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기의 공연산책 덴탈씨어터 24회 정기공연 로보트 볼트 작 박영희 역 최종률 연출의 꽃피는 체리
대학로 스튜딩도 블루에서 덴탈씨어터 24회 정기공연 로보트 볼트 작 박영희 역 최종률 연출의 꽃피는 체리를 관람했다.
로버트 볼트(Robert Bolt)는 영국 만체스터 근처에 있는 세일(Sale)에서 1924년 태어났다. 그는 점원의 아들이었다. 그래서 중산층의 교육을 받았다. 만체스터 그라마스쿨을 졸업한 후, 만체스터 대학교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후 1949년 대학을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그는 데본마을(Davon)과 밀필드시(Millfield)에서 교사 생활을 했는데, 그 이전에 그는 보험 회사에 근무하기도 하고 전시에는 군에서 특수 업무를 맡기도 했다.
그가 밀필드시에서 교사 생활을 하던 1957년 그의 첫 희곡 작품 'Critic and the heart'가 옥스포드 플레이하우스에서 공연되었다. 그는 이 작품을 쓰기 이전에 공산당에 가입했다가 '민주주의와 자유가 없다'는 이유로 탈당하기도 했으며, 이 작품이 나온 후에는 반핵 운동에 가담해서 60년대초 투옥되기도 하는 맹렬한 사회 참여의 의욕을 보여주기도 했다. 1957년 (꽃피는 체리)가 대성공을 거두자 그는 작가 생활을 위해서 교사직을 그만두게 되었다.
로버트 볼트에 있어서 사회적 참여의 의미는 깊고 중요하다. 그는 그의 작품을 통해서 끊임없이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는 무엇인가? 인간의 그가 소속되어 있는 사회에 대한 책임은 무엇인가? 인간은 그의 감성, 지성 그리고 양심을 어디서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가? 인간이 본질적으로 지니고 있는 숱한 결함과 인간이 끊임없이 영향을 받고 있는 사회적 압력 속에서 인간이 완전해진다는 것은 가능한 일인가?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비극적인 운명을 벗어날 수는 없지 않은가? <꽃피는 체리>는 이같은 의문에 대한 로버트 볼트의 한 가지 응답일 수 있다. 주인공 체리는 그의 직업적인 무능과 가정적 불협화를 해결하고 극복하기 위한 한 가지 수단으로서 전원 생활의 행복을 추구하고자 한다. 그는 사과 과수원을 소유함으로써 이 일이 성취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런데 그의 꿈이 달성되려는 순간에 그는 이 일을 거부한다. 그는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행동하는 인간이 아니고, 꿈에 관해 끊임없이 지껄여 대는 인간이다. 말하자면 꿈이라는 인생의 가면에 매달려 꿈의 실현보다는 꿈을 갖는다는 일 자체에 철저히 참여하고 있는 인간이라 할 수 있다. 이 경우 꿈은 꿈대로 남아 있고, 현실은 현실대로 또한 별개의 것으로 남아 있게 된다. 그러나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주인공 체리로 하여금 꿈꾸는 인생으로 치닫게 만든 사회적 압력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며, 이같은 사회적 압력은 우리들 인생의 보편적 상황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로버트 볼트는 끊임없이 주장하고 있다.
"개인적인 일에 몰두하고 참여하는 일은 사회적이며, 정치적인 일에 참여하는 것과 같다. 다른 인간의 생활에 참여하는 인간은 싫든 좋든 간에 원자 폭탄에도 참여하게 된다."
또 한 가지 이 작품에서 중요한 사실은 체리가 과수원의 꿈이 실현되는 것을 의도적으로 포기할 때, 그의 아내가 그를 포기한다는 사실이다. 그의 아내는 남편이 보험 회사 세일즈맨으로 실패했지만 그가 전원의 꿈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그를 변함없이 사랑했던 것이다. 남편에 있어서의 꿈의 의미와 가치는 아내에 있어서의 꿈의 의미와 가치가 아니었다. 아내는 결코 남편의 일을 알 수 없다. 아내는 결코 남편의 사회적 좌절과 고뇌를 알 수 없다. 이 작품과 줄곧 비교 고찰되는 아더 밀러의<세일즈멘의 죽음>에서도 남편 윌리 로만의 사회적 죽음을 아내 린다는 결코 이해할 수 없었다. 남편 윌리의 무덤에서 린다는 마지막 고별의 말을 한다.
(린다) 여보, 윌리, 저는 울 수도 없어요. 왜 당신은 이런 짓(자살)을 했나요.
아무리 따지고, 따지고, 따져봐도 저는 이해할 수 없어요.
린다의 경우처럼 남편 짐 체리의 죽음을 아내 이자벨은 알 수 없다. 윌리는 톰의 죽음이 이득과 손실, 부와 명성이 가치 기준이 되어 있는 남편들의 죽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죽음은 철학적인 죽음이다. 생의 궁극적인 의미를 무한한 꿈의 상태의 유지에 두었던 이들의 죽음은 실존적 휴머니즘에서 거론되고 있는 인간의 조건에서 연유하는 죽음인 것이다. 그 죽음은 개인적 결단과 책임과 양심을 강조하는 모랄리스트의 비젼일 수 있다. 그것은 또한 사회적 개인에 대한 한계 상황의 인식과 그 한계 상황 속에서의 개인의 패배를 말하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윌리 로만이나 톰 체리의 죽음에서 강렬한 삶의 의지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체리가 죽기 전에 이자벨을 위해 쇠부지깽이를 굽히겠다고 하는 의지의 표명은 그의 삶의 의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예가 될 수 있다.
이자벨의 눈에는 그 밑바닥과 내면의 의미가 보이지 않지만, 그래서 이자벨은 톰을 버리고 떠나려고 하지만, 이 작품에서도 톰의 갈등과 고뇌를 읽어내는 일이 중요하다. 그 갈등은 개인의 책무와 사회적 책임간의 갈등이며, 사회적 자아와 실존적 자아간의 갈등이라 할 수 있다. 완전한 인간, 그리고 완전한 사회에서는 이같은 갈등은 없거나 또는 극소화되고 있을 것이다
로버트 볼트의 출발은 이같은 갈등이 빈번히 일어나고, 점차적으로 극대화 되어가고 있는 사회를 날카롭게 그려보자는 데 있었다. 그래서 그는 사실주의적이며 자연주의적인 기법을 도입했던 것이다. 그러나 로버트 볼트는 <꽃피는 체리>(1960)와<호랑이와 말>(1960)에 대해서 극작기법상으로 불만이었다. 자연주의 연극의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의 작중 인물은 더욱더 객관화시켜 표현해야 되겠다는 필요성을 느꼈으며 그의 주제를 또한 더욱더 확대시키고 심화시켜야 되겠다는 열렬한 갈망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역사적인 소재를 찾았다. 토마스 모어경의 이야기를 극화한<사계절의 사나이>(1960)는 그가 브레히트적인 극작 기법을 도입한 작품으로서 극작 기법상의 그의 소망을 성취시킨 작품이었으며 스콧트랜드의 메어리 여왕을 극화한<여왕 만만세>(1970)와 볼셰빅 혁명 운동가들의 이상과 현실을 소재로한<혁명의 상태>(1977)는 사회 참여 극작가로서의 그의 소신이 담긴 작품으로서<사계절의 사나이>에 이어지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로버트 볼트는 역사극 이외에도 아동극을 쓰기도 했으며<아라비아의 로렌스>와<닥터 지바고>등의 명작 시나리오를 남기기도 했다.
박영희 번역가는 1941년~1973년 3월 28일. 현대 연극인‧영미희곡번역가. 본적과 출신지는 전라북도 군산(群山)이다.
부친은 박봉상(朴鳳翔)이고, 모친은 최옥순(崔玉順)이다.
군산여자중학교를 거쳐 서울 정신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이화여자대학교 영문학과에 입학하였다. 1963년에 대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에 드라마센터 연극아카데미와 고려대 대학원 영문학전공에 진학하였다. 고려대 대학원 진학은 이화여자대학교 영문과 교수 나영균의 권유에 의해 여석기의 지도를 받고자함이었다.
사회에 진출하여 콤페션 한국지부와 토지개량연합회 및 농어촌개발공사 등에서 봉직하였따.
1965년 6월 「햇빛 밝은 아침」을 번역하여 극단 실험극장의 ‘토요살롱’ 무대를 통해 데뷔하였다. 같은 해 「피의 결혼」을 번역하여 이화여대 문리대 연극부에서 공연하였다. 그로부터 번역작업은 생을 마친 7년 후까지 열정적으로 계속되었다.
1971년도 한 해 동안 무대에 올린 번역극이 7편으로, 상반기 「꽃피는 체리」를 제외하면, 하반기 가을 시즌에만 무려 6편이나 몰려있다. 작품은 9월 「슬픈 카페의 노래」, 10월 「잉여부부(剩餘夫婦)」와 「헨리 8세와 그의 여인들」, 11월 「여름과 연기」‧「이탈리안 걸」‧「사랑을 내기에 걸고」 등이다.
당시 저명한 연극연출가들 대부분이 그의 번역극의 도움을 받았는데, 허규는 「햇빛 밝은 아침」‧「돈키호테」(1967)를, 김정옥은 「피의 결혼」‧「꿈과 기쁨을 담뿍」(1970)‧「슬픈 카페의 노래」(1971)를, 임영웅은 「덤 웨이터」(1969)‧「꽃피는 체리」(1971)‧「헨리 8세와 그의 여인들」(1971)을, 전세권은 「쥐덫」(1970)‧「여름과 연기」(1971)를, 유덕형은 「생일파티」(1970)를, 오태석은 「잉여부부」(1971)를, 이완호는 「이탈리안 걸」(1971)을, 유치진은 「사랑을 내기에 걸고」(1971) 등을 거론할 수 있다.
1973년 3월 28일 교통사고로 죽음을 맞이하였다.
주검은 벽제화장터에서 화장되었고, 유해는 인근 야산 솔밭에 뿌려졌다.
연극인들은 박영희를 기리기 위해 ‘박영희번역극집’ 『슬픈 카페의 노래』를 출판하였다. 또한 유족이 전한 사망보상금으로 ‘영희연극상’이 제정되어 젊은 연극인의 발전을 독려하고 있기도 했다.
최종률은 서울대 미대 출신의 배우이자 연출가다. 연극 ‘금관의 예수’(극단 상설무대) ‘낮은 데로 임하소서’(극단 에저또) ‘사랑의 전화’(민중 극단) ‘루터’(극단 증언) ‘빈 방 있습니까’ (극단 증언) ‘챔피언 쉽’(극단 학전) ‘유리동물원’(극단 소리) ‘가마솥에 누룽지’(극단말죽거리) ‘엄마의 계절’(극단 JD씨어터) ‘The Miracle Worker’(헬렌 켈러) (극단AM), 뮤지컬 ‘바람처럼 강물처럼’(민중극단) ‘꿈꾸는 시계바늘’(극단 낮은 울타리) ‘오, 마이 갓스!’(극단 나들목) ‘건맨’(극단 너른마당) ‘그’(He)(극단 우물가) ‘킹’(The King) (극단 예맥) ‘모정의 세월’( KBS 탤런트 극회), 오페라 ‘사랑의 묘약’ ‘Carmen’, 극작 ‘빈 방 있습니까’ ‘달맞이꽃’ ‘그’(He), ‘The King’ 등을 연출한 한동대 겸임교수이자 대학로 동숭교회의 장로다.
무대는 거실이다. 무대좌우에 출입구가 있고, 중앙에 식탁과 의자 그리고 흔들의자를 배치했다. 하수쪽 벽에 벽난로가 있고 상수쪽에는 술통과 장 그리고 술잔을 배치했다. 배경에 영상으로 체리를 투사한다.
연극이 시작되면 체리 가의 집. 이자벨은 곧 군대에 갈 아들 톰을 걱정하며 설거지를 하고 있다. 그때 짐이 술 취한 채 회사에 사표를 냈다고 말을 하며 들어온다. 짐은 같이 들어온 그라스와 함께 술을 마시며 조그만 과수원을 갖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옆에 앉아 있던 톰이 그런 아버지를 못마땅해 하다가 결국은 화를 내고 만다. 짐과 그라스는 다시 술을 마시러 나가고 곧 묘목 회사의 직원인 보만이 들어와 짐이 엄청난 양의 묘목을 주문했다고 말한다. 이자벨은 짐이 과수원을 가지고 있다고 거짓말을 한 것에 분노하나 짐이 들어오자 진심으로 그를 이해하며 다독거려 준다. 잠시 후 주디의 친구인 캐럴이 들어오자 집 안의 분위기가 화사하게 바뀐다. 체리 가족과 캐럴은 함께 저녁식사를 하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던 중 이자벨은 짐이 아직도 과수원에 미련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게 된다.
짐이 이자벨의 돈을 몰래 가져가나 이자벨은 톰을 의심하며 그의 방을 뒤진다. 짐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며 캐럴과 즐겁게 과수원 이야기를 나눈다. 그는 카캐럴에게 쇠로 만든 부지깽이를 구부려 보이려고 하나 실패하고 만다. 이자벨은 톰의 방에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자 주디를 의심하다가 마음을 고쳐먹는다. 곧 보만이 들어오고 이자벨은 짐이 정말로 회사에 사표를 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 시간 후. 이자벨은 과수원을 사기 위해 집을 팔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나 짐은 돈 때문에라도 그럴 수는 없다고 말하며 이자벨의 제의를 거절한다. 이자벨은 그런 남편에게 실망하여 꿈이 없는 사람과는 살 수 없다며 짐을 싸 들고 집을 나간다. 짐은 아내에게 보여주겠다며 부지깽이를 구부리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겨우 부지깽이를 구부리고는 해냈다는 마음에 기쁨의 미소를 짓고 숨을 거둔다.
박승구 기획으로 출연진 이석우, 박재란, 김형순, 김영주, 이용균, 박영현, 백종민 등이 출연해 호연을 편다. 성격창출은 물론 감정설정에서도 기량을 드러내 덴탈씨어터 24회 정기공연 로보트 볼트 작 박영희 역 최종률 연출의 꽃피는 체리를 관객의 기어게 남을 성공적인 공연으로 창출시켰다.
박정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