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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씀 : 박 찬 덕 선교사
누가복음 16장 1절부터 13절까지는 지혜로운 청지기에 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16장 14절부터 18절까지는 돈을 좋아하는 바리새인들에 대한 얘기가 기록되어 있고요.
이어서 누가복음 16장 19절부터 31절까지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는 부자와 나사로에 대한 이야기
곧 아브라함과 나사로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16장에 기록된 선한 청지기에 대한 얘기와 돈을 매우 좋아하는 바리새인들에 대한 얘기와 부자와 나사로에
대한 얘기는 다 일맥상통하는 관계가 있는 말씀으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영적인 특별한 교훈을 계시해 주시고자
이 말씀들을 연이어서 하시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에게 먼저 말씀을 드립니다.
이 불의한 청지기는 주인의 돈을 낭비하는 주인의 입장에서 볼 때는 매우 불의한 청지기로서 그가 자기에게 주어진
권한을 가지고 주인의 집 안에 있는 동안에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주인에게 큰 빚을 진 자들을 도와서 그들의 빚을
탕감해 주는 이야기가 4절부터 7절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불의한 청지기의 지혜를 강조하는 말씀으로 그를 칭찬하고 있는 이유는 이 불의한 청지기가 주인의
집안에서 일을 하고 있는 동안에 다른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는데 그 주인의 돈을 아주 유효적절하게 사용하는
기회를 잡은 그 이유로 인하여 주님께서 칭찬을 했다 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동안에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나라인 하나님의 왕국으로 가는 길에 있는 우리들은
우리에게 잠시 보관되어지고 맡겨진 그러한 재물들과 소유들을 다른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품에 안기게 하기 위한
그 생명의 유익을 위하여 사용할 때 우리의 삶은 장차 도래하는 삶 가운데서 그것에 대한 일정 부분의 몫을 마치
비축하는 것과 같다 라고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어떤 육체의 기쁨이나 즐거움, 어떤 오락이나 쾌락의 탐닉을 위하여 재물이나 금전이 사용돼서는
안된다 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주님의 길로 가게 하기 위한 생명의 유익을 위하여 우리가 잠시 보관하고 있는
금전들을 매우 유효적절하게 사용해야 된다 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귀에게 속한 이 세상에 속한 이 재물들을 어떻게 유용하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주님께 보관될 수 있는
것이있고 때로는 이것으로 인하여 큰 화를 당할 수가 있다 라는 것이 누가복음 16장 19절부터 31절까지 기록되어
있는 부자와 나사로에 대한 이야기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주님을 섬기고 있는 동안에 잠시 우리에게 맡겨진 그 재물들이나 소유들을 그릇된 방법으로
사용한다 라면 매우 부정직한 자로서 부자처럼 큰 화를 당할 것이지만 매우 지혜로운 청지기로서 정직한 청지기로서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생명의 유익을 위하여 우리에게 잠시 맡겨진 이 재물들을 합당하고도 지혜 있게 취급한다 라면
우리가 나사로처럼 장차 도래하는 시대에서 우리는 큰 화를 피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 부자와 나사로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가 이해하기 위해서는 16장 1절부터 13절까지 기록되어 있는 선한 청지기에 대한
이 주님의 계시의 말씀과 그리고 14절부터 18절까지 기록된 돈을 매우 좋아하는 부유한 바리새인들에 대한 이야기의 말씀을
우리가 이해할 때 부자와 나사로에 대한 이야기를 합당하고도 올바른 방법으로 이해할 수 있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먼저 누가복음 16장 1절부터 13절까지의 말씀을 통해서 돈을 매우 합당하게 사용하고 있는
청지기의 지혜로움에 대하여 친히 가르치신 후에 돈을 매우 좋아하는 부유한 바리새인들에 대한 말씀을 통하여
그들이 장차 도래할 그들에게 닥칠 그들의 운명과 그들의 장래에 대한 이야기를 부자와 나서로에 대한 말씀을 통해서
특별히 계시해 주고 있는 장면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 부자와 아브라함 품에 안겨 있는 이 나사로에 대한 이야기의 말씀을 통해서 이 세상에 살고 있는
특별히 교회 안에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 물질을 소유하는 것에 대해서 집착하지 말고 그 물질 때문에 연결되어진 그 정욕적인
삶을 살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다가 올 그 처소를 준비함에 있어서 우리의 운명이 음부에 있는 고통의 구역에 가지
않도록 특별히 주님께서 우리에게 권고하고 있는 말씀을 우리가 부자와 나사로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음부의 두 구역에 대한 말씀을 자세하게 계시해 줌으로 말미암아 음부에 있는 고통의 구역과 안식의 장소이며
위로의 장소인 낙원으로 상징되어 있는 그 음부에 대한 얘기를 자세하게 계시하고 있는 장면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누가복음 16장 19절 말씀을 통해서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이 19절 말씀은 16장 1절부터 13절까지 말씀과 그리고 13절까지의 선하고 지혜로운 청지기에 대한 말씀과
더불어 14절부터 18절까지 돈을 매우 좋아하는 바리새인들에 대한 이야기에 연결되어져 있는 말씀에 한 실제적인 예를
주님께서 말씀하심으로 말미암아 19절 말씀에 그런데 라는 말씀을 통하여 주님께서 특별히 무엇인가를 계시해
주시고자 한다는 것을 우리가 암시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16:19 〔부자와 거지〕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16:20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16:21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16:22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16:23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16:24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그런데 어떤 한 부자가 있었는데 라는 이 말씀은 이 금전을 취급함에 있어서 잠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동안에 우리에게
잠시 보관되어지고 맡겨진 그 금전들을 이 돈을 매우 좋아하는 바리새인들과 또 이 부자처럼 살면 장차 다가오는 시대에
엄청난 화를 당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음부에 두 종류의 구역이 있는데 위로의 구역이 있고 또 하나는 고통의 구역이 있는데 그 고통의 구역의 장소에서
24절에 기록돼 있는 것처럼 부자가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지금 고통 중에 있나이다 라는 말씀을 이렇게 하여 주심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있는 자들은 물론 말할 것도 없이 특별히 주님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과 무리들에게 물질에 자극되어서 어쩔 수 없이
정욕에 빠지는 삶을 살고 돈을 사랑하게 되면 이 부유한 바리새인들로 상징된 부자처럼 고통의 장소인 안식과 위로가 없는
고통의 구역에서 아주 너무나 우리가 설명할 수 없는 그러한 고통의 삶을 주님이 오시기 까지 살게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원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으로 말미암아 잠시 우리에게 보관되어 있고 맡기어진 그 물질과 소유를 가지고 그것을
함부로 잘못 사용하여 자신들의 기쁨과 즐거움과 탐욕과 정욕을 위하여 사용되어지면 이런 부자처럼 큰 고통의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을 엄중히 경고하는 말씀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립니다.
예수님께서 16장에 이 선한 청지기를 통하여 지혜롭게 재물을 사용한 자에 대한 얘기와 돈을 매우 좋아하는 바리새인들에
대한 얘기에 이어서 그런데 한 부자가 있었다.이 부자가 바로 다름 아닌 돈을 매우 좋아하는 바리새인들과 같은 오늘날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이 주님보다도 물질과 소유와 자신의 재물과 금전에 더욱더 집중하고 관심을 가지고
그것에 치우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16장 1절부터 31절까지의 말씀을 통해서 지혜로운 청지기에 대한 말씀과 14절부터 18절까지
돈을 매우 좋아하는 바리새인들의 이야기를 그 모인 모든 무리들에게 말씀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왕국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살아있는 동안에 돈을 매우 유효적절하게 선용하여 다른 사람들의 생명의 유익을 위한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일에 전적으로 사용되어질 때 그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인 왕국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삶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14절부터 18절까지 돈을 매우 좋아하는 바리새인들의 얘기를 통해서 먼저는 이 바리새인들에 대한 경고를
통해서 돈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들이 바로 다름 아닌 나사로가 아닌 부자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심으로 말미암아
부자들에 대한 경고를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지혜롭고 현명한 청지기는 돈의 합당한 취급에 관한 지혜로운 삶에 대해서 주님께서 이 선한 청지기에 대한
말씀을 하심으로 말미암아 의도적으로 돈을 매우 좋아하는 바리새인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하여 이 선하고 지혜로운
청지기에 대한 말씀을 하셨다 라는 것을 우리가 암시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돈을 매우 좋아하는 바리새인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곧 오늘날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 가운데 돈에 집중하고 관심
가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보다는 돈을 좋아함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잘못 사용되어져서 자신의 육체의 쾌락과 탐욕과
정욕을 위하여 사용되어졌을 때 그들이 처해지는 그 두 가지 음부의 구역 가운데 고통의 구역의 장소인 곳에 가서 살 수밖에
없다 라는 말씀을 함으로 말미암아 자신을 쫓는 무리들에게 간접적으로 경고하고 있는 말씀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바리새인들과 주님을 쫓는 자들 가운데서도 이러한 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의도적으로 하심으로
말미암아 히브리서 4장 12절에 기록된 것처럼 주님의 영을 통해서 바리새인들의 속마음을 낱낱이 꿰뚫어 보시고 선한
청지기에 대한 비유의 말씀과 그리고 돈을 매우 좋아하는 바리새인들에 대한 말씀과 그리고 부자와 나사로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선한 청지기에 대한 말씀을 했을 때 돈을 매우 좋아하는 바리새인들은 자기 자신들을 비유하여 얘기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를 채고 예수님께서 그 선하고 지혜로운 청지기에 대한 말씀을 했을 때 아주 비아냥거리며 코웃음 치고
비웃는 장면이 누가복음 16장 1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16:14 〔율법과 하나님 나라〕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예 그들은 이 주님의 이러한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대신에 오히려 완고한 마음을 가지는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그들이 완고한 마음을 가졌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죠?
14절에 주님의 말씀이 친히 그들의 마음을 꿰뚫는 화살로써 그들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만짐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자신들을 두고 간접적으로 예수님께서 말씀 하셨다는 것을 알고 그분을 비아냥거리며 코웃음을 치고 비웃는
장면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15절에서 주님께서는 너희가 사람들 앞에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모두 아시나니
사람들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가증한 것이니라 라고 말씀하심으로 말미암아 바리새인들 스스로 높은 권위를
가지고 백성들에게 존중을 받고 스스로 의롭다 함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교만하여 자기를 높이는 이 삶이 사실은 하나님 앞에
아주 가증한 것이라고 주님께서 직접적이고도 노골적으로 말씀하시는 장면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16절에서 주님께서는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 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범하느니라 라는 이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 율법과 선지자들은 바로 요한의 때까지인 것입니다.
그 후부터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천국 복음인 하나님의 왕국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들어가려고
매우 힘쓰고있다 라는 것을 주님께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율법과 선지자들이 무엇입니까?
율법과 선지자들은 바로 요한이 온 뒤에 세상에 나타나시는 바로 천국 복음을 전하시는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
모든 구약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 율법과 선지자들인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율법과 선지자들은 요한까지라고 말씀하심으로 말미암아 율법 시대로부터 이제는 요한이 옴으로 말미암아
복음의 시대로 전환되고 있다는 것을 곧 성육신 된 하나님이신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 세상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율법 시대에서 복음 시대로의 새로운 전환을 가리키고 있다 라는 것을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암시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약 시대가 이 아담 때부터 이 선지자인 침례 요한이 오는 4천년 동안의 역사적 기간이 이 구약의 모든 시대가 요한이 세상에
옴으로 말미암아 모두 종결되어지고 끝났다 라는 것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 율법과 선지자들은 요한까지요 라는 말씀입니다.
율법과 선지자들은 그동안에 요한이 세상에 오기 전에 지금까지 이 모세를 통한 하나님의 율법이 증거된 그 율법 시대로부터
모든 율법 시대인 이 구약 시대가 요한이 예수님의 길을 예비한 선주자로서 세상에 옴으로 말미암아 끝났다 라는 것을
증거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암시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바리새인들에게 요한의 때로부터 하나님의 이 천국 복음인 하나님의 왕국 복음이 전파되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는 돈을 매우 사랑하는 이 바리새인들에게 바로 이 요한이 옴으로 말미암아
구약 시대가 끝났다 라는 이 하나님의 왕국 복음인 희년의 때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하나님의 왕국 복음을 전파하신
말씀이 14절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는 이 16장 15절에 있는 이 말씀을 통하여 바로 하나님의 왕국 안으로 들어가려고
힘쓰는 자는 매우 바리새인들처럼 자기를 높이고자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가증되어지는 그런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겸손해져야 되고 겸비해져야 된다 라는 것입니다.
16:1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하나님의 왕국 안으로 들어가기를 힘쓰기 위해서는 바리새인들처럼 거들먹거리고 아주 그냥 팔자걸음을 걸으면서 높은
자로 인정받는 그런 삶이 아니라 겸비하고 겸손해진 삶을 살아야 되며, 그리고 두 번째로는 자기들이 소유한 금전들을
다른 사람들의 생명의 유익을 위하여 아주 합당한 방법으로 쓰여지는 삶을 통하여 재물과 소유로 인하여 자극되는
탐욕인 정욕을 이겨나가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의 왕국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주님께서 강하게 천명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16장 14절 말씀을 통해서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을 염두에 두고 지혜로운 청지기에 대한 얘기를 할 때
그들이 코웃음치며 비아냥거리며 비웃는 그들을 보고 주님께선 나를 지금 비웃지 말라 비웃는 대신에 지금 바로 희년의
때가 나를 통해서 도래하고 있으니 너희는 하나님의 천국 안으로 들어가려고 전쟁을 치루어서 힘써 그것을 소유하는
일에 전적으로 전심전력해야 된다 라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웃는 대신에 이 희년의 복음인 천국 복음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전파하고 있는 동안에 바로 천국 안으로 하나님의
나라인 하나님의 왕국 안으로 들어가기를 전심전력 힘써야 하는 것이 너희들의 지금 이 일인데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비웃고 비아거리며 코웃음 치느냐 지금은 더 이상 율법과 선지자들의 때가 아니다.
구약시대는 이 선지자인 침례자 요한이 옴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종결되어졌다.
이제는 새로운 시대이다. 지금은 은혜의 희년의 때요. 너희는 은혜의 희년의 때를 통하여 아버지 하나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비하고 준비한 그러한 좋은 영적인 축복들 안으로 들어가기를 힘써야 한다 곧 하나님의 왕국 안으로 들어가기를 힘써야
한다 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을 우리가 암시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17절과 18절 말씀을 통해서 율법의 한 획의 떨어짐보다도 천지의 없어짐이 쉬우리라
이런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을 볼수 있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는 간음함이오,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 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라고 얘기하면서
16절 말씀을 통해서 율법과 선지자 곧 구약의 모든 율법과 선지자들인 구약의 시대가 선지자인 요한이 옴므로 말미암아
종결되었다 끝났다 라는 얘기를 통해서 매우 그들이 기분이 좋았을 것입니다.
16:14 〔율법과 하나님 나라〕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16:1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16:16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16:17 그러나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의 없어짐이 쉬우리라
16:18 무릇 그 아내를 버리고 다른데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요 무릇 버리운이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모든 것이 끝났기 때문에 이제 율법을 우리가 지킬 이유가 없다 라고 하는 것으로 주님의 말씀을 그들은 잘못 이해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17절에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의 없어짐이 쉬우리라 라는 말씀으로 한 획이 뭐죠?
예 히브리어 문자들 지금 신약 성경이 기록되어 있지 아니하는 구약 성경만 있는 율법과 선지자들을 통해서 기록되어져 있는
구약 성경을 지금 나타낸 말씀을 하심으로 말미암아 구약 성경은 히브리어 문자들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거기에 한 획의
미세한 어떤 뿔 모양으로 이렇게 살짝 이렇게 변형되어져서 툭 튀어나온 부분으로 기록되어진 그 획조차도 바꿀 수가 없다
라고 그들에게 율법의 지극히 아주 사소하고 적은 부분이라 할지라도 바꿀 수가 없고 오히려 하늘과 땅인 천지가 없어지는
것이 더 쉽다 라고 말씀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더 이상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구나 라고 잘못 오해한 그들에게 그렇지 않다.
율법이 아주 적은 부분이 떨어지는 것보다도 천지가 사라지는 것이 훨씬 더 쉬울 것이다 라고 말씀하심으로 말미암아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율법을 필연적으로 지켜야 할 것에 대한 이혼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있는 장면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16장 15절부터 18절 사이에서 주님께서 바리새인들 너희는 나를 지금 비웃고 코웃음 치고 비아냥거리고 있지만
너희가 지금 사람들 앞에 내보이는 삶은 사람들에게 높임을 받고 존중받기 위한 외형적으로 의롭다 하는 삶을 마치 율법을
지키고 있는 것처럼 너희가 생각하고 그러한 삶을 살고 있지만 사실은 하나님 앞에 매우 가증한 것이라는 것을
너희가 알아야 할 것이다.
지금은 더 이상 율법의 시대가 아니고 주님의 은혜의 시대가 도래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깊이 인식하고 깨달아야 한다.
율법의 시대는 선지자인 요한이 옴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구약 시대가 종결되어 졌으나 은혜의 시대가 도래 한 것은
구약 시대의 이 율법과 선지자들을 통한 이 말씀이 기초가 되어져서 주님의 은혜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을
너희가 깊이 인식해야 한다 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16장 15절, 16절, 17절, 18절 말씀을 통하여 지금은 구약의 시대가 아니라 선지자 침례자 요한이
옴으로 말미암아 구약의 시대가 종결되어지고 끝나진 희년의 때인하나님의 천국 복음의 때이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율법과 선지자들은 모두 끝났지만 너희들이 그것을 악하게 오용하여서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에 위배되는 삶을 살게 되면 부자처럼 고통의 구역에서 너희가 그것을 온전히 합당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잘못된 삶을
살게 되면 음부의 두 구역 가운데 고통의 장소인 곳에서 너희가 주님 오실 때까지 일정 부분 동안 정말 목마름과 갈급함과
갈증만 있는 그곳에서 고통당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라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잠시 소유한 이 부를 통하여 우리의 정욕과 탐욕과 오락과 쾌락을 우리의 혼들을 만족시키는
삶을 사는 대신에 그 선한 청지기처럼 합당하고도 지혜롭게 사용하여서 나사로와 같은 삶을 살아야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암시해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잠시 맡겨진 이 금전들과 소유들과 재물들을 다른 사람들의 생명의 유익을 위하여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한 그러한 일에 전적으로 사용되어질 때 나사로 같은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사로가 왜 가난하게 되었습니까? 예 주님의 말씀대로 살려다 보니 자신의 정욕을 만족시키는 삶을 살기보다는
정말 그것과 싸워서 혼자 사는 삶을 살고 재물에 집중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가난한 삶을 살게 됨으로 나사로는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아주 비루하고 누추한 삶을 살았지만 그러한 삶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순종하는 삶의 외형적인
상징이라는 것을 우리가 암시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상태를 아시고 그들이 요한이 옴으로 말미암아 구약의 모든 시대가 이 침례자 요한이
옴으로 말미암아 종결되어지고 끝났다 라는 것을 들은 바리새인들이 매우 기뻐한다 라는 것을 인식하였기 때문에 그들에게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 율법이 끝났음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이 율법의 삶을 살지 않아도 된다 라는 생각을 할때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더 이상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 라고 생각하지 마라.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율법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할 것이다.
왜 ?그것을 오용하여서 하나님의 때 하나님 왕국의 희년의 때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 율법을 아주 자기들의 입맛대로
오용하여 사용함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인 하나님의 왕국 안으로 들어가는 일을 가로막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율법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있는 그대로 남아 너희를 정죄할 것이다라는 말씀과 그리고 2천년이
지난 오늘날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도 그러한 부자인 돈을 매우 좋아하는 바리새인들과 같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바로
돈이나 물질 때문에 자극되어서 잘못 오용되어져서 하나님 앞에 정죄받는 그런 삶 정욕에 빠진 바리새인들과 같은 삶을
살 것이 아니라 바로 지혜로운 청지기와 같이 잠시 자신의 주인의 소유인 물질과 금전들과 재물들을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는 동안에 그 맡겨진 소유를 잘 활용하여서 적절하게 사용하여서 다른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그런 일들에 금전을 사용해야 하나님의 나라인 왕국에 들어갈 수가 있다 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6장에 이 지혜로운 청지기에 대한 비유의 말씀과 돈을 매우 좋아하는 바리새인들의 얘기를 하신 다음에
그것에 대한 그 결과로서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 라는 것을 이 부자와 나사로에 대한 이야기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아브라함과 나사로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아브라함은 어떤 자입니까?
왜 아브라함에 대한 얘기가 나사로와 부자에 대한 얘기 가운데 23절에 보면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나사로가 지금 누구의 품에 있습니까? 아브라함의 품에 있죠.
왜 이 아브라함을 주님께서 직접적으로 친히 언급하고 있을까요? 그 이유를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은 천국 본향을 너무나 사모했습니다.그래서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본향도 버리고 가족들도 버리고
친척도 버리고 그리고 그 바로 영원한 천국 본향인 바로 그리스도를 향하여 곧 하나님을 향하여 본토를 떠나 친척을 떠나
자신의 고향 대신에 천국 본향을 사모해서 천국 본향으로 간 자가 아브라함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 천국 본향을 너무나 사모해서 자기의 어떤 일신상의 안락과 위로와 만족과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고향을 떠나 오히려
외롭고 고독하고 정말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삶을 살지라도 1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고 175세에 죽음을 맞이한
이 아브라함을 친히 언급하고 있는 장면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동안에 물질을 좋아하고 본향을 좋아하고 친구를 좋아하고 일신의 어떤 육체의 보존과 안위를
위해서 그런 일에 치중하게 되면 우리가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대신에 아브라함과 멀리 떨어진 음부의 두 구역 가운데
고통의 장소에 있을 수밖에 없다 라는 것입니다.
이 아브라함이 천국본향을 사모해서 100년 동안을 하나님과 동행한 삶을 살았는데 그 하나님과 동행한 삶의 처음이
얼마나 비루하고 얼마나 어렵고 고통스럽고 외로운 삶이었겠습니까? 친척들 곁으로 가지 않고 고향으로 가지 아니하는
이 아브라함의 삶을 산 자가 바로 나사로와 같은 삶을 산 자라는 것입니다.
이 나사로는 바리새인들처럼 돈을 매우 사랑하는 대신에 돈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의롭다 하는 바리새인들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자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돈을 사랑하고 자신을 의롭다 하고 육체의 어떤 안위와 보존을 위해서 삶을 살았다 라면
1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절대 살 수 없었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돈을 사랑하고 자신을 의롭다 하는 바리새인들에 대하여 주님께서는 예를 들은 답변으로 친히 사용하신
이야기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부자와 나사로에 대한 얘기는 비유의 말씀이 아닙니다.
진짜 얘기입니다.
이 나사로에 대한 얘기가 2명이 나오죠.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라비인 나사로가 있고요.
그리고 두 번째 이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나사로에 대한 얘기가 있는 것입니다.
이 나사로는 어떤 의미에서 욥과 같은 삶을 산 자인 것입니다.
욥의 처음은 동방에서 가장 부유한 자였고 존중받는 자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소유하고 있는 외형적인 부와 재물들과 금전들과 존경을 받는 일들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을 소유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욥을 지극히 사랑하여서 아흔아홉가지는 있었지만 바로 그 한 가지 하나님을 소유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 한가지인 하나님을 소유하게 하여서 99가지를 버리게 함으로 말미암아 차후에 그 99가지보다도 10배나 더 많은 그러한
형통한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그의 주위의 하나님을 소유치 못하게 하는 그런 모든 일들을 폐쇄시키고 제거하는 일들을
하기 위해서 욥에게 의도적으로 사탄을 통하여 고통을 주는 허락되어지는 삶을 통하여 바로 하나님을 소유하게 하는 삶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욥이 고통당할 때의 삶이 마치 나사로의 삶인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 돈을 매우 사랑하는 바리새인들에게 그들의 다가올 미래에 도래하는 시대에서의 그 장래가 너무나
비참하다 라는 것을 계시해 줌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비참한 장래가 그 부자 곧 바리새인들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그 부자의
삶과 같은 것이라는 것을 친히 밝히심으로 말미암아 물질과 재물과 소유들과 부를 아주 선하게 하나님 앞으로 모든 영혼들을
인도하는 생명의 유익을 위하여 잘 선용하고 사용되어질 때 나사로 같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장래는 매우 돈을 사랑하는 자들이므로 말미암아 바로 하나님이신 이 사람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절하고 비웃고 그분이 지혜로운 청지기에 대한 말씀을 함에도 불구하고 코웃음치며 비아냥거리며 주님을 거절하는 일을
통해서 그들의 장래가 이미 이 음부의 두 구역 가운데서 고통의 장소에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6장 20절과 21절 말씀을 통해서 그 거지인 나사로는 죽어서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간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부자도 죽어서 장사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쫓아 산 이 나사로는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다는 말씀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몸이 혼에서 우리의 몸이 분리가 되게 되면 우리의 육체와 우리 안에 있는 혼이 분리하게 되면
사망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죽음을 갖고 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죽음을 당했을 때 믿는 자들 나사로와 같이
주님의 뜻을 따라 사는 그런 사람들은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갑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이 가 있는 곳이 바로 다름 아닌 낙원이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23절에서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았다 라고
22절은 그 거지가 죽어서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천사 우리가 몸이 혼과 분리되는 순간에 죽음을
경험하게 되는데 죽음을 경험하게 될 때 믿는 자들 나사로와 같은 자들은 반드시 천사들에게 받들려 천사가 한 명인지
두 명인지는 우리가 알 수가 없지만 천사들에게 받들려서 아브라함의 품에 이 음부의 두 구역인 어느 정도는 안식의 장소요
어느 정도는 위로의 장소인 그 음부의 주님께서 한편 강도와 같이 오늘 내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라는 그곳이 바로
다름 아닌 위로의 장소인 음부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이 아브라함의 품이라는 말은 낙원에 바로 이 고통이 있는 것 대신에 낙원 즐거운 동산이라고 표현했지만
제가 이해하기에는 즐거움이 있는 동산이라기보다는 위로의 장소 어두움이없고 목마름이 없고 갈급함이 없고
갈증이 없고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곳이 바로 낙원이라고 저는 이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낙원에 아브라함과 함께 있는 것과 동일하다 라고 창세기 37장 35절에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37:35 그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가로되 내가 슬퍼하며 음부에 내려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 아비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이 음부는 창세기 37장 35절에서 기록되고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립니다.
이것은 야곱 이스라엘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죠. 음부 내가 슬퍼하며 음부에 내려 아들에게로 가리라
이 얘기는 뭡니까? 지금 요셉이 죽었다 라는 얘기를 자신의 자식들에게 듣고 나서 매우 고통 가운데 있었을 때
내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가로되 내가 슬퍼하며 음부에 내려가 음부에 가면 아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에
바로 이 야곱을 통해서 이 성경은 이렇게 기록된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음부는 사람들이 육체가 분리됨으로 말미암아 죽음을 경험할 때 죽은 사람들의 이 혼들과 영들이
머무는 곳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음부에는 두 구역의 장소가 있는데 어둠의 장소요 부자가 간 그 음부의 그 어둠의 장소는
사람들의 혼들과 영들이 갇혀 있는 곳이며 또한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있는 나사로가 있는 곳은 죽은 사람들의 혼들과
영들이 주님이 오실 때까지 잠시 머무는 곳입니다.
그래서 이 음부는 믿는 자들에게는 머무는 곳이기도 하고 믿지 아니하는 부자와 같은 자들에게는 그 혼들과 영들이 갇혀
있는 곳입니다. 이 아브라함의 품은 바로 모든 의인들이 주님이 강림하심으로 말미암아 부활을 기다리고 있는 대기하는
장소가 바로 음부인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23장 43절에 이러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을 때 오른편과 왼편에 강도가 함께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때 한편의 강도가 주님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생각하소서라고 주님을 향한 믿음을 보임으로 말미암아 최후의
간청을 했을 때 주님께서는 그것을 간과하지 아니하시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진실로 내게 이르노니 오늘 내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라. 그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라는 이 낙원이 다름 아닌 음부라는 것입니다.
음부는 즐거운 구역입니다. 어느 정도는 안식을 누리는 영원한 안식은 아니지만 일정 부분 안식을 누리는 곳이고
의인들이 주님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부활 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대기의 장소가 바로 낙원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낙원으로 표현된 음부 사람들은 음부라고 얘기하면 창세기 37장 35절에 기록된 것처럼 모든 사람들이
그 음부를 굉장히 기분 나쁜 고통의 장소로만 이해하고 있는데요.
사실은 그렇지 않다 라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립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2장 24절에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어 있을 수 없음이라 라는
이야기를 우리가 이 베드로사도가 열한 사도와 같이 서서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내용
가운데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분이 그날 한편 강도와 함께 낙원에 갔습니다. 이 낙원은 음부인 것입니다.
그 음부는 우리가 생각하는 고통의 장소가 아니라 주님을 따르고 주님을 믿고 하나님을 믿었던 신실한 자들이 가는 즐거운
구역인 겁니다. 위로의 장소이며 목마름이 전혀 없는 그러한 주님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부활을 대기하고 있는 대기의
장소인 것입니다.
그래서 주 예수님께서 죽으신 후에 이 한편 강도와 함께 가셔서 부활할 때까지 머무셨던 곳이 바로 누가복음 23장 43절에
기록된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라는 말씀이며
그곳이 바로 사도행전 2장 24절의 이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이 낙원이 주님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부활할 때까지 머무는 곳이 바로 한편 강도에게 말씀하신
음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2장 27절에서도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이 음부는 위로의 장소이며 대기의 장소며 즐거운 구역인 곳입니다.
믿는 자들에게 있어서 어두움이 없는 곳입니다.
그래서 썩음을 또 당치 않는 장소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낙원은 요한계시록 2장 7절에서도 낙원이 언급되고 있는데요.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그런데 요한계시록에 기록되어 있는 이 낙원과 지금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23장 43절과 사도행전 2장 24절에 기록된
이 낙원과는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이 계시록에 기록된 이 낙원은 영원한 도성입니다.
영원한 도성 새 예루살렘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영원한 도성인 하나님의 도성이며 우리의 거처인 새 예루살렘을 요한계시록 2장 7절에 낙원이라고 얘기한 것을 보면
주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23장 43절 말씀을 통해서 내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라는 이 낙원은 연결되어진
특별한 구역이이며 즐거운 구역이라는 것을 우리가 어느 정도 암시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계시록 2장 7절에 기록된 이 낙원은 영원한 하나님의 도성인 새 예루살렘으로써 천년 왕국 안에 있는 새 예루살렘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이 요한계시록 2장 7절에 나오는 낙원과 천년 왕국 안에 있는 영원한 하나님의
도성인 새 예루살렘과 누가복음 23장 43절에 오늘 내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라는 이 얘기는 다른 것입니다.
그럼 한편 강도가 영원한 하나님의 도성인 새 예루살렘에 갔을까요? 아닙니다.
천년 왕국 안에 있는 새 예루살렘 성에는 간자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 주님께서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라는 얘기는 바로 음부의 또 하나의 즐거운 구역인 아브라함과
모든 그 의인들이 부활을 기다리고 있는 대기 장소인 그곳에 간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 모든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들인 구약의 성도들과 신약의 그리스도를 쫓음으로 그리스도를 따름으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모든 의인들이 부활을 기다리고 있는 장소가 음부로서 즐거운 구역인데
그 음부는 즐거운 구역과 또는 믿지 아니한 자들이 갈 수밖에 없는 고통의 구역이 있다 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음부는 보통 100명 중에 99명이 음부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어둠의 장소요 고통의 장소요 아주 나쁜 장소
안 믿는 자들이 가는 어떤 그런 지옥과 비슷한 곳으로 생각을 하는데 음부는 그렇지 않습니다.
음부는 이 성경을 전체적으로 상고하고 묵상하게 되면 다음에 도래하는 시대에 있는 사람들의 영원한 거처는 아닙니다.
천년 왕국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원한 도성인 새 예루살렘의 거처는 아니지만 바로 육체에서 혼이 분리되면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육체에서 분리됨으로 말미암아 이 혼이 영과 하나가 되어서 임시로 갇혀 있는 곳이 음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음부는 바로 이 사도행전 2장 27절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사도행전 2장 27절에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이 음부에는 고통의 장소가 있고 즐거운 구역의 장소가 있지만 그곳에 영원히 내버려 두시지 아니하시고
3일 후에 부활케 하심으로 말미암아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셨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 음부는 구원받은 사람들을 위한 이 나사로처럼 하나님의 뜻을 쫓아 삶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서는 비록 고통을 당하며
살았을지라도 구원받은 사람들을 위한 즐거운 구역이요, 부활할 때까지 잠시 머무는 장소인 이 위로의 구역이며 잠시 머무는
구역인 특별하고도 즐거운 구역인 이 음부는 구약의 성도들과 신약의 성도들인 의인들이 머무는 곳이 바로 음부의
두 구역 가운데 위로의 구역이 주님께서는 낙원이라고 표현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음부에는 첫째로 구원받은 사람들을 위한 위로의 장소이며 대기 장소인 즐거운 구역이 있고 그리고 부자처럼
하나님의 뜻을 쫓지 않고 임의로 산 자들인 구원받지 아니한 사람들을 위한 어둠의 장소 목마름이 있는 장소인
고통의 구역이 있다 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6장에서 주님께서 친히 이 부자가 간 음부의 장소 중에서 고통의 장소인 이 음부의 이 두 곳 가운데서
고통의 장소에 있는 부자를 향하여 말씀하신 것이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주님께서는 바로 아브라함과 믿는 자들인 모든 의인들을 부활케 하실 것임으로 이 부활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
대기하는 장소가 바로 이 음부라고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3장 43절 말씀을 통해서 주 예수님께서 친히 한편 강도와 함께 죽은 후에 가셨던 곳입니다.
방문하셨던 곳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보편적으로 음부를 나쁜 곳으로 어둠의 장소로 마치 지옥과 연계되어서 아주 고통 받는
장소로 생각하고 있는데 그 음부의 두 구역 가운데 믿는 자들은 바로 즐거운 구역으로 상징되어 있는 아브라함이 있는
곳으로 가고 부자처럼 믿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을 쫓아 살지 아니하는 자들은 바로 고통의 구역으로 간다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그뿐만 아니라 두 구역 사이에는 누가복음 16장26절을 통해서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서
내가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여도 할 수 없고 거기서 이곳으로 건너 올 수도 없게 하였노라.
예 큰 구렁 깊은 어둠의 골짜기라고 상징되고 있죠.
깊은 어둠의 골짜기인 구렁이 있어서 마치 우리나라에 남한과 북한을 넘어갈 수 없도록 만든 38선과 같은
매우 깊은 어둠의 심연이 있는 곳이 바로 큰 구렁이라는 것입니다.
구렁이 있어서 즐거운 구역에 있는 사람이 고통의 구역으로 갈 수 없고 고통의 구역에 있는 부자 같은 사람들이 가는
그곳에서 즐거운 구역으로 왕래할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은 이 큰 구렁이 있기 때문이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은 자들은 부활의 날까지 믿는 자들은 음부인 즐거운 구역에 머물 것이고, 부자처럼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고
주님을 믿지 아니하는 모든 불신자들은 고통의 구역에 머물러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다가 주님께서 오시게 되면 바로 그 의인들을 부활케 함으로 말미암아 부활할 때까지 임시로 의인들이 머무는
장소가 이 즐거운 구역이며 위로의 장소인 음부 가운데 두 구역 가운데 좋은 장소라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말씀 드립니다.
그래서 주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의인들로 나타난 구원받은 자들은 부활할 것이므로 말미암아 바로 하나님께서 땅 위에서
천년 간 통치하시는 천년 왕국이 도래하기 전에 이 즐거운 구역에 있는 자들을 주님께서 부활케 하심으로 말미암아 천년 왕국
전에 이러한 일들을 발생시킬 것이라고 주님께서는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지 아니한 자들은 부자와 같이 주님의 뜻대로 살지 않고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치 않은 불신자들은 천년 왕국
후에 몸을 갖고 부활하여 백보좌 앞에서 심판받고 영원히 멸망당할 것이 다릅니다.
그래서 계시록 2장 7절의 낙원과 누가복음 23장 43절을 통해서 말씀하신 낙원과는 다르다 라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립니다.
하나님의 긍휼로 말미암아 사람으로 오신 구주의 그 십자가의 구속을 통하여 하나님께 선택되어진 그러한 자들이 음부의
두 구역 가운데서 즐거운 구역 안에 잠시 동안 대기하는 장소인 그곳은 누가복음 16장 24절에 기록된 것처럼
목마름과 갈증과 갈급함이 없는 그러한 위로의 장소라는 것을 여러분들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16장 22절부터 25절에 따르면 구약에 하나님을 믿고 따랐던 구약의 모든 사람들 아브라함이 있었죠.
이삭이 있었죠. 야곱이 있었죠. 예 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모든 후손들이 죽으면 이 혼들과 영들이 잠시 머무는 곳
그곳이 바로 낙원으로 표현된 음부의 즐거운 구역이고 믿지 아니한 자들의 혼들과 영들이 갇혀 있는 곳이 고통의 장소인
음부라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립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 말씀들을 통하여 암시하고 있는 것은 사람이 죽으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언제든지
그의 영은 그의 몸을 떠나 음부로 갑니다.
그런데 이 중간에 있는 나라는 존재인 자아인 이 혼이 육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육체와 함께 짝짝꿍이 되어서 육체의
치우친 삶을 살게 되는 것이 혼입니다. 그런데 죽게 되면 이 혼이 영에게 치우쳐서 영과 하나가 되어서
그 영이 그의 몸을 떠나 음부로 가게 되는 것이다. 무슨 얘기인지 여러분 이해가 되시겠죠?
죽은 사람들이 죽기 전에 사람의 육체가 있습니다.
육체가 있을 때는 이 혼이 육체에 접목되어져서 육체와 한편이 돼버립니다.
그런데 육체가 이 혼과 분리돼서 떠나게 되면 이 혼은 육체가 그동안에 하나의 연합되어진 삶을 살고 친교의 삶을 살고
육체를 위하여 존재하는 그런 존재로서 있었으나 육체가 분리되어서 떨어진 이 혼은 바로 영과 하나로 연결되어져서
사람이 죽으면 그의 영이 그의 몸을 떠나 혼과 하나가 되어 음부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은 사람들의 혼과 영이 갇혀 있는 곳이 사도행전 2장 27절에 기록된 바로 음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사람이 죽게 되면 누구든지 언제든지 그 영은 그 몸을 떠나서 혼과 함께 음부로 가는데 흙으로 만들어진
그 몸은 흙 속에 갇혀진 바 되어서 50년, 100년, 200년, 300년 지나면 흙으로 화해져서 사라져버리게 되어서 이 썩지
아니할 몸으로 주님께서 다시 한 번 의인들을 부활시키는 장면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썩을 몸은 죄 가운데 있었던 오염되고 부정된 몸이기 때문에 주님께서 썩지 아니할 몸으로 다시 한 번
부활케 하시는 육체의 몸을 입게 하는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몸에서 분리된 이 사람의 영들을 위해서 한 장소가 준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몸에서 분리된 영은 사망 곧 죽음을 당한 것을 나타낸 것이므로 말미암아 어떤 관점에서 볼 때는
부끄러운 영혼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부끄러운 영혼들을 위해서 덮어주고 어떤 면에서 위로해 주고 안식해주고 어떤 면에서는 즐거운 구역을
이렇게 위에서 살펴주시는 한 장소가 준비되어 있는 곳이 낙원으로 상징되어진 음부인 것입니다.
그런데 먼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의인들, 믿는 자들, 구약의 성도들과 신약 시대를 통해서 주님의 구속을 통하여 의인들이 된
구속함을 받은 자들은 먼저 부활을 하게 됩니다.그렇습니다. 계속 부활의 날까지 믿는 자들도 음부에 머물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도 음부에 머물지만 주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활케 하기 위하여 강림하실 때 바로 이 믿는 자들, 주님을 따르는 의인들,
구약의 성도들은 부활을 하게 되지만 구원받지 아니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은 천년 왕국 후에 몸을 갖고 부활하게 됩니다.
그래서 백보좌 앞에서 심판받고 멸망받게 되지만 믿는 자들, 의인들, 구약의 성도들은 천년 왕국 전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재림하셔서 우리를 하나님께서 이 땅 위에서 천 년간 통치하시는 천년 왕국 전에 그 일을 발생시켜서
우리를 천년 왕국 안으로 인도하는 장면을 우리가 암시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 예수님께서는 다시 오실 때 믿는 자들, 구원받는 자들, 나사로와 같은 자들은 반드시 천년 왕국 전에 부활할
것이라고 우리가 암시 받을 수가 있고 구원받은 자들은 천년 왕국 전에 부활될 것이지만 믿지 아니하는 자들, 구원받지
아니하는 부자와 같은 자들은 천년 왕국 후에나 몸을 갖고 부활하여 백보좌 앞에서 심판받고 영원히 멸망당할 것이라고
계시록 20장 11절부터 1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크고 흰 보좌에서 심판을 내리시다〕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
20:13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20: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그래서 주님께서는 하나님이 땅 위에서 천 년간 통치하시는 천년 왕국 전에 이 일들을 발생시킴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지
아니하는 믿지 아니하는 이 부자와 같은 자들과 구별되어지는 삶을 살게 하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지 아니한 자들은 천년 동안의 음부의 고통의 구역에 계속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부자와 나사로의 말씀을 통해서 그들에게 닥쳐지는 이 운명, 장차 그들이 돈을 매우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선한
청지기처럼 지혜로운 청지기처럼 그 돈을 생명의 유익을 위하여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이끄는 일에 돈을 사용하지 않고
임의로 써서 자기 자신의 육체의 탐욕을 위해서 쓴 모든 자들은 부자와 같이 음부의 또 하나의 고통의 구역의 장소인
그곳에 가서 몸을 가지고 부활할 때까지 천년 왕국 기간 동안에 믿는 자들은 천년 왕국 안에서 정말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다스리는 자들로 삶을 살지만 이 믿지 아니하고 부자와 같이 주님의 말씀의 뜻대로 살지 않고 주님을 따르지 아니하는 믿지
아니하는 모든 자들은 천년 왕국 동안에까지도 음부로부터 계속 삶을 살고 천년 왕국 끝에 바로 음부에서 몸을 가지고
부활하여서 백보좌 앞에서 심판받고 영원한 멸망의 판결을 받을 것이라는 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5장 24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고통의 장소에 간 것이고 나사로는 가난했기 때문에 그 위로의 장소
즐거운 구역에 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 구원받았다는 것이 에베소서 1장 13절에 기록돼 있는
것입니다. 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부자는 돈이 많고 물질이 많고 소유한 것이 많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했기 때문에 멸망당했다는 것이
사도행전 13장 46절에 기록되고 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이 얘기는 뭡니까? 하나님의 말씀인 주님의 말씀을 단호하게
거절했기 때문에 멸망당했다는 것입니다.
이 돈을 매우 사랑하는 바리새인들이 거절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죠? 예 14절 말씀을 보십시오.
바리새인들은 돈을 매우 좋아하는지라 이 모든 것을 듣고 코웃음 치고 비아냥거렸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사람으로 오신 구주의 말씀을 노골적으로 정면으로 거절했기 때문에 멸망 당했다라는 것이며
이 부자와 나사로에 대한 얘기는 돈을 매우 사랑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한 이 얘기는 얼마나 무섭고
무시무시한 말씀인지 우리가 암시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부자의 그 대화를 통해서 우리가 그 부자는 음부인 두 구역 가운데서 고통의 장소 위로가 없고 안식이 없고
목마름만이 있는 어둠만이 있는 그곳에 그러나 이 빛의 세계인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있는 이 나사로가 있는 즐거운 구역이며
위로의 장소이며 목마름과 갈증이 없는 그 빛의 세계에 있는 그곳은 음부임에도 불구하고 그곳은 낙원으로 갈 수 있는 자들이
임시로 머무는 곳임을 보고 알게 되어 그제서야 후회하고 있는 부자의 모습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27절에 보면 가로되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16:28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라고 말하며 차라리
저 나사로가 있는 위로의 장소, 즐거움의 장소 너무나 좋은 장차 하나님의 영원한 천년 왕국 안에 있는 새 예루살렘으로
갈 수 있는 길목에 들어서 그들은 부활함으로 말미암아 천년 왕국에서 삶을 살며 새 예루살렘 성에서의 영원한 삶을 미리
맛본 자들의 삶을 통하여 내 형제들이 그곳에 가지 않도록 제발 강력하게 권하여 말하게 하소서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장면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선지자들이 기록하고 모세의 율법이 기록되어서 표현된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이 돈을 매우 사랑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모세와 선지자로 표현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 거지 나사로는
위로의 구역에 있고 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고통의 장소로 갔다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20절에 보면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16:21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라는 이 말씀은 나사로는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차후에 도래하고 자기의 운명을 결정지을 하나님의
도움을 받기 위하여 그는 정말 고통 가운데 부자에게 구걸하면서 살지 않으면 도무지 살 수 없는 형편에 처했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다 보니까 임의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돈을 선용하여서 지혜로운 청지기처럼 쓰다 보니까
자기 자신의 안락과 오락과 쾌락을 위해서 썼다 라면 행복하게 살았었겠죠. 그러나 그 사람은 돈을 사용함에 있어서 자기
주인의 집에 있는 청지기로서 잠시 자기에게 맡겨진 삶을 통해서 자기에게 주어진 그 물질들 소유들을 아주 선용하여서
다른 사람들의 생명의 유익을 위하여 그 돈들을 다 썼다 라는 것을 우리가 암시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부자는 다른 이웃들을 위해서 쓰기보다는 자신의 향락을 위한 자신의 오락과 쾌락과 즐거움을 위해서
쓰다 보니까 부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암시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바로 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궁핍한 삶을 살고 고통당하는 삶을 사는 것이 혼들을 잃어버리는
삶을 사는 것이 차후에 발생되어질 천년 왕국 전에 우리가 부활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땅 위에서 천년동안 통치를
하시려는 그 천년 왕국 안에서 우리는 왕으로서 제사장으로 다스리는 삶을 살게 될 것이지만 혼을 잃어버리지 않고 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흥청만청 하나님께서 임시로 보관시켜서 자기에게 맡겨진 그 돈들을 임의로 사용하게 되면 비록 부자로
살지는 몰라도 바로 음부의 고통의 장소에 갈 수밖에 없다라는 무서운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말씀들을 듣지 않는다면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그 사람으로 오신 구주이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지 않는 자들은 죽은 자들로부터 예 나사로는
죽은자 였었죠? 이 죽어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있는 나사로와 같은 자라 할지라도 기적적으로 이 나사로가 똑같은
이름을 가진 것을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첫 번째 나사로는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한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라비입니다.
그러나 이 두 번째 나사로는 또 하나의 사례의 말씀을 통하여 죽은 자들로부터 기적적으로 부활한 나사로와 같은
자가 있다 할지라도 설득되지 않는다 라는 것입니다.
왜 나사로 얘기를 연거푸 두 명의 사람을 통해서 주님께서 말씀하셨을까요?
그것은 죽은 자들로부터 이 나사로가 계속적으로 부활했기 때문에 그 계속적으로 부활한 자가 친히 가서 강권적으로
말을 전하고 명하여도 안 듣는다 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나사로를 내 아버지 집에 보내소서라는 얘기는 그 죽은 음부의 즐거운 구역에 있고 위로의 장소에 있는
나사로가 다시 살 수 있나요? 없죠 그러나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라비인 나사로는 부활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런 나사로가
죽은 자 가운데서도 기적적으로 부활하여서 전한다 할지라도 절대 그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라는 얘기를 함으로 말미암아
바로 돈을 사랑하고 임의로 재물들과 금전들을 사랑한 이 오늘날의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 가운데 바리새인들과 같이
상징되어진 자들에게 바로 죽은 자들로부터 십자가를 통하여 3일 만에 부활하셨을지라도 절대 설득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가 사도행전 13장 30절부터 40절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얘기를 사도들이 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있는 자들이 전혀 그 이야기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13:29 성경에 저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13:30 하나님이 죽은자 가운데서 저를 살리신지라
13:31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날 보이셨으니 저희가 이제 백성 앞에 그의 증인이라
13:32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노니
13:33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13:34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가라사대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13:35 그러므로 또 다른 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
13:36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13:37 하나님의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13:38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13:39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13:40 그런즉 너희는 선지자들로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
그래서 누가복음 16장 31절에 뭐라고 기록돼 있습니까?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찌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이 죽은자 가운데서 살아난자가 바로 누구 입니까? 첫 번째로는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라비인 나사로 곧 죽었다가
예수님에 의하여 부활한자와 그리고 지금은 음부에 가있는 나사로 얘기를 하고 있고 두 번째로는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신 그리스도릏 전하는 제자들의 말도 누구도 듣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단지 호기심과 궁금증을 가지고 듣긴 하지만 그런 호기심의 생각을 가지고 듣는 자들은 설득되지 않는다 라는 것을
이 누가복음 31절 말씀은 우리에게 계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31절에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이라는 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난 나사로라 할지라도 그리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하는 제자들의
말일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할 것이다 라는 얘기를 통해서 나사로를 내 형제 다섯에게 보내주소서라는 얘기를 통해서
아브라함이 안 된다 듣지 않는다 그들이 회개 할 것이라고 너는 얘기하지만 모세와 선지자들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자들은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나사로가 전한다 할지라도 그리고 죽은 자 가운데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전한다 할지라도 하나도 그들이 주님을 영접하지 않을 것이다 라는 얘기를 전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것에 귀를 쫑긋하고 듣는 자들은 설득되지 않고 주님을 영접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오직 호기심과 궁금증과 의심어린 생각이 아닌 온전하고도 합당한 생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을 둘 때 곧 사람으로 오신 구주가 누구이신지를 알기 위하여 성경을 묵상하고 상고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깨닫게 되어서 바로 거지 나사로와 같은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이 음부의 두 구역 가운데 즐거운 구역이요 위로의
장소이며 안식이 있고 목마름과 갈증이 전혀 없는 그곳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면서
오늘의 모든 교제의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