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禪軒 독서일기 2026년 7월 16일 목요일]
《우실하 지음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요하문명』
요하문명과 홍산문화의 기본적인 성격 》 (2)
제2장 요하문명에 대한 개괄적 소개
요하문명의 발견과 중국학계의 충격
(1) 예로부터 중국은 만리장성을 ’북방한계선‘으로 하여 야만인이라고 여겨온 북방민족들과는 분명한 경게를 두었었다. 황하문명을 중국 고대문명의 발상지로 여겼으며, 기타 지역에서 발견되는 새로운 문화들은 이 지역에서 전파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설명방식이었다.
그런데 1970년대 말부터 시작해서 1980년대로 들어서면서 장성 밖 요하 일대에서 황하문명보다 시기적으로 앞서고 문화적으로도 발달된 신석기문화가 속속 확인되었다. 특히 요하문명의 여러 신석기시대 고고학문화 가운데 홍산문화(紅山文化 : BC 4500~3000) 후기(BC 3500~3000)에 속하는 우하량(牛河梁)유지에서 발견된 대규모 적석총, 제단, 여신사당 등을 갖춘 유적의 발견은 중국학계에 큰 충격이었다.
중국학자 곽대순은 중화문명이 요하 일대의 ’흥륭와문화(BC 6200~5200) 사해유지‘에서 초보적으로 시작되어 ’홍산문화 우량유지‘에서 문명사회로 진입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요하문명이 발전해간 모습을 반영하는 홍산문화 우하량유지에서는, 5000년 전의 ’제단, 사당, 무덤 삼위일체‘의 대규모 종교의례를 상징하는 건축군과, 용, 봉, 사람 위주의 각종 옥기들이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요하 유역이 ’문명사회로 진입했는 중요한 실증‘이라는 것이다.
(2) 우하량유지의 발견 이후 중국은 상고사, 고대사에 대한 기존의 시각을 근본적으로 수정하고 있다. 중국은 요하문명 명명 이후 하상주단대공정(夏商周斷代工程 1996~2000), 동북공정(東北工程 2002~2007), 중화문명탐원공정(2004~2015), 국사수정공정(2010~2013) 등을 기획하고 완료했으며, 현재는 중화문명전파(선전)공정이 제안되어 있는 상태이다.
(3) 현재 중국에서는 중국인의 조상이라는 황제의 손자인 고양씨 전욱과 고신씨 제곡 두 씨족 부락이 지금의 하북성과 요녕성이 교차하는 유연(幽燕) 지역에서 살면서 모든 북방민족들의 시조가 되었으며, 신석기시대 이래로 만주 일대에서 발원한 모든 민족은 중국인의 조상이라는 황제족의 후예이고, 요하문명의 핵심인 홍산문화는 황제족의 후예인 고양씨 전욱 계통에 의한 문명이며, 따라서 이 일대에서 발원한 모든 민족과 역사는 모두 중화민족의 역사라는 시각을 정립해가고 있다.
(4)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만일 중국학자들이 최근 논의하고 있는 이러한 견해들을 비판 없이 수용하면, 우리 민족의 선조들인 웅녀, 단군, 해모수, 주몽 등은 모두 황제의 후예가 되는 것이며, 우리 민족의 상고-고대사의 대부분은 중국 역사의 방계역사로 전락하게 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 역사-고고학계도 이 요하문명에 대해서 주목하고 연구해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2. 주요 신석기-청동기시대 고고학문화의 편년과 분포 범위
[요하문명] 요하 중류와 상류, 대릉하 유역. 피, 조, 기장
(1) 신석기시대 소하서문화(BC 7000~6500)
(2) 신석기시대 흥륭와문화(BC 6200~5200)
(3) 신석기시대 부하문화(BC 5200~5000)
(4) 신석기시대 조보구문화(BC 5000~4400)
(5) 신석기-동석병용시대 홍산문화(BC 4500~3000) : 후기(BC 3500~3000)에는 구리를 주조한 흔적과 순동 귀고리 등이 발견되어 이미 ’초급 문명사회‘ 단계에 진입했다고 보고 있다.
(6) 동석병용시대 소하연문화(BC 3000~2000)
(7) 조기 청동기시대 하가점하층문화(BC 2300~1600) : ‘고급 문명사회’에 진입했다고 보는 시기로서 한국학자들 가운데 단군조선을 인정하는 사람들은 이 시기를 초기 단군조선과 연결시키기도 한다.
(8) 후기 청동기시대 하가점상층문화(BC 1500~300) : 이 시기에는 비파형동검이 출토되는 시기로 많은 한국학자들이 고조선과 연결시키고 있다.
[황하문명] 황하 중류. 밀
(1) 신석기시대 앙소문화(BC 5000~3000)
(2) 동석병용시대 도사유지(BC 2450~19000 : 堯都 平陽
(3) 청동기시대 이리두유지(BC 2000~1500) : 夏都
[장강문명] 장강 하류. 벼
(1) 신석기시대 하모도문화(BC 5000~3300)
(2) 신석기시대 능가탄유지(BC 3600~3300)
(3)신석기-청동기시대 삼성퇴유지(BC 3000~1000)
3. 요하문명과 홍산문화의 기본적인 성격
1) 요하문명의 기본적 성격
요하문명은 기본적으로 세석기문화의 후속으로 발달된 옥기문화(玉器文化)를 비탕으로 한 문명으로, 황하문명과는 이질적인 전형적인 북방문화 계통이다. 특히 요하문명 지역에서 보이는 옥기문화의 원류인 중석기시대 세석기문화, 소하서문화에서 보이는 빗살무늬토기, 흥륭와문화 시기에 시작되어 홍산문화에서 대표적 묘제가 된 각종 적석총, 청동기시대 하가점하층문화에서 보이기 시작하는 ‘치(雉)를 갖춘 석성(石城)’, 청동기시대 하가점상층문화에서 보이는 비파형동검 등은 같은 시기의 황하문명 지역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으로 대부분은 ‘시베리아 남단⟶몽골 초원⟶ 만주 지역⟶한반도⟶일본 (열도)’으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북방계통문화와 연결되는 것이다.
2) 요하문명의 꽃인 홍산문화의 기본적 성격
첫째, 발달된 농경사회로 접어들어 농업 위주이면서 수렵과 목축을 겸했다.
둘째, 동북아시아에서 최초로 ‘계단식 적석총’이 나타나며, 다양한 형태의 적석총을 주된 묘제로 하고 있다. 흥륭와문화 시기에 시작된 적석총문화는 홍산문화 시기에 보편화해 후에 요동, 요서를 포함한 만주 일대의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의묘제로 이어지고, 후에는 고구려, 백제, 가야. 신라, 일본의 묘제로 연결된다.
셋째, 홍산문화 후기 유적 가운데 가장 주목받고 있는 우량하유지는 BC 3500년경에 조성된 것으로, 이곳에서는 이미인간 실물의 1배 2배 3배의 여신을 모신 여신사당, 제단, 여신전, 계단식 적석총 등을 갖춘 ‘초기 국가단계’, ‘고국(古國) 단계’, ‘초기 문명 단계’에 진입한다. 또한 다양한 크기의 적석총들은 1명의 ‘지고무상(至高無上)한 존재’, ‘왕자신분(王者身分)에 상응하는 인물이 출현했고, ’신분의 등급 분화‘와 ’예제(禮制)의 조기 형태)가 이미 제도화했음을 나타낸다. 신상(神像)들은 실물의 1배-3배까지 층차(層次)를 보이며 주신(主神)이 이미 출현했음을 보여준다.
넷째, 서구와 달리 동북아시아에서는 청동기시대 이전의 옥기시대에 ‘초기 국가 단계’, ‘초기 문명 단계’에 진입햇다고 본다.
다섯째, 홍산문화 후기에는 황하문명의 중심지인 앙소문화 지역에서 유입된 채도문화와 합쳐진다.
여섯째, 우하량유자에서는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이른 시기 동(銅) 제품 중의 하나인 순동으로 만든 ‘동 귀고리’가 발견되었다.
일곱째, 다양한 형태의 옥기가 매우 풍부하게 발굴되고 있다. 신분의 차이에 따라 많게는 하나의 무덤에서 20개의 옥기가 부장품으로 나온다. 이를 통해 홍산문화 시대에는 권력이 분리되고, 옥장인과 석장인 등이 직업적으로 분화되어 있었으며, 신분이 최소한 6~7등급으로 나누어진 사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여덟째, 홍산문화 후기의 많은 무덤에서는 남녀 1쌍이 합장된 적석석관묘들이 많이 보여서, 일부일처제가 이미 확립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보고 있다.
아홉째, 우하량유지에서 발견된 남녀 두개골 총 17개 가운데 76.47%에 달하는 13개의 남녀 두개골이 ‘두개골 변형’이 이루어진 ‘편두(偏頭)이다. 홍산인들은 인공적으로 두개골을 변형시키는 편두 관습을 보편적으로 지니고 있었다. 편두 전통은 흉노, 진한, 변한, 가야, 신라, 일본 등에서도 보이는 것이다.
4. 요하문명 지역의 신석기-청동기시대 유적 분포
1) 요하문명 지역 신석기시대 유적 분포
(1) 내몽고자치구 동부 지역의 경우 신석기-청동기시대 유적들이 적봉을 중심으로 한 대흥안령 동부 지역에 밀집되어 있다. 특히 적봉시 오한기(敖漢旗) 일대에 밀집되어 있다.
(2) 요녕성의 경우 조양시 지역에 신석기-청동기시대 유적이 밀집되어 있다.
(3) 적봉-오한기-부신-조양-능원-건평 등으로 이어지는 공산이 요하문명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다.
2) 요하문명 지역 청동기시대 유적 분포
내몽고 적봉시 일대와 특히 오한기 지역, 요녕성 조양, 건평, 능원 지역 등을 중심으로 청동기시대 유적이 엄청나게 밀집되어 있다. 필자는 고조선문명의 토대가 되는 초기 청동기문화의 중심지가 적봉-오한기-조양 지역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