
아들 예수님과 함께하는 여정에서 때로는 예수님 때문에 마음 아픈 일도 많으셨지만, 끝까지 견디셨고, 끝까지 자신을 감추셨습니다.
그래서 하늘로 들어 올려지시는 영광을 누리게 되셨고,
그래서 엘리사벳의 칭송처럼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된 여인이 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성모님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이유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성모님을 공경하는 이유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가정이나 내가 머무는 곳에 성모님을 모셔 놓은 이유입니다.
같은 은총과 영광이 우리에게도 주어질 수 있도록,
성모님처럼 끝까지 믿고,
성모님처럼 끝까지 견디고,
성모님처럼 끝까지 감추는,
그런 신앙인이 됩시다!
그래서 성모님처럼 하늘로 들어 올려지는 은총과 영광이 우리에게도(나에게도) 내려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신앙인이 됩시다!
오늘은 또한 광복 75주년을 맞이하는 날입니다. 해방을 위해 애쓰다가 순직한 모든 영혼들을 기억하고, 진정한 해방을 위해서 함께 노력합시다!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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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5. 성모승천 대축일. 반영억 라파엘 신부님.
희망의 어머니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구세주의 어머니를 우리에게 보내주셨고 어머니를 통하여 우리의 필요를 전구해 주시도록 안배하셨습니다. 오늘 성모승천 대축일을 맞이하여 성모님의 전구로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아울러 예수님께로 나아가는 길에 있어서 성모님을 모범이요, 안내자요, 동반자로 모실 수 있는 은총이 우리 모두에게 함께하기를 기도합니다. 광복절을 맞이하여 겨레의 평화와 분열과 미움을 버리고 용서와 화해, 더 큰 사랑을 추구하는 마음의 광복을 위해 기도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마리아가 임신한 엘리자벳을 방문하였을 때 엘리자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참으로 마리아는 복된 여인입니다. 참으로 행복한 마리아 입니다. 그런데 그 행복이 어디서 왔느냐 하면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믿음에서 왔습니다. 루카복음 11장 27절, 28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고 계실 때에 군중 속에서 어떤 여자가 목소리를 높여,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하고 예수님께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 다시 말하면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고 그대로 행하는 사람이 행복합니다. 그리고 결국 구원의 역사는 믿음의 행위로 시작되고 또 열매 맺게 됩니다. 마리아는 남자를 모르는 여인이었지만 천사가 전한 소식을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처녀인 마리아였지만 성령으로 말미암아 구세주를 낳을 것이라는 하느님의 메시지를 믿었습니다. 그리고 구세주를 낳았습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은 안 되는 일이 없습니다. 그 큰 믿음이 오늘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길 기원합니다.
성모님은 당신의 겸손과 순명의 삶으로 모든 사람에게 모범이 되었고. 예수님께서는 성모님의 청을 거절하지 않으십니다. 마리아의 노래를 보면,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 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비천함을 굽어보시고 큰일을 하신 주님께 초점을 맞추는 겸손함을 만나게 됩니다. 그 겸손은 주님의 뜻을 철석같이 믿고 실행하는 순명을 이어가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카나의 혼인잔치 현장에서 첫 기적을 행하셨는데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 마리아님의 마음을 헤아려 여섯 개의 물독에 물을 가득 채워 포도주로 변하게 하여 그의 청을 들어주셨습니다(요한 2,1-12). 그러므로 “성모님을 통하여 은총을 구하십시오. 성모님을 통하여 반드시 얻을 것입니다”(성 베르나르도). 여러분은 “성모님의 마음을 여러분의 것으로 삼아 잘 활용하십시오. 그분의 마음으로 사랑하고 거기에 견주어 여러분의 마음을 성찰하고 그분을 닮지 않은 것이면 무엇이나 다 마음에서 몰아내십시오”(가경자 메리 포터).
성모님은 믿음의 어머니, 순명의 어머니, 우리를 위해 전구해 주시는 어머니이십니다. 그리고 어머니 마리아님은 예수님을 잉태하실 몸이었기에 “그리스도의 예견된 공로에 힘입어” 원죄로부터 보호를 받아 당신 자신이 “원죄 없이 잉태” 되시는 특은을 누렸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구원 활동을 위해 자신의 삶을 남김없이 봉헌 하시어 “평생동정”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당신 외아들의 삶의 여정에 함께하여 누구보다도 철저히 주님을 뒤따랐던 마리아님을 성자 예수님께서 누리신 영광에 동참하게 하기 위해서 “몽소승천” 하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천상영광을 누리고 세상의 모든 이를 위한 전구자로 세우셨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성모님의 삶의 여정은 주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에 바탕을 두고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성모님은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1,38). 는 고백 때문에 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아드님과 함께 영욕을 나누었고 아드님이 십자가에 못 박힐 때는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끝까지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시며 믿음 속에 그 고통과 아픔을 다 감내하셨습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바로 이 믿음의 결실입니다. 우리도 승천하신 성모님을 기리며 그분처럼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구원 받기를 원하는 이는 믿음으로 성모님의 도우심을 청해야 합니다. 구지 성모님을 통하지 않아도 되지만 통하지 않으면 그만큼 “전구하심” 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따라서 성모님께 의탁함으로써 더 큰 은총을 입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성모님을 통하여 예수님께로 효과적으로 나아갈 수 있고 마침내 예수님을 통하여 아버지 하느님의 영광에 동참하게 됩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우리에게 큰 희망을 줍니다. 어머니의 믿음을 닮은 삶을 통하여 우리도 하늘에 오를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성모님과 같이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굳게 믿을 때, 성모님처럼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의 길을 걸을 줄 알 때, 성모님과 같은 영광을 입게 될 것입니다. 성모님 본받아 구원을 얻기를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이루어질 것임을 믿어서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믿고 맡기는 은혜가 충만하기를 희망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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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5. 이영근 신부님. 성모 승천 대축일.
오늘은 성모승천 대축일임과 동시에 우리 민족의 기쁨인 광복절이기도 합니다.
1950년 11월 1일, 한국에서는 동족상잔의 전쟁을 겪고 있을 때, 교회는 “성모님의 승천” 교리를 선포함으로써, 인간의 미래가 하느님 안에 있음을 천명하였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성모송>에 언급되고 있듯이, “은총이 가득 하신 분”, 곧 참으로 복되신 분이셨습니다. ‘은총이 가득하다는 것’은 축복의 풍요로움과 구원의 완성을 말해줍니다. 사실, 마리아는 구세주를 낳아 인류를 구원하는 계기를 마련하셨으며, 그러기에 하느님의 가장 완전한 구원의 도구가 되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단순히 예수님을 낳으신 어머니라는 혈연의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오늘 <복음>에서 엘리사벳이 칭송하고 있듯이, “하느님의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던” 신앙의 여인이었기에 행복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성모님은 우리에게 신앙의 모범이 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모님의 노래”를 들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자신에게 베푸신 하느님의 자비와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하느님의 구원을 노래합니다. 이는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 안에 살아 있다는 노래요, 동시에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의 삶을 바꾼다는 혁명의 노래입니다. 곧 성모님 승천은 보잘 것 없는 한 여인이 인류 최고의 영예를 얻을 수 있다는 혁명적인 가르침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모님의 승천과 함께 우리 민족에게 베풀어진 기쁨인 광복을 기념합니다. 이 광복이 바로 우리에게 베풀어진 성모님을 통한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마치 제1차 세계대전이 파티마 성모님의 전구로 종결되었듯이,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동란 역시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님의 승천대축일에 종결되었습니다. 그러니, 오늘은 우리 안에 베풀어진 하느님의 자비와 축복을 찬미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날은 해방의 기쁜 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남북이 분단된 불행한 날이기도 합니다.
사실, 올해(2020년)는 해방 76주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분단 76주년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여전히 편협하고 경직된 사고로, 아직도 형제적 화해와 평화를 이루지 못한 채, 많은 이들이 동포요 형제를 적으로 여기고 대적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국교회는 광복 50주년인 1995년 성림강림대축일에 <한국천주교 사목지침서>를 통해, 북한선교의 진정한 뜻이 “분단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형제적 나눔을 실현하면서 민족의 평화통일을 대비”(제 200조)하는데 있음을 밝히고,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지난 2014년,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한국을 방문하여 첫 날 청와대에서 공직자들에게 지난 70년이란 세월을 두고 높이 쌓아온 대결의 장벽을 허무는 작업부터 시작하자고 하셨고, 마지막 날 명동성당 미사에서 “남북으로 대결하고 있는 한민족의 화해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는 평화를 원하고, 연대와 협력과 대화의 시대를 열어가야 할 때입니다. 상대방을 굴복시키려 하거나 내 편으로 변화시키려하기 보다, 상대방의 고통과 어려움에 공감하고 연민으로 다가가야 할 때입니다. 대화에는 상대방의 처지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그동안의 유리한 위치 점령을 위한 ‘기 싸움’과 ‘힘겨루기’를 내려놓아야 하고, 서로의 대립과 긴장의 이기적인 ‘줄다리기’를 멈추어야 할 일입니다. 오늘, 성모승천 대축일에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님께 특별히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말씀에서 샘 솟은 기도 -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루카 1,54)
주님!
제 안에서 활동하시는 당신을 찬미합니다.
제 안에 베푸신 측량할 수 없이 큰, 헤아릴 수 없이 놀라운 당신의 자비를 찬미합니다.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여 찬미하는 일이 제 삶의 전부가 되게 하소서.
제 삶이 당신 자비의 노래 외엔 아무 것도 아니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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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5.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성모 승천 대축일]
요한 묵시록 11,19ㄱ; 12,1-6ㄱㄷ.10ㄱㄴㄷ
1코린토 15,20-27ㄱ
루카 1,39-56
창조주를 아기로서 품에 안았던 분이 하느님의 집에 사랑으로 가득 차서 머무는 것을 옳은 일입니다!
성모승천대축일입니다.
하느님의 총애를 입으신 성모님께서 하늘로 불러올림을 받으셨음, 즉 구원되셨음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1950년 11월 1일 비오 12세 교황님께서는 회칙 ‘지극히 자애로우신 하느님’을 통해서 성모 승천을 믿을 교리로 선포하였습니다.
“원죄에 물들지 않고 평생 동정이셨던 하느님의 모친 마리아는 현세의 생활을 마치신 후 육신과 함께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 영광을 입으셨다.”
성모 승천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희망을 주는 사건입니다.
승천하신 성모님께서는 오늘 지상 순례 여정을 걷고 있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 사랑하는 자녀들이여! 용기를 내십시오.
여러분에게도 가능한 일이 승천이고 구원이여, 천상 영광에의 참여입니다.”
성모 승천은 하느님께 대한 성모님의 신앙과 순종, 헌신적인 태도가 무위로 돌아가지 않고 구원과 승천이라는 풍성할 결실을 맺었음에 대한 확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성모님처럼 하느님께 자신을 개방하면서, 그분의 구원 의지 실현을 위해 헌신한다면 성모님처럼 구원과 승천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성모 승천은 지상 순례 여정 중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희망의 징표로 제시됩니다.
아울러 성모님이 도달한 목표는 성모님 당신 개인만의 목표가 아니라 믿는 모든 이들의 목표, 교회의 목표요, 오늘 우리들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마리아 안에서 교회는 궁극적이고 지속적으로 자신의 목표에 도달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교회는 후에도 이 목표에서 빗나갈 수 없다.
마리아의 현양은 세상 종말에서 교회 현양을 위한 보증이다.”
교회 전승에 따르면, 성모님께서는 성령강림 직후 에페소로 가셨습니다.
골고타 언덕 위에서 아들 예수님께서 남기신 유언에 따라 요한 사도과 함께 지내셨습니다.
평소 성모님의 성향을 고려할 때 절대 편안히 계실 분이 아니었습니다.
요한 사도를 비롯한 여러 사도들의 어머니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다 하셨을 것입니다.
사도들을 뒷바라지하면서, 틈만 나면 기도하면서,
언젠가 상봉하게 될 당신 아들 예수님을 매일 그리워하며, 경건한 삶을 살아가셨습니다.
성모님의 죽음과 승천에 관한 전설은 다양합니다.
한 전설에 따르면 성모님의 임종이 가까워지자 선교를 위해 사방에 흩어져있던 사도들이 모여와
마지막 인사를 올렸답니다.
이윽고 성모님께서 임종하시자 사도들은 기도와 찬미가로 그녀의 덕을 기렸고, 정성껏 장례를 치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멀리 선교 나가 계셨던 토마스 사도는 빨리 달려온다고 최선을 다했지만, 도착해보니 장례를 치른지 이미 사흘 뒤였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웠던 토마스 사도는 성모님 얼굴이라도 뵐려고 무덤을 열었는, 그분의 시신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수의는 잘 개어져 있었고, 아주 향기로운 냄새가 무덤 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답니다.
현장을 목격한 사도들은 이렇게 외쳤답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당신 어머님을 부활시키셔서 그 정결한 육신을 모시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성모승천은 교회와 전 인류가 그토록 바라던 최종적인 희망이 실현됨을 보여주는 축제일입니다.
성모승천은 인류 구원의 역사가 완성되었을 때 모든 사람들이 누리게 될 영광을 미리 보여주는 위로와 희망의 표지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성모승천 교리를 굳게 믿는 우리들은 오늘 자신의 처지가 아무리 실망스럽더라도
좌절해서는 안 됩니다.
좌절이 클수록, 고통이 커질수록, 우리가 나아갈 길이자, 역할모델이신 성모님을 바라봐야
할 것입니다.
성모 승천과 관련된 다마스쿠스의 성 요한의 찬미가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창조주를 아기로서 품에 안았던 분이 하느님의 집에 사랑으로 가득 차서 머무는 것을 옳은 일입니다.
성부께서 간택하신 신부가 하늘의 신방에서 사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당신의 아들이 십자가에 매달린 것을 가까이서 보며, 아들을 낳으실 때도 느껴보지 못했던 칼날 같은 슬픔을 느낀 이가 자기 아들이 아버지와 함께 앉아 있는 것을 보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승리가 죽음을 삼켜버린 대사건, 예수님의 부활 승천의 복사판입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비록 나약한 인간이지만 썩는 몸에 썩지 않는 것을 입은 위대한 사건입니다.
성모님의 승천, 성모님께서 직천당(直天堂)하시고 성인 중의 성인이 되신 것은
우리에게 큰 희망을 준 대사건입니다.
우리가 비록 썩을 몸을 지닌 인간이지만, 우리도 언젠가 성모님처럼 불멸의 갑옷으로 갈아입을 수 있음을 보여준 은혜로운 대사건입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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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5. 전삼용 요셉 신부님. [성모 승천 대축일]
요한 묵시록 11,19ㄱ; 12,1-6ㄱㄷ.10ㄱㄴㄷ
1코린토 15,20-27ㄱ
루카 1,39-56
내가 어디로 향하는지 아는 방법
오늘은 성모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신 날을 기념합니다.
예수님이야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다시 아버지께 승천하시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그런데 성모 마리아는 우리와 같은 한 인간이십니다.
그런데도 당신 아드님처럼 하늘로 승천하셨다는 사실은, 우리 또한 성모님처럼
하늘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줍니다.
그런데 성모님께서 그 순간에만 하늘로 오르셨던 것일까요?
성모님은 살아계셨을 때부터 하늘로 향하고 계셨습니다.
이 세상에서부터 하늘로 향하지 않으면 마지막에도 하늘로 올라갈 수 없습니다.
하늘이라는 말은 땅이라는 말이 떠오르게 합니다.
우리는 모두 지금 하늘로 향하든, 땅으로 향하든 그 길을 열심히 걷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죽음과 함께 그 방향의 끝까지 도달하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 하늘로 걷고 있는지, 땅으로 걷고 있는지 반드시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알려면 내가 어떠한 추진력을 사용하는지 알면 됩니다.
모든 발사체는 뒤로 뿜는 추진력이 있습니다.
내게서 뿜어나오는 추진력이 나의 속도와 방향을 알 수 있게 합니다.
만약 나를 통해 물이 끊임없이 흘러나가고 있다면 나는 분명히 물의 원천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노를 저으며 물줄기를 거슬러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올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이 홍주연 작가의 『더 해빙』입니다.
홍주연 작가는 사업 실패로 돈에 대한 트라우마가 심했던 아버지 밑에서 컸습니다.
아버지는 자린고비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굴비였습니다.
아버지가 췌장암에 걸렸다고 하여 홍주연 작가가 마지막에 굴비라도 실컷 드시고 가시라고
10마리 보내드렸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것도 아껴 드시다 5마리를 남기고 돌아가셨습니다.
병원도 굳이 6인실을 선택하여 죽을 때까지 돈을 아끼셨습니다.
그러나 홍주연 작가는 ‘그렇게 돈을 아끼면서도 왜 아버지는 평생 가난하셨을까?’를
궁금해하였습니다.
물론 자신도 돈을 쓰는 것에서 항상 불안하고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그러다가 어렸을 때부터 비범하였고, 지금은 전 세계 재벌들의 컨설팅을 해 주고 있는
이서윤 선생을 만납니다.
그녀는 수십만 명의 부자들을 연구하여 ‘해빙’(Having)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낸 인물입니다.
그녀는 홍주연 작가에게 돈을 많이 벌고 싶다면 기쁘게 쓰라고 말해줍니다.
돈을 낭비하라는 말이 아니라, 돈을 쓰면서 기쁜 마음이 들 때만 쓰라는 것입니다.
꼭 필요했던 것, 혹은 누군가를 도와줄 때는 돈을 쓸 때 마음이 기쁩니다.
그렇게 무언가를 기쁘게 내어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그 원천으로 향하게 됩니다.
원천으로 향할수록 더 많이 받게 됩니다.
원천은 그것이 솟아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돈도 물처럼 흐름이 있는데 기쁘게 흐르는 그 흐름에 자신을 맡길 때 부족함이 없어진다고 합니다.
이렇듯 무언가를 기쁘게 내어줄 때, 그것이 무엇이든 그 기쁘게 내어주는 것의 원천으로
향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내가 용서를 기쁘게 하고 있다면 자비의 원천이신 하느님께 향하고 있는 것이고,
내가 말씀을 전하고 있다면 진리이신 주님께 향하고 있는 것이고, 내가 사랑하고 있다면 사랑 자체이신 주님께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내가 누군가를 쉽게 미워하거나 질투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미움의 원천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빨리 회개하지 않으면 되돌아올 수 없는 만큼 가버리고 맙니다.
구약에 하늘로 승천한 사람이 두 명 나옵니다. 에녹과 엘리야입니다.
에녹이 하늘로 승천한 이유는 ‘하느님과 함께 걸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과 함께 걷는다는 말은 하느님의 뜻을 따른다는 뜻입니다.
누군가의 존재가 나와 함께 있다면 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의 뜻이 계속 나를 괴롭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과 함께 있다면 하느님의 뜻이 나를 괴롭힐 것이고, 그 뜻을 받아들여 실행한다면 하늘로 올라가게 됩니다.
성모 마리아는 하늘에서 온 가브리엘 천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제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성모 마리아는 신약의 에녹이셨던 것입니다.
하늘의 뜻이자 하느님의 아드님을 세상에 내어주셨으니 그 추진력으로 말씀의 고향으로 향하신 것입니다.
그다음에 엘리야가 있습니다.
엘리야는 하늘로 오르며 자신의 제자 엘리사에게 자신의 망토를 떨어뜨렸습니다.
엘리사가 그 망토로 강을 치니 강이 두 갈래로 갈라졌습니다.
이는 마치 홍해를 가를 때 모세가 들었던 지팡이와 같은 힘을 지닌 것입니다.
바로 ‘성령’이고 ‘은총’을 상징합니다.
누군가에게 은총을 주고 있다면 그 사람은 은총의 원천으로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눈치채십니다.
포도주는 은총입니다. 교회에 은총이 부족한 것을 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총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 갑니다.
그리고 그 은총을 내려주시는 기적을 행하십니다.
이렇게 성모님은 교회에 은총을 중개하시기 위해 그리스도께 가셨습니다
하늘로 오르는 방법은 지금부터라도 하늘에게서 오는 것을 기쁘게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말씀과 은총의 중개자가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모 마리아는 한 인간으로서 우리가 쫓겨났던 에덴동산에 어떻게 다시 오르는지 보여주신
최초의 모범이 되셨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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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5. 성모 승천 대축일-묵상과 기도: 이재을 사도요한 신부님.
'하느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께서 지상 생애를 마치신 다음 하늘로 불려 올려 올라가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성모님을 통하여 그분의 승천을 통하여 인간의 비천함에서, 하늘의 영광을 누리게 하는, 곧 인간의 구원의 영광을 보여주셨습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인간 구원의 영광을 보여주는 , 우리의 영원한 생명의 '위로와 희망의 표지'입니다.
성모님의 승천은 초대교회 때부터 내려오는 신앙의 전승입니다. 교회는 이날을 의무축일도 지냅니다. 1950년 교황 비오 12세는 성모 승천 신비를 '믿을 교리'로 선포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승천이 부활의 완성이듯이, 성모님의 승천은 온 인류의, 각 사람의 부활 완성의 신비와 생명을 나타냅니다.
주님의 기도
지난시간 돌아봄
지난 시간 걸어온 시간과 길을 회상합니다. 나 자신을 깊이 바라봅니다.
-. 3분 동안. 주님을 바라봅니다.
-. 지난 시간의 각 현장을 되돌아 가서 봅니다. 나와 사람들. 활동, 곧 만남, 대화, 행위를 구체적으로 바라봅니다.
-. 사랑과 진리, 허물과 잘못, 부정과 거짓을 보며, 나의 복음적 생활을 묵상합니다. 회개와 함께 묵상합니다.
-. 지난 모든 일과 만남에 감사하며, 그 결과를 감사의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말씀 묵상
하늘에 있는 성전이 열리고 성전 안에 있는 하느님의 궤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큰 표징이 나타났습니다.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 여인은 아기를 배고 있었는 데, 해산의 진통과 괴로움으로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
이윽고 여인이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사내아이는 쇠지팡이로 모든 민족들을 다스릴 분입니다. 그런데 그 여인의 아이가 하느님께로, 그분의 어좌로 올려졌습니다. 여인은 광야로 달아났습니다. 거기에는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 처소가 있습니다.
그때에 나는 하늘에서 큰 목소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제 우리 하느님과 구원과 권능과 나라와, 그분께서 세우신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다." 묵시 11,19;12, 1-2.5-6.10
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죽은 이들이 맏물이 되셨습니다. 죽음이 한 사람을 통하여 왔으므로 부활도 한 사람을 통하여 온 것입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되살아날 것입니다.
그러나 각각 차례가 있습니다. 맏물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그분께 속한 이들입니다. 그러고는 종말입니다. 그때에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권세와 권력과 권능을 파멸시키시고 나서 나라를 하느님 아버지께 넘겨 드리실 것입니다. 1코린 15,20-24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차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된 일입니까?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그러자 마리아가 말하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그분께서 나에게 큰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 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비칠 것입니다.' 루카 1,39-55
-. 성경 말씀을 1독, 2독을 합니다. 1독은 소리내어, 2독은 마음으로 읽습니다.
-. 3분 동안 묵상. 마음 깊이 와 닿는 말씀. 메시지를 묵상합니다.
-. 메시지 말씀, 그 말씀의 내용으로, 주님께 기도로 봉헌합니다.
실천하기
성모 승천 대축일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시어 죽을 모든 이들의 맏물이 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원천은 부활입니다. 주님 승천은 부활의 완성입니다. 주님을 믿고 고백하는 모든 이가 주님 부활을 믿고, 또한 자신들도 부활할 것을 믿습니다. 인간이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그리스도의 어머니께서 승천하심은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어 부활의 완성을 이루신 것처럼, 인간, 그리스도인이 우리도 성모님 처럼 부활하여 승천할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갖습니다. 성모님은 그리스도인을 포함한 모든 인류의 구원의 영광의 모상이십니다.
오늘 성모 승천 대축일을 기리며, 우리의 부활의 완성을 믿으며,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성모 마리아님, 당신의 승천으로 우리 구원의 영광을 깊이 깨닫게 하소서!
마치기
성모송 영광송으로 마무리 기도 합니다.
이재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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