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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로 짚어내는 기억과 아포리즘, 그 시의 힘들
----유계자의 {물마중}의 세계
권혁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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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출간한 유계자의 세 번째 시집인 『물마중』은 아날로그로 짚어내는 기억과 아포리즘이 갖는 삶의 교훈과 그가 추구하고자 하는 근원적인 시의 힘들로 가득히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읽힌다. 거기에는 그가 추구하고 지향하는 젊고 신선한 아날로그에서 추려낸 삶과 사람들이 그 중심에 들어차 있다. 유계자는 더 나아가 삶의 여러 방식과 형태, 그리고 그러한 것들을 삶의 바탕으로 살아온 사람들의 땀과 눈물에 대해 사유의 세계를 증폭시키는 아포리즘으로 천착시킨다. 그의 첫 시집 『오래오래오래』에서 "각각의 시어들로부터 퍼져나가는 정서적 울림의 동심원들이 서로 부딪치고 겹쳐지면서 시인만의 아련하고 쓸쓸한 내면의 시적 공간을 구축"하였고, 두 번째 시집인 『목도리를 풀지 않아도 저무는 저녁』은 그가 철저히 체득한 본질적인 경험을, 상상력으로 삶의 밑바탕을 되짚어내며 경험과 상상력의 밀접한 연결고리를 형성해내고 있는 반면에 세 번째 시집 『물마중』에서는 아날로그로 짚어내는 기억과 아포리즘을 통해 삶과 사람에 대한 신뢰와 진실을 진솔하게 들추어낸다. 또 기존의 시 형식과는 조금 다른 내용과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창작을 시도하는 그의 색다른 면모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독자에게 관심을 줄 만한 일련의 작품으로는 「등꽃 목욕탕」, 「물의 둥지」, 「택배」, 개미와 칡」, 「한 번이라도」, 「접시꽃 급식소」 「어머니를 대출합니다」, 「대나무집」, 「고드름」, 「포스트잇」, 「진주햄」 등이 있다.
유계자가 추구하는 시의 내면에는 삶과 사람이 존재한다. 그가 대하는 삶은 진지하기 때문에 시가 진지해질 수밖에 없고, 시가 진지하기 때문에 그의 사유의 세계도 진지해질 수밖에 없다. 그는 항상 '나'보다는 '타자'를 배려하고 존중하며, 그의 시작업 또한 그러한 일면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힘들고 지친 당신,/ 손잡아 주는/ 물마중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시인의 말>이 그 단적인 예를 반증해준다. 유계자 시의 특징은 거개의 작품이 아날로그의 기억을 들춰내는 시말이나 시구가 아포리즘을 관통하는 "만 개의 눈을 가지고도"(「기적」)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혼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집 전체의 작품 중에서 과반 이상이 아날로그의 기억을 들춰내 강한 서정으로 시의 결말을 맺고 있다. 나머지 작품들은 짧지만 가슴이 먹먹한 "지나간 사랑"과 "수십 년 말려 먹은 어머니", 그리고 짝다리로 정류장에 서 있는 남자를 짚어내면서 삶과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착을 갖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녀의 굽은 등에 파도가 친다
오롯이 숨의 깊이를 다녀온 그녀에게
둥근 테왁 하나가 발 디딜 곳이다
슬픔의 중력이 고여 있는
물의 그늘 속에 성게처럼 촘촘히 박힌 가시
물옷 속으로 파고드는 한기엔 딸의 물숨이 묻어있다
끈덕진 물의 올가미
물숨을 빠져나온 숨비소리가 휘어진 수평선을 편다
바다의 살점을 떼어 망사리에 메고
시든 해초 같은 몸으로 갯바위를 오를 때
환하게 손 흔들어 물마중 해주던 딸,
몇 번이고 짐을 쌌다가
눈 뜨면 골갱이랑 빗창을 챙겨 습관처럼 물옷을 입었다
납덩이를 달고 파도 밑으로 들어간 늙은 어미가
바다를 끌고 집으로 돌아오면
테왁 같은 낡은 집이 대신 손을 잡는다
저녁해가 바닷속으로 자맥질하고 있다
- 「물마중」 전문
물마중은 먼저 물질을 마친 해녀들이 물밖에서 물속에서 물질을 하느라 지친 해녀들이 채취한 해산물이나 그물망을 끌어내며 도와주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일종의 품앗이처럼 자연스러운 것으로 지치고 고단한 몸과 마음을 서로 돕고자 하는 행동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유계자의 물마중은 물질을 끝낸 해녀가 아닌 "테왁 같은 낡은 집"으로 향하고 있다. "숨의 깊이를 다녀온 그녀"는 등이 굽었고 "물의 그늘 속"에서 "물숨을 빠져나온 숨비소리"에 "휘어진 수평선을 편다". "끈덕진 물의 올가미, 물옷 속으로 파고드는 한기엔 딸의 목숨, 몇 번이고 싼 짐, 낡은 집" 등에서 그녀의 고단하고 녹록하지 못한 "시든 해초 같은" 삶을 유추할 수 있다.
그러나 유계자가 지적하고자 하는 사실은 아날로그도 아니고 디지털도 아니고, 레트로는 더더욱 아니다. 문제는 숨비소리가 휘어지도록 물의 올가미에 물숨을 쉬며 "바다의 살점을 떼어" "납덩이를 달고 파도 밑으로 들어"가는" 노동이다. 그녀의 노동은 딸의 물숨이 묻어있고 화자에게는 신선한 상상력을 자극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물숨"이 만들어낸 삶의 애착과 사랑의 여운이다. 행간의 이미지는 "굽은 등"과 "몇 번이고 짐을 쌌다가"하는 사이를 "물마중"으로 오고 가는 동시에 그녀의 물질을 하는 노동의 "물숨"이 "휘어진 수평선"으로, 그녀의 둥근 테왁이 삶 사랑 바다를 연계하게 된다. "습관처럼 물옷을" 입게 되고 테왁 같은 넓은 집이 손을 잡기도 한다. 아날로그적인 노동의 시간 사이를 시로 가로지르면서 유계자는 삶 사랑 바다를 심급에 닿을 수 있게 펼쳐 놓는다. 이와 유사한 작품으로는 「등꽃 목욕탕」, 「출근」, 「갈매기 찻집」, 「수련」, 「물의 둥지」, 「가을밤」 등이 있다.
큐빅이 빠진 브로치
아무리 화려해도 꽂을 수 없다
- 「지나간 사랑」 전문
아마도 유계자의 시 중에서 가장 짧은 시가 아닌가 싶다. 그것도 사랑에 대한 시다. 유계자는 사랑 시를 잘 쓰지 않는 시인이다. 언젠가 한 번쯤 쓴 시를 시집에 묶을 요량으로 내놨다 치더라도 그가 바라던 의도는 조금은 달성하였다고 추측한다. 왜냐하면 시제가 "지나간 사랑"이다. 사랑에 관한 시는 화자의 기대감이나 대리만족으로 쓰거나 약간의 보복심리로 쓰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상대방이 보든지 말든지 화자 자신이 만족하든지 말든지 그 양극 사이에는 어느 정도의 희열이나 진정제 역할을 해 온 보이지 않는 감정의 집단이 형성되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화자는 "큐빅이 빠진 브로치"를 보며 "지나간 사랑"을 떠올린다. "큐빅이 빠진 브로치"는 브로치로서의 가치나 그 역할을 제대로 해주지 못한다. 화자는 큐빅을 일종의 투명한 사랑으로 보고 불투명하고 그 존재성을 잃어버린 브로치에서 사랑의 무의미함을 깨닫고 있다. 그러나 이미 "지나간 사랑"이기 때문에 "아무리 화려해도 꽂을 수 없다"라고 단정한다. "지나간 사랑"은 예전의 시간으로 돌아간다하여도 지금보다 화려하지 않는 "큐빅이 빠진 브로치"처럼 어디인가 부자연스럽고 불편한 게 사실이다. 유계자가 이 시를 통해 지적하고자 한 것은 "지나간 사랑"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게 아니라 인간과 불가분 관계에 있는 삶과 사랑을 향한 경건함에 무게를 더 두지 않나 싶다. 그래서 이 시에 사람을 향한 사랑, 또는 사랑하는 법과 믿음을 전제로 "지나간 사랑"에 대해 "큐빅이 빠진 브로치"를 들고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딱 한 번 뜨거웠으면 됐다
딱 한 번 입맞춤이면 족하다
딱 한 번 채웠으면 그만이다
할 일 다 한 짧은 생
밟히고 찌그러져도 말이 없다
- 「종이컵」 전문
유계자는 과거에 경험했던 것들을 철저하게 시로 잘 그려낸다. 그래서 그림을 보듯이 잘 읽어지고, 의미도 남다르게 넓고 깊다. 시가 쉽다고 해서 시 이해가 쉬운 게 아니고, 시가 어렵다고 해서 시 해석이 어려운 게 결코 아니다. 오히려 짧고 쉬운 시가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유계자의 「종이컵」이 그러한 작품이다. 읽고나면 가슴이 막히고 답답한 게 왠지 알 수 없는 불편함이 밀려온다.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일회용 노동자로, 사랑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어긋난 사랑으로, "종이컵"이 다른 대상으로 대치가 된다 해도 결과가 똑같은 값이 나온다는 생각에 현대사회의 만연한 부조리가 스쳐 지나간다. 짧지만 강렬하고 많은 뜻을 내포한 시여서 대하기가 더 경외감이 든다. 어쩌면 그 경외감 너머로 유계자는 부조리한 삶과 일회용으로 사는 노동자들을 사랑하는 신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의 그런 본바탕이 좋은 시를 만들고, 좋은 시인을 또 만들어 낼 것임을 필자도 믿는다. 이와 유사한 시로는 「기적」, 「애완의 날들」, 「택배」, 「착각」, 「개미와 칡」, 「소라게」, 「회색은 없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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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에 대한 기억과 아포리즘 시의 힘을 파헤쳐 가는 유계자의 시작법은 한 가지의 유형과 방법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대상에 다양한 기법으로 견지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면에서 고무적이다. 화자는 자신의 처지를 "억새꽃이나 쑥부쟁이"(「한 번이라도」)에 빗대어 표현하다, 그 이면에 있는 고독과 적요에 지친 화자 자신의 음영을 들여다보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한다. 또 오래전의 서사나 아픈 상처로 각인된 서정을 현재의 자성한 시간과 성찰로 결합시켜 되새겨낸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일례는 "못이 빠져나간 자리"(「못이 빠져나간 자리」)를 "못 박힌 자리보다 빠져나간 자리가 오래 아팠다"는 역설적인 표현을 함으로써 "한 사람의 이름이 빠져나간 자리는 바람이 집을 지었다"는 아련한 아날로그의 기억으로 "이름이 빠져나간 자리"에 대한 "한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는 제스처로 주조해내기도 한다. 유계자 시에 등장하는 시의 대상은 '어머니 또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심지어는 남편 등 결국 가족 중심으로 집결되는 자의식의 집합체를 이룬다는 특징을 지닌다. 이것은 유년의 시간을 현재의 시간으로 끌어와 접목시켜 시를 획득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게 보여진다.
아버지가 회초리를 드는 날이면
수평선이 마당 끝에서 힐끔거렸다
아침에 학교 가면 벌써 소문이 돌고
밤새 찰싹찰싹 매질을 일러바친 수다쟁이
그런 날이면 나도 참방참방
바다의 발등을 밟아 대갚음했다
- 「소문」 전문
"아버지가 회초리를 드는 날이면" 수평선이 퍼뜨린 소문이 학교에서 먼저 돌고 "그런 날이면 나도 참방참방/ 바다의 발등을 밟아 대갚음"을 함으로써 어린 화자의 마음을 가늠할 수 있는 면을 보다가도 "소문"에 대한 두려움과 "아버지가 회초리를 드는 날"이 동시에 두려워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마 어린 화자가 감내하지 못할 진실된 사랑과 거짓 사랑 사이에서 판단하기 어려운 "소문"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 시도 제목에 걸맞게 전개와 결말이 무난하게 잘 처리되어 수작으로 보인다. 이와 유사한 작품으로는 「하현달」이 있다.
연못의 잉어들
둥근 달 하나
몇 날 며칠 뜯어 먹었는지
달 껍질만 동동 떠 있다
내가 다 파먹고 버린
어머니 손톱 같은
- 「하현달」 전문
왼쪽 밑으로 지는 달의 모양을 하현달이라고 한다. 어찌 보면 자식들에게 먹을 것, 입을 것, 다 내어주고 일생을 기울다 가는 어머니와 많이 닮아 있다. "연못의 잉어들"이 "둥근 달"을 "몇 날 며칠 뜯어 먹었는지/ 달 껍질만 동동 떠 있다". "둥근 달"에서 시간적 경과나 세월의 흐름을 묘사해내는 유계자의 시적 운용 방법은 오랜 관찰에서 빚은 자연적인 현상이며, 그 현상을 시창작에 이미지로 잘 적용하고 있다. 그러다 "내가 다 파먹고 버린/ 어머니 손톱 같은" 것으로 끝을 맺는다. 뭔가 아쉬울 때 더 나가지 않고, 사족을 붙이지 않음으로써 시의 긴장을 배가시켜 놓고 문장을 닫아 버린다. "하현달"에서 "내가 다 파먹고 버린/ 어머니 손톱 같은" 것으로 자성하고 성찰하기까지 시말을 다듬어낸 화자의 심리상태는 차분하다 못해 모질고 시의 심급에 잇닿아 있다. 이와 유사한 시편으로는 「한 번이라도」, 「처서」, 「진실」, 「접시꽃 급식소」, 「열쇠」, 「겨울 양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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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계자의 세 번째 시집에 수록된 작품들은 독자가 이해하기 쉬울 뿐만 아니라 기존의 시 형식이나 내용면에서 대별되는 외연을 확장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참신하며 시를 향한 그의 열정도 짐작하게 된다. 뭇 시인들의 어떤 작품은 여러 번 거듭 읽어야 하는 작품이 있다면 유계자의 작품들은 대체로 한 번에 읽을 수 있고, 가벼우면서도 무겁게 다가온다. 그러나 그 가벼움은 읽고 지나간 작품에 용해되어 있는 서정과 서사는 강렬하게 남아 있어 독자의 가슴에서 맴돌며 자꾸 소용돌이 치게 만든다. 그 까닭은 유계자가 경험했던 오래전 시간들에 대한 기억의 재현이나 재생 방식이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에 더 집착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가 이러한 아날로그 방식에 집착하는 이유는 일상적이고 평범한 삶의 모습과 사람에게서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정서나 시적 효과를 기대하는 측면도 없지 않아 있다고 본다. 그 기저에는 "육 남매의 육중한 무게가 당신을 지탱하는 힘"(「아버지」)이었던 아버지, 그리고 "네 놈 찾기 전엔 못 죽지 못 죽어" 하며 "바람 한 번 지나가면 와장창 무너져 버릴 연한 비수들"(「고드름」)도 나타난다. 또 "풋감이 몸을 부풀리는 한나절 푸른 그늘 속으로 툭 떨어진 문자"(「풋감의 얼룩」)나 "바람을 담은 질긴 뼈로 칸칸이 울타리를"(「대나무집」) 대나무로 이미지를 빚어낸 부분에서는 더 내밀하고 미학적 자세를 견지한다.
유계자가 시집 『물마중』에서 탐색한 삶의 일반적인 모습들은 쌓이고 쌓여 오랜 숙성 끝에 익은 하나의 아포리즘을 이루어 낸다. 물론 시집에 수록된 작품이 별개의 뜻을 지닌 작품이지만 그가 추구하고자 하는 작품의 밑그림에는 아포리즘이 시를 완성해가는 요소로 작용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그것은 시속에 등장하는 대상이나 인물들이 서로 유대감을 형성하며, 각박하고 혼잡한 상태에서 빠르게 변해가는 현대사회에 대해 되짚어보는 계기가 되는 중요한 핵심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항상 삶과 사람에 대한 시가 편재되어 오래전 아날로그와 현재의 디지털 기억 사이에서 아무런 마찰 없이 그만의 시세계를 확보해왔고, 부단한 노력도 많이 해 온 사실을 주목하게 한다.
해당화 한 송이
찻잔에 넣고 물을 붓는다
한목숨 꺾어
실핏줄까지 우려낸다
날마다 다른 이의
목숨으로 살아간다
- 「존재」 전문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시제를 갖고 주제를 잘 엮어낸 작품으로 여타의 시인들과 마찬가지로 평균량의 길이로 시를 써 온 유계자에게는 이 시 역시 매우 짧은 편이다. 다분히 형이상학적이고 철학적인 의미로 이해하거나 상태를 나타내는 "존재"를 유계자는 관념과 존재로 잘 표현하여 그만의 시를 완성해낸다. 여기에 "해당화 한 송이"의 존재가 있다. 그 "존재"를 확인하려는 듯 "찻잔에 넣고" "한목숨 꺾어/ 실핏줄까지 우려낸다". 여과기를 거쳐 우려낸 "한목숨" 꺾인 채 "날마다 다른 이의/ 목숨으로 살아"가는 다른 또 하나의 존재가 있다. 존재 이전의 존재와 존재 이후의 존재는 분명 다를 수밖에 없지만 유계자가 지향하는 존재는 "해당화 한 송이"의 존재이고 "날마다 다른 이의 목숨으로 살아"가는 존재 그 자체이다. 튀르키예의 시인인 나짐 히크메트는 그의 시 「진정한 여행」에서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이라고 표현하였다. 여기서 "아직 살지 않은 날들"은 날마다 살아가야 할 존재의 날로 존재해야 한다. "가장 훌륭한 시"도 "아직 씌어지지 않"은 상태로 존재해야 하고, "가장 빛나는 별"도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로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존재로서 존재는 "날마다 다른 이의 목숨으로 살아"가는 존재로 존재한다고 유계자는 인식하여 시로 획득해낸다. 이러한 그의 자세는 대나무같이 곧으나 부러지지 않는 유연함을 지니고 있고, 삶과 사람에 대한 신뢰와 동시에 시의 힘을 믿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다.
돌아보면 알게 되네
구불구불 에돌아가던
그 길이 아름다운 길이었다는 걸
지나간 뒤에야 보이네
밤새 눈물짓던 일들도
버릴 것 없는 선물이었다는 걸
- 「에움길」 전문
에움길은 멀리 돌아서 가는 굽은 길을 말한다. 이 시도 짧은 시이지만 읽고 나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에움길을 "구불구불 에돌아" 멀리 돌아서 가다 "돌아보면 알게 되"는 "그 길이 아름다운 길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에움길"은 아날로그의 기억에서 파생된 자성과 성찰이 내재되어 있는 공간으로, 느리고 더디게 에돌아 가도 꽃과 나무를 자세히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길"이다. 그런 에움길에서 유계자는 "지나간 뒤에야 보이"는 자신의 길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그 시간에는 "밤새 눈물짓던 일"에서도 "버릴 것 없는 선물이었다는 걸"을 자성과 교훈을 얻게 된다. "밤새 눈물짓던 일"을 겪으면서 지나온 날을 돌아보니 지금의 화자에게는 "버릴 것 없는 선물"이자 삶의 든든한 자양분이 되었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디지털 시대에서 조금은 더디게 돌아가고 조금은 느리게 걸어도 유계자는 조급함이 없다. 불편함보다는 편안함을 가져다주는 시의 힘을 유계자는 믿으며, 그 시의 힘이 결국 더 많은 에움길을 만들어내는 밑그림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다. 그것이 최소한의 아날로그 힘이자 진정한 시의 힘이라고 그는 확신을 갖고 있는 것이다.
비릿한 바다 냄새가 난다
어디서부터 걸어왔는지
내 통증의 하나가 고개를 든다
갯벌을 파헤치는
어머니의 손길이 분주하다
바구니에 쌓여가는 바지락
퉁퉁 부어오른 관절마다
짠물이 스미고
축 늘어진 물풀 같은 어머니를 꺼내면
갯내 나는 시가 켜진다
- 「점화하다」 전문
유계자는 "비릿한 바다 냄새"에서 "통증 하나"를 점화시키며 "갯벌을 파헤치는" 어머니의 분주한 손길에 아날로그의 아련한 심지를 돋운다. 어머니의 "퉁퉁 부어오른 관절마다/ 짠물이 스미고" "물풀 같은 어머니를 꺼내면/ 갯내 나는 시가 켜"지는 영상으로 떠오른다. 그러나 통증의 진행 방향이 화자로부터 시작하여 어머니에게로 건너가는 방식이어서 역주행을 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대개는 어머니의 통증에서 화자의 통증을 짚어내면서 자성과 성찰의 면모를 드러내지만 이 시는 화자의 통증을 먼저 점화하고 어머니의 통증까지 점화하면서 종내에는 "갯내 나는 시"를 점화하기에 이른다. 이것은 어머니에게 통증을 제공한 대상이 화자 자신에게 있음을 먼저 짚어내면서 어머니에게로 향한 사랑의 통증을 점화시켜 시로 밝혀내고 있는 것이다. 유계자의 아날로그 기억에 대한 접근은 매우 차분하며 그 속내 또한 "부어오른 관절"을 가라앉히는 따뜻한 진정제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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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삶과 보편적인 대상에 대한 유계자의 시심은 계절이나 구체적인 꽃이름, 그리고 사물명을 끌어모으는 힘에서 비롯된다. 그의 이 같은 시의 원동력에는 어린 시절 편린에 갇힌 가족이나 꽃, 그리고 계절을 가로지르는 서정과 서사로 가득 차 있다. 가령 「보라의 계절」에서 "순비기꽃"으로부터 밀려오는 이야기는 "헛짚은 날들"로 "늙지도 않고 구석까지 넓히며" 오는데, "수렁처럼 빠져들던 모래밭"에 "슬픔 몇 짐 부려도 흔적이 없었"지고 "피가 닿는 곳마다 까맣게 씨가 맺혔다"라고 하며 순비기꽃이 피어 있던 자리를 "보라의 계절"로 환원하는 서사의 장면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유계자가 환원하는 인간 본연의 심리상태는 심리학적 기준의 선택과 다를 바가 없다고 할 때, 그것이 시로서 충족해주는 요건과 충분한 상황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므로 유계자가 바라보고 있는 계절이나 꽃, 사물명은 희로애락과 함께 지속되는 인간 본연의 심리상태라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심리상태는 본질적인 삶의 자세와 신뢰를 가질 만한 사람들에 대해 유계자는 허물없이 자성과 통찰을 위한 복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닿을 수 없는 절벽에 핀 구절초가 더 아름답다
집에 돌아와 불을 끄고 누워도 잠이 오지 않는다
자꾸만 생각나는 걸 보니 단단히 눈맞았구나
어디였더라 누구였더라
- 「구절초」 전문
푸른 발굽으로 내달리는 신록
혼절의 빛깔이다
천 가지 무색으로 아프다
뜨겁게 죄짓고
뜨겁게 죄 씻고 싶다
- 「봄강」 전문
「구절초」는 "구절초"를 보고 돌아와 잠도 자지 못하고 자꾸 생각나는 "누구"를 떠올리며 "구절초"에서 전이된 사랑의 대상자에 대한 그리움을 그려내고 있다. 구절초를 보고 아름다움 대신 사랑의 독약에 취한 화자의 상태를 엿볼 수 있다. 「봄강」은 "푸른 발굽으로 내달리는 신록"에서 "천 가지 무색으로" 아파하면서도 "뜨겁게 죄짓고/ 뜨겁게 죄 씻고 싶다"라고 하면서 다행히도 더 이상 타나토스로 향해 나아가지 않고 "뜨겁게 죄 씻고 싶다"라고 하며 스스로 해독제를 처방함으로써 "봄강"을 벗어나고 있다.
유계자의 아포리즘 성향이 짙은 시가 갖는 특징은 화자 자신이 만든 상처의 요소의 하나인 독약과 그 독약으로 자신을 치유할 줄 아는 해독제를 동시에 구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유사한 작품으로는 「포스트잇」이 있다. 한편 이와는 동떨어진 작품이기는 하나 "꽃"과 "햄"의 상징적인 의미를 강하게 내비쳐 현대의 자연과 현대인이 문명의 이기에 변해가는 처지를 빗대어 쓴 「진주햄」도 눈여겨 볼만하다.
이번에 상재한 유계자의 시집 『물마중』은 기존의 시 형식과는 조금 다른 대상의 선택, 전개의 간결성, 도저하고 강렬한 종결의 시도로 독자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각인되는 시인이 되리라고 본다. 유계자는 삶의 여러 방식과 형태, 또 그러한 것들을 바탕으로 살아온 사람들의 땀과 눈물에 대해 사유의 세계를 증폭시키는 아포리즘으로 천착시켜낸다. 그가 근본적으로 추구하는 시의 내면에는 삶과 사람이 존재한다. 그가 삶에 대해 진지할수록 시가 진지해지고, 사유의 세계도 진지해진다.
유계자는 과거에 경험한 사실들을 아날로그의 기억으로 철저하게 시로 잘 들춰낸다. 그래서 그림을 보듯이 잘 읽어지고 의미와 감동이 넓고 깊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시작법은 한 가지 유형과 방법에 고착되지 않고 다양한 대상과 방법으로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면에서 고무적이다. 유계자의 아날로그 기억에 대한 접근 방법은 매우 차분하며, 그 속마음 또한 상처를 가라앉히는 따듯한 진정제 역할을 한다. 또한 일상적인 삶과 보편적인 대상에 대한 유계자의 시심은 계절이나 구체적인 꽃이름, 그리고 사물명을 끌어모으는 힘에서 비롯된다.
유계자의 시가 지니는 특징은 화자 자신이 만든 상처의 요소의 하나인 독약과 그 독약을 치유할 수 있는 해독제를 동시에 구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더 이상 타나토스의 선을 넘지 않고 스스로 처방한 해독제를 사용하여 상처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날 무"를 깎아 먹으며 시를 쓰는, 먹다 만 무에게 물을 주며 시를 쓰는, 움이 트고 싹이 돋듯 시를 쓰는, 날 무 같은 자세로 앉아 있는 비장한 유계자를 떠올려 본다. "날 무를 깎아 먹다" 책상 위에 올려놓은 먹다 만 무에서 움이 트고 싹이 돋아나듯 앞으로 유계자가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들이 시로 움트고 성장하여 "<오래오래오래>, <목도리를 풀지 않아도 저무는 저녁>을 가로질러 <물마중>"을 나갈 때, 세 송이가 아닌 천 송이, 만 송이, 백만 송이가 피어 그와 함께 동행하는 모습을 기대하며 다음의 시로 마무리를 한다.
한낮을 베고 누워 시간을 날 무처럼 깎아 먹었다
먹다 만 무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물을 부었다
움이 트고 싹이 돋아 세 송이 피었다
<오래오래오래>, <목도리를 풀지 않아도 저무는 저녁>, <물마중>
- 「세 송이 피었어요」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