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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이직교회 전 교인 수련회 특강 (70분) -
(2026. 2. 28. 오크밸리 컨벤션 센터)
<정치를 바꾼 크리스천> : 로마제국이 동서로마로 나뉘어진 4세기 말, 서로마황제 호노리우스가 콜로세움에서 검투경기(munera)를 개최했다. 무시무시한 무기에 검투사들이 하나 둘 쓰러져 죽어갈 때마다 관중은 발을 구르며 환호했다.
그때 허름한 옷차림의 수도사 한 사람이 경기장 안으로 뛰어들며 큰소리로 외쳤다. "예수의 이름으로 명한다. 살인을 멈춰라.” 흥미진진한 경기가 뜻밖의 사태로 중단되자 화가 난 관중들이 수도사를 죽이라고 소리쳤다. 검투사 한 명이 칼로 수도사의 가슴을 찌르자, 그의 수도복 위로 시뻘건 피가 솟구쳤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고함으로 시끄럽던 경기장이 갑자기 조용해진 것이다. 잠시 뒤 황제 호노리우스가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고, 귀족과 관중들도 하나둘 경기장을 떠났다. 콜로세움 안에는 저 멀리 터키 지역에서 온 수도사 텔레마쿠스의 시신만 뎅그러니 남았다.
다음날 로마 시내 곳곳에 황제의 칙령이 나붙는다. ‘로마에서 무네라를 금지한다.’ 콜로세움의 검투경기가 폐지된 것이다. 무능한 황제 호노리우스의 유일한 업적이었다. 텔레마쿠스는 제 목숨을 던져 살인극을 끝장내고, 숱한 검투사들의 목숨을 살렸다. 아니, 크리스천들의 양심을 살려냈다.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도,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삼은 테오도시우스 황제도, 노예 해방의 영웅 스파르타쿠스도 멈추지 못했던 살인 광란극을 아무 힘이 없는 수도사 한 사람이 죽음으로 끝장냈다.
가톨릭의 수많은 교황과 사제들이 검투장의 피비린내에 양심의 코를 틀어막고 있을 때, 변방에서 온 수도사 한 사람의 희생이 피에 굶주린 인간의 본성을 깨우치며 생명과 평화의 길을 연 것이다. 텔레마쿠스는 ‘정치투쟁’을 벌이지 않았다. ‘생명전쟁’에 목숨을 바쳤다. 그 희생이 정치를 바꾸는 신앙의 힘, 진정한 크리스천의 정치참여다.
<정치는 성서의 중요한 테마> : 인간의 삶을 현실적으로 지배하는 두 힘이 있다. 인류역사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강력한 그 두 힘은 정치와 종교다. 국가와 정치는 공동체가 함께 살아가는 공적(公的) 질서체계다. 사람은 누구나 어느 국가 안에서 태어나고, 어떤 정치체제 안에서 살아간다.
정치는 인간의 실존적 상황이다. 무정부주의자라 해도 세금을 내야 하고, 전쟁이 나면 군대에 징집된다. 산속에서 홀로 살아가는 자연인도 정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나무를 베면 산림법위반죄, 숲속에 오두막을 지으면 건축법위반죄, 산나물을 캐내면 임산물단속법위반죄의 처벌이 기다린다.
성서는 놀라울 만큼 정치적이다. 출애굽은 야훼신앙과 바알신앙이 충돌한 종교적 대결이자, 모세가 파라오와 대결한 정치적 투쟁이었다. 예언자들은 왕과 정치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자였고, 예수는 로마의 정치범으로 십자가에 못 박혔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포로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이사야 61:1, 누가복음 4:18). 이 말씀은 종교와 정치를 두루 아우른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과 함께 정치적 메시지가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 나라> : 주기도문에는 ‘나’가 없다. 모두 ‘우리’, 1인칭 복수다.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누가복음 17:1). '너희'는 한 사람이 아니다. ‘너’의 2인칭 복수다. 두 세 사람이 예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예수도 함께 있다(마태복음 18:20). 하나님 나라는 개인이 아닌 공동체다.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헌법 제2장이 <정치>편이다. 가톨릭은 교회법, 성공회는 관구법규로 공동체를 규율한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인 신앙공동체도 질서와 규율이 필요한 정치적 성격의 조직체이기 때문이다.
“너희 중에 큰 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마태복음 23:11) 이 말씀은 오늘날 민주정치의 핵심이지만, 왕이 백성의 섬김을 받던 당시에는 체제전복의 정치적 선동으로 들릴 수 있는 위험한 발언이었다. 그러나 예수는 로마의 식민지이던 유대의 비참한 현실을 뒤엎는 정치투쟁에 나아가지 않았다. 크리스천은 국가 안에 있지만, 국가권력이 우상이 될 때는 권력이 아니라 권력의 원천인 하나님을 따라야 한다.
종교개혁자들은 ‘근본으로 돌아가자(Ad Fontes)고 외쳤다. 신앙의 기본(Base)에 충실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베이직교회(Basic Church)의 목표일 것이다.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시면 사탄도 그 옆에 제 소굴을 판다.” 종교개혁자 루터의 탄식이다. 세상은 어차피 사탄 앞에 무릎 꿇고 있다. 악령은 광명한 천사의 얼굴로 교회와 신자들의 영혼을 노린다(고린도후서 11:14). 이단과 적(敵)그리스도는 거의 모두 교회 밖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나왔다. 베이직 신앙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예수는 정치와 종교의 무거운 짐> : 페르시아의 점성술사나 조로아스터교의 사제(Magi)로 추정되는 동방박사들이 머나먼 사막을 건너 유대 땅으로 와서 헤롯왕에게 묻는다.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신 이가 어디 계신가?” 헤롯은 성경에 정통한 제사장과 서기관들에게 답변을 부탁한다. 그들은 베들레헴이라고 정확하게 대답하지만(미가 5:2), 베들레헴에 가지 않았다. 이방인인 동방박사들만 베들레헴으로 가서 아기 예수께 경배했다.
새로운 왕의 탄생을 두려워한 헤롯은 두 살 아래 사내아이를 모두 죽이라는 끔찍한 어명을 내린다. 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궁리한다(누가복음 22:2). 예수는 정치권력에게도, 종교권력에게도 무거운 짐이었다.
로마의 평화(Pax Romana)는 아우구스투스 황제로부터 시작되었고, 그리스도의 평화(Pax Christi)는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 탄생한 예수로부터 시작되었다. 군대의 힘과 억압의 통치로 유지되는 로마의 평화, 가난한 이가 은총을 입고 억눌린 자가 해방되는 그리스도의 평화… 이 두 평화는 공존할 수 없다. 결코 공존할 수 없는 두 평화가 불의한 정치, 위선의 종교가 지배하던 어둠의 시대에 동시에 시작된 것이다.
미국의 평화(Pax Americana), 러시아의 평화(Pax Russica), 중국의 평화(Pax Sinica)가 지배하는 오늘의 세계에도 그리스도의 평화가 찾아올 수 있을까? 어느 재벌이 “정치는 4류, 관료는 3류, 기업은 2류”라고 말한 적이 있다. 1류는 없었다. 국민의 자리도 없었다. 우리 국민은 몇 류쯤 될까? 아니, 교회와 크리스천들은?
<가이사의 형상, 하나님의 형상> : 오병이어의 기적에 열광한 유대 민중은 예수를 왕으로 삼으려 했다. 그러나 예수는 그 기막힌 정치적 기회를 뿌리치고 홀로 산으로 들어간다(요한 6:15). 호산나를 외치며 예수를 환영했던 유대 민중은 예수가 골고다 언덕을 힘겹게 오를 때는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쳤다. 이것이 군중의 모습이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누가복음 20:25). 단순한 정교분리의 가르침이 아니다. 화폐에는 가이사의 형상이 새겨졌고,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이 새겨졌다(창세기 1:26). 황제에게는 황제의 형상이 새겨진 화폐를, 하나님께는 하나님의 형상이 새겨진 인간의 삶 자체를 드려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예수공동체에도 일용할 양식을 위한 헌금이나 기부금을 관리하는 담당자가 있었다. 가룟 유다였다. 그러나 예수는 부자 청년에게 헌금을 요구하지 않았다. “네 소유를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당부했다(누가복음 18:22). 황제의 형상이 새겨진 화폐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이 새겨진 그의 존재 자체를 요구하신 것이다. 우리의 헌금에는 어떤 형상이 새겨져 있는가? 세종대왕인가, 우리의 삶인가?
<창조적 소수로 남은 자> : 북미대륙으로 피신해 가족의 시체 곁에서 땅을 파고 씨를 뿌린 청교도, 프랑스의 성바르톨로메오 대학살에서 살아남아 스위스, 영국 등지에서 산업혁명의 기틀을 다진 위그노… 역사학자 A.토인비는 이들을 합리적‧이성적인 ‘창조적 소수’(The Creative Minority)라고 불렀다.
그 창조적 소수가 ‘은혜로 택함을 받은 남은 자’ 아닐까?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으니, 이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다."(로마서 11:5). 크리스천이 ‘창조적 소수의 남은 자’가 되어야 한다. 신앙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데살로니가후서 3:2).
<전체성과 무한>이라는 책을 쓴 철학자 E.레비나스는 다수 대중의 무리에 들지 못하는 타자(他者)의 얼굴에서 나그네의 얼굴을, 고아와 과부의 얼굴을, 나아가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다. 그러나 대중의 광기(狂氣)는 다수에서 밀려난 타자의 얼굴을 보지 못한다. 감성적 정치선동에 휘둘리는 포퓰리즘의 광기가 히틀러를, 모택동을, 호메이니를 절대권력의 자리에 앉혔다.
야당이 영남에서, 여당이 호남에서 몰표를 쓸어가는 우리의 정치 현상은 이성적 판단인가, 감성적 충동인가? ‘창조적 소수로 남은 자’인 크리스천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산상수훈> : 크리스천은 그리스도 교인(敎人,기독교인)이 아니다. 그리스도인(기독인)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Χριστιανός)이라는 뜻이다. 그리스도인은 제도종교를 넘어 그리스도 신앙으로 나아간다. 파이프 오르간으로 바흐의 코랄(Choral)을 장중하게 연주하던 A.슈바이처는 자유주의 신학자였다. 그는 ‘산상수훈은 하나님 나라가 곧 도래할 것이라는 예수의 착각이 빚어낸 종말 때의 잠정윤리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산상수훈을 들으면 그저 멀거니 웃기만 하는 신자들이 적지 않다. 서른세 살 청년 예수의 순진한 이상론이라는 생각일까? 요즈음 장로‧권사‧집사라는 정치인들에게서 그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 여야를 가릴 것 없다. 정치인만이 아니다. 정치계의 부정선거를 질타하는 교계 지도자들이 교단 총회장선거에는 몇억 원을 썼느니, 무슨 향응을 베풀었느니 하는 양심선언이 터져 나오곤 한다.
산상수훈은 그 흔한 도덕률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의 진수(眞髓)요, 복음의 핵심이다. 산상수훈을 잃어버린 교회는 그리스도 없는 그리스도교, 신앙 없는 제도종교일 따름이다.
<빛과 소금> : 예수는 제자들에게 “빛과 소금이 되라,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라”고 말씀하지 않았다. “너희가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다.”라고 말씀했다. 크리스천의 존재 자체가 빛이요 소금이다. 존재 자체의 문제이지, 무슨 활동이나 역할의 문제가 아니다. 빛은 어둠과 싸우지 않는다. 올곧은 자리에 서 있기만 하면 어두움은 저절로 물러가기 마련이다.
유신 시절부터 이어져 온 국가조찬기도회는 정치와 종교를 매우 친숙한 관계로 만들었다. 이름난 목회자들이 최고급 호텔의 레스토랑에 앉아 대통령을 위한 기도를 드린다. 그러나 히브리의 예언자들은 왕들과 친화(親和)관계에 있지 않았다. 그들에게 질책을 퍼붓는 긴장관계에 있었다. 이것이 크리스천의 정치참여다.
불과 3.5%의 염분으로 온 바다를 정화하는 소금의 사명은 자신의 해체(解體)다. 해체되지 않는 소금은 발에 밟힐 뿐이다(마태복음 5:12~13) “최고의 설교는 남에게 하는 설교가 아니다. 자기 자신에게 하는 설교다.” <기독교의 기본진리>(Basic Christianity)라는 글을 쓴 성공회 J.스토트 신부의 외침이다. 크리스천은 정치를 탓하기 전에 먼저 스스로가 빛인지 소금인지 냉철히 돌아보아야 한다. 남을 향한 비판보다 내 삶이 먼저다.
<예수의 삶의 자리> : 십자가는 정치범을 처형하는 로마의 형틀이었다. 거기에 유대교가 합세한다. “한 사람이 많은 백성을 위해 죽는 것이 유익하다.” 대제사장 가야바가 내뱉은 독설이다(요한복음 18:14). ‘제사장의 나라’인 유대의 종교와 ‘황제의 나라’인 로마의 정치가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한 예수를 함께 죽였다.
가야바의 독설은 역설적으로 진실한 예언이 되었다. 예수 한 사람의 희생으로 만인에게 구원의 길이 열린 것이다. 예수의 ‘자기 비움’(κένωσις)이 만인의 ‘가득 채움’(Πλήρωμα)이 되었다.
예수가 광야의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이 비둘기처럼 강림하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기뻐하는 자’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성부‧성자‧성령이 함께 나타나신, 성서에서 유일한 삼위일체의 현현(顯現, επιφάνι)이다(마태복음 3:16,17). 그곳은 성전이 아니었다. 황량한 들판, 광야였다. 예수의 삶의 자리(Sitz im Leben)는 성전도 궁궐도 없는 광야, 메마른 들과 험한 산, 백성의 고단한 일상(日常)이 펼쳐지는 시장과 길거리였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 국가의 통치는 인간의 삶 전체를 규율하지 못한다. 단지 객관적, 사회적 관계만을 규율할 뿐이다. 하나님의 통치(Theocracy)는 기독교를 국교로 만들어 성직자들이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인간의 마음과 영혼을, 우리 삶의 모든 자리를 비추는 영혼의 빛이다.
기독교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공인(公認) 이후 정치와 손을 잡고 타락의 길로 치달렸다. 부유한 종교, 배부른 성직자들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으로 가까이 다가선 종교바벨탑의 우상숭배자들이었다.
유대교 랍비들은 십계명을 613개의 율법으로 세분했다. 예컨대, 제4계명의 안식일에 이동할 수 있는 거리를 성전이나 회당을 오가는 2,000규빗(약 900~1,000m)으로 제한했다. 이 제한을 어기면 종교재판에서 처벌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예수는 613개 율법 조항을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단 두 가지로 요약했다(마가복음 12:28~31). 법의 제재가 아니라 사랑의 포용… 이것이 복음의 선포(κῆρυγμα)다.
<신정정치, 교권정치> : 황제가 신(神)을 자칭한 로마제국은 정치가 종교를 굴복시킨 황제교황주의(caesaropapismus) 체제였다. 왕권신수설을 주장한 영국의 제임스 1세, 프랑스의 어용신학자 보쉬에는 “하나님은 국왕을 지상의 대리인으로 세웠다”고 떠들어댔다.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하라‘는 사도바울의 가르침(로마서 13:1)이 그 근거였다.
반면에, 중세 가톨릭의 종교권력은 정치를 종교에 굴복시킨 교황황제주의(Papocaesarismus) 체제였다.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는 예수의 말씀(마태복음 16:18,19)을 근거로 내세웠다. 신성로마제국의 하인리히 4세가 교황 그레고리오 7세 앞에 무릎 꿇은 1077년 카노사 굴욕 사건은 그 절정이었다. 황제교황주의는 황제보다 더 ’위‘에 계신 하나님을, 교황황제주의는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을 망각했다.
이런 아이러니가 또 있는가? 유대 종교와 로마제국의 손에 죽은 예수와 바울이 사제의 신정정치(교황황제주의)와 왕의 신정정치(황제교황주의) 양쪽에 모두 신학적 토대를 제공한 셈이니… 이슬람 신정정치(Velayat-e-Faqih)가 지배하는 이란에서는 최근에 최고성직자요 최고통치자인 하메이니를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사상자가 수천 명을 넘는다고 한다. 성공한 신정정치는 역사상 아무 데도 없었다.
<궁전과 광야> : 광야의 목자들과 이방인 동방박사들의 축하를 받으며 시골 여관 마구간에서 탄생한 예수는 광야에서 사탄의 유혹을 받았고, 광야에서 세례를 받았다. 광야에 모여든 남녀노소를 오병이어로 열광케 했고, 광야로 나아가는 골고다에서 운명했다. “너희가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은 왕궁에 있다”(마태복음 11:7,8). 이것이 예수가 제시한 광야와 궁궐, 신앙과 정치의 대조다.
그리스도교는 구약의 5대 제사(번제‧소제‧화목제‧속죄제‧속건제)를 모두 폐지했다. 토요일 안식일도 일요일 주일로 바꿨다. 구약의 율법적 전통이 아직껏 남아있는 것은 십일조와 성직자의 가운이다. 제사장의 예복은 매우 화려했다(출애굽기 28,29). 오늘날 가톨릭 사제와 개신교 목회자들의 가운도 마찬가지다. 안수집사의 가운은 어깨 주름이 하나, 장로는 둘, 목사는 셋인데, 어깨 주름 네 개짜리 가운도 있다. 박사학위 있는 목사의 가운이다. 그들은 다른 교회에 설교하러 갈 때도 어깨 주름 네 개짜리 가운을 싸가지고 간다.
넌센스 아닌가? 가룟유다가 예수를 체포하려는 병사들에게 “내가 입 맞추는 사람이 예수다. 그를 집아라”고 암호를 정해준 것은 예수가 어떤 구별된 예복도 입지 않았기 때문 아닌가? 근엄한 예복도, 아무 종교의식도 없는 광야, 그곳이 교회들의 원형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던 모세는 이스라엘 조상들과 함께 광야교회에 있었다."(사도행전 7:37,38)
<예수의 정체성> : 예수만큼 드넓은 스펙트럼을 지닌 이름은 달리 없다. ‘하나님의 아들, 삼위일체의 성자’라는 신앙고백이 있는가 하면,
‘유대교의 종교개혁자, 로마에 저항한 독립운동가, 묵시예언가, 무산계급 혁명가, 신격화된 인간(R.Bultmann), 종교적 선각자(E.Renan), 역사적 추적이 불가능한 설화의 주인공(A.Schweitzer)’ 등 '역사의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를 구별하는 견해도 있고,
막달라 마리아의 연인(N.Kazantzakis), 로마 군인과 마리아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J.Shaberg), 특정한 개인이 아니라 민중 그 자체(민중신학)라는 주장 등 비신앙적인 픽션도 수없이 많다.
오늘 우리에게 예수는 누구인가? 한쪽에서는 ‘헌금을 바치고 신앙고백을 읊조리기만 하면 마냥 복을 쏟아붓고 죽은 뒤에 천국까지 보장해주는 기복(祈福)의 대상’으로, 다른 한쪽에서는 ‘권력의 손에 죽고 민중의 의식 속에 부활한 정치적 메시아’로 등장한다.
사랑과 평화의 사명을 ‘증오 서린 광장의 정치투쟁’으로 뒤바꾸는 종교, 또는 하나님 나라를 ‘민중이 세상의 주인 되는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변질시키는 종교라면, 하나님의 것을 가이사의 것으로 바꾸는 세속권력의 우상숭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대성당 뒤쪽에 조각가 A.크로미의 ‘양심의 망토’ 동상이 앉아있다. 사람은 없이 빈 외투만 유령처럼 쭈그려 앉은 모습이 섬뜩하다. 껍데기만 남은 종교, 그리스도 없는 그리스도교를 꾸짖는 것일까?
Anna Chromy ‘The Cloak of Conscience’
<나를 누구라 하느냐?> : 예수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제자들에게 던진 물음이다(누가복음 9:18). 그곳은 유대의 분봉왕 헤롯 빌립이 로마의 최고신 주피터(Zeus)의 신전을 건축하고, 로마 황제 가이사에게 헌정한 우상의 도시다. 제자들의 대답은 세례요한․엘리야․예레미야 등 갖가지였다. 이어서 베드로가 고백한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태복음 16:16).
‘주’ 또는 ‘하나님의 아들’은 주피터의 후손이라는 로마 황제만이 누릴 수 있는 황제숭배 칭호였다. 유대 사회에서도 '하나님 아들'은 사람에게 허용될 수 없는 신성한 호칭이었다. 그 명칭을 예수에게 바친 것은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위험한 일이었다. 황제의 도시 한복판에서 예수를 신의 아들로 고백한다는 것은 로마의 식민통치를 거부하고 새로운 신정국가를 세우겠다는 정치적 독립의지의 표현으로 들릴 수 있었다.
가난한 하층민들이 모여든 예수공동체에는 분명히 어떤 혁명의 기운이 꿈틀대고 있었다. 예수의 제자 중에는 칼을 품은 열심당원(zelot)과 무장독립투쟁가(sicario)도 있었다. 예수도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고 말씀했다(마태복음 10:34). 그러나 예수는 정치적 혁명가가 아니었다. 그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요한복음 18:36). ‘하늘의 뜻이 땅에서 이뤄지는’ 전인격적, 전존재적인 믿음․소망․사랑의 세계다.
선거 때가 되면 정치인들이 성경책을 끼고 교회나 성당에 계면쩍은 얼굴을 내밀곤 한다. 그들을 신도들 앞에 내세우고 지지를 호소하는 목회자도 있다. 그러나 예수는 우리에게 묻는다. T.칼라일이 ‘영혼의 평안과 소망이 달린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고 고백한 물음을…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십자가의 자리> : “의술(醫術)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에게 수탉 한 마리를 빚졌으니, 대신 갚아주게.” 소크라테스의 유언으로 전해진다. 제자들의 탈옥 권유를 거부한 소크라테스는 담담히 독배를 들이키고 태연하게 숨을 거뒀다. 삶의 고통을 죽음으로 치유하는 의술의 신에게 감사의 제물을 바치라는 뜻알까?
예수의 죽음은 소크라테스의 죽음처럼 의연하지 않았다. 오히려 매우 놀라고 괴로워하며, 근심에 쌓여 크게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면서 큰소리를 지르고 운명했다(마가복음 14:33,34, 15:37, 히브리서 5:7). 영혼의 죽음이 아니라 ‘몸의 죽음’이었기 때문이다.
예수의 죽음과 동시에 성전 지성소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진다. 위에 계신 하나님이 ‘성전종교‧사제종교‧제도종교의 종말’을 선포하신 것인가? 종교의 문이 닫히고, 신앙의 문이 활짝 열렸다.
<지각(知覺)의 현상학>을 쓴 M.퐁티를 ’몸의 철학자‘라고 부르지만, 진정한 최초의 몸 철학자는 2천 년 전의 사도바울이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라.”(로마서 12:1) 소와 양을 잡아 그 시체로 드리는 죽은 제물이 아니라 우리 몸을, 우리 일상의 삶을 살아 있는 제물로 하나님께 바치라는 가르침이다. 그리고 매우 놀라운 해석을 덧붙인다.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다.”
당시는 영혼과 육체를 분리된 것으로 생각하는 헬레니즘의 영육이원론(靈肉二元論)이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플라톤은 아예 ‘육체는 영혼의 감옥’이라고 정의했다. 그런데 바울은 신토불이가 아닌 영육불이(靈肉不二)를 말한다. 우리 몸의 일상이 초월과 하나로 만나는 ‘영혼과 육체의 일치’가 영적 예배다. 십자가는 성전 안에 세워지지 않았다. 백성들이 고단한 몸으로 살아가는 성문 밖 골고다 언덕에 세워졌다.
<예수와 정치> : 예수도 헤롯 궁전과 총독의 관저, 그리고 오늘날의 국회에 해당하는 산헤드린 공의회에 얼굴을 비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거기서도 예수의 자리는 귀빈석이나 공회원석이 아니었다. 피고인의 자리였다. 빌라도가 ‘유대인의 왕 나사렛 예수’(Iesus Nazarenus Rex Iudaeorum)라는 명패를 십자가에 써 붙인 것도 유대 민중을 희롱하기 위해 억지로 씌워준 껍데기 대관식이었다.
제사를 집례한 적이 없는 예수는 유대의 종교사범으로 고발되었지만 종교의 차원 너머에 있었고, 독립투쟁을 이끈 적이 없는 그는 로마의 정치범으로 처형되었지만 정치의 영역을 초월해 있었다.
초대교회의 사도들은 "예수는 그리스도다."라고 외쳤다(사도행전 5:42, 18:5, 18:28). 예수와 그리스도는 하나요 분리될 수 없다는 믿음이다. 그런데 예수교장로회와 기독교장로회가 분리된 한국교회는 “예수와 기독(그리스도)이 서로 싸운다”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고, 예수교장로회가 통합파와 합동파로 갈라졌을 때에는 ‘통합과 합동이 분열의 새 이름이냐’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게다가 지금은 광야를 버리고 정치의 광장에까지 진출해 보수우파와 진보좌파로 나뉘어 서로 으르렁거리고 있다. “국가는 우상화되기 쉬우며, 교회는 국가권력과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프랑스의 법학자, 종교사학자인 J.엘륄의 정치관이다.
<크리스천과 정치 - 정치투쟁과 생명전쟁> : 히틀러를 제거하려는 군부(軍部)의 발키리 모의에 민간요원으로 참여한 D.본회퍼 목사는 "예수의 부르심은 '와서 복 받으라'는 것이 아니다. '와서 죽으라'는 것이다."라고 외쳤다. 그는 수백만 유대인을 가스실에서 학살하는 나치에 저항하다가 처형당했다. 본회퍼는 정치투쟁의 희생자가 아니었다. 생명전쟁의 순교자였다.
크리스천의 정치참여는 정치계에 나아가 권력투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의 어두운 영토에 하나님의 공의를, 예수의 사랑을, 생명의 빛을 비추는 것이다. 동조(同調)가 아니라 비판이요, 박수가 아니라 질책이다.
텔레마쿠스 수도사처럼, 본회퍼 목사처럼 '정치의 투사'가 아니라 '생명의 전사(戰士)'가 되어야 한다. 생명의 전사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의 존엄과 가치와 생명을 지키는, 그 생명전쟁의 길을 묵묵히 달려갈 따름이다. 정치인이든 아니든, 국회의원이든 장.차관이든, 크리스천이라면 다른 정치의 길은 없다. 생명전쟁뿐이다.
이 우 근(변호사/ 숙명여대 석좌교수/ PEN.KOREA 인권위원장)
[출처] 정치투쟁과 생명전쟁 (크리스천과 정치)|작성자 leegadf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