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종종 꿈을 꾼다. 어떤 꿈은 해몽이 필요할 정도로 너무 생생하고 확실하여 그냥 넘어갈 수 없는 그런 꿈이 있는가 하면 어떤 꿈은 그냥 단순한 생리적인 꿈이기도 하다. 성경은 (민 12:6) 이르시되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환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라고 기록한다. 꿈은 때때로 하나님이 선지자들에게 그분의 뜻을 전달하는 도구로 사용하셨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모든 꿈이 다 하나님의 계시라는 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은, 전달자가 선지자라는 것이다. 선지자는 하나님이 택하셔서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종들을 말하며 선지자, 선견자라고 부른다.
꿈을 무시해서도 안 되고 꿈을 너무 신봉해서도 안 된다. 그 꿈이 과연 계시적인 꿈인지 단순한 생리적인 꿈이나 개꿈인지 분간할 수 있어야 한다. 계시적인 꿈은 마치 생시의 상황처럼 어렴풋하지 않고 너무 생생하고 분명하다. 그럴 때는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그 뜻을 알아봐야 한다. 하지만 늘 마음에 생각하는 무엇이 있으면 그것이 꿈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경우는 현실이 무의식에 영향을 주어서 생기는 현상일뿐이다.
오래전에 한 분이 자기가 왜 내가 섬기던 그 교회 교인이 되었는지 들려주었다. 하루는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자기가 교회를 찾고 있었다. 길가에 크고 멋진 교회가 있어서 들어가 보니 사람은 무수히 많은데 도무지 그 교회에 들어가고 싶지 않더란다. 그래서 그 교회를 나와서 좀 더 가보니 정원이 잘 꾸며진 교회가 있어서 여기인가 생각하고 들어갔더니 마당에 온갖 조상들이 있는데 마리아상과 다른 것들이 세워져 있어서 마음이 이상해서 다시 나왔다. 다시 교회를 찾기 위해 골목길로 접어들었는데 지나가는 사람이 있어서 혹시 여기에 교회가 없느냐 물었더니 저기 모퉁이를 돌아가면 아주 멋지고 아름다운 교회가 나올 것이라며 지나갔다. 그래서 서둘러 모퉁이를 돌아보니 정말 교회가 하나 있는데 너무 초라하고 볼품없어 보이는 조그만 교회가 하나 나타났다.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그 교회 마당으로 들어서서 교회 문을 여니 갑자기 눈을 뗄 수 없는 밝은 빛이 쏟아져나와서 잠을 깼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꿈에서 봤던 그 작고 초라한 교회의 모습이 오래전에 내가 섬기던 교회라는 것이다.
이런 꿈은 꾸고 나면 무시할 수 없는 꿈이다. 그리고 그런 꿈의 내용을 현실에서 다시 만나기도 한다. 창세기 40장에는 바로의 두 관원이 꿈을 꾼 사건이 나온다. 두 사람은 간밤에 꾼 꿈이 너무 생생하여 그 내용을 소상히 말할 수 있었다.
(창 40:7) 요셉이 그 주인의 집에 자기와 함께 갇힌 바로의 신하들에게 묻되 어찌하여 오늘 당신들의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나이까 (창 40:8)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
요셉도 다니엘도 꿈의 해석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고 고백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꿈을 해석하는 능력을 주시고 후일에 그분의 큰 계획을 이루시기 위하여 꿈을 활용하신다. 그날 요셉이 해석해 준 대로 한 사람은 복직을, 한 사람은 처형당했다. 그리고 아직 하나님의 때가 되지 않아서 그 관원은 요셉을 잊고 말았다. (창 40:23)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
요셉은 꿈을 꾸는 자에서 꿈을 해석하는 자가 되었고 마침내 바로의 꿈을 해석하고 어려서 그가 꾼 꿈이 눈앞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다. 꿈 꾸는자, 꿈을 해석하는 자 그는 진정한 제국의 지도자가 되었다. 다니엘이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 아버지, 꿈을 꾸는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되지도 않을 개꿈이나 꾸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위대한 꿈 세상을 변화시킬 원대한 꿈을 꾸는 사람 되게 하소서. 시세를 분별하고 꿈을 해석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그런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