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할 말,하면 안될 말 / 강길용
「말하기 나름」이라는 말이 있다. 「하기 나름」이란 상대방을 부드럽고 기쁘고 행복하고 즐겁게 해 줄 수 있는 말을 하느냐, 아니면 사람을 괴롭고 고통스럽고 불행하게 만드는 말을 하느냐에 따라서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어떤지 모르지만 요즘 우리는 말의 홍수 속에서 살아간다. 하루에도 수백, 아니 수천 마디의 말을 듣고도 모자랄 정도다. 티브이, 라디오, 거리에서 들리는 이야기, 강의, 업무 지시, 사랑의 이야기 등 수없이 많은 종류의 말들을 들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끝낼 정도로 말이 많다.
거기에는 쓸 말이 있고 흘려 버려야 할 말이 있다. 쓸 말은 감동을 주거나 기억해 두면 좋은 말을 말한다. 흘려 버려야 할 말은 욕설이나 비난이나 거짓말 같은 것들을 뜻한다. 해야 할 말이 있고 하지 않아도 될 말이 있다. 그리고 하면 안될 말이 있다.
작년 6월말에 삼풍백화점이 붕괴된 사고가 났다. 잠시 그곳에서 자원 봉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현장에는 수많은 유가족들이 몰려와 경찰과 대치하고 현장 확인을 요구했다. 그러다 혼절하여 쓰러진 사람들도 있었다. 분노와 욕설로 얼룩진 말들이 오갔다. 유가족들 틈에는 브로커와 같은 사람도 있었다. 가족들과 경찰 측이 협상을 하려 하면 이상한 소문을 퍼트려 유가족들을 더 분노하게 만들었던 사람이 있었다. 얼굴은 기억나질 않지만 옆에서 구경을 열심히 하다가 유가족과 경찰이 대치한 상태가 좀 누그러들 기미가 보이면 유가족들 사이에 끼여들어 시신을 포크레인으로 마구 찍어낸다는 말이 있다고 한마디한다. 그리고 자기는 그 현장을 보았다는 말을 한다. 그러면 더 심한 오열을 터트리는 유가족들의 시위가 거세 진다. 그러다 몇 사람의 유가족 대표가 현장에 들어갔다 나오면 좀 조용해진다. 그러면 그 사람은 또 들어가 유가족들을 선동한다.
이 사람은 무엇을 위하여 그런 일을 하는지 모른다. 한편에서는 빨리 협상을 하고 한 구의 시신이라도 성한 상태로 끄집어내기를 바라고 다른 한편에서는 천천히 혹시나 살아 있는 생존자를 구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선 상태에서 그들의 가슴에 한을 맺히게 하는 이야기로 또 한번의 생명을 죽이는 일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이 사람의 말은 그 당시 분노한 유가족들의 가슴을 산산이 갈라놓고 남는다. 타인의 불행을 통하여 자신은 무엇을 얻으려 그랬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얻은 결론은 그랬다. 그는 그런 상황에서 자기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보여 나중에 있을 보상금을 한푼이라도 나눠 받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였을 것이라는 나만의 생각을 해 보았다. 이런 말은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이어서 해서는 안될 말임에 틀림없다.
또 어떤 사람은 조리도 없고 전혀 설득력도 없는 말을 주저리주저리 읊어 대는 사람이 있다. 말의 시작도 끝도 없다. 수 없는 말들의 잔치에서 우리는 무엇을 찾아야 하고 무엇을 보아야 하는 것일까? 어떤 말이 진실이고 어떤 말에 믿음을 가져야 할지도 모른다. 많은 말을 하게 되면 언젠가는 자기의 말로 인하여 속박의 오랏줄을 차게 된다. 지킬 수 없는 약속을 수없이 하고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변명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엔 그 사실이 거짓임이 들통이 나게 마련이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어린 시절부터 거짓말을 하는 것에 대하여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한다. 자기가 책임질 수 없는 말에 따르는 대가가 얼마나 냉혹한지를 모른다.
경남 통영군 도산면이라는 곳에 수월리라는 마을이 있다. 88년 여름 나는 그곳에서 해안 소대장을 하고 있었고 방위병과 현역간의 보이지 않는 힘 겨루기로 해마다 한두 명은 죽음에 이르거나 영창을 가곤 했다. 수류탄을 들고 나가 자살하는 일이 있는가 하면 현역을 쏘고 달아나다 잡힐 위기에 처하게 되자 자살을 하는 일이 가끔 있었다. 이처럼 험악한 분위기에서 나는 소대장 생활 동안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는 점에 대해서 함께 근무했던 병사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보낸다.
이때 소초에서 있었던 일이다. 비가 몹시 쏟아지는 어느 날이었다. 마을에 사는 방위병이 폭우를 맞으며 찾아와 울면서 이야기를 하였고 나는 그 말을 믿었다. 그의 말은 이런 것이었다.
"소대장님 저희 할머니께서 어젯밤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래 무척 안된 일이군. H일병 오늘 근무지. 근무는 쉬고 어서 집에 돌아가 봐."
"알겠습니다. 소대장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해서 나는 그를 집으로 돌려보내며 한번 찾아가서 문상을 하겠노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난 날 나는 구판장에서 소주 됫병을 사고 제물로 쓸 수 있는 과일과 과자를 사서 전령을 데리고 그의 집으로 찾아갔었다. 그런데 상가치고는 무척이나 조용한 느낌을 주었다. 잘못 찾은 것이 아닌가 했지만 집의 번지수가 맞았고 한번 가정 방문을 했던 곳이라 확실했다. 성큼 들어가니 마당에서 그의 아버지가 일을 하고 계셨다.
"안녕하셔요? H일병 아버님!"
"어이구 소대장님께서 어인 일이신 가요?"
"네 H일병이 그저께 할머님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해서 문상이라고 왔습니다. 조그만 것이지
만 받아 주십시오."
"소대장님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아니 살아 있는 사람한테 문상을 오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소대장님이 뭔가 잘못 알고 오신 모양이네요."
"아 그러십니까?"
이렇게 대답을 하며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미안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사 가지고 간 과일과 소주를 들고 되돌아오고야 말았다. 돌아오면서 아주 느꼈던 불쾌한 기분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얼마나 다급한 일이 있었으면 살아 계신 할머니를 돌아가셨다고 핑계를 대고 어디로 갔을까? 어떻게 해야 할까? 한참을 망설였다. 아버님의 말씀으로는 그 날 이후 집에 들어오질 않았다는 것이다. 탈영 보고를 낼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데 그날 밤 늦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H일병이 초소로 들어온 것이 아닌가. 나는 무척이나 화가 난 상태에서도 이성을 찾으려고 노력을 했다. 그를 소초장실로 데리고 가서 기합을 주었다.
내가 분노했던 것은 거짓말을 했다는 데 있지 않았다. 살아 있는 할머니를 돌아가셨다고 거짓말을 하고 가서 한 일이 이미 떠나 버린 한 여자의 집에 찾아갔던 일이다. 분명히 쉬는 날 가도 될 텐데 할머니를 죽이고 갈 정도로 중요한 일이었을까 하는 점이다. 왜 쉽게 들통이 날 일을 핑계로 하여 그렇게 했을까? 그는 끝끝내 그에 대한 해답을 명쾌하게 해주질 못했다.
말에는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다. 그리고 한 말에는 분명한 책임을 져야 한다. 중국의 고전 중의 하나인 「맹자」에는 「이기언야 무책이의(易其言也 無責耳矣)」라는 말이 있다. 말이 쉬운 것은 결국 그 말에 대한 책임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란 뜻이다. 남이 믿을 정도로 진지하게 말을 하고 나중에 농담이라고 얼버무리는 일도 있다는 것을 경계함이 아닐까? 그러나 우리는 지금 말을 많이 하는 것이 똑똑한 것으로 생각한다. 해야 할 말, 하지 않아도 될 말, 해서는 안 될 말을 구분할 수 있는 진실의 지혜가 필요하다.
1996. 6. 16 月山 康吉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