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학자 서숙 교수의 산문집 『내 사랑 프라이드』(푸른사상 산문선 52).
작가는 일상의 이곳저곳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 변화하는 시대의 모습, 예술과 문학의 존재 등에 관한 사유를 격조 있는 문체로 담았다. 인생의 순간과 상념을 담담하게 그려낸 이 산문집은 독자들에게 어둠을 밝히는 저녁 등불 같은 위안을 안겨줄 것이다.
■ 작가 소개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와이주립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서숙 교수의 영미 소설 특강』(전 10권), 산문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 순간들』 『따뜻한 뿌리』 등이, 옮긴 책으로 『런던 스케치』 『와인즈버그 오하이오』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등이 있다. 넬라 라슨의 『패싱』으로 제1회 유영 번역상을 수상했다. 현재 이화여대 명예교수이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아주 오랜만에 산문집을 냅니다. 30여 년 일하던 학교를 떠나 이런저런 곳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하와이대학에서 일 년 동안 머물렀던 일들을 간단하게 적어보았습니다. 애착이 가는 것도 부족한 것도 많은데, 누구였지요? 살아 있는 것들은 얼룩이 져 있다고 했으니, 모두 나의 순간들로 받아들입니다.
■ 산문집 속으로
내 작은 프라이드는 건재했다. 시간이 갈수록 더욱 야무지고 튼튼해지는 듯했다. 프라이드는 이런 찬사들을 받기 시작했다. 어마, 차 이쁘네요. 이거 벤츠보다 더 귀한 거네. 새 차를 사실 때는 꼭 저를 주세요. 학교 앞 단골 세차장 청년도 아파트 경비 아저씨도 말했다.
은퇴가 가까워지면서 버스로 오가는 일이 많아졌다. 프라이드를 인문관 지하주차장 맨 끝에 세워놓았다. 바깥 날씨가 화창하면 프라이드와 함께 밖으로 나와 한 바퀴 돌며 나뭇잎들도 보고 지나가는 학생들도 보았다. 가끔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난 매일 바람 쏘이고 싶다구요.” (「내 사랑 프라이드」, 79쪽)
이 찬바람 부는 봄날 초저녁 저 아래 어둠 속에서 옷깃을 다잡으며 종종 집에 가는 사람이 문득 위를 쳐다볼 때, 그를 위로하는 것은 초승달도, 보름달도 아니다. 별들은 더욱 아니다. 그 순간 그에게 사람 사는 동네를 지나가고 있다는 안도감을 주는 것은, 어둠 속, 창마다 하나둘 밝혀지기 시작하는 저녁 등불들이다.
거실의 불을 켠다. 나도 저 허공 위의 꽃밭에 등불 하나 보태고 싶다.
(「아파트 불빛」, 18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