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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와 정부와 교회
말씀 : 로마서 13:1-7.
2020년도 초부터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온 세상을 휩쓸어 나라마다 공항이 폐쇄되고 여행길이 막히며 사람들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거리두기로 서로의 사이를 벌려놓고 상인들은 장사가 안 되어 경제적인 타격으로 파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너무 고통스러워 삶을 포기하기도하고 가정도 많이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재난중의 재난이요, 고난의 연속입니다. 이는 재앙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닥칠 큰 환란은 이것과는 비교도 안 될 텐데,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성경기록을 보면 과거에도 상상하기 어려운 재앙들이 세상을 뒤덮었음을 우리는 잘 압니다. 크게는 노아홍수가 있었고 소돔과 고모라의 유황불 재앙이 있었으며 세상에서는 지역에 따라 화산폭발이나 지진으로 쓰나미가 수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죽음으로 몰아가고 막대한 재산을 휩쓸어갔습니다. 그런가하면 지역에 따라 폭설이나 폭우나 강풍들이나 가뭄으로 굶주림이나 전염병 등 각종 재앙이 많았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강대국의 탐욕에 따른 피비린내 나는 전쟁으로 가난과 질병은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이런 일들이 세계적인 것들도 있고 국가적인 일들도 있고 지역적인 일들도 있습니다. 이번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온 세상에 퍼져 모든 사람들에게 큰 타격과 고통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고통이 다가오고 있음을 세상은 모르고 있습니다. 이 땅의 죄들을 심판하시는 큰 환란은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할 것이나 주께서는 특별히 우리에게 불안해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마 24:6-8) [또 너희가 전쟁들과 전쟁들의 소문을 들을 터이나 주의하여 불안해하지 말라. 이 모든 일들이 반드시 일어나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7) 민족이 민족을 왕국이 왕국을 대적하여 일어나고 곳곳에 기근과 역병과 지진이 있으리니 8) 이 모든 것은 고통의 시작이니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큰 환란이 임하기 전에 구원 받은 성도들은 다 하늘로 채어 가실 것입니다(살전4:16-17).
이번 코로나19가 어디로부터 왔느냐?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느냐? 시시비비가 많습니다. 그것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으며 어디로부터 왔느냐? 따져보고 가려본들 무슨 소용이 있으며 어떤 책임을 누가 어떻게 질수 있겠습니까? 논쟁거리와 다툼 외에는 아무것도 돌아올 것이 없습니다. 전 세계에 불어 닥친 재앙에서 우리나라도 피해갈 수 없게 되었으며 그 고통은 언제 끝날지 모릅니다. 온 세상이 발 빠르게 백신으로 대처하고 있지만 그것이 얼마나 빨리 사람들을 고통에서 해방시킬지 모릅니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대구에 있는 신천지라는 이름의 교회에서 유행이 시작되어 전국으로 퍼졌다하여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미움의 표적이 되고 원망과 질시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기독교계에서는 그들은 우리와 다른 이단이라고 말하지만 세상이 볼 때는 그것이나 이것이나 동일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진리를 말하는 참된 기독교도 그들에게는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존재일 뿐입니다.
이 세상은 마귀가 통치하고 있으므로 마귀의 손에서 벗어난 교회는 세상의 대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군대로 말하자면 탈영병은 징계의 대상과 같습니다. (요일 3:13) 『내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 하셨습니다. 세상이 그리스도인들을 미워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므로 이상히 여길 것이 없습니다. 반대로 세상이 어떤 성도를 좋아하고 존경하고 경배하고 따른다면, 어쩌면 그는 거듭난 자가 아닌, 양의 탈을 쓴 가짜일지 모릅니다.
세상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육신을 입고 오신 주님을 미워합니다.
(요 15:18-19)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것이 너희를 미워하기 전에 나를 미워한 줄 너희가 아느니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 것을 사랑하였으리라. 그러나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내가 세상에서 너희를 택하였으므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구원 받은 사람을 그리스도인 이라 하며 교회(ecclesia)라고도 합니다. 이는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았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구원 받은 성도들이 세상 밖에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소속이 다릅니다.
우리는 현재 영과 혼이 구원 받았으나 몸의 구원은 완전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부활의 몸을 입기 전까지는 세상에 살아야합니다. 이는 적과의 불편한 동거입니다. 우리가 전에 그러했듯이 세상에는 구원 받아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들을 빨리 구원으로 이끌어 내야합니다.
구원 받은 성도(교회)가 세상에 아무런 잘못이 없더라도 세상으로부터 존경을 받거나 칭찬은 받을 수 없습니다. 마귀가 우리의 적인 것같이 세상을 통치하는 마귀에게는 우리가 그들의 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적과의 영적싸움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을 통치하러 다시 오시기 전까지는 치열한 전쟁의 연속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복음을 전하고 한 혼이라도 구원 받게 하면 원수 마귀는 한 혼을 잃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기편이 적군에게 넘어가는데 좋아하거나 가만히 있을 자가 누구입니까?
그러므로 복음을 선포하는 전도자들은 세상으로부터 칭찬이나 덕담을 들으려는 생각조차 하지 말아야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바꾸는 자들이 아니라 구원의 스파이가 되어 적으로부터 한 혼이라도 더 빨리 빼내 와야 합니다. 이에 따른 고통이나 아픔은 보상을 바라보며 기쁨으로 받아들여야합니다.
성도들 가운데 어떤 분들은 열심히 선포하고 열심히 봉사하는데 왜 고난이 오는가? 이상스럽게 생각하지만 주님은 그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 하셨습니다. 구원 받은 성도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면 할수록 세상으로부터는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므로 이상히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복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서 부자가 되어 잘 먹고 잘 입고 출세하여 잘사는 것이 마치 믿음이 좋은 성도라고 여기며 그것이 주님께 영광이라고 가르치고 있으니 한심할 노릇입니다. 그렇다고 그리스도인들이 가난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면 복을 주시고 부요하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께 달려 있는 것이지 부귀영화가 구원 받는 자의 목적이나 표본은 아닙니다.
주님은 오히려 “재물을 신뢰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는 것은 심히 어렵도다!”하셨습니다. (막 10:23-25) [예수님께서 주변을 둘러보시고 자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을 가진 자들은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하시니 24) 제자들이 그분의 말씀들에 깜짝 놀라더라. 그러나 예수님께서 다시 응답하여 그들에게 이르시되, 얘들아, 재물을 신뢰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는 것은 심히 어렵도다! 25) 낙타가 바늘귀를 지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성경에서 보듯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간 사도들의 삶은 세상에서 육신적으로 대우받거나 환영받거나 부자가 되거나 출세한 자들은 하나도 없습니다. 진리를 따라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오는 여러 가지 시련들은 당연한 것임을 알고 이상히 여기지 말라 하셨습니다.
(벧전 4:12-14)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단련하려고 오는 불 같은 시련에 관하여는 마치 이상한 일이 너희에게 일어난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으므로 기뻐하라. 이것은 그분의 영광이 드러날 때에 너희가 넘치는 기쁨으로 또한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해 비방을 받으면 행복한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께서 너희 위에 머물러 계시느니라. 그분께서 그들 편에서는 비방을 받으시나 너희 편에서는 영광을 받으시느니라.』 세상에서 말하는 행복한 자들과 진리 안에서의 행복은 완전히 반대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해 비방을 받으면 행복한 자로다.”하셨기 때문입니다.
한 평생을 복음을 전하다가 죽어간 사도 바울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누가 그를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았다고 하겠습니까? 그러나 바울은 더 좋은 부활을(히11:35) 얻으려고 세상에서 받는 고난을 기쁨으로 견뎠습니다.
(고후 11:23-27) [그들이 그리스도의 사역자냐? (내가 어리석은 자처럼 말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더욱 넘치도록 하고 매도 지나치게 맞고 감옥에도 더 자주 갇히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내가 유대인들로부터 마흔에서 하나 뺀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몽둥이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을 당하여 한 밤과 한 낮을 깊음 속에 있었으며 26) 자주 여행하면서 물들의 위험과 강도들의 위험과 내 동포로 인한 위험과 이교도들로 인한 위험과 도시에서의 위험과 광야에서의 위험과 바다에서의 위험과 거짓 형제들 가운데서의 위험을 당하였고 27) 또 지치고 아프고 여러 번 밤을 새우고 굶주리고 목마르고 여러 번 금식하고 추위를 당하고 헐벗었노라.]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내가 너무 육신 적임을 아는 고로“예수님처럼, 바울처럼”살고 싶다는 복음 송을 부를 염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잘못 없이 세상으로부터 고난을 당한다 하더라도 그들을 대적하여 싸워서는 안 됩니다. 주님은 사역기간동안 수많은 무리들이 그분을 죽이려 했을 때 그들을 대적하여 원수 갚지 않으시고 그들을 피하셨습니다. 그분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에도 그들을 원망하거나 원수 갚지 않으시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눅 23:34)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시더라. ...........』
또한 복음의 첫 순교자 스데반은 어떠했습니까? 자기를 돌로 치는 자들을 향하여 욕을 했습니까? 저주를 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행 7:59-60)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그가 [하나님]을 부르며 이르되, [주] 예수님이여, 내 영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주]여, 이 죄를 저들의 책임으로 돌리지 마옵소서, 하더라. 이 말을 하고 그가 잠드니라.] 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죽음을 당하더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죽는 것은 복된 일이며 죽음과 동시에 낙원에 가게 됨으로(눅23:43) 걱정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계 14: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한 음성이 나서 내게 이르시되, 기록하라. 이제부터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께서 이르시되, 그러하다. 이것은 그들이 그들의 수고를 그치고 안식하게 하려 함이니 그들의 행위가 그들을 뒤따르리로다, 하시더라.』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것으로 이 세상에 미련을 둘 필요는 없습니다. 하늘의 영광을 바라보며 현시대의 고난들을 기쁨으로 여기시기 바랍니다.
(롬 8:18) [내가 생각하건대 이 현 시대의 고난들은 앞으로 우리 안에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될 수 없도다.] 앞으로 나타날 영광을 믿지 못하고 소망하지 못한다면 오늘의 고난은 견디기 어려울 것입니다.
기복주의 신앙과 같이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서만 소망이 있다면 우리는 가장 비참한 자들입니다. (고전 15:19) [만일 우리가 이 세상 삶을 사는 동안에만 그리스도 안에서 소망을 갖는다면 모든 사람들 중에 우리가 가장 비참한 자니라.] 이 세상의 삶은 앞으로 나타날 영광을 향하여 가는 여정에 불과합니다. 사람들이 장래의 꿈을 갖고 열심을 다해 앞으로 달려갑니다. 그것이 사업이든 권력이든 학문이든 성공이든 모든 사람들의 끝은 늙어가고 병들고 죽음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죽음은 끝이 아니고 그것 뒤에 심판이 있으며 그것이 곧 영원의 시작이며 출발점입니다.
(히 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요 이것 뒤에는 심판이 있나니] 했습니다. 죽음 뒤에는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에 대한 심판이 있습니다. (고후 5:10) 『우리가 반드시 다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나타나리니 이로써 각 사람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자기가 행한 것에 따라 자기 몸 안에 이루어진 것들을 받으리라.』 그 심판에 따른 징벌이나 상급은 모든 사람 앞에 영원히 지속됩니다. 영원에 비하면 육신이 천년을 두 번 산다 해도 그의 삶은 지극히 작은 모래 한 알과 같습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본 창세기의 장수한 사람들이 900년을 넘게 살았으나 죽음으로 끝났습니다. 이는 무엇을 말합니까? 인생의 결론은 죽음이란 말입니다.
(창 5:5) 아담이 산 전 생애는 930년 이었으며 그가 죽으니라.
(창 5:8) 셋의 전 생애는 912년 이었으며 그가 죽으니라.
(창 5:11) 에노스의 전 생애는 905년 이었으며 그가 죽으니라.
(창 5:14) 게난의 전 생애는 910년 이었으며 그가 죽으니라.
(창 5:17) 마할랄레엘의 전 생애는 895년 이었으며 그가 죽으니라.
(창 5:20) 야렛의 전 생애는 962년 이었으며 그가 죽으니라.
(창 5:27) 므두셀라의 전 생애는 969년 이었으며 그가 죽으니라.
모든 사람들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기 때문에 “그가 죽으니라.”입니다. 그런데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은 육신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심판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육신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심판을 대비하지 않습니다. 죽음 뒤에 심판이나 영원 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육신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 그의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고 벌 받을 자에게는 벌을 주고 상 받을 자에게는 상을 줍니다. 그 벌을 주시고 상을 주시는 분이 바로 우리 주님이십니다. (계 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보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행위에 따라 주리라.]하셨습니다.
이번 코로나로 사람들이 죽을까봐 불안해하는데 정부의 대책은 무엇일까요?
코로나의 확산을 방지하고 코로나에 걸린 사람을 치료하며 예방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위해서는 사람과 사람들의 만남을 억제해야하고 거리를 두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밀집, 밀접, 밀폐, 3밀을 피하게 하는 것입니다.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거나 서로 가까이 있거나 환기가 안 되는 공간에 장시간 있는 것을 피하라는 것입니다.
밀폐된 공간이나 좁은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이 노래를 하거나 식사를 하거나 춤을 추거나 운동을 하면 바이러스가 확산되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땐스 클럽이나 헬스장이나 요양보호시설이나 환자들이 많은 병원들이나 식당이나 집회장소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거나 거리두기를 하지 않으면 코로나가 빠르게 유행하는 것입니다. 그 3밀에 종교모임이 포함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 모임을 갖게 되면 설교하고 찬송하고 교제하고 식사하는 가운데 바이러스 확산이 일어나게 됩니다. 여기에 기독교의 예배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습니다. 정부에서 밀집을 피하라는데 교회는 정부가 예배를 못하도록 탄압한다고 항의를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많은 교회나 교육기관들에서 코로나 양성자들이 집단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고 원망의 대상이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나라는 종교의 자유가 있으므로 정부가 종교를 탄압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르므로 다른 집회장소에 대해서 거리두기를 하는데 교회에 관련되는 곳에도 거리두기를 하게 하는 것은 종교 탄압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정부의 시책을 따르면서 하나님께 경배하며 예배하면 될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당시 로마로부터, 동족인 유대인들로부터 많은 공격을 받으셨으며 결국은 그들에 의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전지전능하신 주님, 창조주 하나님께서 능력이 없으셔서 그들에게 핍박을 받고 죽으셨습니까? 주님은 단번에 5천명을 먹이시고 각종질병을 고치시며 죽은 자를 살리는 분인데 힘이 없으셔서 굴복하신 것입니까?
예수님은 자신을 잡으러 온 자들을 치려고 칼을 빼든 베드로에게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하리라 하시며 칼을 칼집에 꽂으라하면서 무어라 하셨습니까? (마 26:53) 『너는 내가 지금 내 [아버지]께 기도하여 당장이라도 그분께서 열두 군단이 넘는 천사들을 내게 주시도록 할 수 없는 줄로 생각하느냐?』
그 외에도 하나님은 세상과 정부에 대해서 어떻게 하셨는지 보십시오. 정부가 조세등록을 하라는 명령에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와 요셉은 정부 시책에 순응하여 만삭의 배를 가지고 조세 등록하러 먼 길을 가게 하셨습니다.
(눅 2:1-5) 『그 무렵에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가 칙령을 내려 온 세상이 조세 등록을 하게 하였는데 2) (이 조세 등록은 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이었을 때 처음 한 것이더라. 3) 모든 사람이 조세 등록을 하러 저마다 자기의 도시로 가매 4) 요셉도 (다윗의 집과 혈통에 속하였으므로) 갈릴리의 나사렛 시에서 나와 유대로 올라가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도시에 이르러 5) 자기의 정혼한 아내 마리아와 함께 조세 등록을 하려 하였는데 그녀가 아이를 배어 배가 불렀더라.』 이처럼 주님은 정부가 하는 일에 반대하거나 저항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을 시험하는 자들에게 무어라 말씀하셨는지 보십시오.
(막 12:14하~17) 『........카이사르에게 공세를 바치는 것이 율법에 맞나이까, 맞지 않나이까? 15) 우리가 바치리이까, 바치지 말리이까? 하거늘 그분께서 그들의 위선을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다가 내게 보이라, 하시매 16) 그들이 그것을 가져오거늘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 형상과 그 위에 쓰인 글이 누구의 것이냐? 하시니 그들이 그분께 이르되, 카이사르의 것이니이다, 하매 17) 예수님께서 응답하여 그들에게 이르시되, 카이사르의 것들은 카이사르에게, [하나님]의 것들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그들이 그분으로 인해 놀라니라.』
우리가 육신을 갖고 살아가는 동안은 어느 나라에 소속이 됩니다. 그 나라가 견고하거나 정치가 안정되면 사람들의 생활이나 교회도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러나 공산주의나 독재주의 나라에서는 개인의 삶은 물론 종교 활동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나라 없는 백성들에게는 개인적인 삶은 물론 종교생활도 할 수 없으며 그들에게 복음도 전할 수 없습니다.
나라가 유지되려면 국민이 세금을 내는 것은 당연합니다. 한 가정에도 누군가 돈을 벌어야합니다. 마찬가지로 교회가 존립하고 성장하려면 성도들의 헌금이 필요합니다. 이처럼 국가나 가정이나 교회가 건강하게 유지되려면 물질이 필요하며 국민은 세금을 내고 성도는 헌금을 내야하며 가정엔 누군가가 돈을 벌어야 그 가정이 살 수 있습니다.
나라를 굳건히 하려면 국민은 국민의 의무를 다해야합니다. 그것을 거부하는 것은 그 나라의 백성으로서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서 나라로부터 보호받기를 바라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밀집 밀폐 밀접을 피하라는 것은 교회에 예배를 드리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특별히 주님은 나라의 통치자들에게 복종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롬 13:1-7) [모든 혼은 더 높은 권력들에 복종할지니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은 권력이 없으며 이미 있는 권력들도 [하나님]께서 임명하셨느니라.] 정부와 종교는 다르지만 같이 살아야 합니다. 주님은 높은 권력들에게 복종하라 하셨고 모든 권력은 하나님으로부터 났으면 하나님께서 임명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권력자들 중에는 혹 악한 자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필요하시기 때문에 그를 임명하셨습니다(잠16:4).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권력들에게 복종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것을 거역하는 죄입니다.
2) [그러므로 누구든지 권력에 거역하는 자는 [하나님]의 규례를 거역하나니 거역하는 자들은 스스로 정죄를 받으리라.] 국민이 위에 있는 권력들을 거역하는 것은 하나님의 규례를 거역하는 것이며 정죄 받을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권력들에게 복종하지 않는 것은 그들을 세우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며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기록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면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말씀이라도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마땅합니다.
3) [치리자들은 선한 일이 아니라 악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나니 그런즉 네가 권력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한 일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바로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국민은 자기가 소속된 나라의 헌법을 어기면 처벌을 받습니다. 그것은 나라가 바로서기 위한 법이기 때문입니다. 이 나라에 치리자나 치안을 보살피는 자들이 없다면 순식간에 무법천지가 되고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주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이라 하셨습니다. 성도들이 세상에 죄를 짓는 것은 곧 세상 죄를 지고가시는 예수님께 죄를 더하는 것입니다.
4)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로서 네게 선을 베푸느니라. 그러나 네가 악한 것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헛되이 칼을 차지 아니하나니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요, 보복하는 자로서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를 집행하느니라.] 주께서는 권력들이나 치리자들을 하나님의 사역자라고 하셨습니다. 보통 하나님의 사역자라면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만 생각할 수 있으나 나라의 권력들이나 치안을 맡은 자들이나 천사들도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하나님의 사역자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이나 설교하는 자들이나 성도들은 당연히 하나님께서 세우신 세상 사역자들의 권위에도 순종해야 마땅합니다.
5) [그러므로 너희는 진노 때문만이 아니라 양심을 위해서도 반드시 복종해야 하느니라.] 구원 받은 성도라 할지라도 세상에 죄를 지었다면 당연히 처벌을 받아야합니다. 치리자들은 믿는 자들이나 믿지 않는 자들이나 지켜주고 보호해줍니다. 그들은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봉급을 받음으로 국민들을 지킬 의무가 있습니다. 주께서는 사람들이 나라의 법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각자의 양심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복종하라하셨습니다.
6) [이런 까닭에 너희가 공세도 바치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사역자로서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국민은 국민의 의무를 다하여 세금을 내고 그 세금으로 권력들이나 치리자들이 월급을 받으니 그 대개로 그들은 국민을 보살피고 보호하며 범죄자들을 징계합니다. 이처럼 국가의 권력들을 외면한 국민이 있을 수 없으며 국가를 외면한 평안한 교회가 있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이기도 하지만 이 나라의 국민입니다.
7) [그러므로 모든 사람에게 그들이 마땅히 받을 것을 주되 공세 받을 자에게 공세를, 관세 받을 자에게 관세를, 두려워할 자에게 두려움을, 존경할 자에게 존경을 주라.] 주님은 확실하게 말씀하십니다. 나라의 보호를 받는 국민들은 반드시 공세나 관세는 물론 두려워할 자에게 두려움을, 존경할 자에게 존경을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일에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면 세상 사람들에게도 모범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의 혼을 얻으려면 그들에게 호감을 사야합니다. 감독의 직무를 사모하는 자는 교회 안에서 뿐 아니라 반드시 밖에 있는 자들로부터도 좋은 평판을 받아야 한다고(딤전3:7) 하셨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 유대인들에게 붙잡히고 심문받을 때 그들의 대제사장을 거역함으로 비방을 받고 그가 대제사장인줄 알고서 즉시 자기 잘못을 시인했습니다(행 23:5). 자기 백성의 치리자가 하나님을 믿든지 믿지 않든지 치리자를 비방하지 말라하신 말씀을 기억하면서 바울은 그가 대제사장인줄 몰랐다고 했습니다.
(딤전 2:1-3) [그러므로 내가 권면하노니 무엇보다 먼저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중보와 감사를 드리되 2) 왕들과 권위를 가진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것은 우리가 전적으로 하나님을 따르며 정직한 가운데 조용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고자 함이라.] 왕들과 권위를 가진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합니까? 교회가 정치에 관여하며 보수다 진보다 진영을 나누며 서로 비방하고 거역하니 어찌 하나님을 따르며 정직한 가운데 조용하고 평화롭다고 하겠습니까? 교회는 말씀 앞에 진심으로 회개해야합니다.
교회가 “조용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고자”한다면 권위를 가진 자들에게 복종하고 그들에게 감사하며 그들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중보와 감사를 드려야합니다. 이것은 주님의 권면이며 명령입니다. 정부를 향하여 교회에 간섭하지 말라하면서 교회가 정치에 간섭하거나 항의하는 것은 대단한 이기주의며 모순입니다.
주님을 믿는 성도들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 땅의 삶을 조용하고 평화로이 살고자 한다면 왕들과 권위자들을 위한 기도를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럼으로 나라와 민족의 평안을 빌 때 위에 있는 권력들을 위해 먼저 기도해야합니다.
3) [이것은 [하나님] 곧 우리의 [구원자]의 눈앞에서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교회가 정치에 참여하고 국가를 대적하고 왕들을 대적하고 치리자들을 거역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임명한 권력들을 위하여 먼저 기도하고 복종하는 것은 우리 구원자의 눈앞에서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사역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벧전 2:13-15) [주]를 위해 사람의 모든 규례에 복종하되 왕에게는 최고 권위자에게 하듯 하고 14) 총독들에게는 악을 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잘 행하는 자를 칭찬하기 위해 그가 보낸 자들에게 하듯 하라. 15) 그리함이 [하나님]의 뜻이니 이것은 너희가 잘 행함으로 어리석은 자들의 무식한 말을 잠잠하게 하려 함이라.] 성도들이 가장 많이 쓰는 말 중에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바로 알아야합니다.
나라에서 비대면 예배를 하자는 것을 따르지 않거나 비방하는 것은 그들을 세우신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혼자서도 드릴 수 있습니다. 예배당에 가지 않아도 집에서 조용히 주님께 경배할 수 있습니다. 일요일이 아니어도 주님을 찬양하며 영광드릴 수 있습니다. 예배가 무엇입니까?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을 신뢰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유대인들처럼 안식일이나 예배드리는 날을 따로 지정받지 않았습니다. 한 주간의 첫날인 일요일 새벽에 주께서 부활하셨고 부활의 주님이 그날 제자들을 찾아오셨고 주님의 사도들과 초대 교회에서 주의 첫날인 일요일에 모임을 가졌으므로 자연히 그날 모임을 가지며 그날 모든 사람들이 일을 쉬기 때문에 모이기가 좋은 것입니다.
주님은 믿는 자들 안에 와 계십니다. 주님은 거듭난 자들을 성전삼고 계십니다. 특정한 날 주님을 경배해야 한다는 것은 성경 어디에도 없으며 주님도 명령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그분을 믿는 자들 안에 이미 와계십니다.
(고전 3:16-17)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영]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께서 그를 멸하시리니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며 너희가 곧 그 성전이니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은 다 거짓말입니다. 그러 사람 안에는 하나님의 영께서 계시지 않음을 외부에 선전하는 것입니다. 입으로만 말씀으로 돌아가자, 하나님의 뜻을 따르자. 외치지 말고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야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알아야합니다.
(고전 6:19-20) [도대체 무슨 말이냐? 너희 몸이 너희가 [하나님]에게서 받은바 너희 안에 계신 [성령님]의 전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니 20) 주께서 값을 치르고 너희를 사셨느니라. 그런즉 [하나님]의 것인 너희 몸과 너희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주님은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우리의 이웃은 구원 받은 사람들만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마스크를 쓰고 거리두기를 하는 것은 나를 지키고 다른 이웃을 지키는 일입니다. 밀집, 밀폐, 밀접을 피하는 것은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이기주의에 빠지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을 따라 다른 사람을 돌아보는 지혜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한다면 다른 사람을 돌아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내가 안전하고 내가 병들지 않기를 바란다면 자기 것을 구하기 전에 다른 사람이 잘되기를 구해야 할 것입니다. (고전 10:24) 『아무도 자기 것을 구하지 말고 각각 다른 사람이 잘되기를 구하라.』 하셨습니다. 코로나와 싸우는 것은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가 다를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한 혼을 얻기 위하여 상대에 맞추어 행했습니다. 상대를 변화시키려는 어리석음을 버리고 내 자신이 변해야합니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노래하는 자들이 주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면 그는 헛된 믿음을 가진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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