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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묘(善妙)는 『송고승전(宋高僧傳)』과 사찰 건립설화에 등장하는 여인이자 용(龍)이다. 신라의 승려 의상(義湘, 625 ~ 702)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정작 한국에서는 선묘에 대한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650년, 의상이 불교 공부를 하고자 승려 원효(元曉, 617 ~ 686)와 함께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다. 처음에는 요동을 통한 육로를 이용하려 했으나 도중에 고구려 초병에게 첩자로 오해받아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의상은 이에 굴하지 않고 661년, 당항성(경기도 남양만 서신면 당항포)의 해로를 통해 유학길에 올랐다. 원효는 중도에 깨달은 바가 있어 유학을 포기하고 신라에 머물렀다.
당나라에 도착한 의상은 등주(登州)의 한 신도의 집(신라인들이 모여살던 동네라는 설이 있다.)에서 식객으로 있었는데, 그 집에 살던 선묘라는 아름다운 여인과 만난다. 선묘는 의상이 머무는 동안 그에 대한 연민을 쌓아나갔고, 의상도 아름다운 선묘의 모습에 마음이 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승려라는 신분상 의상은 선묘의 마음을 받을 수 없어 매번 선묘의 마음을 거절하였다. 의상의 단호함에 결국 선묘는 의상의 불법 성취를 기원하도록 마음을 고쳤다. 의상은 수도 장안으로 가 대표 화엄종 사찰인 지상사(至相寺)에서 불법을 공부했다. 10년 후, 당과 신라의 사이가 나빠지자, 의상은 공부를 마치고 신라로 발길을 돌렸다. 도중에 의상은 선묘의 집에 들렀으나 때마침 선묘가 자리를 비운 터라 끝내 얼굴을 보지 못하고 떠나버렸다. 이를 들은 선묘는 의상을 보지 못하고 보낸 것을 아쉬워하며 용이 되어 의상을 지키겠다는 기도와 함께 황해에 몸을 던졌다.
선묘는 마침내 거대한 용이 되어 신라로 돌아간 의상을 보호하였다. 676년, 의상이 봉황산(경북 영주 태백산) 근처에 절을 세우려하자 다른 종파의 승려 수백명이 반대하며 위협하였다. 의상은 자신을 위협하는 승려들 앞에서 부처님에게 기도를 드리니 갑자기 하늘에서 용이 나타났다. 용은 사방 1리에 달하는 커다란 바위로 변하여 위아래로 위협하니 승려들은 모두 달아났다. 의상은 이를 선묘의 도움으로 알아차리고 무사히 사찰을 완성하였다. 바위는 지상에 내려 앉아 사찰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었다. 이 사찰이 바로 무량수전(無量壽殿)으로 유명한 '부석사(浮石寺)'이다.
첫댓글 의상과 선묘의 고귀한 사랑이야기 의미깊게 읽었습니다
전설적인 이야기지만, 왠지 사실같이 느껴지기도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