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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호현낙선
믿음의 내진 설계 시46:1-7, 골2:6-7
미국 서부는 지진대이기 때문에 아이들도 학교에서 수시로 지진 대비 훈련을 한다고 합니다. 학교에서는 비상장비와 식량을 늘 준비해 놓습니다. 하루는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의 지진학 교수가 텔레비전에 나와 지진 대비책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지진이 언제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진을 대비한 사람에게 지진은 그렇게 두려워할 일이 아닙니다.”
최근 들어 비교적 지진의 안전지대라고 생각하고 있는 우리나라에도 경주와 포항에서 연달아 지진이 일어나 지진에 대한 두려움을 주고 있습니다. 성경의 예언대로 종말의 때의 현상 가운데 하나가 처처에 많은 지진이 일어나고 있음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지진 빈도의 통계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언의 말씀처럼 주님 재림의 때는 아무도 모르지만 재림의 때가 가까워 오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구원받고 재림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재림은 결코 두려워할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재림은 준비하고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소망이고, 기쁨이며, 완전한 구원입니다. 그러나 구원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두려움이고, 죽음입니다. 세상에는 우리의 평안을 빼앗아가는 두려움이 많이 있습니다. 평안을 빼앗기는 이유는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혹은 영원히 닥치지 않을지 모르는 쓸데없는 일을 걱정하면서 살 것이 아니라 철저히 준비한 다음 그 이후의 일은 하나님께 맡기고 사는 것이 지혜로운 일입니다. 준비한 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평안합니다. 모든 것을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께 맡기는 자는 평안합니다. 평안은 준비하고 맡기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종말의 때를 잘 준비하며 삽니다. 금년 한 해도 어느새 흘러가 끝자락에 와 있습니다.
주님 오심을 기다리는 대강절 첫 주일에 두 본문을 중심으로 “믿음의 내진 설계”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성도는 믿음의 설계를 잘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의 사람으로, 우리 구주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사람으로 믿음의 설계를 잘 해야 합니다. 구약 본문 시46:4 에,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 곧 지극히 높으신 자의 장막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시내(강)가 흐른다고 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도성을 기쁘게 하는 원인이 된다고 했습니다. 요7:38에서 예수님은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생수의 강"이란 성령 충만한 삶, 하나님의 사랑이 넘치는 삶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생수의 강에 대한 상징적인 이야기가 나오는데, 에스겔 47장에서는 물이 성소(聖所)에서 흐르기 시작했다고 말씀합니다. "이 성소에서 흐르기 시작한 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면 죽은 물이 살아 날것이다. 이 강물이 흘러가는 모든 곳에서는 온갖 생물이 번성하며 살게 될 것이다. 이 물이 사해로 흘러 들어가면, 그 물도 깨끗하게 고쳐 질 것이므로, 그곳에도 아주 많은 물고기가 살게 될 것이다. 강물이 흘러가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모든 것이 살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놀라운 역사입니다. 이 말씀은 복음의 비전입니다. 복음의 핵심은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란 뜻입니다. 구약의 여호수아(예수의 히브리 식 이름)가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한 구원자 역할을 했듯이 신약의 예수께서는 우리의 인생을 죄의 종노릇하는데서 하나님을 마음껏 섬길 수 있는 자유의 영토로 우리를 인도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 그 이름은 천지에 있는 이름 중 가장 귀하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높은 존귀한 이름입니다. 모든 이들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세세토록 받기에 합당한 이름입니다. 이 생명 되신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영적 생명이 주어지게 되고, 주님이 주시는 생수로 인해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됩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영생에 이르게 하는 샘물이 될 것이다"(요 4:14).
이 예수님을 믿음의 기초로 삼아야 아무리 큰 지진이 나도 견고하여 흔들림이 없습니다. 신약 본문 골2:6-7에서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믿음에 굳게 서라”라고 했습니다.
건물은 기초와 뿌리가 생명입니다. 이것이 약하면 아무리 잘 지어놓아도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조금만 지반이 흔들리면 곧 금이 가고 무너지게 됩니다. 두바이에 새로 건축된 160층 고층 건물이 완성되었습니다. 높이가 830 m나 됩니다. 만일 기초가 부실하다면 어떻게 될까요? 며칠이나 지탱할 수 있겠습니까? 학문도 기초가 중요하고, 사람의 됨됨이도 기본이 잘 되어 있어야 하고, 운동도 기초가 중요하고, 예술도 기초가 잘 되어 있어야 하듯이 신앙도 기초와 중심이 부실하면 흔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믿음에 굳게 서라고 했습니다. 이 기초가 잘 못 되어 있으면 무슨 섭섭한 소리만 들어도 그대로 시험 들게 되고, 넘어지게 되고, 흔들리게 됩니다. 기분만 나빠도 신앙이 무너지기도 합니다. 이단의 무슨 소리를 들으면 솔깃해 하고 죽는 길인지도 모르고 그냥 따라갑니다. 왜 그런가 하면 기초와 중심이 부실해서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의 기초를 돈이나 명예나 권세나 세상 연락이나 헛된 철학이나 어떤 사람에게 두지 말고 오직 예수님을 믿는 견고한 믿음으로 기초를 삼고, 하나님을 잘 경외하는 신앙의 사람으로 살기를 소망하면서 믿음의 설계를 하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됩시다. 옛날에 한 어릿광대가 있었습니다. 그가 어느 날 임금님 앞에 가서 임금님을 웃겼습니다. 임금님은 지팡이 하나를 주면서“ 이것을 가지고 있다가 너보다 더 웃기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에게 주라”고 했습니다.
몇 년이 지난 후에 임금님이 죽게 되었는데, 죽음의 준비가 안 되어있어서 “나 죽을 준비가 안 됐는데, 안됐는데” 했답니다. 이 소문을 들은 어릿광대가 그 임금님을 찾아가서 “임금님, 이 지팡이를 가지세요.” 하고 지팡이를 주었습니다. 그러자 임금님은 “ 이놈아, 이게 무슨 짓이냐?” 하고 물었습니다. 어릿광대는“임금님, 제가 보기에는 죽을 준비도 안하고 살아오신 임금님이 세상에서 제일 웃기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했답니다. 세상에서 제일 어리석고 웃기는 사람은 죽을 날이 있음을 뻔히 알면서도 죽음에 대한 준비가 없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죽음의 침상에 눕게 되는 날 후회의 눈물을 흘리게 될 것입니다. 영원한 고통 가운데서 이를 갈며 슬피 울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믿음의 설계를 잘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또한 설계대로 시공을 해야 합니다.
설계가 아무리 좋아도 설계대로 시공하지 않고 싸구려 재료로 쉽게 시공을 한다면 그 건물은 무너지게 되고 맙니다. 신약 본문에 “그 안에서 행하되 ^^^, 교훈을 받은 대로 ^^ 바울은 이미 골로새 교회 안에 거짓된 가르침으로 성도들을 미혹하는 자들이 있음을 알고 염려했습니다.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이 진리의 말씀을 따라 살지 않고, 거짓 교훈에 속게 될까봐 걱정한 나머지 이 편지를 쓰게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예수 안에서 뿌리를 박으라, 그리고 예수 안에서 행하라”고 말씀합니다. 골로새교회는 에바브라가 복음을 전함으로 시작된 교회입니다. 한참동안 교회가 든든히 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헛된 철학을 숭배하는 영지주의자들이 들어왔습니다. 초대교회 시대에 가장 교회를 혼란에 빠트린 사람들이 영지주의자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를 무력화 하였고 예수의 구속을 경시하였습니다. 천사와 정령을 숭배하고 극단의 금욕생활을 강조하는 신흥 율법주의자들입니다. 하나님과 세상의 중재자는 예수가 아니고 우주의 정령이라고 말합니다. 선한 영으로부터 지혜와 지식을 얻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이 세상의 가장 큰 신비는 예수님을 아는 일입니다. 그 예수 안에 모든 능력과 구원의 힘과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다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알고 믿고 신뢰하는 일 그 자체가 가장 큰 신비입니다. 그런데 이단들은 예수를 경시하고 부정하고 구속의 의미를 축소합니다. 이단의 공통점은 하나님이나 성령은 건드리지 않습니다. 하나같이 예수를 건드립니다. 예수는 인간임을 말하고 신성을 축소시킵니다. 그리고 새로운 이론을 내놓아 혼란을 야기 시킵니다. 구원은 예수만 믿어가지고는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다른 요소가 더 필요하다고 덧붙입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붙들어야 할 복음이 아니라 다른 복음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1:6-9에서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했습니다.
어떤 강진에도 끄떡없이 견딜 수 있는 설계를 내진 설계라고 하는데, 이 설계대로 시공하는 건축가와 같이 복음대로 믿고 따르는 자가 심판을 견디고 구원을 받게 됩니다. 기독교는 처음부터 예수님을 '주'라고 불렀습니다. 특히 부활하신 예수님을 주라고 부름으로 초대교회는 예수에 대한 그들의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라고,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라고 베드로는 선포했습니다. 바울 역시 빌립보서에서 증거 합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오직 나의 구주는 예수님 밖에 없나이다. 나의 소망은 나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님 밖에 없나이다. 예수님만이 나를 하나님 아버지께 나가게 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유일한 길이 되시나이다.”라고 고백하는 성도가 됩시다. 뉴욕 한 거리에서, 풍선 장수가 풍선을 팔고 있었습니다. 장사가 안 될 때면, 그는 풍선을 하나씩 날려 보내곤 했습니다. 풍선이 하늘로 떠오를 때마다 사람들이 모여들어, 잠시 동안은 장사가 잘 되곤 했습니다. 그는 각기 다른 색깔의 풍선을 날려 보냈습니다.
처음엔 하얀색, 다음엔 빨간색, 그리고 노란색의 풍선을 날려 보냈습니다. 잠시 후, 한 흑인소년이 풍선 장수를 올려다보며 질문했습니다. “아저씨, 검은 풍선도 하늘로 나를 수 있나요?” 풍선 장수는 어린 흑인 소년을 내려다보며, 동정심과 이해심이 넘치는 말을 했습니다.
“얘야, 풍선이 떠오르고 안 떠오르고는 색깔이 아니라, 풍선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란다.” 풍선을 떠오르게 하는 것은, 풍선의 색깔이 아니다. 풍선 안에 있는 헬륨 가스다. 그렇습니다. 우리를 떠오르게 하는 것은, 구원 받게 하는 것은 우리의 외모가 아닙니다. 우리의 내면에 무엇이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내 안에 생명 되신 예수님이 계시면, 그 분이 나를 통치 하시면 내 안에 천국이 이루어지고, 영생 얻는 하늘 후사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의 말씀대로 믿고 행하는 복음 중심의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그 바른 믿음 안에 거할 때 안전합니다.
구약 본문 시46:1-3에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했습니다. 세상을 살아갈 때 많은 사람들이 매우 두려워하며 살고 있습니다. 실패할까봐 두려워하고, 자녀들이 잘못될까봐 두려워하고, 교통사고 날까봐 두려워하고, 재난을 당할까봐 두려워하고, 고독을 두려워하고, 늙는 것을 두려워하고, 나쁜 병이 걸릴까봐 두려워합니다. 사랑하는 이와의 사별을 두려워하고,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사람들은 살면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대비하며 살아갑니다. 비가 오면 우비를 입거나 우산을 씁니다. 햇볕이 쨍쨍 내리쬘 때는 더위와 해로운 적외선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서 선크림을 바르고 양산을 씁니다. 혹시 모를 질병에 대비하기 위해 보험을 들고, 노후를 위해 저축을 합니다. 적의 공습에서 살아남으려면 방공호로 피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에는 우산도, 양산도, 썬크림도, 보험도, 저축도, 방공호도 필요하지만 그런 것들이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하는 일들이 세상에는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주님만이 영원한 피난처가 되십니다. 주님만이 언제든지 우리를 도우실 수 있는 분입니다. 주님 안에 있으면 아무도 정죄할 자가 없습니다. 아무도 대적할 자가 없습니다. 세상을 이길 수 있게 됩니다. 죽음의 두려움도 이기게 됩니다.
주님은 우리의 삶 가운데 함께 계시며 나의 힘이 되시며, 지혜가 되시며, 보호자가 되시며, 안내자가 되시며, 위로 자가 되시며 구원자가 되십니다. 스코틀랜드의 남극탐험대 대장이었던 베어드는 탐험대원들을 이끌고 남극에 도착했습니다. 캠프를 치고 혼자서 무전기를 들고 남극의 꼭지 점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별안간 휘몰아치는 한파가 그를 덮쳤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낮아진 기압 때문에 손에 쥐고 있던 무전기의 건전지가 폭파되어 연락이 두절되고 방향마저 잃어버렸습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손발을 움직일 수 없게 되고 추위로 인해 그의 몸은 서서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마비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빙판 위에 주저앉았습니다. ‘이제는 죽었구나!’ 라고 생각하는 순간 죽음의 그림자가 자신에게 드리우는 것 같았습니다. 심장마저 얼어붙어 버린다고 느끼는 절망의 순간에 갑자기 단어 하나가 생각났습니다. 바로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신다.”라는 “임마누엘”이었습니다. “그렇다!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신다.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그 순간부터 어디에서 힘이 솟았는지 그는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쥐고 소리 질렀습니다." 그래, 나는 혼자가 아니다.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신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리고는 자기가 걸어온 방향이라고 생각되는 곳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겼으며 결국 그는 캠프로 돌아와 살아났습니다. 연약한 인간이 하나님과 함께 한다면 상상할 수 없는 승리와 환희와 흥분으로 감사로 가득하게 됩니다. 우리는 살면서 때로 포기하고 싶은 때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오해가 생기고, 살아가는 것이 재미없고, 좋은 일에 대한 의욕이 없고, 평소에 잘 지내던 사람이 돌멩이를 던지고, 모든 사람이 나를 외면하고, 아무도 힘든 마음을 몰라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낙심이 되고 모든 것 포기하고 주저앉고 싶을 그때에도 주님께서는 우리 귀에 조용히 말씀해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끝까지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말입니다. 두려워 말라고 하시며, 내가 너와 함께 하노라고 하십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위기에 처해 절망에 빠진 상태에서 본문 말씀을 통해 새 힘을 얻고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라는 찬송가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주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이 무슨 일을 만나도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습니다. 인생의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 안에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리합니다. 오늘 주님 오심을 기다리는 대강절 첫 주일에 두 본문을 중심으로 “믿음의 내진 설계”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성도는 믿음의 설계를 잘 해야 합니다.
◈.또한 설계대로 시공을 해야 합니다.
◈.그 바른 믿음 안에 거할 때 안전합니다. 아멘.
<2017. 12. 3. 성산교회. http://cafe.daum.net/sungsansar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