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의 예술/정동윤
(중구 문화원 첫 방문)
서울의 중구 문회원에서
예총과 미술 협회를 대표하는
신석주 회장의
"생활 속의 예술"이라는 강의가
11월 13일 오후 4 시
장교동 중구 문화원 2 층에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중구 문협에서도 6 명이 참석.
신석주 회장은 중구 미협, 예총을
품으시며 강의, 미술, 음악, 문학 등
다양한 재능을 가진 분 같았다
양성의 성격을 강의하신 것처럼
본인도 여성의 섬세한 기질과
남성의 마초적 성품을 모두 가진
인기가 많은 분 같았다.
(저로서는 처음 만났기에...)
"천재의 직관이 있으며
광기에 찬 변태가 있고
퍼 담을 수 없는 열정이 있고
빗나간 욕망과 그리고
기가 찬 속임수가 있다"
라는 예술가의 모습을 소개하는데
신석주 회장, 본인의 모습이
겹쳐져 보이는 건 왜일까?
강의 내용 중
조선 시대 여성의 예술혼을 불태운
여류 문인이자 예술인, 기생으로
황진이, 이매창, 김부용을 소개하며
기생의 삶과 시를 짧게 언급하였고
나는 특히 매창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지만 스치듯 지나갔다
강의가 끝나고 1층에서
미술 전시회의 개막을 알리며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헤어졌다
김화인 시인은 바쁜 일로
먼저 자리를 떠났고
오지숙,김경희 시인도
총총 먼저 떠났다.
방명록에 문협 참가자 이름을
내가 모두 대신 적어두었다
다리가 불편한 김정자 시인과
이두백 작가와 뒤에 남아
저녁을 먹을지 말지 의논하며
식당을 살피는 중에
신석주 회장의 일행을 만났다.
충무로역 4 번 출구 인근의
퇴계로 식당에서 뒤풀이가 있으니
함께 가자고 권하신다.
밥 먹으려는데 식당 가자시니...
땡큐죠.
김정자 시인은 그들과 먼저
택시를 타고 떠났고, 남은 우리는
뚜벅이 발걸음으로 찾아갔다.
택시나 뚜벅이나 거의 비슷한 시간에 식당에 도착하였답니다.
퇴계로 식당 뒤풀이에는
중구 미협 회원들 중심으로
모였지만 예술인 특유의 감성과
친화적인 훈훈한 분위기에다가
인심 넉넉해 보이는
신 회장이 술자리를 주도하면서
먼저 나를 지목하시며
이매창의 애절한 편지 시를
요청하셨다.
아까 택시를 기다리며
오늘 강의 중 이매창의 언급이
너무 짧았음을 토로하며
그의 편지 시를 일부 언급하였더니
그걸 놓치지 않고 요청하시니
사양하기도 어려워 감히 낭송해
보았다.
이화우/이매창
"어젯밤에 꿈을 꾸었어요
이녁은 술 한 병 손에 쥐고
한 손에는 매화 가지를 들고 계셨지요
마치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웃으시며 제게 다가 오셨어요
어질어질한 기운으로 부스스 일어나
이녁이 건네시는 꽃
가지를 잡으려는 순간
몸서리치며 잠에서 깨어났답니다
그리곤 비몽사몽 간에
혼곤한 취기에 쌓여
박명에 닭이 훼를 치기까지
몸을 엎치락뒤치락 하였지요
임진년 왜구가 새까맣게 밀려오고
이듬해 봄 의병을 모아
서애 선생을 돕겠다며 떠나실 적
이녁의 두루마기 뒷자락에
비처럼 흩날리는 배꽃을 기억합니다
그 한 순간이 억겁마냥
까마득하고 아련하여
간 심장이 멈추는 듯 하였습니다
뒤도 돌아보지 아니하시고
성큼성큼 큰 걸음 옮기시던
이녁이 밟는 황토 먼지가
내려 앉는 배꽃과 뒤섞여 분분하였지요
(하략)
한창 도도한 흐름을 이어가는데
떨그럭 소리와 분위기 깨는
이야기 소리가 크게 들려
잠시 낭송을 멈추었다.
술자리에서 긴 시는 어울리지 않고
순간적으로 시귀가 막혀버리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이어가기가
참 어렵다.
얼른 양해를 구하고
가을을 대표하는 김현승 시인의
"가을의 기도"로
바꾸어 마무리할 수 있었다.
환호의 분위기는 고조되었고
고기는 지글지글 익어가고
불판 위로 김치와 미나리도 올려져
입맛이 돋우어지며 술잔을
자주자주 비워나갔다.
무르익어가는 술자리에
신 회장의 구수한 노래가 흘렀고
나도 내친김에 의자에 올라가
중구의 대표적 시인인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를 들려주었는데
낭송 중에 추임새까지
넣어주는 한바탕 집중력에
참으로 즐거운 낭송이 되었다
이런 낭송의 기억은 거의 없었다.
감성 풍부한 예인들이라
공감지수가 이토록 높기에
모두가 함께 공유한 행복감이었다
또 이두백 선생의 " 한오백년"도
함께 장단 치며 따라 불렀으니
오늘 밥값은 제대로 치른 셈이다.
그리고 이두백 선생께서
문협 김정자 선생을 소개하며
노래 한 곡을 청하는 박수를
유도하였다.
김정자 선생이 "동심초"를
소프라노로 들려주시는 바람에
소맥이 술술술 넘어갔다.
참고삼아 '동심초'라는 노래는
부안의 이매창의 죽음을 기리면서
허균이 노래한
'매창의 죽음을 슬퍼하다'라는
시에 당나라 여류 시인 설도로
비유한 글이 있다.
그 설도가 지은 "춘망사"라는
시 4편 중의 3 번째 시를
시인 김안서가 번역하여
가사로 만들었고
작곡가 김성태가 곡을 붙여
크게 유행한 노래이다
*매창의 죽음을 슬퍼하다/허균
아름다운 글귀는 비단을
펴는 듯하고
맑은 노래는 구름도 멈추게 하네
복숭아를 훔쳐서
인간 세상에 내려오더니
불사약을 훔쳐서
인간 무리들 두고 떠났네
부용꽃 수놓은 휘장엔
등불이 어둡기만 하고
비취색 치마엔 향내가
아직 남아 있는데
이듬해 작은 복사꽃 필때 쯤이면
그 누가 설도의 무덤 곁을 지나려나
*춘망사/설도
1.
꽃이 피어도 함께 바라볼 이 없고
꽃이 져도 함께 슬퍼할 이 없구나
그대 어디 계신가요
꽃은 피고 꽃은 지는데
2.
풀잎을 따서 한 마음으로 맺어
내 님에게 보내려 했건만
봄 시름은 속절없이 끊어져버리고
봄새가 다시 슬피우네
3.
바람에 꽃잎은 시들어가고
만날 날은 아득히 멀어져 가네
마음과 마음은 맺지 못하고
헛대이 꽃잎만 맺히는가
4.
어찌 견디리 꽃 가득 핀 나뭇가지
괴로워라 사모하는 이 마음
아침 거울에 눈물 흐르건만
봄바람은 아는지 모르는지
*동심초 가사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히려는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히려는고.
이렇게 중구문화원 방문은
성황리에 끝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