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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학의 진단법(4진법)
우리의학의 진단법에는 전통적으로 4진법이 있습니다. 눈으로 보아서 진단하는 시진법(혹은 망진법), 귀로 들어 진단하는 청진법(혹은 문진법), 물어보아 진단하는 문진법, 손을 대거나 만져보아 진단하는 촉진법(혹은 절진법)이 그것입니다. 간단한 도구들이나 최신식 현대의료 장비들을 동원해서 하는 진단들도 이 네가지 진단법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제부터 각각의 진단법들이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눈으로 보아 진단하는 방법(시진법)
시진법이란 우리의 눈을 이용해서 하는 진단입니다. 그런데 눈으로 어디를 주로 보는 것일까요? 눈으로 보는 대상은 전통적으로는 얼굴이 주된 시진법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 몸 전체가 그 대상이 될 수 있고 게다가 현대의학적 최신 장비들의 도움으로 인해 눈으로 볼 수 있는 영역은 대단히 넓혀졌습니다. 우선 아무런 장비 없이 눈으로만 볼 수 있는 부분을 살펴본 후 현대 장비들로 인해 확장된 부분들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시진법으로 보는 곳
가장 먼저 보아야 할 곳은 역시 얼굴과 머리부분입니다. 가장 윗부분부터 살피도록 하지요. 우선 머리카락을 봅니다. 머리카락이 풍부하고 윤기가 있다면 허파가 튼튼한 편이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허파가 부실(허)한 상태이겠지요. 머리카락의 색깔이 검고 윤기가 난다면 콩팥이 튼튼하겠지만 색깔이 변한부분이 많다면 콩팥허가 됩니다. 현대의학 장비의 도움을 받는다면 머리카락 자체를 분석해봄으로써 우리 몸 안에 얼마나 많은 중금속이 축적되어 있는지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얼굴색이 희고 광채가 나면 모든 장부가 튼튼한 것으로 판단할 수 있지만 특정 색깔이 많이 나타난다면 그 색깔과 관련된 장부의 탈이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얼굴색이 푸르죽죽하면 간탈이요, 붉은 색을 많이 띠면 염통탈이요, 누런 색이 많이 나타나면 지라탈, 창백한 흰빛을 드러내면 허파탈이며, 윤기없이 검은 빛이 많이 비치면 콩팥탈로 분류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이렇게 빛깔로 구분이 가능한 이유는 그 빛깔을 다스리는 배알(장부)의 기가 새기 때문입니다.
얼굴에 있는 여러부분들은 서양의학에서는 독립적으로 다루지만 우리의학에서는 각각의 장부에 귀속시켜 생각합니다. 각부분을 전문화시켜 독립적으로 다루다 보니 연구가 한층 깊어진 부분이 많습니다. 그래서 서양의학이 얻어낸 성과들을 무시하지 말고 잘 받아들여야 하지만 부분적인 연구에 머물지 않고 우리의학의 상호관련 속에서 판단한다면 가장 바른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눈은 주로 간에 귀속시키며, 혀는 염통에, 입은 지라, 코는 허파에, 귀에서 나타 나는 증세는 콩팥에서 그 원인을 찾습니다. 눈에 충혈이 자주 일어나면 간에 열이 찬 것으로 판단하고, 눈이 원인없이 자주 침침해지면 간에 원기가 빠져버려 허한 상태가 된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눈에 다래끼가 잘 나거나 돌림눈탈(유행성 눈병)에 잘 거리는 것도 간이 튼튼하지 못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눈이 맑고 초롱초롱하지 못하고 흐릿하거나 백내장 혹은 녹내장이 끼면 밥통이 깨끗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눈을 보는 진단을 시진법 중 안진이라고 합니다.
혀의 색깔이 선명하고 담홍 빛을 띠면 심장이 건강한 것으로 보지만 심홍색이 되면 염통에 열이 찬 것이며, 연한 홍색일 때는 염통의 기운이 부족하거나 피가 부족한 것으로 봅니다. 혀에 혓바늘이 자주 돋는 것도 염통에 열이 많아서 그런 것으로 진단할 수 있습니다. 혀에 흰 태가 자주끼는 것은 질병의 초기이거나 가벼운 질병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보며, 누런 설태는 위와 장에 열이 찼을 때 나타나며 급성 열병인 경우가 많습니다. 가벼운 흑색 설태는 열이 심하여 체액을 고갈시켰을 때이며, 진한 흑색 설태는 만성 질환이나 위독한 질환에서 주로 나타납니다. 이처럼 혀를 진단하는 것을 설진이라고 부릅니다.
입과 입술은 지라와 밥통에 귀속시켜 판단합니다. 입안에 샘물같은 맑은 침이 자주 가득 고이며 식사 때가 되면 건강한 식욕을 느끼게 하는 것은 지라와 밥통이 건강하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입안에 침이 잘 분비되지 않거나 침이 달지 않고 텁텁하다면 밥통이 피로해 있거나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판단해도 됩니다. 입안이 자주 헐거나 입술 언저리에 물집이 잡히는 것도 모두 밥통에 열이 차서 위로 치솟아 오르는 현상입니다. 그럴 때는 밥통의 열을 꺼주는 것이 근본적인 치료에 해당할 것입니다. 그런데 열이 차고 나오는 그 부분들을 그냥 둔채로 밥통의 열을 내리는 것은 시간이 걸리므로 우선 그 부분들에 현상치료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서양의학에서라면 오라메디 같은 것으로 그 주위에 발라주겠지만 우리의학적 방법은 물집이 잡혔거나 헐어 있는 부분에 사혈침으로 찌르고 나오는 대로 피를 짜내는 것 입니다. 그냥두거나 약을 발라서는 물집이 사라지는 데 일주일이상 걸릴 것도 이렇게 피를 내고 나면 2-3일이면 나을 수 있는 것이 우리의학의 신비입니다.
코는 주로 허파에 귀속시켜 생각합니다. 코가 오똑하며 잘 생기고 코 안이 뻥 뚫려 있으면 숨이 잘 드나들어서 아무런 탈이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코가 너무 낮은 사람은 숨이 드나들기가 힘들어 나쁜 기운이 코안에 정체하다 보니 여러 가지 병에 걸리기가 쉽습니다. 어린 아이일 때 자주 코를 만져주고 당겨주어 코를 크게 만들어주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코 안에 염증이 있는 상태를 비염이라고 하며, 코 안에 고름이 고여있는 상태를 축농증이라고 합니다. 비염이나 축농증은 허파가 건강하지 못할 때(주로 병들었을 때) 나타나게 됩니다. 따라서 비염이나 축농증의 현상치료는 수술이나 침을 놓아 치료할 수 있지만 근본치료는 허파를 건강하게 만드는 처방이 이어져야 합니다. 코에서 코피가 자주 나는 것은 몸에 열이 있기 때문입니다.
얼굴이나 머리에서 나타나는 열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필요 없는 몸 안의 열은 언제나 위로 솟아올라 밖으로 차고 나오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머리로 들어가려다 수문장인 편도선에 걸려 편도선이 부은 형태로 나타나거나, 머리까지 들어가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거나, 입안을 헐게 하거나, 입술에 물집이 잡히게 하거나, 혓바늘이 돋게 하기도 하고, 귓바퀴가 벌겋게 달아오르기도 하고, 때로는 코피가 나오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처럼 얼굴이나 머리에서 나타나는 열의 현상은 평소에 혈압이 높거나 과로하여 피로물질이 몸 안에 많이 쌓여있는 사람들에게 많이 나타납니다. 또 평소에 육식을 자주 하여 체내에 열이 많은 사람들에게도 여러 가지 형태의 열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우리의학에서는 귀를 콩팥에 배속시켜 생각했습니다. 귀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병적인 현상은 주로 콩팥과 관련하여 파악할 때 원인을 보다 분명하게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서양의학에서 는 이와 같은 연관체계가 없이 귀의 탈은 귀 자체만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현상은 분명히 파악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내는 데 실패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귀는 얼굴에서 가장 찬 곳입니다. 그런데 귀가 차지 않고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다면 콩팥의 열이 귀로 나타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귀에 물이 차거나 곪거나 귀가 울리는 현상(귀울림)도 주로 콩팥탈에서 오는 편입니다.
이제 얼굴에서 더 아래로 내려가며 시진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목도 시진법의 한 대상이 됩니다. 앞목에는 편도선과 갑상선이 들어 있습니다. 편도선이나 갑상선이 부어있는 모습은 눈으로 쉽게 식별이 가능합니다. 편도선 수술에 대해서는 정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편도선이 우리 몸에서 하는 역할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런데도 서양의학에서는 편도선이 자꾸 붓는 현상이 이어지면 다시는 붓지 못하도록 편도선을 떼어내는 수술을 해버립니다. 그렇지만 편도선이 자주 붓는 이유는 편도선 자체의 문제가 아니고 몸 안에 있는 열이나 세균이 위로 올라가 머리로 들어가려는 것을 막아내려고 애쓰다 자신이 붓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편도선은 우리의 머리와 뇌에 열이나 세균이 침투하는 것을 살신성인의 자세로 막아내는 위대한 파수꾼인 셈입니다. 그런 사실을 무시하며 편도선을 떼어내는 수술을 한다는 것은 머리가 자주 아프다고 머리를 떼어내거나 눈에 충혈이 잦다고 눈알을 빼버리는 것과 같다고 할 것입니다. 편도선이 자주 붓는 이유는 콩팥에 병의 기운이 넘쳐서 열을 발생시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편도선이 부었을 때는 현상치료로는 새끼손가락 손톱뿌리 바깥쪽 아래 2미리 지점을 사혈침으로 찔러 피를 짜내주면 쉽게 가라 앉는 편이며, 근본치료는 콩팥에서 열이 발생하지 않도록 침이나 약을 쓰는 것입니다.
합천에서 우리의학강좌를 하다 머리가 상습적으로 아픈 고등학생을 상담한 적이 있었습니다. 원인을 짚어가다 보니 그 학생이 초등학생 때(3학년) 편도선이 자주 부어오르자 제거수술을 한 것 때문이었습니다. 제거수술 후 몇 년 간은 그런대로 괜찮다가 고등학생이 된 후 입시준비라는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되자 폭식을 하게 되기도 했고 생활도 불규칙해지니 몸안에 열이 많이 차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생긴 열을 차단시켜줄 편도선이 있어야 하는데 없다보니 상습적인 심한 두통에 시달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미 늦었지만 그냥 둘 수는 없어 사혈도 해주고 음식도 줄이고 생활습관도 규칙적으로 하고 한 해가 늦어지더라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며 입시 스트레스에서도 벗어 나는 것이 좋다고 처방을 해주었습니다.
그 외에도 가슴과 배, 유방, 배꼽, 생식기, 항문, 습진이나 무좀이 있는 곳, 피부의 색깔이나 부드럽고 껄꺼러움, 갈라터진 곳, 피부병이 난 곳, 손바닥의 색깔 등을 눈으로 확인하고 원인을 찾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환자 전체의 풍기는 기품이나 풍채나 분위기, 비만정도, 그리고 서있거나 앉아있는 자세 등도 살피면 좋은 진단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아무런 도구나 장비없이 볼 수 있는 영역이 이 정도가 된다는 것은 대단한 것입니다. 자세히 보기만 해도 그 원인을 짚어 낼 수 있는 놀라운 비법이 시진법 속에 담겨있으니 의자라면 누구나 정말 잘 익혀둘 필요가 있을 것 입니다.
이제 현대식 장비를 동원하여 볼 수 있는 영역이 얼마나 되는 지 살펴보겠습니다. 우리의학에 비해 서양의학이 특별히 발전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시진법의 한 부분인 우리 몸 속을 볼 수 있는 기술입니다. 서양의학이 가장 발전했다고 자부해도 좋은 부분이 바로 우리의 몸 안을 볼 수 있는 기계의 개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내시경, 초음파, X-Ray, MRI, CT촬영 등이 그에 해당합니다. 서양의학은 장비들을 동원해 세포의 조직을 분석하는 능력도 뛰어나며, 우리 몸세포 하나만으로도 꼭 같이 닮은 생명을 탄생시킬 수 있는 수준에까지 유전공학은 발전해 있기도 합니다. 각종 전자 장비나 촬영장비를 동원하여 머리 속도 찍어서 볼 수 있고 위나 장도 내시경을 통해 볼 수 있으며, 혈관도 들여다 볼 수 있고, 각종 장부의 상태도 파악하고, 자궁속이나 생식기 안도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서양의학은 기계장비에 너무 많이 의존하다 보니 아무런 장비가 없어도 의자 스스로 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 조차도 놓쳐버리거나 진단하는 능력이 둔화되어 버린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눈만으로 진단이 가능한 것들에 대해 바로 살필 수 있는 능력을 최대화시킨후 그래도 안되는 경우에 최신식 장비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래야만 쉽게 알 수 있는 현상들에 대하여 고가의 장비를 이용하기 위해 들이는 돈도 절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서양의학은 부분만을 볼 뿐 그 부분들이 상호관련을 맺고 있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소홀히 하기 때문에 기계가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나 상호연관성에 대한 설명을 해낼 수 없이 현상은 보지만 그것의 근본원인을 찾아내는 데는 여전히 우리의학의 도움을 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2. 귀로 들어 진단하는 법(청진법 혹은 문진법)
이제 귀로 소리를 들어서 진단하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서양의학이나 우리의학이나 귀로 듣는 진단법은 별로 많이 발전하지 않았습니다. 한 때는 청진기를 목에 걸고 있는 모습이 의사의 상징처럼 비춰진 적이 있었지만 요즘은 병원에서도 청진기를 잘 사용하는 모습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전에는 몸 속 장부의 상태를 직접 보지 못하니 귀로 들어 확인하던 것들도 워낙 눈으로 보고 확인할 수 있는 장비들이 좋아지고 난 뒤 부터는 귀로 들어 진단하는 일을 소홀히 하게 된모양입니다. 그러나 귀로 들어서 진단하는 방법은 여전히 중요한 부분으로 남아있습니다.
귀로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역시 위에서부터 살펴가 보겠습니다. 목소리를 귀로 들을 수 있습니다. 목소리가 맑고 우렁차면 허파를 비롯한 장부가 튼튼하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목소리에 힘이 잘 실려있지 않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라면 허파에 원기가 부족해서입니다. 이런 경우에 아무리 최신식 장비를 목에 들이밀고 사진을 찍어봐도 그 원인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기계가 포착할 수 있는 것은 아직도 우리의학에서 실하다고 표현하는 현상 즉 어디가 헐거나 막히거나 부어 오르거나 염증이 있는 등의 경우에 국한되기 때문입니다. 장부에 좋은 기운이 빠져나가 약해진 상태(허)를 측정하는 데는 비싼 고가장비도 맥을 쓰지 못하는 편입니다. 목소리가 갈라지거나 쉰목소리 혹은 탁한 소리를 내는 것도 과로하거나 목을 과도하게 사용했거나 허파가 약해져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목에서는 숨소리도 들을 수 있습니다. 숨이 고르고 소리가 나지 않으면 정상입니다. 그러나 목에서 가래끊는 소리가 나거나 거친 숨소리가 나는 것 등은 천식이나 기관지염으로 오는 것이며 모두 허파에 병의 기운이 넘칠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가슴에서는 심장의 박동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배에서는 각 장부들에서 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배나 가슴에 가만히 귀를 대고 들을 수도 있겠지만 소리를 수십배로 증폭시켜주는 청진기의 도움을 받는 것이 더 좋습니다. 서양의학을 학습했고 청진기로 진단을 잘하는 의사들에게 어느 부위에 청진기를 대는 것이 좋은지를 몇 차례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대체로 심장의 박동소리를 듣기 위해 염통부근에 대거나 창자의 움직임을 확인하느라 창자 부근에 댄다고 하였습니다. 그 외에는 특별히 대서 확인할 수 있는 곳이 별로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우리의학에서는 우리 몸의 앞쪽에 각 장부로 좋은 기운(원기)이나 나쁜 기운(병기)이 드나드는 곳이 있는데 그곳을 기운이 모인다고 해서 모혈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모혈자리에다 청진기를 대고 나는 소리를 들어보았더니 각 장부마다 독특한 소리를 내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개업을 하거나 일상적으로 환자를 보는 입장이 아니어서 청진기를 활용할 기회가 많지 않아서 더욱 발전시킬 수가 없어 아쉽지만 아직도 청진기를 즐겨 사용하는 의사라면 우리의학의 모혈자리를 잘 익혀서 청진기로 장부의 상태를 잘 알아낼 수 있도록 훈련한다면 병을 진단하는 데 많은 도움을 얻게 될 것입니다.
3. 물어서 진단하는 법(문진)
요즘 종합병원이나 한방병원에 가서 진단하는 모습을 보면 의사나 한의사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너무나 짧아 참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의사를 단독으로 5분 정도 만난다면 특진에 해당될 만큼 의사는 환자에게 시간을 별로 할애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고서 어떻게 환자의 증세를 바르게 진단해서 원인을 찾아낼 수 있을지 염려가 됩니다. 하루중에도 환자의 상태가 서로 다를 수 있으므로 여러차례 환자를 접촉하고 조사하고 살펴보아야 보다 정확한 진단을 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환자의 상태를 환자나 보호자로부터 자세히 들어 보는 것도 대단히 중요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의사들은 문진보다는 비싼 장비를 이용한 검사에로 많은 것을 넘겨버리고 문진에는 최소한의 시간만을 배정합니다. 그러나 저의 10여년 간의 저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모든 진단 가운데 가장 중요한 진단이 바로 물어서 진단하는 방법입니다. 문진이야말로 모든 진단의 바탕 진단이 되어야 합니다. 환자가 말하는 것만이 아니라 의자로서 전문적인 질문을 해 들어가면 다른 검사나 진단을 거치지 않더라도 대체로 60% 이상의 진단을 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뭘 물어보아야 하나요? 우선 환자에게 스스로 이상이 있거나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증세를 다 말해보라고 하고 그것을 기록부에 다 적어갑니다. 대부분의 환자는 자신의 증세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기 때문에 처음에는 한 두가지의 증세만을 이야기 하려 듭니다. 그러나 차분히 물어보면 여기 저기 아픈 곳을 다 말해 줍니다. 그렇지만 그것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문진을 다 하자면 아직도 멀었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는 현재의 증세와 관련된 병력을 확인해야 합니다. 이전에 나타났던 증세와 그에 대해 치료했던 내력도 다 이야기해보라고 합니다. 그러면 어떤 병원에 가서 진료를 몇 번 했으며 무슨 약을 타고 주사를 맞았는지, 또 다른 곳은 얼마나 다녔는지 다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환자들은 자신을 치료하기 위해 서양의학과 동양의학뿐아니라 민간요법이나 굿, 생활건강법 등 안해본 것이 없을 정도로 많이 다녀본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얼마나 많은 병원이나 치료처에서 오진도 많고 잘못된 수술이나 의료사고도 많은지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하여간 현재의 증세와 관련된 병력을 살피는 것은 바른 진단과 치료를 위해 대단히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병력을 살필 때 환자자신만의 병력이 아니라 가족들의 병력을 알아두는 것도 많은 참고가 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의자는 환자에게 되묻기를 해야 합니다. 되묻기란 환자의 생활습관이나 몸의 상태를 의자의 질문을 통해 알아가는 방식입니다. 먼저 환자의 식사습관에 대해 질문합니다. 규칙적인 식사인지, 즐겨하는 음식이 무엇이며 육식이나 채식 중 어떤 것이 중심이 되는지, 양은 얼마나 되며 과식은 안하는지, 밥맛은 좋은지, 식사 때 국물이나 물을 먹는 양은 얼마나 되는지, 잘 씹어 먹는지, 한끼식사에 걸리는 시간 등을 물어봅니다. 밥을 먹기 전에 속쓰림은 없는지, 식사후 더부룩하거나 기분이 언짢아지지는 않는지, 소화는 잘 되는 편인지, 입안이 자주 헐지는 않는지, 윗배가 차지는 않는지 등도 물어봅니다. 이쯤 되면 질문을 통해서 그 환자의 밥통의 상태를 위내시경을 한 것 이상으로 잘 판단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소변습관에 대해 질문합니다. 하루 중 오줌을 누는 횟수는 얼마나 되며, 오줌을 지리거나 요실금 혹은 잔뇨현상은 없는지, 잠자다 오줌누러 가지는 않는지, 한 번에 누는 양은 얼마나 되며, 누기가 힘들거나 누고싶어도 잘 나오지 않는 경우는 없는지, 오줌눌 때 따끔따끔 아프지는 않는지, 오줌의 색깔이나 혼탁한 정도, 냄새와 맛은 어떤지, 장단지가 자주 당기지는 않는지, 좌골신경통은 없는지를 확인합니다. 이런 정도를 알아내면 그 사람의 오줌보의 상태를 웬만큼 감지해서 처방에 참고할 수 있게 됩니다.
세 번째는 대변습관을 알아봅니다. 대변의 횟수와 양, 변비나 설사는 없는지, 똥의 색깔과 냄새와 굵기, 종이로 닦았을 때 묻어나오는 정도, 똥에 피가 섞여나오지는 않는지, 항문에 치질은 없는 지, 창자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거나 아랫배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자꾸 앞으로 허리가 굽어지진 않는지 등등을 확인합니다. 이러한 질문들은 모두 환자의 창자상태를 알아보기 위한 것들입니다.
네 번째는 잠자는 습관을 알아봅니다. 언제 잠자리에 드는지, 잠자는 시간, 깊은 잠을 자는지, 자주 깨는 편인지, 꿈을 자주 꾸지는 않는지, 꿈꿀 경우 꿈자리가 사납지는 않는지, 자다가 손발에 쥐가 나지는 않는지 등에 대해 질문합니다. 이런 질문들은 어떤 장부를 알아보기 위한 것일까요? 초보자는 쉽게 답을 하기가 어렵겠지만 우리의학에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쉽게 답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질문들은 바로 염통의 상태를 알아보기 위한 것입니다. 물론 염통의 상태를 더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고혈압이나 저혈압은 없는지, 뒷골이 당기는 경우는 없는지, 1분간의 맥박 수는 얼마나 되는지, 깜짝깜짝 잘 놀라는 경향은 없는지, 체머리나 수전증은 없는지, 멍이 잘 들지는 않는지 등에 대해서도 질문하면 더 좋습니다.
다섯 번째로는 호흡과 관련된 질문을 합니다. 가슴이 다답하거나 숨이 가쁘지는 않는지, 호흡이 곤란하지는 않는지, 기력은 좋은지, 코에 축농증이나 비염은 없는지, 알레르기나 감기에 잘 걸리지는 않는지, 담배를 피우지는 않는지, 피운다면 얼마나 자주 많이 피는지, 가슴에 따끔따끔거리는 현상은 없는지,목이 잘 붓지는 않는지 등을 확인합니다. 이런 질문들은 모두 허파의 건강상태를 알아보기 위한 것들입니다.
여섯 번째로 간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한 질문들이 필요합니다. 만성피로증후군은 없는지, 신경질이나 짜증이 자주 나지 않는지, 술을 좋아하는지, 좋아한다면 얼마나 자주 마시며 한 번에 마시는 양은 어느 정도인지, 복수가 찬 적은 없는지, 간염에 걸린 경험은, 병원 등에서 측정한 간과 관련된 수치는 얼마나 되는지, 쪽골치(편두통)는 없는지, 옆구리나 옆무릎 등이 아프지는 않는지, 눈에 자주 핏발이 서거나 침침해지는 현상은 없는지 등을 묻습니다.
일곱 번째로는 지라의 상태를 알아보아야 합니다. 당뇨병에 걸린 적은 없는지, 현재의 혈당치는 얼마나 되는지, 병에 대한 저항력은 어느 정도인지, 신경통이나 관절염은 없는지, 한 번 곪은 곳이 잘 낫는지, 물이 자꾸 먹히지는 않는지, 비만을 느끼는 정도는 얼마나 되는지, 키와 체중은 얼마나 되는지 등을 알게 되면 지라의 건강상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덟 번째로 손발이 자주 붓지 않는지, 자고 나면 얼굴이 푸석푸석하고 눈 주위가 붓지는 않는지, 목도 잘 붓고 편도선도 자주 붓지는 않는지, 감기에 잘 걸리고 한번 걸리면 잘 낫지도 않는 것은 아닌지, 이빨이 약하고 잇몸이 잘 붓지는 않는지, 뼈마디가 쑤시는 듯 아프지는 않는지 귀울림이나 귀곪음은 없는지 등에 대해 질문합니다. 이정도면 어떤 장부의 상태를 알아보기 위한 질문인지 눈치채셨을 것입니다. 바로 콩팥의 건강상태를 알 수 있는 것들입니다.
아홉 번째로 여성의 경우에는 생리와 관계된 질문이 필수적입니다. 남성의 건강상태를 오줌발의 굵기와 세기로 어느정도 측정할 수 있듯이 여성의 건강상태는 생리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생리의 주기와 양, 생리기간, 통증의 정도, 색깔, 생리 때의 심리상태, 생리가 음력 그믐에 가까운지 보름에 가까운지, 희발월경은 아닌지, 아랫배가 찬지 따뜻한지 등을 알아봅니다. 생리주기가 당겨지는 것은 몸에 열이 있기 때문이요, 느려지는 것은 몸에 냉이 있어 몸을 차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생리가 그믐에 가까울수록 건강한 생리에 해당하는 편입니다.
지금까지의 여러 질문들에 대해 묻지 않았는데 이정도로 말을 해 줄 환자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들은 이런 것과 관련된 자신의 습관이 현재의 자신의 증세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답변들을 잘 받아적어 두었다가 다음에 그 환자가 다시 왔을 때 다시 같은 질문을 해서 비교해보면 그 사람의 생활습관에 얼마나 변화가 있는지, 그의 장부는 건강해져 가고 있는지를 검토할 수 있는 정말 좋은 자료가 됩니다. 누가 제게도 차분히 이런 정도의 질문을 해서 제 건강을 체크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정도의 질문을 하고 정성껏 답을 하는데는 제법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답변을 얻어낸다면 어떤 종합병원에 가서 최신식 장비를 다 동원해서 얻어낸 결과에 못지 않은 좋은 판단의 근거로 삼을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모든 진단들은 거의 문진의 보조수단 내지는 이미 문진으로 감 잡은 판단을 다시 확인해보는 정도에 불과하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입니다.
4. 맥진법
손을 대서 진단하는 법(촉진 혹은 절진) 손을 대서 진단하는 우리의학의 방법은 크게 두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맥을 짚어 보아 진단하는 맥진이요, 다른 하나는 배의 모혈을 눌러보아 장부의 상태를 확인하는 복진입니다. 둘다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 있는 뛰어난 진단법들입니다. 다른 기계장비나 도구 없이도 어느정도 확실하게 환자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비법이니 필히 잘 익혀두면 좋은 일이 있을 것입니다.
- 맥진이란?
맥진이란 맥을 짚어보아 우리 몸의 장부의 상태를 알아보는 진단의 한 방법입니다. 염통이 펌프질을 해서 온 몸에 피를 보낼 때 오므라들었다 펴졌다 하면서 내는 압력의 세기가 달라지는 데 그것이 온 몸으로 퍼져 있는 핏줄에 전달이 됩니다. 이렇게 전달되는 압력과 느낌을 잘 포착해서 우리 몸의 상태나 장부의 상태를 파악하는 것인데 처음에는 그것의 차이를 자세히 포착하기가 쉽지 않지만 자꾸 연습하다 보면 점차 그 차이를 분명하게 감지해낼 수 있습니다. 옛말에 천명 이상의 맥을 보아야 맥에 대해 어느정도 알 수 있다고 했던 것도 그만큼 맥이 쉽지는 않다는 말인 것 같습니다. 하여간 맥진은 맥에 나타나는 미세한 차이를 감지해서 그 사람의 건강과 질병의 상태를 알아내는 우리의학의 진단에서 중요한 한 몫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맥을 짚는 곳
맥을 짚는 곳은 전통적인 우리의학에 따르면 대체로 양쪽 손목부근입니다. 손목 근처에서 보는 맥을 기구맥(요골동맥이 지나가는 곳)이라고 합니다. 음양맥진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목의 인영맥(목대동맥이 지나가는 곳)에서 맥을 보아 촌맥과 비교해서 장부의 상태를 알아낼 수 있다고도 합니다. 또 다른 부위에서도 맥의 상태를 알 수 있는 여지는 많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복잡한 것을 피하기 위해 우리의학의 전통맥진만을 소개하려 합니다. 기구맥이 있는 부위를 촌구(寸口)라고 하는데, 이 촌구를 다시 셋으로 나누어 촌/관/척(寸/關/尺)으로 구분합니다. 양손목에 있는 이 촌관척 여섯 곳은 제각기 다른 장부의 상태를 알 수 있는 곳입니다.
일반적으로 촌맥에서는 윗불씨(상초)가 있는 곳 즉 가슴의 상태를 알수 있고, 관맥에서는 가온데 불씨(중초) 즉 윗배의 상태를 관찰할 수 있으며, 척맥에서는 아랫불씨(하초) 즉 아랫배의 상태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사람의 몸에 병이 있을 때 위에 있는 병일 경우에는 상초의 맥에서 변화를 느낄 수 있고, 중앙부위라면 중초의 맥, 아래부위라면 하초의 맥에서 변화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을 다시 잘게 나누어 장부에 적용시켜 보면 왼손의 촌맥에서는 염통의 상태를 알 수 있고, 관맥에서는 간의 상태, 척맥에서는 콩팥의 상태를 진단할 수 있습니다. 오른손의 촌맥에서는 허파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고, 관맥에서는 지라의 상태를, 척맥에서는 명문의 상태를 알아낼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강좌를 하다보면 왜 자리를 그렇게 정했느냐고 제게 묻는 분들이 있었는데 수천년 전부터 그렇게 전해내려 왔을 뿐 왜 그렇게 정했는지를 말해주는 자료를 발견하지 못해서 저도 그냥 그 자리들을 사용해서 맥을 보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의학을 하면서 그런 종류의 질문은 너무나도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왜 우리 몸을 소우주라고 생각하는지, 왜 숨길들이 그렇게 나 있다고 정했는지 등등등. 하여간 우리 조상들이 전해준 지혜에 대해 이유를 묻고 들어가는 것도 연구자로서 해야할 일이요, 그 지혜를 잘 활용하는 것도 후대의 연구자가 해야할 일입니다.
맥 짚는 방법
우선 환자나 의자가 모두 편안하고 바른 자세를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반지나 시계 목걸이 등은 모두 빼서 가지런히 잘 둡니다. 맥을 짚히는 환자의 손이 자신의 심장 높이와 같거나 약간 낮게 하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맥을 짚는 부위에 손가락을 갖다 댑니다. 맥을 보는 의자의 손은 오른손이나 왼손 어느 것이나 상관 없습니다. 자신이 더 민감하고 섬세하게 잘 감지할 수 있도록 훈련한 손이면 더욱 좋습니다. 손가락은 언제나 둘째가 촌맥에 가 있게 하고, 셋째가 관맥에, 그리고 넷째가 척맥에 올라가 있도록 놓는 것이 좋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스스로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맥을 볼 준비가 다 되었으면 더욱 마음을 가다듬과 손끝으로 전해오는 맥을 느끼면 됩니다. 맥박수도 재보고, 세부위가 다 같은 느낌을 주는 다른지도 비교해가면 됩니다. 몇 번만 연습하면 기본적인 맥에 대한 상식을 가질 수 있게 되는데 그러고 나면 한방병원에 가더라도 맥진을 하며 들 려주는 한의사들의 상투적인 말에 휘둘리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맥박수와 건강
맥진을 할 때 초보자도 놓치지 않을 만큼 쉬우면서도 아주 중요한 첫단계는 맥박수를 가지고 진단하는 것입니다. 맥박수를 잴 때는 촌관척 어느 곳이든 맥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에 손을 대고 30초 혹은 1분간 조용히 눈을 감고 맥박수를 세어 보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이런 것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한 번도 차분히 자신의 맥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일지라도 맥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에 손을 얹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조용히 눈을 감고 자신의 맥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1분에 맥박수가 얼마나 나오나요? 혼자가 아니라면 서로 상대의 맥을 잡아 보아도 좋습니다. 자신의 맥과는 또 다른 맥의 느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이 이렇게 나와는 다른 맥을 가지고 있구나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맥이 다르다는 말은 그 사람의 마음과 생각, 생리적인 상태와 몸의 상태들이 나와 다르다는 말입니다.
건강한 사람은 보통 1분에 70박 전후로 염통이 뛰는 편입니다. 오차가 5박 정도 있다고 하더라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오차가 7-8박을 넘어가기 시작하면 약간의 이상 증세라고 보아도 틀리지 않습니다. 대개 몸이 차거나 원기가 모자라는 사람은 60박이하로 내려가고, 몸에 열이 있거나 병기가 있는 사람의 맥박수는 80박 이상으로 올라가는 편입니다. 물론 예외도 있습니다. 평소에 운동을 많이 하는 운동선수나 마라톤 선수는 염통의 펌프질이 뛰어나서 1분에 50-60번만 박동을 해도 온몸에 피를 돌리는데 넉넉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보면 60박 미만은 몸이 차거나 원기허약체질이라고 판단해도 무리가 없으며, 80박 이상이면 지금 몸에 열이 있거나 병기를 지니고 있다고 판단해도 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맥박이 40박 미만이거나 120박 이상이 되면 임종에 가깝다고 생각하므로 초보자는 치료를 위해 쉽게 손을 대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제가 이런 강좌를 한 후 어느 주부에게서 급한 전화가 왔습니다. 첫돌을 지난 정도의 자신의 아기의 맥을 재보니 120박이 넘어가더라는 것입니다. 임종이면 어떻게 하느냐고 울상을 짓는 모습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아이들은 어른에 비해 맥박수가 많은 편입니다. 아기들은 성인에 비해 30박 이상이 높은 편이며, 초-중학생 정도도 10박 이상 높게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작은 심장으로 펌프질을 여러번 해야 온 몸에 피를 제대로 돌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맥의 느낌과 종류
맥의 느낌에 따라 몇 종류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먼저 떠오르는 맥(부맥)과 가라앉는 맥(침맥)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맥의 깊이의 차이로 구분하는 것입니다. 떠오르는 맥은 맥이 피부 가까이까지 떠올라 있는 상태여서 손을 살짝 대기만 하더라도 쉽게 느낄 수 있는 맥으로서 지금 막 감기나 몸살이 들려고 하는 때 잘 나타납니다. 병의기운이 내몸에 침투를 막 시작했을 때 느낄 수 있는 맥입니다. 그에 비해 가라앉은 맥은 맥이 몸 안으로 가라앉아 버려서 힘을 줘서 꾹 눌러야만 겨우 느낄 수 있는 맥인데 오랜 병을 앓아서 원기가 쇠잔해졌을 때 나타나는 맥입니다.
다음으로는 강한 맥(실맥)과 약한 맥(허맥)을 구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맥을 짚었을 때 힘을 세게 느낄 수 있는 맥이 있고, 아주 약한 느낌을 주는 맥이 있습니다. 건강한 사람의 맥이 강하게 느껴진다면 괜찮지만 병기가 있는 사람에게서 그런 강한 맥을 느끼게 되는 것은 그 부위와 관련된 장부에서 탈이 나 있기 때문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약한 맥은 역시 원기가 허한 사람에게서 많이 나타나며, 촌관척 중에서 가장 약하게 나타나는 부위의 장부가 특히 원기가 약하다고 판단해도 괜찮습니다.
세 번째로는 빠른 맥(삭맥)과 느린 맥(지맥), 그리고 불규칙적인 맥(부정맥)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맥이 한 번 뛰고 난 후 다음 맥이 이어지는 시간의 간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인데 맥박수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이미 설명했듯이 빠른 맥은 병기가 활동중인 것으로 볼 수 있고, 느린 맥은 원기가 모자라는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불규칙적인 맥은 심리적인 압박감이나 충격으로 인해 염통이 차분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네 번째로는 굵은 맥(대맥)과 가는 맥(소맥)을 구별하는 것이 좋습니다. 굵은 맥은 마치 큰 파도처럼 손 끝에 와서 부딪히는 느낌이 큰 맥을 말하며, 가는 맥은 마치 물고기가 입질을 하듯 손 끝에 와서 닿는 부위가 작은 맥을 밀합니다. 이것은 핏줄이 늘어나는 차이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로는 매끄러운 맥(활맥)과 껄끄러운 맥(색맥)입니다. 매끄러운 맥은 손 끝에 와서 닿는 느낌이 매끄럽게 느껴지는 데 비해, 껄끄러운 맥은 껄끄럽게 느껴지는 맥입니다. 이것은 피가 진행하는 상태가 순조롭거나 그렇지 못할 때 나타나는 맥입니다.
-건강한 맥과 정상적이지 않는 이상맥
완전히 건강한 맥을 찾기는 쉽지 않겠지만 일반적으로 건강한 맥이란 너무 뜨지도 않고 가라앉지도 않으며, 느리거나 빠르지 않고, 규칙적이며, 너무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는 적당한 굵기를 지닌 맥, 지나치게 매끄럽게나 껄끄럽지 않고 부드러운 맥, 너무 강하거나 약하지도 않은 맥 즉 평맥을 말합니다. 평맥이 아닌 다른 맥은 모두 이상을 가진 맥으로 보고 진단을 계속하다 보면 처음에는 평맥을 크게 벗어난 맥만 잘 느껴지다가 점차 평맥과 아주 작은 차이를 지닌 이상맥도 잘 느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맥에 대해 가져야할 자세
서양의학에서는 이 맥진에 대해서도 일부분만 인정할 뿐 전체를 인정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면 피의 압력(혈압)의 차이를 통해 고혈압이나 저혈압을 가려내긴 하지만 손목에 있는 맥을 짚어 보고서 그 사람의 기력의 정도나 장부의 상태나 심리상태까지도 알아낼 수 있다는 사실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학에서 보면 어떤 사람의 심리상태나 생리적인 변화는 얼굴에도 전해집니다. 가까운 사이에는 눈빛만 보아도 그사람의 현재 기분을 정확히 알아낼 수도 있습니다. 그처럼 얼굴에 나타나는 변화를 잘 관찰하기만 해도 그 사람의 건강상태나 심리적, 생리적인 변화를 어느정도 감지해낼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은 시진에 익숙해지면 가능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와 같이 얼굴에도 나타나듯이 심장의 박동에도 변화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밥을 먹기 전과 밥먹고 난 후의 맥이 다르고, 기분이 좋을 때와 기분이 나쁠 때의 맥이 달라집니다. 아침에 재보는 맥과 한낮이나 저녁의 맥이 서로 다르며, 커피 한잔을 마신 뒤의 맥도 전혀 다라집니다. 공포를 느낄 때나 근심 걱정이 있을 때의 맥이 다르고 여성의 생리 때도 맥은 달라집니다. 그래서 외양으로는 감추려고 무진 애를 쓰더라도 맥을 짚어보면 내면의 심리상태나 생리적 변화까지 감출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됩니다.
맥진의 결과를 잘 이용하기 위해서는 하루에도 시간을 달리하며 몇 번을 해보아서 일정하게 나타나는 결과를 이용해야 하며, 주간 별로나 월별, 혹은 계절별로 정기적으로 체크를 해서 나타나는 분명한 결과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우리의 심장이 의외로 아주 민감하기 때문에 커피 한잔이나 기분나쁜 말 한마디에도 영향을 받기 때문에(거피 한잔은 한 시간 이상 평소보다 맥박이 10박이상 올라가게 만듭니다) 누군가로부터 단 한번 맥진을 받아본 것에 너무 의존해서는 결코 안됩니다. 그리고 우리의학의 진단법에는 맥진밖에 없는 줄 알거나 맥진이 최고인 줄로 생각하는 분위기 때문에 맥을 모르는 일반인들에게 상투적인 표현(아이구 젊은 사람의 맥이 이래서 어떻게 합니까? 칠 팔십 노인네보다 더 맥이 약하네요. 하나도 아니고 두세 장부에 열이 찾으니 특별처방이 필요하겠습니다. 등등)을 자주 해서 상술에 이용하는 비양심적인 의자가 더 이상 있어서도 안될 것입니다. 아무튼 우리의학이 널리 퍼져나가 누구나 맥에 대한 기본 상식을 갖추고 있으면서 아무 도구가 없더라도 자신이나 가족의 건강상태를 잘 진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4. 복진법(腹診)
우리의학의 진단법 가운데 아주 뛰어난 진단법이면서도 한의학 전문가들에게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배를 눌러 진단하는 복진법입니다. 배와 가슴에는 우리 몸 안의 중요한 장부들이 다 자리하고 있어서 그 장부들과 관련된 자리를 정확하게 누르기만 하면 그 어떤 진단보다도 확실하게 장부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열심히 이용해왔지만 오늘날에는 그 명백조차 사라져가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이런 복진의 방법도 전문가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조금만 배우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으며 대신 그 진단 능력은 아주 뛰어난 편입니다.
복진을 하는 자리
복진을 하는 자리는 우리 몸의 앞쪽으로 나 있는 각 장부의 모혈들입니다. 모혈이란 원기나 병기가 각 장부로 드나드는 자리를 말하는데 우리 몸의 진단과 치료에 아주 많이 쓰이는 자리입니다. 몸 뒤쪽으로 나 있으면서 원기나 병기가 드나드는 자리를 유혈이라고 하는데 유혈 역시 진단과 치료에 참 많이 쓰이는 좋은 경혈들입니다. 몸 뒤쪽 유혈들을 눌러 진단하는 방법을 배진(背診)이라고 하며, 전문가들이 가끔 이용하기도 하지만 복진에 비해 자리를 찾거나 반응을 감지하기가 어렵고 정확성이 떨어지는 것 같아 이 책에서는 복진에 대해서만 소개하려 합니다. 모혈의 위치는 그림을 참조하며 스스로의 몸 앞쪽에서 잡아보시기 바랍니다. 이때 자기 몸의 길이를 재게 되는데 몸의 길이는 객관적인 잣대로 재지 않고 자신의 몸의 길이로 재야 합니다. 누구나 주먹을 쥔 상태에서 가운데 손등쪽 가운데 손가락 첫마디의 길이를 재어보면 그것이 자신의 두치에 해당합니다. 저는 그 길이가 5.6cm이므로 제 몸의 한치는 2.8cm인 셈입니다.
배꼽에서 두치 좌우에 대장의 모혈(천추)을 찾을 수 있으며, 배꼽과 옆구리 선의 중앙에 지라의 모혈(대횡 혹은 장문)이 있고, 배꼽 아래 두치에 세불씨의 모혈(석문)이 있고, 세치 아래에 소장의 모혈(관원)이 있으며, 네치 아래에 오줌보의 모혈(중극)이 있습니다. 다시 위로 올라가 배꼽과 명치의 중간에서 밥통의 모혈(중완)을 잡을 수 있으며, 그곳에서 양쪽 갈비뼈와 만나는 지점에서 쓸개의 모혈(일월)을 찾을 수 있고, 일월에서 한치정도 명치쪽으로 간 곳에서 간의 모혈(기문)을 잡습니다. 염통의 모혈(거궐)은 명치끝에서 취하며, 양쪽 젓꼭지 사이 혹은 가슴의 한복판에서 염통싸개(심포)의 모혈(전중)을 잡고, 양쪽 어깨뼈가 움푹 들어간 자리보다 한치 아래에서 허파의 모혈(중부)을 찾아냅니다. 마지막으로 옆구리쪽에서 갈비뼈가 끝나는 지점에서 콩팥의 모혈(경문)을 잡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몸 가운데 선에 있는 것들은 모혈이 하나씩 밖에 없지만 몸 양쪽으로 나뉘어진 자리들은 모혈이 둘씩입니다. 그래서 복진으로 눌러보아야 할 자리는 모두 열 여덟곳이 되는 셈입니다.
-복진의 방법
복진을 하기 위해서는 대상자를 반듯이 눕게 하고 편안한 마음을 가지게 합니다. 의자의 손이 찬 상태에서 복진을 하는 것은 별로 좋지 않으므로 손바닥을 비벼서라도 따뜻하게 한 후에 진단을 시작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먼저 환자의 옷을 걷어올린 후 가슴과 윗배와 아랫배의 온도를 확인합니다. 바깥 온도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빨리 재는 것이 좋습니다. 가슴을 윗불씨, 윗배를 가온데 불씨, 아랫배를 아랫불씨라고 하므로 세곳의 불씨의 상태가 어떤가를 가장 먼저 살피는 것입니다. 불씨가 꺼져 있으면 대체로 차게 느껴집니다. 윗불씨가 꺼져 있으면 염통이 약한 편이며, 가온데 불씨가 꺼져 있으면 밥통이 허하다고 판단하며, 아랫배가 차면 자궁도 덩달아 차고 소장에도 병기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음으로는 배꼽의 생김새를 봅니다. 배꼽이 깊을수록 튼튼한 편이지만 살이 너무 쪄서 배꼽이 묻히는 것은 별로 좋지 않습니다. 배꼽이 얕을수록 원기가 약하다고 판단해도 됩니다.
세 번째로는 배에 가로금(횡선)이 없는지를 살핍니다. 가로금이 있다면 그 금이 지나가는 부위의 장부에 이상이 생겼다고 보아도 됩니다. 잘못된 자세가 오래지속되면 가로금이 생기게 되는 데 탈이 깊을수록 가로금도 굵고 깊어지는 편입니다. 네 번째로 전체적인 배의 모양과 상태를 살핍니다. 우리의학에서는 일반적으로 얼굴과 배의 모습이 서로 닮은 꼴이라고 생각합니다. 양줄기의 끝에 있는 코는 남성의 생식기와 닮았고, 음줄기의 끝에 있는 입의 모양은 여성의 생식기와 닮았다고도 생각합니다. 배의 모양과 상태가 건강해 보이면 좋지만 그렇지 않고 병적인 느낌을 주거나 약해 보이면 이상을 잘 관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드디어 본격적으로 모혈을 눌러보아 해당 장부의 건강상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때 환자와 의자가 서로 호흡을 맞추는 것이 좋습니다. 숨을 들이마셨다 내쉴 때 엄지손가락 앞쪽 끝마디 두덩으로 지그시 누르면 됩니다. 갑작스럽게 힘을 주지 말고 서서히 힘을 주거나 체중을 실어 눌러 보면 환자의 반응이 나타납니다. 등가죽에 닿을 정도로 다 내려가도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것이 정상이며, 조금만 눌러도 심하게 아파하며 비명을 지를 정도가 되면 실한 것이며, 아프기는 하나 참을 만한 정도는 허로 판단해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