췌장암은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어려운 암이다. 가장 큰 이유는 초기에 발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췌장은 위 뒤쪽 깊숙한 곳에 있어 암이 생겨도 눈에 띄는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복통이나 체중 감소, 황달 같은 증상이 나타났을 때는 이미 암이 상당히 진행된 경우도 있다.
실제로 췌장암의 절반 이상은 다른 장기로 전이된 뒤에 발견된다. 그래서 최근 암 연구자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한 새로운 접근법이 있다. 바로 ‘암 차단’(cancer interception)이다.
암을 발견한 뒤 없애는 것이 아니라, 암이 되기 전에 막는다
지금까지 암 치료는 대체로 이런 순서였다.
암 발생 → 암 발견 → 수술·항암치료 → 재발 방지
하지만 암 차단 전략은 출발점이 다르다.
암이 되기 전의 이상 조직 발견 → 암으로 진행하기 전에 치료.
즉, 자동차가 사고가 난 뒤 수리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위험 요소를 제거하는 것과 비슷하다.
췌장에도 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비정상적인 조직이 생길 수 있다. 연구자들은 이런 조직을 일찍 찾아내고, 암으로 진행하기 전에 제거하거나 약물로 억제할 수 있는지를 연구하고 있다.
왜 ‘조기 발견’이 그렇게 중요한가?
췌장암은 일찍 발견하면 상황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췌장암이 아주 초기 단계에서 발견됐을 때 5년 생존율은 80%를 넘을 수 있다. 반면 이미 다른 장기로 퍼진 뒤 발견되면 치료가 훨씬 어려워진다.
문제는 췌장암의 초기 증상이 매우 모호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무작정 검사를 많이 하는 방법보다는, 췌장암 위험이 높은 사람을 집중적으로 관찰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2만 명을 추적하는 대규모 연구
대표적인 PRECEDE 연구는 이 연구는 가족 중 췌장암 환자가 있거나, 췌장에 특정한 이상 조직이 있거나, 유전적으로 췌장암 위험이 높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데, 목표는 무려 2만 명이다.
현재까지 1만2천 명 이상이 연구에 참여했고, 그중 50명 이상에서 췌장암이 발견됐다. 중요한 것은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아주 초기 단계에서 암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앞으로 참여자들의 혈액과 CT 등 영상 자료를 이용해 새로운 조기진단 방법도 시험할 계획이다.
혈액검사와 인공지능도 활용한다
앞으로 기대되는 방법 중 하나가 혈액검사이다. 암세포가 몸속에 생기면 혈액 속에 미세한 변화가 나타난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변화를 찾아내 췌장암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혈액검사를 개발하고 있다.
또 하나는 AI다. CT 같은 영상에서 사람이 눈으로 쉽게 발견하지 못하는 아주 미세한 변화를 AI가 찾아낼 수 있는지 연구하고 있다.
혈액검사 + 영상검사 + AI 분석을 결합해 암이 눈에 띄게 커지기 전에 위험 신호를 포착하는 것이 목표이다.
발견뿐 아니라 ‘치료’도 더 일찍 시작한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이 바로 암 차단 전략이다.
최근 췌장암 치료에서 주목받는 표적이 KRAS라는 단백질이다.
KRAS는 세포의 성장 신호를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데, 특정 변이가 생기면 세포가 지나치게 성장하면서 암 발생에 관여할 수 있다.
2026년 8월 미국 FDA는 진행성 췌장암 치료제로 다라손라십(daraxonrasib)을 승인했다. 이 약은 KRAS와 관련된 암 성장 신호를 차단하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연구자들은 여기서 한 가지 새로운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다.
“이미 크게 자란 암을 치료하는 데 사용하는 약을, 암이 완전히 진행되기 전에 사용할 수 없을까?”
동물실험에서는 가능성이 보였다
KRAS 변이를 가진 생쥐를 이용해 이 가능성을 시험했다.
생쥐의 췌장에 아주 작은 전암성 병변이 생겼을 때 KRAS 관련 암 촉진 신호를 차단하는 약물을 투여했다.
그 결과 치료를 받은 생쥐의 생존이 개선됐다. 상당히 흥미로운 결과이지만 아직 생쥐 실험이다.
사람에게 똑같은 효과가 나타나는지는 앞으로 임상시험을 통해 확인해야 한다. 사람에게 언제, 어떤 환자에게, 어느 정도의 약을 사용해야 하는지 알아내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췌장암 정복’이라고 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이번 연구를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현재 연구는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① 위험이 높은 사람을 정기적으로 관찰하고
② 혈액검사와 AI 등을 이용해 암을 최대한 일찍 발견하고
③ 암이 되기 전 또는 아주 초기 단계에서 치료하는 것
이 세 가지가 실제 환자의 생존율을 얼마나 높일 수 있는지는 아직 임상시험을 통해 검증해야 한다.
특히 일반인이 혈액검사나 CT를 자주 받는다고 해서 췌장암을 확실하게 예방하거나 조기에 발견할 수 있다는 의미도 아니다. 현재 연구의 중심은 췌장암 위험이 높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집중적인 감시와 연구이다.
암 치료의 개념이 바뀔 수 있다
이번 연구가 흥미로운 이유는 새로운 약 하나가 등장했다는 데만 있지 않다. 더 중요한 변화는 암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암이 생기면 찾아내서 제거하는 것이 중심이었다.
앞으로는 “암이 생겼는가?” 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변화가 시작됐는가?”를 찾아내고, 그 진행을 차단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췌장암처럼 조기 발견이 특히 어려운 암에서는 이런 접근이 더욱 중요하다.
다만 아직은 가능성을 보여주는 연구 단계이다. 조기진단 기술과 새로운 표적치료제가 실제 환자의 생존율을 크게 높일 수 있을지는 앞으로의 임상시험이 결정하게 될 것이다.
그래도 췌장암 연구에서 한 가지 분명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암을 발견한 뒤 싸우는 것”에서 “암이 커지기 전에 가로막는 것”으로.
췌장암 연구자들이 기대하는 새로운 방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