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한루(廣寒樓)는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에 있는 누각으로, 우리나라 누정원림(樓亭園林)의 대표격인 광한루원의 중심에 있으며,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281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세종조의 명정승 황희(黃喜)가 1419년에 남원에 유배되었을 때 누각을 짓고 '광통루(廣通樓)'라 하였는데 그 후 노후되어 1434년 부사 민여공(閔汝恭)이 중건하였고, 1437년에는 단청하였다고 한다. 1444년에 부사 정인지(鄭麟址)가 광통루에 올라보고 그 아름다움이 월궁(月宮)의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와 흡사하다고 감탄하면서 그 이름을 따서 '광한루'라 개칭하였다.
그 후 1582년 관찰사 정철(鄭澈)과 부사 장의국(張義國)이 중창하여 신선사상의 원림으로 만들었는데 정유재란 때 불타 1607년에 부사 원신(元愼)이 소루(小樓)를 세웠지만 세월이 흘러 무너져 있던 것을 1626년에 부사 신감(申鑑)이 누각을 중건하였다고 한다. 정조 때 누각의 일부를 증축하였고 1869년에 누각 북쪽의 계단을 증축하였다.
광한루는 정면 5칸, 측면 4칸 규모의 중층누각(重層樓閣)으로 연못에 면하여 남향으로 배치되었다. 낮은 장대석 기단 위에 방형 초석을 놓고 짧은 하층주를 세웠는데 건물 외곽에서는 초반석(礎盤石)을 놓고 장초석(長礎石)을 세워 하층주를 대신하였다. 하층주 위에는 귀틀을 짜올렸으며 그 위에 민흘림 원주로 상층주를 세우고 창방을 결구하여 축부(軸部)를 구성하였다. 공포는 익공계(翼工系) 형식으로 주간에는 화반(花盤)을 배치하였다. 지붕은 팔작 형식이며 처마는 서까래와 부연을 갖춘 겹처마이다.
누각 상층에는 우물마루를 깔았는데 주위에 계자각(鷄子脚) 난간을 두르고 기둥 사이에는 4분합문을 달아 여름에는 개방할 수 있도록 하였다. 가구(架構)는 후면에 퇴칸이 있는 1고주 7량 구조인데 대들보를 전면 평주와 내부 고주 위에 걸치고 그 위에 대공을 세워 중종보(中宗樑)와 종보(宗樑), 종도리를 결구하였다. 천장은 연등천장으로 상부 가구가 잘 드러나 보인다.
누각 뒷편에는 계단을 두었는데 이는 누각이 북쪽으로 기울어져서 무너질 우려가 있으므로 수리를 하지 않고도 기울어짐을 방지하는 묘책으로 달아낸 것이라 한다. 누각 동쪽에 연접된 부속건물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규모인데 전퇴가 달린 온돌방으로 되어있다. 공포는 주심포계(柱心包系) 형식이며 지붕은 한쪽이 팔작, 한쪽은 맞배 형식이다.
전면에는 부사 이상억이 쓴, ‘호남제일루’라는 판액이 걸려 있다. 누각에는 83점의 편액이 있으며, 용성지에 실려 있는 것과 합하면 약 200여 수가 된다. 김종직, 정철, 정인지, 강희맹, 백광훈, 이경여 등의 시가 있다. 또한 광한루는 판소리 춘향가의 주인공인 성춘향과 이몽룡이 만난 곳으로 유명하다. 현재는 광한루원이라는 공원으로 확장되어 있다.
광한루 앞뒤에는 ‘호남제일루(湖南第一樓), 계관(桂觀), ’광한루(廣寒樓)란 편액이 걸려있다. 호남제일루라는 말 그대로 호남에서 제일가는 누각이라는 뜻이며, 광한과 청허부는 하늘나라 월궁의 옥경에 들어서면 ‘광한 청허지부’가 있다는 신화적 전설을 상징하고, 계관은 달나라의 계수나무 신궁을 상징한다. 광한루 누각에 걸린 여러 편액 중 광한루란 편액은 신익성, 호남제일루와 계관의 편액은 1855년 남원부사 이상억이 누각을 중수하면서 손수 써 걸었다. 이 중 계관의 편액은 동학농민전쟁 때 없어진 것을 1930년대 광한루를 대대적으로 보수할 때 남원유지 강대형이 다시 써 건 것이다. 또한 현재 광한루에 걸린 광한루란 편액은 전 민의원 조정훈이 쓴 글씨이다.
1879년 광한루가 차츰 북쪽으로 기울어져 이를 방지하기 위해 루 북쪽에 다락(월랑)을 세워 층층대를 만들어 놓았다. 북쪽의 층층대는 1877년에 부임한 남원부사 이용준이 광한루가 퇴락하여 본관 전체가 북쪽으로 기울어져 무너질 우려가 있어 수지면 고평리에 사는 추(秋) 대목의 묘안을 받아들여 북쪽에 누를 오르내리는 계단을 만들되 본관과 같이 아름드리 기둥을 세워 튼튼하게 고정시켜 본관의 기울음을 바로 잡고 외관으로도 더 화려하게 하였다. 이는 결과적으로 누각 건축사상 큰 의의를 가지게 되는데 그것은 우리나라 누각에 월랑을 가설하게 된 시초이며 이전까지는 누상을 오르내리는 사다리만 설치하였다.
오작교
1461년 남원부사 장의국이 광한루를 수리하면서 다리를 새로놓고 오작교라 부르게 됐다. 그 이후 광한루는 정유재란때 불타 1626년 복원됐지만 오작교는 처음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오작교는 길이 57m, 폭 2.4m, 4개의 홍예경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현존하는 연지교 중 국내에서는 규모가 가장 크다.
춘향사당
춘향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만든 사당으로 광한루의 동쪽, 절개를 상징하는 대나무 숲 속에 있다. '단심'이라 쓰여진 대문을 들어서면 '열녀 춘향사'란 현판이 걸려 있고 사당안에는 이당 김은호 화백이 그린 춘향의 영정이 있다. 춘향묘는 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 호경리에 있다.
완월정
완월정은 지상 사람들이 천상의 세계를 꿈꾸며 달나라를 상상해 축조한 수중 정자이다. 춘향제 무대로도 활용된다.
1971년 신축. 동쪽을 향해 있는 수중누각이다. 옛날 옥황상제가 계식 옥경에는 광한전이 있으며, 그 아래 오작교와 은하수가 굽이치고 아름다운 선녀들이 계관의 절경 속에서 즐겼다는 전설이 있다. 이 전설에 따라 광한루는 천상의 광한전을 재현한 것이며, 이 완월정은 지상인이 달나라를 즐기기 위하여 전통 조선식 누각을 세워 광한루원의 절경을 한층 돋보이게 하고 있으며, 춘향제 등 각종 행사를 치르는 무대로 활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