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넘어 도망친 100세노인
나는 성격상 매사에 많은 고민과 걱정을 달고 산다. 무엇이든 결정을 내릴 때 반드시 셀 수 없는 고뇌의 끝에 결정을 내리는데 그게 항상 최상의 결과를 야기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나의 걱정과 고민들이 절대 긍정적이라고는 할 수가 없다. 평소에 어ᄄᅠᆫ 일을 진행할 때도 그렇다. 계속된 고민의 끝에 어렵게 결정을 내리는데 지나고 보면 후회스러운 것들도 많다.
영화의 주인공 알란은 계속해서 직관과 자신의 감을 통해 아주 빠르게 결정을 내린다. 처음에는 그것이 매사에 신중하지 못하고 올바른 결정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영화의 후반부로 갈수록 그의 주변사람들은 죽거나 안 좋은 일이 생기는 반면 알란은 계속해서 수명을 유지한다. 100세 노인의 장수비결은 아마 이렇게 결정을 내리는데 단순한 생각과 직관에 의한 결정 그리고 복잡하게 생각하려는 그의 마인드 덕이 아닐까?
영화에서 가장 멋있고 아름다운 대사였다. 저 말은 세상 누구에게나 적용이 된다. 나 또한 내일이 없을 수도 있다. 극단적으로 나는 오늘 저녁 또한 없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오늘에 충실해야하고 오늘을 충분히 즐겨야한다! 알란은 평생을 저런 마인드로 살아왔기에 100세의 알란까지 존재 할 수 있었다. 저 훌륭한 대사를 내 삶에 조금 비추어 보자면 이번 학교 축제공연을 갈지 말지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 고학년이고 새내기 때처럼 즐길 여유 또한 많지 않다. 하지만 생각이 조금 바뀐게 내 대학생활 동안 누릴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누리고 졸업을 하고 싶고 가수 초대 비용 또한 내 등록금의 일부가 아닌가? 무엇보다도 휴대폰에서만 보던 가수들을 직접 내 눈으로 ‘무료로’ 볼 수 있는 기회는 아마 지금이 유일할 것 같다. 그렇기에 이번 축제공연을 모두 즐길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이 영화를 군대에서 책으로 먼저 접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때는 전혀 감명깊거나 인상이 남는 스토리가 아니였다. 그래서 이 영화도 보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연히 이번 중간고사의 대체과제로 이 영화를 접하게 된 것은 내게 너무나 큰 행운이었다. 배우들의 연기력 때문인지는 몰라도 주옥같은 대사들이 나에게 너무나 많은 것이 와 닿았다. 첫 단락에서 말 한 것처럼 나와 같이 매사에 걱정이 많은, 즉 알란과 정 반대성향의 사람들은 이 영화가 아마 더욱 인상 깊었을 것이다.
“죽일 테면 빨리 죽여 난 이미 백 살이야” 라고 말하는 알란처럼 인생을 흐르는 강물(?)처럼 그리고 조금은 유머 있게 살고 싶다. 물론 저 말은 100년이나 세상을 살았기에 감히 입 밖으로 내 뱉을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보다 인생을 사는데 있어 알란의 여유와 유머는 많은 것을 가져다 줄 것임에 확신하고 분명 알란이 100살까지 사는데 큰 이바지를 했을 것이다.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영화의 제목처럼 설리기장은 기적을 만들었다. 수십년간의 비행 경험과 동물적인 감각으로 수백명의 목숨을 살렸는데 영화 속의 사회는 그를 영웅이 아닌 대중의 관심을 원하는 기장으로 몰아간다.물론 그런 의혹은 충분히 살 수 있다. 솔직히 나 또한 그러한 정황들이 충분하다면 의심을 할 것이다. 그래서 참 세상은 아이러니한 것 같다. 수백명의 목숨을 구한 초인적인 일에 끝없는 의심을 품어야하고 영웅임을 증명하기 위해 셀 수 없이 많은 의혹과 증거를 만들어야 하니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사실 직관이라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 할 수 없지 않나..? 그럼에도 계속해서 설리를 추궁하고 조사를 진행하는 사람들을 보고...참 쓸쓸하기도 하면서 안타까웠다.
이 말을 꺼내는데 있어 굉장히 조심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지금부터 다룰 내용에 대해서 지극히 나의 개인적인 의견임을 밝힌다.
우리나라에도 2014년에 비슷한 사건이 있지 않은가, 아마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알법한..당시 선장은 배 안의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고 본인부터 탈출을 하였다. 선장에게는 선원들과 자신의 배에 탑승한 승객들을 책임질 의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냥 탈출해버렸다. 결국에 그는 2015년 11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받고 말았다.
본론으로 돌아가 왜 그는 본인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는가? 라는 의구심이 든다. 두려워서? 아니면 고의적인 악행이었나? 고의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죽음에 빠뜨리기 위해서?
적어도 나는 후자의 의견은 아니라고 본다. 왜냐하면 그가 그런 악질적인 생각을 평생 가지고 살았다면 70이 넘는 나이동안 그렇게 무탈하게 살았을 리가 없을 테니까. 즉 내말은 분명 살인과 유사한 범죄를 저질렀을 거란 말이다.
다시, 선장은 왜 그런 선택을 한 것일까? 무서워서였을까? 사람이 위기에 처하면, 극한의 상황에 처하면 상황판단력이 흐려진다. 그래서 그 또한 본인의 죽음이 너무나 두려웠을 것이다. 적어도 그가 당시에 겪었던 두려움만큼은 공감하지만 그의 범죄 사실은 전혀 공감 할 수 없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인간의 본성에 관한 것인데 모든 사람이 두려움을 느꼈다면 모두가 당시의 선장처럼 혼자 탈출했을까? 라는 생각이다. 솔직히 나 조차도 모르겠다. 그래도 모두 빨리 탈출하라는 방송은 하지 않았을까? 아, 생각해보니 세월호 안에는 아이들의 구출을 도와주다 탈출을 못한 선생님들도 있었는데 그런 것을 고려해보면 참.. 이것은 인간의 본질과는 관련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그냥 요즘말로 ‘케바케’ case by case라고 경우에 따라 다른가보다.
어찌되었건 간에 난 교사를 희망하는 학생이다. 직업특성상 다수를 책임져야할 의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아무리 고민을 해보아도 끝이 없을 듯. 하지만 모르겠다... 세월호 그리고 허드슨강의 기적에 대해서 어떤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는지..
만일 내가 과거의 설리였다면 비행기에서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또 교사로서 학생에게 가져야 할 책임감의 범위가 어디까지 허락되는지 혹은 가져야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