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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수필의 주제와 제재의 변화
권대근
문학평론가,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I. 서론
수필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수필은 제재와 주재 중심의 문학이다.그렇다면, 수필가에게 있어서 제재와 주재는 대단히 중요한 요소다. 엄밀히 말하면, 수필은 제재와 주제를 두 축으로 하여 ‘무엇’에 대해 쓴 글이다. 이 무엇에는 세 가지 차원의 접근이 있다.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소재, 제재, 주제를 먼저 이론적으로 살펴보자. 소재란 글쓰기의 바탕이 되는 구체적인 자료 즉 얘기거리다. 제재는 글쓴이가 재료 관심을 갖고 주목하는 중심적인 측면이나 속성인데, 본격수필론에서는 이 ‘제재’를 주제에서 ‘제’를 따고, 소재에서 ‘재’를 따서, ‘제재’라 칭한다. 즉 주재의 재료다. 주제정신을 상징하거나 함축하고 있는 말이다. 주제는 수필가가 전달하려고 하는 메시지, 즉 중심적인 내용이나 사상을 말한다. 같은 소재라도 다양한 주제나 제재가 나올 수 있다.
주제 역시 세 가지 차원이 있다. 하나는 대체적인 중심내용, 다른 하나는 구체적인 중심 내용, 마지막으로 중심사상이 있다. 이는 주제를 설정하는 단계나 과정을 의미하는데, 첫째, 작가는 넓은 범위의 막연한 상태의 주제를 설정하고 난 다음, 둘째 단계로 가서 가주제의 범위를 좁혀 글의 실질적인 내용과 범위가 되도록 한다. 그러고 나서 최종적으로 글의 구체적인 전개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이때 참주제는 글을 다루게 될 범위를 한정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작가는 참주제에 대한 작가 나름의 중심 생각을 문학적의 형상화해야 한다. 주제의식의 의미화다. 여기에서 수필의 문학성이 생기고, 수필이 본격수필이 되느냐 안 되느냐가 결정된다. 주제의식을 간접화하는 기법은 문학적 글쓰기라는 전략적 차원에서 수필가의 전문성이 요구되어지는 부분이다.
발제의 핵심 코드로 서론에서 언급하고 가야 할 것은 ‘주제’ ‘제재’ 그리고 현대의 ‘시점’이었다. ‘제재’와 ‘주제’의 차원은 해결되었고, 마지막으로 시점이 문제로 남는다. 문학이라는 말 앞에 ‘현대’라는 에피쎄트가 붙으면, 그 시점을 어디에서부터 잡느냐가 항상 논란이 된다. 현대수필의 시점을 어디에 둘 것인가 하는 문제는 ‘근대’와 ‘현대’라는 말을 동의어로 보느냐 안 보느냐에 따라 그 시점이 달라지고, 역사적 차원이냐, 정치적 차원이냐, 문학적 차원이냐에 따라 그 시점이 다르다. 근대와 현대라는 말을 동의어로 보면, 현대문학의 시점은 현대를 해방 이후로 보는 일반적인 관점보다 훨씬 빨라진다. 본고에서는 근현대의 시점 구분의 논란에서 비켜나 순수하게 수필의 관점에서 수필의 역사성에 기준해서 현대수필의 태동기라 할 수 있는 1910년을 현대수필의 출발점으로 보고, 1910년대 수필의 주제와 제재부터 어떻게 변모되어 왔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II, 본론
* 1910~1920년대 수필문학
이 시기는 현대 문학의 태동기(1908~1919)다. 역사적으로는 일제 강점기로서 민족의식이 제고(提高)되던 때이다. 신문학의 흐름이 계속되면서도 서구 문학의 충격을 흡수하면서 새로운 기법과 의식을 담은 현대 문학이 출현하였다. 민족 계몽 의식을 주제로 한 문학이 등장하였으며, 서구 문학의 기법과 의식이 수용되었다. 또, (태서 문예 신보)를 통하여 서구 문예 사조가 소개되기 시작하였다.
당대 수필(隨筆)의 특징으로, ① 현대 수필의 초창기로서 수필의 형태가 아직 정립되지 못했다. ② 국민 문학파에 의해 주도되었다. ③ 우리 국토에 대한 애정을 담은 기행 수필이 많았다.
대표적 수필가와 작품을 통해 수필의 주제와 제재를 살펴보자. 방정환의 <어린이 찬미>, 최남선의 <심춘 순례>, <백두산 근참기>, 이광수의 <금강산유기>, 이병기의 <낙화암을 찾는 길에> 등이 발표되었다.
* 1930~1945년대 수필문학
초기에는 문학 활동의 기반이 확충되고 예술적 기교가 발달하였으며, 신문이나 잡지의 수가 늘어나 작품이 발표될 수 있는 지면이 확대되어 활발한 문학 활동이 이루어진 시기이다. 다양한 문학 양식이 선을 보였으며, 브나로드 운동의 영향으로 계몽문학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1930년대 여성작가들은 계급과 민족의 문제만 바라보는 남성 작가들의 제한적인 시선보다 한 차원 높게 근대 사회의 문제를 조망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전 시대에 여성 작가들이 여성의 억압을 막연하게 절규하는 차원을 넘어서 민족적인 문제와 계급적인 문제와 여성의 문제가 같이 나아가야 한다는 여성 해방의 시각을 확보하였다. 그러나 말기에는 일제의 광적인 탄압으로 문학 활동이 크게 위축되었다.
수필(隨筆)의 특징으로, ① 본격적인 수필 이론이 소개되었다. 해외 문학파와 외국 문학을 전공한 이양하 등에 의해 외국의 수필 및 그 이론이 도입되었다. ②전문적인 수필가의 등장으로 수필문학이 정립되었다. 수필이 독자적 장르로 인식되고, 전문적인 수필가가 등장하면서, 수필이 하나의 독립된 장르로 자리를 잡았다. ③ <동광>, <조광>, <박문> 등에 발표되었다.
당대 대표적 수필가와 수필로는 민태원 <청춘예찬> -청춘의 아름다움을 찬미, 이양하의 김진섭 같은 전문수필가가 등장하였다.
*1930년대 말~1945년(일제 암흑기)의 문학
소위 내선 일체(內鮮一體)라는 미명 아래, 일제는 창씨 개명(創氏改名), 신사 참배(神社參拜)를 강요하고, 우리 말과 글의 사용을 금하는 등 황국 신민화(皇國神民化) 정책을 폄으로써, 우리 민족의 정신적인 지주를 파괴하려 하였다. 이에 따라, 동아 일보, 조선 일보 등의 일간지가 폐간되고, 「문장」, 「인문 평론」 등의 문예지도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이러한 암담한 상황에서, 일부 문인들은 일제의 강압과 회유에 못 이겨 친일적 행각을 하거나 혹은 소극적 저항의 표시로 붓을 꺾고 숨어 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과는 달리, 적극적인 투쟁을 감행하여 끝까지 기개를 굽히지 않은 이들이 있었으니, 이육사, 윤동주 등이 그들이다.
이 시기 수필(隨筆)의 특징으로는 특별한 활동은 없었고 다음과 같은 수필집이 간행되었다. 박종화의 <청태집(靑答集)>, 이광수의 <돌베개>, 김진섭의 <인생 예찬>, 이양하의 <이양하 수필집> 등이 그것이다.
* 1945년 -1950년 해방문학
8.15 광복과 함께 역사적 전환점을 맞이하였다. 광복과 함께 국토의 분단은 좌·우익의 대립으로 이어져 정치, 사회적 혼란이 계속되었다. 잃었던 우리말과 글을 되찾게 되어 표현의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좌·우익의 대립은 문단에서도 심각한 분열과 갈등을 초래하였다.
수필문학의 특성으로 1. 문학성을 갖춘 수필이 등장하였다. 2. 지조론(조지훈), 벙어리 냉가슴(이희승), 상아탑(계용묵), 사회와 인생(마해송) 등
* 1950년대의 문학
6·25 전쟁은 우리 민족의 삶을 황폐화시켰다. 수많은 인명과 재산의 피해와 함께 정신적으로도 심각한 상처를 입혔다. 비극적 체험과 상흔은 생존의 어려움과 회의를 안겨 주었으며, 패배 의식과 허무주의를 심화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시대 배경은 전쟁 체험, 현실 참여, 전통 지향 등의 주제로 문학에 반영되어 나타났다. 이 시기 여성 작가들은 대체로 두 가지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작품을 창작하였다. 하나는 전쟁으로 남성이 부재한 시기에 여성들이 한 가족을 유지하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것을 다룬 작품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근대적인 체험을 한 여성들이 전통적인 가부장제 윤리를 거부하는 작품이다. 이와 같은 경향은 1960년대에도 지속되었다. 1950년대 전쟁의 폭력성과 인간 존재의 실존 문제를 다룬 남성 작가들의 작품과 다른 여성작가들은 개인의 사소한 심리 변화를 다루었다는 이유로 문단에서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 시기 여성 작가들은 남성 작가들의 실존적이고 철학적인 문제를 통하여 전쟁이라는 재앙을 관념적으로 그린 것에 반해, 구체적인 일상 생활에서 고통을 겪는 인간의 문제, 즉 여성의 문제를 사실적으로 그려나갔다는 면에서 식민지 시대 리얼리즘을 계승한 역할을 하였다.
수필(隨筆)의 특성으로, ① 문학적 향기가 높은 작품들이 많이 발표되었다. ② 사회적 불안이나 가치관의 상실을 다룬 교훈적 수필이 발표되었다. ③ 예술적 기교를 바탕으로 한 서정적 수필도 발표되었다.
대표적 수필가와 작품집 : 이희승의 (벙어리 냉가슴), 피천득의 (산호와 진주), 조지훈의 '지조론(志操論)', 유달영의 '인간 발견' 계용묵의 (상아탑), 노천명의 (나의 생활 백서), 마해송의 (사회와 인생) 등이 있다.
* 분단 이후의 문학
해방과 한국 전쟁, 그리고 산업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오늘에 이른 이 시기는 한 마디로 격변의 시기였다. 이 시기를 거치면서 한민족은 본격적으로 세계사에 편입하게 되었다.
(1) 현대 수필
50년대의 김소운의 '목근 통신',
피천득의 <금아 시문선> 은전 한 닢 제재:은전 한 닢: 주제-맹목적 욕망에 대한 연민, 물 질에 대한 인간의 소박한 욕심
김형석의 '영원과 사랑의 대화', '현실과 구상' 등이 대표적이고,
1960 년대의 문학
(1) 시대 개관
1. 4.19와 5.16 등으로 정치·사회적 혼란이 계속되었다.
2. 분단 현실과 민족의 비극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3.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비판하고 이에 저항하는 현실 참여 문학이 대두되었다.
수필
1. 서정적이고 교훈성이 강한 수필이 많이 등장하였다.
2. 주요 작가와 작품
피천득 <수필>-수필의 본성과 특질
황포탄의 <추석>-이국 땅에서 느끼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
이양하 <나무의 위의>- 나무를 의인화하여 삶의 태도를 밝힘
안병욱 <행복의 메타포>-행복의 의미
전혜린 <사치의 바벨탑> -여성 삶의 진정한 존재 고찰
이어령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전숙희 <
윤오영 <
박경리 <거리의 악사> -가식없는 삶의 소중함
김소운 <가난한 날의 행복> -가난 속에서 피는 따뜻한 인간애
1970 년대의 문학
(1) 시대 개관
1. 산업화·근대화가 본격화되었다.
2. 이로 인해 도시와 농촌 그리고 빈부 격차가 날로 심해져갔다.
3. 10월 유신이 단행되면서 정치적 억압이 날로 심해져 갔고 이로 인하여 민주화 운동이 본격화되었다.
4. 남북 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시도되었다.
5. 여성의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고 여성해방의 시각을 제시하며 여성작가들에 대한 온전한 이해와 평가가 이루어진다.
6. 각 대학에서 여성학이 생기고, 여성운동이 일어나면서 여성작가에 대한 연구의 새로운 전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수필
1. 주요 작가와 작품
윤오영 <달밤>- 아름다운 인간의 정
<까치>- 산뜻하고 담박한 삶의 모습
법정 <무소유>- 진정한 자유와 무소유의 의미
한흑구 <보리>- 보리의 순박함과 강인함
1980년대
1. 여성학 분야와 다르게 문학계에서 여성작가들에 대한 여성주의적 평가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2. 대체로 여성연구가에 의해 남근중심적인 편견에서 벗어나려는 연구가 진행되었다.
3. 그 대표적인 여성연구가로는 서정자, 정영자, 김정자로 그들은 잊혀진 여성작가들을 발굴하고, 여성적인 입장에서 여성작가들의 작품을 새롭게 평가하기 시작하였다
4. 1980년대 여성주의 작가들은 남성작가들이 바라보지 못한 한국 사회의 문제를 전면적으로 노출시키는 데에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단에서는 그 시대를 대표하는 중요한 작가로 평가되지 못하였다.
1990년대
1990년대에 와서 여성작가들이 일정한 평가를 받으면서 문단의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김인숙․공지영․신경숙․전경린․함정임․하성란․은희경 등 많은 여성작가들이 온갖 문학상을 휩쓸면서 문학성과 대중성을 확보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1990년는 여성작가의 시대가 된 듯하다. 이제 여성작가를 표면적으로 여류작가로 대하지 못할 정도로 여성작가의 작품의 질과 문제의식이 높아졌다. 1990년대 여성 작가들에 의해 현대 사회를 바라 볼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을 형성하였다. 앞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1990년대는 여성작가들의 문제의식과 감수성이 현대사회 문제를 바라보기에 적합한 듯하다.
인간에 대한 고찰이나 성찰들의 방향이 바뀌고 있는 1990년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고민할 때, 여성작가들의 세밀한 시선과 작은 것을 바라볼 수 있는 섬세함, 일상적인 개인들의 욕망과 고통을 풀어내는 힘 등이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문학이었던 것이다.
1990년대 여성작가들은 여성주의적 작가라기 보다는 여성적인 섬세함으로 세상을 들여다 보는 여성적 작가이다. 작고 나약한 여성적 세계에서 부딪치는 문제의 심각성을 통하여 세기말적이고 이념이 부재한 인간들의 상실감을 잘 드러내기는 하지만, 여성문제를 본격적인 창작 과제로 설정한 여성주의적 작가는 드물다. 1990년대 여성작가들이 화려한 데뷔로 선정적인 평가를 받는 것에 비하여 그들의 시선은 극히 개인적인 내밀한 욕망에 갇혀, 거시적인 여성 문제를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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