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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유배문학 「칠실음(漆室吟)」 나라를 걱정하는 올곧은 선비 정신>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이번 지면에 소개하는 칠언고시(七言古詩) 「칠실음(漆室吟) 계축(癸丑)」은 조선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유헌(游軒) 정황(丁熿 1512~1560) 선생의 거제도 유배 작품으로, 그의 문집 「유헌집(游軒集)」 권1(卷之一)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는 조선 중기 명종 시기(1553년 계축년)에 지어졌으며, 나라를 걱정하는 선비의 애끓는 마음(憂國之情)과 당시 지방 사회의 참혹한 현실, 군정(軍政)의 폐단을 날카롭게 고발하고 있다.
[서문(序文)]에서 저자는 자신의 글이 비록 힘없는 선비의 '헛된 말(空言)'일지라도, 새로 부임한 지례현감 노자응(盧子膺)이 이 시를 읽고 감동하여 백성들에게 '인자한 정치(仁政)'를 베풀어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본문(本文)]에서는 단순한 유배객의 신세 한탄을 넘어, 국가의 위기 앞에서는 신분과 처지를 막론하고 나라를 걱정해야 한다는 정황의 올곧은 선비 정신과 절개의 깊이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배 한시다. 칠실지우(漆室之憂)의 고사를 차용하여 나라를 걱정하는 애절한 마음을 극대화했고 변방 유배지의 고독과 한탄, 국정과 임금에 대한 절박한 우려, 쇠하지 않는 충군애국(忠君愛國)의 정신을 강렬하게 피력하였다.
● 내용인즉, 먼저 이 글은 조선 명종 대의 참혹한 사회상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특히 임진왜란(1592년)이 일어나기 수십 년 전, 이미 조선의 군사 제도가 완전히 붕괴되어 있었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황구첨정(黃口簽丁)과 백골징포(白骨徵布)의 사례가 나타났다. 젖비린내 나는 어린아이(乳臭年七八, 覓乳下)를 군적에 올리고, 죽은 사람(幽鬼)을 군사로 등록하며, 도망친 이웃의 세금까지 이웃에게 물리는(曾逃碩鼠是保隣) 군정의 문란이 극에 달했음을 고발했다. 또한 서리(아전)와 수령의 결탁으로 사회의 혼란과 부패가 만연해졌다. 백성을 구제하러 온 어사나 감사(監軍)조차 보신주의에 빠지거나 겉치레 문책(문서 행정)에 그쳐, 결국 지방 관리들의 간사함만 키워주었다고 비판했다. 게다가 저자는 "외환은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내부의 재난이 먼저 성립되었다", "팔도의 군대는 헛되이 문서 위에서만 오고 간다"라고 탄식한다. 이는 훗날 임진왜란이 터졌을 때 장부상에만 군사가 가득할 뿐, 실제로 싸울 수 있는 군인이 없어 국토가 유린당했던 비극을 정확히 예견한 구절이다. 그리고 문학적 특징으로 칠실음(漆室吟)의 고사를 차용했다. 약소하고 힘없는 선비인 자신의 처지를 '노나라 칠실 고을의 처녀'에 비유하여, 나라를 걱정하는 애절한 마음을 극대화했다. 문장에서 직설적이고 강렬한 어조의 시어가 등장했다. '독약(毒藥)', '어목주(魚目珠, 가짜 진주)', '석쥐(碩鼠, 탐관오리)' 등의 강렬한 시어를 사용하여 당시 지배층의 무능과 부패를 거침없이 폭로하는 사회고발 고시(古詩)의 전형을 보여줬다.
○ 이 글의 후반부에 이르러, 전반부의 군정(軍政) 비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당시 지식인 계층(유생)에게까지 번진 군역의 불평등, 불교·승려 계층에 대한 비판, 그리고 유교적 성리학에 기초한 올바른 부병제(府兵制)와 문덕(文德) 정치로의 복귀를 주장하는 사회 고발 시의 역할을 다하였다. 또한 ‘유생(靑衿)들의 군역 징집 비판’을 언급했다. 조선은 본래 '우문(右文)', 즉 문치를 숭상하는 유교 국가로 학교에 다니는 유생들에게는 군역을 면제하거나 유예해 주는 특권이 있었다. 그러나 시인은 "갑자기 유생들까지 몰아내어 군대에 집어넣는다"며 분통을 터뜨린다. 이는 국가 재정과 군역 대상자가 고갈되자, 서리들이 유생들의 명부(靑衿)까지 뒤져 억지로 군인으로 징집하던 당시의 변칙적이고 가혹한 군정의 현실을 고발한 것이다. 또한 승려(불교) 계층에 대한 강한 비판을 서술했다. 시인은 억울하게 군대에 끌려가는 농민·유생들과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존재로 '승려(僧侶)'들을 지목했다. 승려들이 군역과 세금을 피해 절로 도망쳐 놀고먹으면서 백성의 재물을 축낸다(游手游食)고 비판했고 또 가난한 백성들은 가시덤불 속에서 울부짖는데, 절 안의 승려들은 황금옥(黃金屋)과 비단방석으로 사치스럽고 화려하게 지내고 있음을 고발했다. 군역이 너무 가혹하다 보니 백성들이 군대를 가지 않기 위해 스스로 머리를 깎고 절로 도망치고 있으며, 백성들이 그곳을 '낙토(樂土)'라 부르며 임금과 부모의 은혜를 저버리는 비극(불효)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안으로 병농합일(兵農合一)과 당나라 부병제(府兵制)를 제시했다. 무조건 군사를 징집하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며,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평소에는 농사를 짓고 전쟁 시에는 군인이 되는 '병농합일'의 이상을 제시하며 당 태종의 부병제 조명하면서, 당나라 때 승려가 되는 것을 엄격히 제한하여 군액을 확보하고, 18세 미만의 청소년(中男)은 군역에서 제외해 주었던 상식적인 법도를 본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유교적 인륜(人倫)을 통한 국방 강화를 제안했다. 저자는 백성을 전쟁터로 내몰기 전에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하는 인륜"을 먼저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 가족을 사랑하고 나라의 은혜를 아는 백성이라야 비로소 국가를 위해 목숨 바쳐 싸울 수 있다는 '선민후병(先民後兵, 백성을 먼저 교화하고 군사를 생각함)'의 정통 유교적 국방관을 피력하고 있다.
결국 이 고시(古詩) 「칠실음(漆室吟)」은 명종 시기 을묘왜변 등을 겪으며 국방의 위기를 절감한 지식인이 지은 최고의 사회시(社會詩) 중 하나다. 장부상으로만 존재하는 가짜 군사들, 어린아이와 노인까지 쥐어짜는 군정의 부패, 군역을 피해 승려가 되는 백성들의 유랑 등을 아주 사실적이면서도 서정적인 필체로 그려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조선의 모순을 고쳐야 한다는 선비의 애국심과 충정(葵藿之)이 돋보이는 명작이다.
**「칠실음(漆室吟) 계축(癸丑)」** / 정황(丁熿 1512~1560)
(1) 서문(序文)
지례현감(知禮縣監) 노자응(盧子膺)에게 받들어 올린다. '칠실(漆室)'을 제목으로 삼았으니 그 정이 지극히 슬프다. 옛날 칠실 고을 처녀의 근심은 노(魯)나라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고, 내가 이처럼 헛된 말을 하는 것 역시 스스로 분수를 헤아리지 못하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이니, 어찌 마음에 둘 만하겠는가?
하지만 반드시 이 시를 보존하여 그대에게 돌려보내노라. 그대는 열 가구밖에 안 되는 작은 고을(지례현)을 다스리고 있으니, 고을은 그대의 다스림 덕분에 일분(一分)의 은혜를 입을 것이요, 그대는 나의 시를 통해 일어나는 바가 있어 십분(十分)의 인(仁)을 더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칠실의 근심이 이 작은 고을의 경계 안에서 어찌 (단순한 근심에 그치지 않고) 실현되지 않겠는가?[奉呈知禮盧縣監子膺 以漆室爲題 其情至甚哀也 漆室之憂 無賴於魯國 而我之有此空言 同歸於不自量 何足存焉 必存之 歸之于君 君莅十室之邑 邑因君之煮 受一分之賜 君因我之起 加十分之仁 則安知漆室之不爲漆室於十室之境乎]
[주1] 칠실의 우(漆室之憂) : 중국 춘추시대 노나라 칠실 고을의 처녀가 기둥에 기대어 나라를 걱정하며 울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로, '신분이 낮은 백성이 나라의 쇠락을 근심함'을 뜻한다.
[주2] 지례현(知禮縣) : 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구성면·부항면·대덕면·증산면 일대에 있던 옛 고을. 본래 신라의 지품천현인데, 757년 지례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2) 본시(本詩)
[1단락] 대기근과 유랑하는 백성들
承宣非人上失道 임금의 명령을 전하는 적임자가 아니니 위에서 도를 잃었고
久矣民散困懸倒 백성들이 흩어지고 거꾸로 매달린 듯 곤궁해진 지 오래다.
一邑之水走可避 한 고을의 홍수는 달아나 피할 수 있지만,
滔滔東海誰相保 도도히 밀려오는 동해 같은 재앙(국난)은 누가 서로 지켜주랴.
感傷天地荐饉饑 천지도 슬퍼하듯 기근과 주림이 거듭 겹치니
父母妻子呼流移 부모와 처자식들이 울부짖으며 떠돌아다니네.
生理蕭條蔽荊杞 살길은 쓸쓸하고 가시덤불만 무성하여
千村萬落非前時 수많은 마을이 예전의 모습이 아니네.
[2단락] 군역의 폐단과 어린아이까지 징집되는 현실
南防北戍日減額 남쪽 방어와 북쪽 변방 지키는 군액이 날로 줄어드니
昔者十行今才一 옛날엔 열 줄이던 군사 행렬이 이제 겨우 한 줄이네.
今才一人類非健 이제 겨우 남은 한 사람도 대개 건장하지 못하고
往往乳臭年七八 왕왕 젖비린내 나는 일곱 여덟 살 어린아이뿐이네.
爲王執殳赴遙鄙 왕을 위해 창을 잡고 먼 변방으로 달려가니
棘門霸[灞]上眞兒戲 옛날 한나라 극문과 파상의 군대(군기가 허술했던 군대)도 참으로 아이들 장난 같았다.
加之主者少爲仁 게다가 군권을 쥔 자들은 인자함이 적어
漁取百端殊不已 온갖 방법으로 백성을 수탈하는 짓이 도무지 그치지 않네.
[3단락] 가혹한 세금과 무능한 감사관(어사)
毒藥餘喘强毒藥 독약을 마시고 겨우 남은 숨에 또 독약을 강제로 들이부으니
哀此聚頭無由脫 슬프다, 머리를 맞대고 울부짖는 이 백성들 벗어날 길이 없구나.
庶見蘇復遣監軍 혹시나 백성들이 살아날까 하여 조정에서 감군(어사)을 보냈으니
朝家美意誠無極 조정의 아름다운 뜻은 참으로 끝이 없도다.
監軍未見體美意 그러나 감군은 조정의 아름다운 뜻을 체득하지 못하니
若微老事則喜事 노련하게 일을 처리하지 못하면 곧 일을 벌이기만 좋아하네.
老事優游務苟全 노련하게 처리한다는 자는 우물쭈물하며 구차하게 보신만 힘쓰고
喜事顚倒眩所施 일 벌이기 좋아하는 자는 앞뒤가 뒤바뀌어 베푸는 바를 어지럽히네.
巧應文責魚目珠 문책을 피하려 교묘하게 위장하니 물고기 눈알을 진주라 속이는 꼴이요,
秖長吏姦民無蘇 다만 아전들의 간사함만 키울 뿐 백성들은 살아날 길이 없네.
[4단락] 관리들의 부정부패와 다가오는 국방의 위기
縱有黜陟豈以實 비록 관리의 승진과 퇴출(평가)이 있은들 어찌 진실로 하리까,
我不以實人不孚 내가 진실로 대하지 않으니 백성들도 신뢰하지 않는다네.
今日新官舊日官 오늘의 신관(새 관리)도 어제의 구관(옛 관리)과 마찬가지요,
官有東西事一般 관리가 동쪽으로 가든 서쪽으로 가든 하는 짓은 한결같네.
長金積玉誇自拔 황금을 쌓고 옥을 저축하며 스스로 영달했다고 자랑하지만,
受他自拔下其殘 남에게서 뇌물을 받아 영달하고 아래로는 백성을 잔인하게 착취하네.
殘此媚彼爲謀已 이 백성을 해쳐서 저 윗사람에게 아양 떨며 제 몸만 도모하니
擧直措枉果如是 곧은 이를 등용하고 굽은 이를 내쫓는 정치가 과연 이 모양이란 말인가.
卽今釁構南與北 지금 남쪽(왜구)과 북쪽(여진족)에서 틈을 노려 침략하려 하니,
萬一有警將何以 만일 한 번이라도 비상사태가 터지면 장차 무엇으로 막아낼꼬.
[5단락] 허울뿐인 군적과 깊어가는 원망
平居未得將干城 평소에 나라를 지킬 방패와 성벽 같은 장수를 얻지 못했으니
倉卒豈辦如林兵 갑작스러운 위기에 어찌 숲처럼 빽빽한 대군을 마련하겠는가.
雖嘗籍軍省有無 비록 일찍이 군적(군인 명부)을 만들어 유무를 살폈다고는 하나
八路空逐文書行 팔도의 군대는 헛되이 문서 위에서만 오고 갈 뿐이로다.
敬奉綸音走王臣 임금의 교지(윤음)를 공경히 받들고 왕의 신하들이 분주히 달리지만
民見其威未見仁 백성들은 그 위세만 볼 뿐, 인자함은 보지 못하네.
爲吏懦怯至無意 관리가 된 자들은 나약하고 겁이 많아 나라를 구할 뜻이 없고
滿紙豼虎孰爲眞 종이(군적) 위에 가득한 '맹호 같은 군사들' 중에 과연 누가 진짜 군사란 말인가.
[6단락] 죽은 자와 갓난아이까지 동원되는 군역, 그리고 끝없는 원망
有錄幽鬼姑作人 저승의 귀신(죽은 자)까지 등록하여 우선 사람으로 만들어 놓고(백골징포),
曾逃碩鼠是保隣 큰 쥐(가혹한 관리)를 피해 달아난 이웃의 몫까지 인근 주민에게 물리는구나(족징과 인징)
計誠無何覓乳下 참으로 대책이 없으니 이제는 젖먹이 아이까지 찾아내어 군적에 올리니(황구첨정),
競務以誑以便身 서로 다투어 속임수만 쓰며 제 몸 편할 것만 힘쓰는구나.
能完目前忽背後 눈앞의 일만 겨우 모면하고 뒤의 일은 홀연히 잊어버리니
肯念魏鑑違唐后 당나라 태종이 위징의 거울(간언)을 생각하여 법을 어기지 않았던 것을 어찌 생각이나 하겠는가.
其言在精不在多 그 말은 정밀함에 있지 많은 데 있지 않으니
貞觀識勢知無耦 당 태종 정관(貞觀)의 치세는 대세를 알아주어 짝할 만한 이가 없었다.
千年斷絃不可續 천 년 전에 끊어진 거문고 줄은 다시 이을 수 없으니
漆室憂魯終奚益 칠실의 처녀가 노나라를 걱정한들 끝내 무슨 소용이 있으랴.
不但乳下且失所 젖먹이 아이뿐만 아니라 살길을 잃은 데다가
老限已過追還役 나이 제한(60세)이 이미 지난 노인까지 다시 쫓아가 군역을 물리네.
遠近囂然喪樂生 원근의 백성들이 시끄럽게 울부짖으며 삶의 즐거운 마음을 잃었고,
外憂未至內艱成 외환(외침)은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내부의 재난이 먼저 이루어졌네.
六十一年怨室家 육십한 평생 가정을 원망하게 만드니
威認未衰仍苦征 나라의 위세는 쇠하지 않은 척하면서 여전히 가혹하게 세금만 걷는구나.
百歲人生餘幾許 백 년 인생에 남은 날이 과연 얼마나 된다고..(이토록 괴롭히는가)
[7단락] 유생(靑衿)들에게까지 닥친 가혹한 군역과 그 치욕
爲人父母情何阻 부모 된 자들의 심정이 어찌 이리도 참담하겠는가,
搜丁不遺無不至 장정을 찾아내어 남김없이 징집하는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구나.
在他閑地固其所 다른 한가한 부류(특권층)들은 제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거늘.
國家右文超百王 우리나라는 문치(文治)를 숭상하여 백 대의 제왕보다 뛰어났고
內大小學外序庠 안으로는 대학교와 소학, 밖으로는 지방 학교(향교)를 두었네.
靑衿絃誦宗聖德 유생(靑衿)들은 거문고를 타며 글을 읽고 공자(聖)의 덕을 받들며
涵泳至澤何汪汪 지극한 은택에 푹 젖어 그 조화가 참으로 넓고도 깊도다.
忽驅靑衿盡出入 그런데 갑자기 유생들까지 몰아내어 모두 군역에 드나들게 하니
出者冤矣入亦辱 군역에 나가는 자도 원통하고 유학에 들어앉은 자 또한 치욕스럽다.
方由賢聖博文羣 성현의 도리에 따라 널리 글을 배우던 무리들이
竟陷魚肉從戎列 끝내 어육(물고기와 고기처럼 짓밟히는 처지)이 되어 군대의 대열에 쫓아가네.
不以藏修義得尊 학문에 힘써(藏修) 의리를 존중받지 못하고,
徒將記誦身苟安 한갓 글귀나 외우며(記誦) 몸을 구차하게 보전하려 하네.
出冤入辱傷右文 나아가도 원통하고 들어와도 치욕스러워 문치를 상하게 하니
素王之道何其單 공자(素王)의 도리가 어찌 이리도 외롭고 쓸쓸하단 말인가.
[8단락] 승려(불교)들의 사치와 군역 회피에 대한 고발
君看得意彼一時 그대들은 저들이 한때 뜻을 얻어 득의양양한 모습을 보라.
百千爲徒恣西夷 수백 수천 명씩 무리를 지어 서역의 오랑캐 법을 제멋대로 따르네.
游手游食耗民財 놀고먹으면서(游手游食) 백성들의 재물을 축내고,
無君無父斁天彝 임금도 없고 아비도 없으니 하늘의 떳떳한 도리를 무너뜨리네.
黃金屋中彩流地 황금빛 법당(절) 안에는 오색 빛깔이 땅에 흐르고
綉錦茵上香擁鼻 비단 방석 위에는 향내가 코를 찌르는구나.
自謂高者談無根 스스로 고결하다는 자들은 근거 없는 공리공론만 일삼고
其他卑者錐爭利 그 지위가 낮은 자들은 송곳 끝 같은 작은 이익을 다투네.
便閑一生禮逃文 한평생 편안하고 한가하게 지내며 예법과 문치를 도피하니
縱百籍軍誰敢侮 비록 군적을 백 번 만든들 누가 감히 저들을 잡아가겠는가.
幾何吾民不從夷 우리 백성들이 오랑캐(불교 승려)를 따르지 않을 자가 몇이나 되랴,
豈不競指曰樂土 어찌 다투어 저곳을 손가락질하며 '낙토(樂土)'라 부르지 않으랴.
[9단락] 군역을 피하려 승려가 되는 백성들과 왜곡된 국방 정책
斬君親恩寧不孝 임금과 어버이의 은혜를 끊으니 어찌 불효가 아니겠으며
裂妻子愛非服敎 처자식의 사랑을 찢어버리니 교화에 따르는 것이 아니다.
事誠迫矣出不已 군역의 상황이 참으로 절박하여 도망치는 일이 그치지 않으니
回人耳目了不覺 사람들의 눈과 귀를 속여 완전히 깨닫지 못하게 하네.
增軍本意有乖張 군사를 늘리려는 본래의 뜻이 어긋나고 왜곡되어
被夷鬼製毁衣裳 오랑캐 귀신의 제도에 피폐해져 선비의 의상(문화)을 훼손하네.
衣裳毁了額不加 문화만 훼손되었을 뿐 군사의 정액(액수)은 늘지 않으니
訏謀豈嘗自廟堂 이 훌륭한 계책(원래 취지)이 어찌 조정(廟堂)에서 나왔겠는가.
廟堂見之言不屑 조정에서는 이를 보고도 달갑게 여기지 않고,
九重聞之路已絶 구중궁궐(임금)에게 상소하여 들리게 할 길마저 이미 끊어졌다네.
[10단락] 유교적 가치관에 기초한 진정한 국방론 (선민후병)
虜不可殲邊必備 오랑캐를 전멸시킬 수 없으니 변방은 반드시 대비해야 하고
備不可已軍當籍 대비를 그만둘 수 없으니 군사는 당연히 군적에 올려야 하네.
籍之如何得其宜 군적을 짜되 어떻게 해야 마땅함을 얻겠는가,
道一而已無他岐 길은 오직 하나뿐이요 다른 갈래 길은 없다네.
人人火書敦吾儒 사람마다 이단(불교)의 책을 불사르고 우리 유학을 두터이 하여,
俾子知孝父知慈 자식은 효도를 알고 아비는 자애를 알게 해야 하네.
子子弟弟而臣臣 자식은 자식답고 아우는 아우다우며 신하는 신하다워진,
然後可以戰其民 그런 연후에야 비로소 그 백성을 데리고 싸울 수 있는 법이네.
敎民果可用異端 백성을 가르치는 데 과연 이단(불교)을 쓸 수 있겠는가,
惟吾道外無人倫 오직 우리 유학의 도리 외에는 인간의 윤리가 없다.
富之庶之又敎之 백성을 풍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한 뒤에 또 가르치라 하셨으니,
聖謨洋洋非我欺 성인의 원대한 계책이 넓고 넓어 나를 속이지 않는다.
[11단락] 성왕들의 정치와 당나라 부병제의 대안 제시
唐虞干羽舞兩階 요순(唐虞) 시대에는 방패와 깃털(干羽)을 들고 대궐 뜰에서 춤추는 문치만으로도 적을 굴복시켰고,
比屋封中無非師 집집마다 봉해줄 만하여 백성들이 모두 스승(훌륭한 군사) 아닌 이가 없었네.
德逮下衰有征伐 왕의 덕이 아래로 쇠함에 이르러 비로소 정벌이 있게 되었으나
湯武革命仁無敵 은탕왕과 주무왕의 혁명은 인자함으로 대적할 자가 없었다.
仁者無敵不可尙 인자한 자는 대적할 수 없다는 도리를 상고할 수 없으니
李唐府兵㝡追昔 당나라의 부병제(府兵制)가 옛날을 추억하기에 가장 좋도다.
寓兵於農務本業 군사를 농업에 기탁하여(寓兵於農) 본업에 힘쓰게 하고
禁度僧尼優軍額 승려와 비구니가 되는 것을 금하여 군사의 정액을 넉넉히 하였네.
又聽賢臣棄中男 또 어진 신하의 말을 들어 중남(中男,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젊은이)은 군역에서 제외했으니
中男十八歲非弱 십팔 세의 중남이 약하지 않음에도 면제해 주었다.
民有餘丁願戴固 백성에게 남은 장정이 있어 나라를 받들기를 자원했으니
焉有竭民而備數 어찌 백성을 고갈시켜 가며 억지로 군사의 수만 채우는 일이 있었겠는가.
[12단락] 참혹한 현실 한탄과 성치(聖治)를 향한 소망
竭民不足繼淫刑 백성을 고갈시키는 것도 모자라 가혹한 형벌을 이어 가니
隣保爲空無處訢 이웃 마을이 텅 비어도(인징·족징 파멸) 어디 한 곳 하소연할 데가 없구나.
若不如唐虞文德 만약 요순시대의 문덕(文德) 정치에 미치지 못할 바에야,
太宗盛規宜爲則 당태종의 성대한 법도(정관의 치)라도 마땅히 본보기로 삼아야 하리.
由太宗規進唐虞 당 태종의 법도를 거쳐 요순의 시대로 나아가고자 하는 것,
微末向日同葵藿 이 보잘것없는 신하가 임금님(태양)을 향하는 마음은 해바라기(葵藿)와 같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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