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생진화론의 창시자 린 마굴리스(Lynn Margulis),
인간은 호모 인사피엔스(Home insapience)이다.
한 때 천문학자 칼 세이건(Carl Sagan)의 아내이기도 했었던 공생진화론의 창시자 린 마굴리스(Lynn Margulis)의
연구는 인간 생명의 역사를 40억 년 전 미생물 생명의 역사로까지 확대시켰다.
공생은 두 생물체가 합쳐져서 세포와 생물 몸체를 영원히 공유하면서 서로 이익을 얻는 메커니즘이다.
공생적 과정은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다.
거대생물우주(macrocosm)의 생물들은 그들 서로뿐만 아니라 미생물우주(microcosm)와도 상호 작용하고 또
그들에 의존해서 생활한다.
콩과식물들은 자신의 뿌리에 질소 고정 박테리아를 갖지 않으면 질소가 부족한 토양에서 생존할 수 없으며
우리는 그런 식물들에서 얻는 질소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하다.
수분을 제외한 우리 몸무게의 10퍼센트 이상은 살아있는 박테리아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의 일부는 비록 우리 몸의 직접적인 구성원이 아니라고 해도 그들 없이는 우리도 존재할 수 없다.
태곳적 최초의 박테리아에서부터 현대의 인간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많은 공생적 생물체들이 지상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러나 미생물우주의 공통 요소는 언제나 변함없이 그대로 존속한다.
우리 몸속의 DNA는 최초의 바닷속 따뜻하고 얕은 물에서 형성되었던 원시세포들의 DNA 분자가 단절되지 않은
채 전해진 것이다.
우리 몸은 다른 모든 생물과 마찬가지로 원시 지구의 환경을 그대로 보전하고 있다.
우리는 현존하는 미생물들과 공존하며 우리 세포 속에 유입되어서 공생하게 된 과거 박테리아들의 유물을 몸
속에 포함하고 있다. 미생물우주는 바로 이런 방식으로 우리 속에서 존재하며 또 우리는 그 속에서 생존한다.
지상의 모든 생물이(인간까지 포함하여) 자가보전적 존재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지표면의 모든 생물은 외부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자신을 조절하는데, 이는 어느 개체, 어느 종을 막론하고 모두
그러하다.
이제까지 존재했던 종의 99.99퍼센트는 이미 지상에서 사라져버렸지만 행성 지구 전체의 생물군은 30억 년
이상의 세월을 유지해왔다.
그리고 바로 이 생물군의 중추적인 구성원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바로 미생물우주, 즉 끊임없이
진화하는 셀 수 없이 많은 미생물들인 것이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생물권은 후기에 형성된, 미생물우주의 덧자란 한 부분에 불과하며 이는 오직 미생물
권의 활동과 잘 연계되어 있어서 그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연속적인 화석 기록을 통해 지구의 온도와 대기권 등의 환경 조건이 지상의 모든 생물을 완전히 멸망시킬
정도로 최악의 상태에 이른 적이 아직까지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신의 간섭과 행운을 배제한다면, 오직 생물 그 자체만이 환경의 악조건에 직면해 생명의 연장에 적합한 조건을
스스로 만들 수 있는 강력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인류는 공기와 물을 오염시켜 자손을 불행하게 할 수도 있고 우리 운명을 스스로 그르칠 수도 있지만, 그런 행위
들조차도 미생물우주의 영속성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우리 몸은 약 10,000조(10¹²) 개의 동물세포로 이루어져 있으며 또한 약 10만조(10¹³)의 박테리아 세포를 지녔다.
인간에게는 '천적'이 없다. 그러나 죽으면 그동안 잊고 지냈던 우리의 근원인 흙으로 돌아간다.
이때 우리 몸의 물질을 재순환시키는 생물은 바로 미생물이다.
미생물우주는 우리 주위에서 여전히 진화를 거듭하고 있으며 우리의 주변에, 그리고 우리 내부에 존재한다.
진정한 인간의 길
인간과 자연은 과연 어떤 관계일까?
인간의 과학적 명칭, 즉 린네식 학명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ome sapience sapience),
다시 말해서 "인간, 현명하고 또 현명한"이다.
그렇지만 더 겸손한 명칭 또는 신랄한 명칭을 붙인다면 우리는 인류에게 호모 인사피엔스(Home insapience),
즉 "인간, 현명함과는 거리고 멀고 멋도 없는"이 적격이겠다.
우리는 스스로 자연의 지배자라고 생각한다. 지금으로부터 2400년 전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
라고 이미 선언했다.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당당할 수만은 없는 것 아닌가.
이 책 《마이크로코스모스 : 40억 년에 걸친 미생물의 진화》는 우리 스스로 강화했던 그런 허상에서 과감히 탈피
해 인간은 지구 행성의 한 바보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인류는 오랫동안 프로이트식 자만감에 빠져서 자신을 지구 행성의, 또는 지구 생물권의 주인이라고 믿어왔다.
마치 "무대 위의 모든 변화를 자신의 손짓 하나로 통제할 수 있다고 청중이 믿도록 온갖 웃기는 행동조차 마다
하지 않는" 곡마단 어릿광대처럼 말이다.
사실 우리는 단 한 가지 점만 빼고 그 어릿광대와 꼭 닮았다.
"자연은 종종 하찮기까지 하다"라고 말하면서 인간 중심주의에 집착하는 지독한 에고(자아)는 어릿광대에게서
조차 찾아볼 수 없다.
프로이트는 이렇게 지적했다. "하지만 청중들 중에서 오직 어린아이들만 그 어릿광대에게 속아 넘어간다."
아마도 행성생태학(Planetary ecology)과 관련해서 인간이 지닌 멍청함 역시 우리가 아직 소년기 티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지구를 공유하는 여러 생물종의 하나로서 우리는 총체적으로 여전히 미성숙한 존재이다.
설령 우리가 자연이 낳은 멋진 자녀가 틀림없다 해도 "가장 진화된 생물종"이라는 과학적 자만만큼은 결코 용납
될 수 없다. 미생물우주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우리 인간 "임금님"은 더 이상 임금이 아니며, 더 이상
걸칠 수 있는 옷도 없다.
인간이 자연과 떨어진 독립된 존재라는 환상은 자연을 무시하는 위험한 태도이다.
생명은 처음 탄생한 이후 현재까지 (40억 년이라는) 다윈주의에서 바라보는 시간대와 (지표면에서부터 대기권
상층부까지 상공으로 15킬로미터, 그리고 심해의 바닥까지 10킬로미터에 이르는) 베르나드스키의 공간대를
점유하면서 여전히 그 존재를 과시하고 있다.
우리 인간은 그 생물권에 파묻혀 사는 존재로 그 속에서 탈출한다는 것은 곧 죽음에 이르는 길이다.
- 저자 서문 중에서 -
인간이 지구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인간을 돌보는 것이다.
신라마르크주의자라 불리우는 린 마굴리스는 다른 모든 영장류들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신의 창조물이 아니라
매순간 반응하는 미생물들의 수십억 년에 걸친 상호 작용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은 '공생'이라는 고리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생명은 '공생 진화'가 없었다면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인간 같은 동식물의 몸은 수많은 세포들이 공생한 결과물이다.
그리고 세포 역시 여러 고대 세균들이 공생 진화의 길을 택하면서 형성된 것이다.
어쩌면 지구 자체도 수많은 생물들이 결합되어 있는 또 하나의 공생자일지 모른다.
진화가 일어나기 위한 4가지 조건 : 변이, 유전, 경쟁, 자연선택
1858년 월리스(Alfred Russel Wallace)와 함께 영국 린니언 학회(Linnean Society)에서 발표한 논문에서 다윈은
진화가 일어나기 위한 조건으로 다음의 네 가지를 들었다.
1. 한 종에 속하는 개체들은 각자 다른 형태, 생리, 행동 등을 보인다.
즉 자연계의 생물 개체들간에 변이(variation)가 존재한다.
2. 일반적으로 자손은 부모를 닮는다. 즉 어떤 변이는 유전(heredity)한다.
3. 환경이 뒷받침할 수 있는 이상으로 많은 개체들이 태어나기 때문에 먹이 등 한정된 자원을 놓고 경쟁
(competition)할 수밖에 없다.
4. 주어진 환경에 잘 적응하도록 도와주는 형질을 지닌 개체들이 보다 많이 살아남아 더 많은 자손을 남긴다
(자연선택 natural selection).
변이가 있어야 선택이 의미가 있다
첫째 조건인 변이에 관하여 잠시 살펴보자. 자연계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형질들에는 대체로 변이가 존재하기
마련이지만 만일 변이가 없다고 가정한다면 선택의 여지도 없다.
형질(character)이 동일한 개체들간에는 아무리 빈번한 선택이 벌어진다 해도 변화가 일어날 수 없기 때문에
자연선택은 변이를 가진 형질에만 적용된다.
고등학교 시절 수학 시간에 “주머니 속에 검은 공 X개와 흰 공 Y개가 있는데 무작위로 Z개의 공을 꺼낼 때 검은
공과 흰 공의 비율이 W:V일 확률은 얼마인가?” 따위의 문제를 풀던 기억이 나는가?
그런데 만일 이 문제를 “주머니 속에 검은 공만 X개가 있는데 그 중에서 무작위로 Z개를 꺼낼 때 그 공들이
모두 검은 공일 확률 또는 흰 공일 확률은 얼마인가?”로 바꾼다면 어찌 되겠는가?
다윈은 변이가 바로 변화를 일으키는 실체라고 설명한다.
유전하는 것만이 자연선택의 대상이다
이러한 변이들 중 유전하는 것만이 자연선택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둘째 조건이다.
다세포생물은 기능적으로 서로 다른 두 가지 종류의 세포들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몸의 구조를 이루는 체세포(somatic cell)이고 다른 하나는 번식을 위해 만들어지는 생식세포(reproductive
cell)이다.
한 생명체가 생애를 통해 아무리 많은 변화를 겪는다 해도 그것이 생식세포내의 변화가 아니면 다음 세대로 전해
질 수 없다.
체세포의 변화는 당대에만 나타날 뿐 자손에는 전달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라마르크의 ‘획득형질의 유전’ 개념의 맹점이다.
당신이 만일 금발의 딸을 원한다면 ‘금발 유전자’를 지닌 북구의 여인과 결혼해야지 미용실에서 금색으로 머리를
염색한 한국 여성과 결혼할 일은 아니라는 말이다.
네이버캐스트 - '자연선택의 원리' 중에서 - 최재천 /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마굴리스는 미토콘드리아와 엽록체 같은 세포 소기관들이 원래는 독립된 생물이었다가 융합되어 세포의 한
성분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의 견해에 의하면 미토콘드리아와 엽록체뿐만 아니라 세포 안팎에서 운동에 관여하는 파동모와 방추사 같은
구조물도 생물 간 융합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공생이 없었다면 세포핵을 지닌 진핵생물도, 산소 호흡을 하는 호기성 생물도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마굴리스의 주장은 라마르크가 제기한 '획득 형질의 유전'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획득 유전자의 유전'이
라는 공생진화론을 주창한 것이다.
위에서 보듯이 다윈은 변이의 축적으로 신종이 생긴다고 보았지만, 린 마굴리스는 실제로 변이를 통해 신종이
생기는 것은 관찰된 사례가 드물며, 그보다는 감염, 섭식 같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유전체를 획득하는 일종의
세포 내 공생을 통해 신종이 생성된다는 이론을 전개한다.
생존 경쟁이 아니라 협동이 새로운 종 형성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leethov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