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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라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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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사들의 조언 (6) 》
제목 : 단하 선사, 그 무엇에도 매이지 말아라.
20240819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com/shorts/m3bQWnbdYuo?si=glvhqDqs0SmLiG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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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들어보세요, 이 안에 해답이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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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내용)
어느 날 단하 선사가 단 위에 올라 승려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대들 모두는 하나의 신령스런 물건을 잘 간직하라.
그것은 그대들이 이름을 짓거나 모양을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내 어찌 그대들에게 이렇게 하라,저렇게 하라 가르칠 수 있으랴.
내가 지난날에 석두 화상(石頭和尙)을 뵈었더니, 그도 역시 그 물건을 스스로 잘 보호하라 하더라.
이 일은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대들 모두는 제각기 하나씩 방석을 갖고 있거늘, 다시 선에 대해 무엇을 말하랴.
부처가 된다는 것은 없는 일이다.
부처의 이름에 영원히 귀 기울이지 말라.
그대를 잘 살펴보라.
좋은 방편과 네 가지 덕목은 밖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요,
마음이 집착할 것도 아니다.
그대들은 무엇을 따르고자 하는가?
경전에 의존하지도 말고, 공(空)에 떨어지지도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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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뭣고]의 곁가지 김태현입니다.😄
한 주일 잘 보내셨지요.. 😄
※ 이 글은 주로 수행을 처음 하시는 분들을 위주로 쓰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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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해설)
오늘 내용은 너무 좋아서 골라 보았는데요.
다 함게 보고 배워 보겠습니다.^^
제 경우는 정식으로 불교 공부를 해본적이 없기 때문에
단하 선사라는 분도 여기서 처음 보는 분이신데요.^^
자료를 찾아보니까 이분도 유명했던 분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일부러 내용을 빼서 그런지 선문염송도 그렇고 아직까지 중국 선사들의 이야기에는 연각승(緣覺乘/소승)에 관한 이야기들은 많은데 반해
원효스님처럼 보살승(菩薩乘/대승)에 관한 내용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인데요?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소승과 대승을 설하실 때에 일월광명 일불승 즉 부처의 마음을 중생들에게 보이는 그런 내용들이 중국 선사들의 이야기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본성(부처)에 관한 내용들은 많은데 가난하고 불쌍한 중생들을 구제하는 등의 본성(부처)의 마음을 대중들에게 보이는 내용들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다못해 경허선사처럼 불쌍하고 가련한 나환자 여성을 방에 들여서 고름을 짜주고 밥 먹이고 재워주면서 조금이라도 쉴 수 있도록 하거나 원효스님은 말할 것도 없지만 원효의 스승인 대안 선사처럼 어미를 잃은 불쌍하고 가련한 들짐승 세끼 들을 먹이기 위해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젖동냥을 하는 그런 큰마음(대승)이 보이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실제로 깨닫고 불성을 증득했다면 큰 불성의 자비의 마음(대승)이 보여야 하는데 그런 마음에 관한 기록들이 거의 보이지 않잖아요?
불법을 전하고 그러는 것은 아주 기본 중에 기본인 것이고요.
부처님 제자라 하는 분들이 그런 것조차 안 한다면 말다 한 것이고요.
왜냐하면 정말이지 그 마음은 죽어가는 지렁이만 봐도 마음이 애처롭고 가련해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는 그런 마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원효대사의 자비 행각이 세계 불교계에서도 인정을 받고 있는 것이고요.
무슨 말이냐 아무리 선문답을 잘 풀고 법문이 훌륭해도 불성의 마음이 드러나지 않으면 별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 불교계에서도 중국 불교를 그다지 쳐주지 않는 것이고요.
왜냐하면 말은 맞는데 행동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아직은 모든 옛 어른들의 자료들을 본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아직 못 본 것일 수도 있으니 혹시 이 글을 보시는 분들 중에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런 평범한 선행(善行)들은 말고 대안 선사나 원효나 경허처럼 이러한 큰마음을 쓰는 대승의 이야기가 중국 선사들에게 있으면 제게도 좀 보내주셨으면 하는 것이고요.
그러면
"이것이 바로 진정한 불법이다."
하면서 옛 어른들의 이야기와 함게 설명을 곁들여 보면 일반 사람들이 보았을 때
"아.. 불교도 예전에는 좋은 일들을 많이 했었구나?"
할 것 아니겠어요?
지금 이 글은 불교 쪽 분들도 많이 보고 계시지만 일반 사람들도 많이 보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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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단하선사에 대해서 자료를 찾아보니까?
단하천연(丹霞天然. 736년 ~ 824년)은 8~9세기 중국 당나라 스님이다. 중국 선종 8대조인 마조도일(馬祖導一, 709~788)의 제자이다.
라고 되어있었는데요.^^
<한국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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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m.wikipedia.org/wiki/%EB%8B%A8%ED%95%98%EC%B2%9C%EC%97%B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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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자료>
단하(丹霞)라는 뜻은 구름에 햇빛이 비치면서 형성된 붉은 구름이라는 뜻이랍니다.^^
그런데 한국 자료와 약간 차이가 있는 것은 출생 연도가 조금 다르게 기록되어 있네요.
한국 : 736 ~ 824
중국 : 739 ~ 824
그리고 나무 불상을 태워 몸을 따뜻하게 유지했다는 일화가 있다고 합니다.^^👍🏻
단샤 선사는 어려서부터 유교에 정통하여 『시』, 『서』, 『리』, 『의』를 읽었으며 매우 재능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스님이 되기 전에 시험관을 준비하고 있었고 그 해에 장안에 가서 시험을 치르려고 가다가 길가에 있는 한 숙소(여관)에 묵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한 스님처럼 생긴 선승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중 자신도 도인이 되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그 길로 그 스님이 알려 주는 데로 마조를 찾아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조는 이 청년의 근기를 시험해 보고 싶어서 석두를 시켜 매일 해야 할 허드렛일을 몇 가지 시켜 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절 안일을 매우 열심히 했으며 3년 동안 한 번도 불평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금으로 하면 행자 생활을 불평불만 없이 충실히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선사가 사찰에 잡초를 뽑아야겠다고 제자들에게 일렀는데 다른 제자들은 괭이와 쓰레받기 등의 도구를 가져왔지만 그런데 단하는 물통을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사는 아무 말도 없이 머리를 감기 시작했는데 단하가 선사 앞에 무릎을 꿇고 있으니까 다른 제자들은 다들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데?
선사는 단하가 무릎을 꿇고 있는 의미를 알고 바로 큰 소리로 웃으면서 한 제자에게 면도 칼을 가져오라 해서 단하의 머리를 깎아주었다는 것입니다. ^^
쉽게 말해 단하가 물통을 들고 온 이유는 사찰에 자란 잡초를 뽑을 것이 아니라 내 머리 좀 깎아 달라는 뜻에서 물통을 들고 왔던 것이지요. ^^
그래서 선사는 이 뜻을 알아차리고 크게 웃으면서 단하의 머리를 깎아 중으로 만들어 주었다는 뜻이고요.
그리고 다른 행자들은 다음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고 합니다.
이때까지만 해고 스님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매우 까다로웠다는 뜻도 되고 스님 되기가 그만큼 어려웠다는 뜻이기도 하답니다.
뒤에 내용들은 너무 길어서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
<중국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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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代高僧丹霞禅师:抱美女过河,烧木佛取暖】https://mo.mbd.baidu.com/r/1ohndBVh47m?f=cp&u=6a1cd0cb1adaee4b&urlext=%7B%22cuid%22%3A%22gPSCagOz28_fu28Aj82J8_8i2a_IO2uVj8Se80PoviKa0qqSB%22%7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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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본론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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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단하 선사가 법상 위에 올라 승려들에게 이렇게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대들 모두는 하나의 신령스런 물건을 잘 간직하라."]
["그것은 그대들이 이름을 짓거나 모양을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내 어찌 그대들에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가르칠 수 있겠느냐."]
["내가 지난날에 석두 화상(石頭和尙)을 뵈었더니, 그도 역시 그 물건을 스스로 잘 보호하라 하더라."]
→ 라고 했다는 것인데요.^^
이 말은 수행자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신령스런 물건]이란 본성(불성/성령/마음) 자리를 뜻하는 것이랍니다.
그런데 이 신령스러움 물건은 이름을 짓거나 모양을 만들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본성 자리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양도 형체도 냄새도 없으니까요?
그냥 공(空)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마음이 그냥 텅 비었다는 뜻입니다. (진실)
비유를 하면 허공과 같다는 것입니다.
우주의 한 가운데처럼 말이지요.
그 자리는 생사도 없고, 시간과 공간도 없고, 과거와 미래도 없는 그야말로 우주의 한 가운데와 같답니다.
우주의 한 가운데에 무슨 생사가 있고, 시간과 공간이 있고, 과거와 미래가 있겠습니까?
오로지 여여하고 고요하게 그 자리에 존재할 뿐이지요.
하늘을 비유하면 본다고도 할 수 있고 못 보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잖아요?
그러나 하늘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고 느낄 수 있잖아요?
본성도 그와 비슷한 느낌이랍니다. (힌트)
그러나 평시에는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하늘도 우리들은 무의식적으로 있는지 없는지 조차도 모르면서 신경도 안 쓰면서 살아가고 있잖아요?
본성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당연히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 본성인데 우리들은 평시에 있는지 없는지 조차도 모르면서 신경도 안 쓰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돌이켜서 보라는 것이고요.
하늘을 돌이켜보면
"아.. 저것이 하늘이로구나.."
하듯이 마음도 돌이켜서 보면
"아.. 저것이 본성이로구나.."
한다는 것입니다.
보는 방법에 대하서는 옛 어른들이 여러 가지 표현으로 말씀을 남기셨답니다.
"의식이 깨어서 보아라?"
"의식을 안으로 돌려라?"
"지금 보고 듣고 말하고 있는 바로 그 자리?"
"지금 보고 있는 안과 밖의 경계?"
"현재 이 순간?"
등 외에도 많이 있고요.
그래서 이것을 챙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단하 선사도 지금
["그대들 모두는 하나의 신령스런 물건을 잘 간직하라."]
라고 하셨던 것이고요.
그리고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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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은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대들 모두는 제각기 하나씩 방석을 갖고 있거늘, 다시 선에 대해 무엇을 말하랴."]
→ 그렇지요.
비유를 하면 하늘과 우주를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가 있을까요?
예를 들면 여러분들이 우주 한 공간에 있다고 가정해 보지요?
그 자리에서 무엇을 설명할 수가 있을까요?
그냥 허공뿐인데요.
깨닫고 보면 본성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 분들은 이것을 일러 공(空)이라 했던 것이고요.
그런데 이것을 누구나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데 더 이상 뭘 선에 대해 무엇을 말하겠느냐? 이 말입니다.
그래서 단하 선사는 지금
["그대들 모두는 제각기 하나씩 방석을 갖고 있거늘, 다시 선에 대해 무엇을 말하랴."]
라고 표현하셨던 것이고요.
그리고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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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가 된다는 것은 없는 일이다."]
→ 당연한 말이지요.
우리들 모두는 제각기 하나씩 방석(본성/불성/성령)을 갖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씩이라는 말도 안 맞는 말이지만 그렇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것을 못 찾아서 못 쓰고 있을 뿐이지요.
우리들은 지금 아예 찾을 생각도 안 하고 있잖아요?
제 경우처럼 부처님이 가르쳐 주는 대로만 열심히 따라 하면 되는데 어디서 이상한 짝퉁 가지고 수행이랍시고 하고 있으니 잘 될 리가 만무하지요?
먼저 부처님이 알려 준 대로 해보고 자기와 안 맞는 것 같다 그러면 그때 방편으로 다른 방법으로 해보곤 해야지 처음부터 그러면 어떡하냐 이겁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우리는 무슨 무슨 종단이기 때문에 우리 식이 최상승이라 하면서 가르치고 있는 최고 어른이라는 늙은 들여우(가짜)들이 더 큰 문제이고요.
아니 어떻게 천도재다. 명패 봉안이다. 하는 곳에 푹 빠져 있는 사람들이 수행에 있어서 최고 스승이라 하면서 떠받들고 있는지 저로서는 한국불교가 도저히 납득이 안 간답니다?
그렇잖아요?
아무리 스승이 없어도 그렇지 어떻게 그런 사람들을 큰 스승으로 지금껏 떠받들며 모셔 올 수가 있느냐? 이겁니다?
그러니 한국 불교가 이 모양 이 꼴로 천박한 불교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고요.
경허스님 말씀대로 지금 어른들처럼 절반 박에 모르고 수행을 하고 있고 가르치고 있는데 어떻게 잘될 수가 있겠어요?
지금 사람들은 절반은 고사하고 사성제 중 4/1에 해당하는 고성제 알아차림만 하고 있는데요?
가르치는 사람들도 [집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멸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감도 못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열심히 간(看)하라고만 하지요?
그 뒤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전혀 말을 못 하고 있잖아요?
더 기가 막힌 것은 가르치는 사람들 자신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도제]에 해당하는 육바라밀과 같은 것들을 대중들에게 열심히 해야 깨달을 수 있다 하면서 절에 보시바라밀을 많이 해야 한다고 하면서 가르치고 있고?
인욕바라밀 같은 것을 가르치면서 참고 절 일에 울력(노동)에 힘을 써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으니 수행이 잘 될 리가 없는 것이지요?
이래서야 무슨 수행이 되고 어떻게 깨달을 수 있을까요?
목표가 엉뚱한 곳에 가있는데요?
아무리 제각기 하나씩 방석(본성/불성/성령)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물 건너 간 것이지요.
["부처의 이름에 영원히 귀 기울이지 말라."]
→ 이 말도 당연한 말씀이랍니다.
우리들 자신이 본성이요. 부처인데 어디에 귀를 기울이겠습니까?
["그대를 잘 살펴보라."]
→ 그래서 나 자신을 잘 살펴보라 하신 것이고요.
나를 보고 나를 괄찰하는 수행이야말로 초보자분들에게는 엄청 좋은 수행 방법이랍니다.
왜냐하면 자주자주 나를 보고 괄찰하면 누구나 자성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포살(布薩/반성)을 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도 그때는 몰랐지만 이렇게 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답니다.
말이 나온 김에 창피한 내용이지만 제 경우를 예를 들어볼까요?^^
제 경우는 50년 넘는 친구가 하나 있답니다.^^
그리고 이 친구와 저는 서로의 장단점은 물론 성격이나 성향까지 서로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친구이고 저에게 많은 영향을 준 친구이기도 하답니다.
그런데 제가 중고등 학교때 자꾸 나쁜 아이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이상한 짓들만 하고 다니니까?
기존에 있던 모범생 친구들이 제가 대학도 못 들어가고 하니까 따돌리는 느낌이 들어서 20대 초반에 자존심도 상했고 자극도 받아서 나도 공부를 해야 되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영등포에서 일이 끝나면 노량진에 있는 성지학원이라는 곳에서 두 시간짜리 단과반을 신청해 놓고 그동안 단 한 번도 제 스스로 공부라는 것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그런데 그때 처음으로 공부라는 것을 해보니까?
와.. 저도 공부가 엄청 잘 되는 거예요?
그전에는 노는 데만 바빴지 공부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그때부터 법화경을 만나기 직전까지는 거의 단 한 번도 제 손에서는 책이 떨어져 본 적이 없었답니다.
법화경을 마나고 난 후부터는 다른 책들은 재미가 없어서 단 한 권도 읽어본 적이 없었고요.
그만큼 제 경우는 법화경에 푹 빠져 있었답니다.
뜻도 전혀 모르면서 말이지요?
아무튼 그때 이 50년 지기 친구가 나를 따돌리지 않았다면 저는 여전히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을 것인데요?
그러니 저에게는 큰 영향력을 끼친 것이지요.^^
그 후로는 중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에도 항상 등수 안에는 들었었고요.
그리고 시험이든 뭐든 그 후로는 떨어져 본 적이 없었답니다.
그리고 이 친구는 어렸을 때 항상 저보다는 어른스러웠고 모범학생이었답니다.
저는 항상 까불 까불 거리는 쪽이었고요.^^
그리고 저에게는 여러 형제들 중 저에게 자극을 주었던 사촌 형님이 두 분이 계시는데요.
이 두 분도 제가 나를 관찰하는데 많은 영향을 주었던 분이랍니다.
물론 그때는 불교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지만 말입니다.
이 형님들 덕운에 제 성격을 고쳐 보려고 무척 애를 썼던 계기가 된 경우랍니다.
내 성격을 고치려면 나를 볼 수 박에 없었던 것이지요.(※ 가장 컸던 핵심)
하루는 고등학교 때인가? 평소처럼 제가 주절주절 떠들고 있는데 이 50년 지기 친구가 갑자가 얼굴이 시뻘게 가지고 눈알까지 뻘게 가지고 입에 거품을 물면서 막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저에게
"야.. 이 개??야 왜 너는 매일 말끝마다 욕을 그렇게 하는 거야?"
하면서 막 저에게 욕을 하는 거예요?
평소에는 그럴 놈이 아니었거든요?
그 친구가 갑자기 소리 "빽~" 하고 지르면서 화를 막 내니까?
저는 그때 "벙~" 져가지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제 자신을 되돌아본 적이 있었답니다.
이 친구 말이 조금도 틀리지 않았거든요.
할 말이 없더라고요?
실제로 그때는 제 자신이 그랬으니까요?
그래서 그때부터 욕을 안 하려고 엄청 노력을 했었는데요.
열심히 욕을 안 하려고 하니까 또 되더라고요?
그리고 사촌 형님 중 한 분은 하루는 제가 사람들과 자꾸 다투고 싸움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제가 어느 술집에서 이런 것들 때문에 고민을 하니까?
이 형님이 이런 말씀을 저에게 하는 거예요..?
"야, 종기야? 너는 지금부터"
"나는 왜 그럴까?"
"나는 왜 그럴까?"
하면서 자신을 자주 되돌아 보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부터 그렇게 했더니 많이 순화가 되더라고요?
그렇다고 개 버릇 어디 가나요?
욱하면 도로 말짱 도루묵이었지만 그래도 그때부터 제 자신을 자주 보기는 했답니다.
그럴 때 그러더라도 계속해서 나를 알아차리기는 했었답니다.
그러다가 04년에는 결정적으로 예상하지도 못한, 있어서는 안 될 일을 겪고 나서 제가 저질렀던 일들이 너무 부끄럽고 창피해서 그동안 연구해 오던 중국으로 바로 건너간 것인데요.
거기서는 아예 내가 고쳐야 할 10가지 항목을 적어놓고 거의 매일 저녁때마다 반성하면서 아무리 술에 취해 있어도 제 얼굴을 주먹이나 손바닥으로 수도 없이 두들겨 팼답니다. (진실)
제 잘못된 버릇들을 고쳐보려고요.
때로는 혼자 울면서 저를 향해 "야... 이 병신아 그러고도 네가 뭐 사람을 다루는 마술사가 되겠다고? 최고 경영자가 되겠다고?"
하면서 주먹으로 사정 없이 제 얼굴을 있는 힘껏 "퍽~!" "퍽~!" 손바닥으로 "찰싹~!" "찰싹~!"
이렇게 10년 가까이하니까?
마음이 많이 꺾이더라고요?
그런데 한참 후에 선문염송에서 "깃대를 꺾어라"라는 내용을 보고 저도 깜짝 놀라면서 바로 알아들었던 것인데요.
왜냐하면 마음이 꺾이면 훨씬 더 쉽게 마음을 털어내기가 좋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식구들은 항상 제 얼굴이 부어 있으니까 술 때문에 그런 줄 알고 잔소리가 많았었는데요. ^^
사실은 제 얼굴을 제 주먹이나 손바닥으로 두들겨 팼기 때문에 항상 얼굴이 부어 있었던 거랍니다.
술기운에 잘못 제 얼굴을 때려서 코피도 여러 번 터졌었고요.^^
가끔은 도반들에게 그 당시 제가 했던 얼굴을 제 스스로 때리는 시범을 보여주면 소리 자체가 크게 때리니까 놀라곤 하는데요.
저는 이럴 때에는 인정을 두지 않거든요.
그때 적어 놓은 항목들을 <내가 고쳐야 할 10계명>이라는 제목으로 지금도 제 노트북에는 저장이 되어있는데요.
그때는 그렇게도 도저히 제가 극복하기가 힘들었던 문구들이 지금 보면 또 얼마나 유치하고 또 유치한지 모르겠는데요?
그만큼 이 법을 깨닫고 증득을 하게 되면 모든 것들을 단 한 방에 해결을 할 수가 있답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완전히 바뀔 테니까요.(진실)
위에서 말씀드린 이러한 것들이 모두 저에게는 저를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던 거랍니다.
그리고 그때는 이것이 수행인 지도 모르고 힘겹게 노력했던 것들이 이법을 깨닫고 증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답니다.
여러분들도 빨리 되고 싶으시면 지금 단하 선사가 말씀하신 것처럼?
나 자신을 잘 살펴보십시오.
그러면 누구나 자성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제 경우처럼 그놈이 나를 포살(반성) 시키면서 불성 자리로 나를 인도하게 되어있답니다.
왜냐하면 자성(본성) 자체가 괴로움과 고통을 싫어하기 때문에 내 육체를 그쪽으로 끌고 가지를 않기 때문입니다. (진실)
그리고 돌이켜보면 그동안 인생을 살아오면서 관계가 좋았던 사람이든 나빴던 사람이든, 좋았던 일이든 나빴던 일이든 모두가 나의 고마운 스승이요 길잡이였었다는 것을 여실히 깨닫게 된답니다.
그리고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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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방편과 네 가지 덕목은 밖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요,"]
["마음이 집착할 것도 아니다."]
["그대들은 무엇을 따르고자 하는가?']
["경전에 의존하지도 말고, 공(空)에 떨어지지도 말라.."]
→
여기서 말하는 좋은 방편이란 부처님이 우리들을 위해 임시방편으로 만들어 놓으신 여러 가지 방법들을 이야기하는 것인데요.
우리들은 이들 중에 자신에게 맞는 방법들을 찾아서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가장 안 좋은 것은 우리 종단에서는 이런 수행 외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하면서 자신과 맞지도 않는 수행 방법으로 자신을 망치는 행위들인 것이고요.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네 가지 덕목]이란?
자(慈), 비(悲), 희(喜), 사(捨)를 이르는 말인데요.
이 내용을 세 가지로 줄이면..
항상..
[자비로운 마음]
[즐거운 마음]
[버리는 마음]
을 이르는 말씀이랍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의 마음은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의 공통된 마음이기도 하면서 깨닫기 전에 사람들이 목표로 해야 하는 마음이기도 하답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의 마음으로 저 사람이 실제로 깨닫고 증득을 한 사람인지 아닌지도 판단할 수가 있는 기준점이기도 하고요.
항상 말씀드립니다만 실제로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의 마음은 보살의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금 어른들의 모습들을 보면 이 기준점에는 한참 모자란다는 것이고요.
깨닫고 못 깨닫고를 떠나서 여러분들도 한번 생각을 해보십시오?
아무려면 부처님이 세상 살이에 힘들어서 상담을 청하러 찾아온 사람들에게 친견비를 요구하겠습니까?
그리고 또 네 부모님이 죽었으니 내가 극락왕생을 시켜 주겠다 하면서 천도재를 지내주겠습니까?
그리고 또 네 부모님이 죽었으니 우리 사원에 네 부모의 명패를 걸도록 해줄게 하겠습니까?
그것도 몇백에서 몇천만 원을 받아 가면서 말이지요?
말 같은 소리들을 해야 어느 정도는 수궁을 하지요?
그래서 빨리 한국 불교는 젊고 유능한 진심으로 불법을 계승해 나갈 인제가 불교 안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이고요.🪷🙏🏻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더운 날씨에 다들 건강관리 잘하시고 꼭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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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맙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무더운 더위 잘 나시고 꼭 성불을 기원드립니다.😁🪷🙏🏻
고맙습니다 _()_
감사드립니다.🪷🙏🏻
더운 날씨에 건강 관리 잘 하고 꼭 성불을 기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