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말해서 악(불선)이란 그 나름대로 독립된 실체가 아니라 선의 결여 상태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선 자체도 악에 대칭되는 선이 아닌 만큼 서양인들이 말하는 ‘good’이라는 개념이 아니다. 善은 우리말로 ‘착할 선’ ‘좋을 선’ ‘잘 선’으로 훈을 다는데, 선의 의미를 가장 잘 나타내는 우리말은 부사적, 형용사적으로 자주 쓰이는 ‘잘’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미의 대립은 추가 아니고 오이듯이, 선의 대립은 악이 아니고 불선이며 선과 불선은 정도의 문제이지 실체의 문제가 아니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미국의 부시대통령이 이란을 ‘악의 축’이라고 말한 것은 지극히 서양적인 사고 방식이다. 동양적으로 해석한다면 이란의 후세인은 악이 아니고 부시가 가진 선이 좀 부족한 것이다. 그러므로 후세인은 악의 축이기 때문에 때려 부셔서 없애야 한다는 것은 서양적인 관점이지만, 후세인이 조금 잘 하면 부시처럼 선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보는 것이 동양적인 관점이다.
선과 불선은 관점을 달리하면 음양이라고 볼 수 있다. 시간의 경과에 따라서 양(陽)이 부족해지면 음이 되고 음(陰)이 충실해지면 다시 양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보름달이 기울면 반달을 거쳐 그믐달이 되고 초승달이 시간이 지나면 채워져서 보름달이 되는 이치와 같다. 즉 선과 악(불선)은 정도의 문제이지 실체의 문제가 아니다.
서양사상에 큰 영향을 미친 기독교에서는 선과 악이 너무나도 분명하다. 하느님이 선이고 사탄이 악이다. 믿으면 천당이요, 안 믿으면 지옥이다. 그러나 중국 사상에서 악은 선의 대립 개념이 아니다. 노자가 잘 지적했듯이 선이 부족한 것이 악이다. 선과 악이라는 실체가 있어서 대립되는 것이 아니고, 선과 악은 연속선상에 있는 상대적인 개념일 뿐이다. 선과 악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고, 정량적으로 차이가 있어서 다르다는 의미이다. 쉽게 말해서 나쁜 놈은 구제불능이 아니고 변하면 착한 놈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관점이 선과 악에 대한 노자적인 관점이라는 것이다.
그 날은 세 분의 연로하신 학장님들과 함께 너무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이야기를 해서, 미스K는 대화에 별로 끼어들지 않고 듣고만 있었다. 선과 악에 대한 현학적인 이야기가 끝나고서, 일행은 다음에 다시 한번 스파게티 먹으러 오자고 약속하고서 학교로 돌아갔다.
그 동안에도 무심한 세월은 빠르게 흘러갔다. 미스K의 소문은 점점 더 퍼져나갔다. K리조트에 골프 치러 오는 사람들도 소문을 듣고서 미녀식당에 왔다. 밀가루 음식을 좋아 하지 않는 사람도 미녀식당에 와서 스파게티를 먹었다. 화성군청과 수원시청 사람들도 멀리서부터 미스K를 보러 미녀식당으로 몰려 왔다. 그러나 미녀식당에 오는 남성들 모두가 미스K를 볼 수는 없었다. 그 중에서 여복이 있는 남자만 미스K를 보았다. 여복이 없는 남자는 그냥 스파게티만 먹고 갔다.
S대 남자 교수들과 S전문대 남자 교수들이 미녀식당 문턱이 닳도록 번질나게 드나드는 동안, 아카시아꽃이 피었다가 지고 이어서 밤꽃이 피었다. 양봉업자들은 밤꿀까지 수집하면 그 해 꿀농사는 끝이다. 밤꽃이 진 이후에는 나무 대신 풀에서 꽃이 피지만 꿀의 양이 많지 않다. 양봉업자들은 벌통의 벌들에게 오히려 양식을 공급하면서 이듬해 봄까지 기다려야 한다. 밤꽃은 비릿한 냄새가 남자의 정액 냄새와 닮아서 여자들은 밤꽃 냄새를 본능적으로 좋아한다고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옛날에 사대부 집에서는 밤나무를 심지 않았다고 한다. 밤꽃이 피면 안방마님부터 며느리까지 음풍을 주체하지 못하므로 아예 밤나무를 집안에 심지 않았다고 한다.
S대 본관 건물의 동쪽 작은 동산에는 밤나무가 많다. 가을날 아침에 동산에 오르면 전날 밤에 떨어진 밤을 주울 수가 있다. 밤꽃이 필 무렵이면 대학에서는 봄 학기가 끝나고 학기말 시험을 치를 때가 된다. 밤꽃보다 더 늦게 대추나무에 꽃이 핀다. 대추꽃은 연두색 꽃이 아주 작아서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대추꽃이 필 무렵이면 대학교는 여름 방학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