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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산제이 릴라 반살리(이하 산제이) 감독의 신작 <청원>(원제: 구자리쉬)은 14년 전 불의의 사고로 몸의 모든 감각이 마비된 천재 마술사의 ‘안락사 청원’이라는 파격적인 소재를 다룬다. 전작 <블랙>에서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소녀와 선생님을 통해 삶의 희망과 기적에 대해 이야기했던 산제이 감독은, <청원>에서 역시 전신마비 환자의 ‘삶의 가치’와 ‘존엄성이 보장된 삶을 선택할 권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왜 전신마비 환자의 인생을 탐구하는 주제를 선택했냐는 질문에 “삶과 가깝지만 별로 이야기 되지 않는 주제들을 다루는 것이 좋다”고 말하는 산제이 감독. 그는 <블랙>에 이은 두 번째 휴먼스토리 <청원>을 통해 인생의 아름다움과 우리가 가진 것들을 어떻게 소중히 지켜야 하는지 깨닫게 해준다.
그의 전작 <블랙>은 2009년 개봉 당시 <국가대표><해운대>에 이어 개봉 주 박스오피스 3위를 차지하며 흥행 돌풍을 일으킨 ‘슬리퍼 히트 필름’으로, ‘타임지 선정 최고의 영화 BEST 10’에 선정되며 전세계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품이다. 2년 만에 <청원>으로 국내 관객을 다시 만나는 산제이 감독은 <청원>으로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 영화의 창’ 부문에 공식 초청되어 내한했다.
영화 <청원>은 올 가을 관객들에게 사랑과 진정한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며, 깊은 감동과 여운을 남길 것이다. 영화 <청원>에는 14년간 아픔과 고통을 안고 살아온 남자를 12년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극진히 간호하며 위로해준 여자가 있다. 그리고 그녀의 애틋한 사랑이 있다. 산제이 감독은 휴먼감동드라마 <블랙>으로 ‘이 영화는 궁극적인 발리우드 러브스토리이다’(TIME)라는 평가를 받았던 것처럼, 천재 마술사의 비극적인 휴먼스토리를 그린 영화 <청원> 속에 전신마비 환자와 간호사의 애틋한 러브스토리를 담아낸다.
고풍스런 대저택. 아침을 맞으면 침대의 커튼을 열고 전신마비 환자인 이튼의 몸을 고정시켜 머리를 감기고, 식사를 챙기며,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돌아 눕히는 일까지 능숙하게 해내는 간호사 소피아. 12년간 지속되어 온 그녀의 일상이자 삶이다. 이튼의 충격적인 ‘안락사 청원’을 그녀는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점점 그녀의 삶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보내주고 싶은 사람, 사랑하기 때문에 보내줄 수 없는 사람, 과연 그녀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산제이 감독이 “이 영화는 리틱 로샨과 아이쉬와라 라이, 둘 중 누구 하나라도 거절했다면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두 배우의 연기 호흡은 엄청난 화제와 시너지를 불러일으킨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하며 화제를 모은 바 있는 ‘아이쉬와라 라이’는 2003년 인도 최초 칸 영화제 심사위원, 인도 배우 최초로 타임지 표지 모델, 니콜 키드만과 캐서린 제타 존스를 제치고 Hello 매거진 선정 가장 매력적인 여성으로 선정된 미스월드 출신의 미녀 배우이다. “산제이 감독의 영화만큼 영혼을 울리는 시나리오는 없다”라고 밝히며 시나리오를 보는 순간 거절할 수 없다는 것을 5분 만에 깨달았다는 ‘리틱 로샨’ 역시 아시아 최고 섹시한 몸매를 지닌 남자배우이다. 최고의 몸짱 배우에서 전신마비 환자 역할을 완벽히 소화해 낸 ‘리틱 로샨’과 우아하고도 품격 있는 연기로 영화에 대한 신뢰감과 완성도를 한층 더 높였다는 호평을 받은 ‘아이쉬와라 라이’. 이들은 지난 2006년 발리우드 영화사상 가장 좋은 흥행 실적을 올린 최고 흥행작 <둠 2>에서의 첫 만남, 국내 관객에게도 큰 호평을 얻은 2007년 <조다 악바르>에 이어 <청원>에서는 전신이 마비된 마술사와 그의 곁에서 헌신적으로 그를 지키는 간호사 역으로 세 번째 호흡을 맞췄다.
최고의 마술사 ‘멀린’ 칭호를 받던 천재 마술사 이튼은 가장 화려했던 순간, 추락한다. 마술쇼 도중 추락사고로 전신마비가 되는 남자주인공의 충격적인 모습, 그의 환상적인 마술쇼 장면과 지금은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는 전신마비 환자로서의 영상을 대비시켜 그의 고통스런 삶을 더욱 극대화시킨다. 전작들을 통해 영상미의 대가로 인정받은 산제이 감독은, 주된 촬영지였던 인도 서해안의 휴양지 ‘고아’를 배경으로 대자연의 아름다운 풍광과 포르투갈식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이튼의 대저택을 표현해냈다. 또한 산제이 감독은 영상의 대비를 통한 극적인 스토리 전개뿐만 아니라 영상과 음악의 강렬한 대비를 통해 감정을 극대화시킨다. 장례식장에서 이튼의 목소리로 울려 퍼지는 ‘What a wonderful world!’, 라디오 DJ인 이튼이 라디오 방송을 통해 들려주는 ‘Smile’, ‘100g의 인생’ 등의 올드 팝은 한층 세련된 산제이 감독의 연출력에 더해져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한동안 잊혀지지 않을 만한 명장면들로 만들어졌다.
<청원>의 크레딧 중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 있다. 바로 산제이 릴라 반살리 감독이 직접 음악 감독으로 참여했다는 점. “음악은 나의 첫사랑이다. 나는 다양한 장르의 많은 음악을 들으며 자랐고 그들의 음악을 오랫동안 숭배했다. 영화를 만드는 동안 음악 감독들과 아주 가까이서 일하며 수많은 가수들과 교류하고 그들 모두로부터 배우는 영광스런 경험을 했다”고 말한 산제이 감독은 특히 <청원>의 인물들과 상황들이 본인 스스로에게 깊은 공감을 주었고, 그 깊이 있는 감정을 다른 음악 감독에게 전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직접 음악 감독을 맡은 그는 “이 작업은 내 마음과 영혼의 조각을 음악적으로 표현하는 정서적인 여행이었고 말이나 영상으로는 절대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산제이 감독은 <청원>이 인도의 전설적인 가수 라타 망게쉬카르에 바치는 작품이라고도 했다. “나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방향을 터득했다. <청원>은 그녀의 예술성에 바치는 나의 헌사이며 라타의 노래와 가사가 이야기를 더욱 강렬하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고 밝혔다. 극대화된 영상미와 스크린을 통해 잔잔히 흐르는 아련한 명곡의 향수까지, <청원>은 산제이 감독의 눈부신 음악적 재능을 확인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선사할 것이다.
천재 마술사에서 14년간 전신마비 환자로 살아온 캐릭터를 더 이해하기 위해 리틱 로샨은 실제 환자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처음에는 1주일에 한 번씩 6시간을 함께했다. 그들과 있으며 어떤 일을 겪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뭔지 점점 이해하게 되었다. 그들은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산제이 감독은 대표적 몸짱 배우인 리틱 로샨에게 평소처럼 운동을 열심히 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는데, 탄탄하고 다듬어진 모습을 보여주기보다는 좀 더 자연스러운 연기를 위해서였다고. 또한 가짜 수염이 아닌 진짜 수염을 기르라는 요구대로 리틱 로샨은 착실히(?) 수염을 길러 감독의 지시에 부응했다고 한다. 리틱 로샨의 노력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극중 이튼의 마술쇼 장면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출신의 마술사에게서 한 달 가량 마술 레슨을 받았으며 커다란 투명 공을 이용해 춤을 춰야 하는 장면에서는 고난이도의 동작도 무리 없이 소화해내 스탭들의 찬사를 받기도 했다. 세계 최고의 마술사와 전신마비 환자라는 극과 극의 역할을 열정적으로 소화해낸 발리우드 대표 섹시남 리틱 로샨의 리얼한 연기 변신은 이처럼 철저한 노력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역할이었다.
<청원>의 주된 촬영지는 인도 서해안의 휴양지인 ‘고아’였다. 산제이 감독은 전체적으로 이번 영화의 배경이 포르투갈식의 느낌을 갖길 원했으며, 이에 미술 감독 ‘수밋 바수’는 극중 이튼의 대저택을 스페인/포르투칼식으로 지었다.
촬영 감독인 ‘수딥 차테르지’는 촬영 초기, 산제이 감독으로부터 대본을 완벽히 이해하도록 특별 요청을 받았으며 그로 인해 돋보이는 영화 속 공간들을 창출해냈다. 그는 자신의 중요한 도전은 “이튼이 비록 방에 늘 갇혀 있지만 보는 이들은 배경을 늘 다르게 느끼도록 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이런 차이를 만들어내기 위해 조명을 조절해가며 황혼, 밤, 낮, 이른 아침의 느낌이 나도록 했으며 이튼의 주위에 항상 흔들리는 커튼이나 머리맡의 어항처럼 일부러 조금씩 움직이는 것들을 설치해두었는데, 전신마비로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이튼과 대조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처럼 촬영 스탭들의 완벽한 이해와 호흡은 산제이 감독의 연출력과 만나 더욱 세련된 영상미를 표현해내는 데 한몫했다.
<청원>에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극 중 주인공들의 내면을 섬세하게 드러내는 의상들이다. 의상 디자이너 ‘사비아사치 무케르지’는 이튼의 안경에 대해 “그 안경은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는 남자가 장밋빛 안경을 쓰고 있다는 블랙 유머였다”고 말하며 마치 수퍼맨의 클라크 켄트처럼 보이길 원했다고 한다.
또한 극 중 원색의 드레스 37벌, 특이한 디자인의 앞치마와 화려한 보석류, 비현실적인 머리 모양과 붉은 입술로 등장하는 아이쉬와라 라이에 대해 “불행한 결혼생활을 이어가는 그녀의 내면적 고통을 화려한 옷차림으로 드러내보았다. 우울한 사람들은 옷을 지나치게 화려하게 입는 경향이 있지 않나”라고 말하며 그녀의 화려한 생기가 늘 누워있는 이튼에게는 삶의 활기를 불어넣기도 한다고 말했다. 산제이 감독 또한 “그녀의 화려함은 슬픔의 표현이다. 이튼이 자기를 보며 생기를 찾을 수 있게 하려 늘 빨간 립스틱을 바른다”고 말했다. 또 하나, 아이쉬와라 라이가 착용한 화려한 색색의 보석들은 ‘사비아사치 무케르지’가 직접 디자인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착용한 나브라탄(아홉개의 보석) 목걸이와 빗방울 귀걸이, 나비 귀걸이, 미나카리 새 반지 그리고 터키석과 산호 반지 같은 아이템들이 그의 디자인이다. 이를 완성하기 위해 60명 가량의 숙련공들이 투입되었으며 반지와 귀걸이의 가격은 4만 루피(94만원), 나브라탄 목걸이의 가격은 무려 51만 루피(1,200만원)에 달한다고 한다. 변치 않는 미모를 자랑하는 아이쉬와라 라이의 화려한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청원>의 의상들은 보는 즐거움을 더할 예정이다.
한때 추앙받는 마술사였으나 불의의 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이튼(리틱 로샨)은 14년째 병상에 누워 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자신의 상처를 가린 채 남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뿐이다.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인도 전역의 전신마비 환자들에게 용기를 심어주는 영웅으로 살던 어느 날, 이튼은 현재의 삶이 곧 상처를 잊으려는 몸부림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킬 수 없는 그의 삶은 사실상 관 속의 삶과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한 이튼은 인도 정부에 안락사를 청원한다. 하지만 그를 통해 희망을 얻던 수많은 사람들, 친구들, 그리고 14년간 모든 걸 포기하고 이튼의 곁을 지켰던 소피아(아이쉬와라 라이)는 슬픔과 분노에 젖는다.
<청원>을 연출한 산자이 릴라 반살리는 <블랙>의 그 감독이다. 시각장애와 청각장애를 모두 안고 태어난 <블랙>의 미셸과 전신마비인 이튼의 운명은 상당히 닮아 보인다. 하지만 <블랙>이 미셸과 그에게 빛을 찾아준 사하이 선생과의 굳센 관계에서 찾아낸 감동을 폭발시키는 영화였다면 <청원>은 장애를 가진 주인공이 자신의 존엄을 찾아가는 과정을 하나의 영웅담으로 그리고 있다. 이튼의 안락사는 곧 그에게서 희망을 얻었던 사람들의 죽음이다. 라디오와 전화, 피켓 시위를 통해 안락사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 속에서도 이튼은 자신의 행복을 위한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물론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청원>의 감동 또한 <블랙>처럼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아들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아들의 안락사를 찬성할 수밖에 없는 엄마의 심정, 그리고 그를 14년간 남몰래 사랑하면서 간호했던 소피아의 슬픔은 '안락사'라는 사회적 소재를 멜로드라마의 갈등으로 연결시킨다.
무엇보다 <청원>은 범상치 않은 미적 감각과 우아함으로 압도하는 영화다. 주인공 이튼이 마술쇼를 하던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과 소피아가 이튼을 위로하려 춤추는 장면이 선사하는 고혹적인 매력이 그중 백미다. 인도영화지만 기존의 발리우드영화만큼 화려한 춤과 노래가 없다는 건 인도영화 팬들에게 아쉬운 부분일 듯. 2시간 남짓인 상영시간과 영어를 쓰는 인물들, 포르투갈 식민지 시절의 모습을 간직한 인도의 고아를 로케이션 지역으로 설정하는 등 <청원>은 기존의 발리우드 색깔에서 벗어나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인도에서 댄스의 화신으로 불리는 배우 리틱 로샨이 전신마비 환자로 등장한다는 설정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삶과 죽음, 행복과 슬픔, 사랑과 이별의 감정에 대한 영화의 묘사는 형형색색의 세트와 눈을 즐겁게 해주는 춤이 없이도 강렬하다.
발리우드 영화 특유의 떠들썩함이 사라졌다. 세련된 영상, 배우의 절절한 연기, 드라마틱한 연출이 돋보이는 <청원>은 화려한 군무와 희로애락을 극대화한 대부분의 발리우드 영화와는 사뭇 다르다. 시각 장애인의 인생 역전을 담아낸 <블랙>(2009)의 산제이 릴라 반살리 감독은 인물의 감정 곡선을 차분하게 그려 나간다.
훌쩍훌쩍 눈물 흘리다가도 어느새 웃음 짓게 하는 마력이 있다고 할까. 여기서 더 나아가 <청원>은 지금 당신의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 조심스레 질문을 던진다. 주인공의 고민을 묵묵히 따라가면서 말이다. '세상에서 제일 즐거운 방송' <라디오 인생>을 진행하는 DJ 이튼은 한때 최고의 마술사였지만 14년 전 불의의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다.
하지만 그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 청취자에게 희망을 전하고, 자신의 삶을 통해 용기를 얻으라고 북돋아준다. 이렇게 마냥 밝아 보이던 이튼은 어느 날 변호사 친구에게 '죽기 위한 청원서'를 내겠다고 폭탄선언을 한다. 이는 안락사가 허용되지 않는 인도에서 스스로 죽을 권리를 찾기 위해 법원에 청원서를 내겠다는 뜻이다.
이튼의 청원 해프닝은 주변 사람들의 찬반 논쟁으로 천천히 전개된다. 이 와중에 <청원>의 백미인 이튼의 마술쇼가 회상 신을 통해 오롯이 재현된다. 멋진 음악과 함께 선보이는 이튼의 마술은 굉장히 우아하고 아련하게 연출되어 심금을 울린다.
드라마를 이끄는 인도 최고의 섹시 배우 리틱 로샨과 미스 월드 출신 아이쉬와라 라이의 아름다운 눈빛도 영화의 감동을 한층 더한다. 배우들의 열연과 수려한 영상미, 깊이를 더하는 음악의 3박자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청원>은 또 한 번 잊을 수 없는 인도 영화로 기억될 것이다.
출처: 이승하 시인 카페. 2011년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