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자친구는 보석이 아닌 원석
20기 심소영
시집은 언제 갈 거야? 만나는 사람은 있어? 사람은 착한데 키가 좀 작아, 그래도 괜찮지? 40대중반인데 사람은 좋은데 한번 만나볼래? 국수는 언제 먹여줄 거야? 교회 집사님들만 만나면 제일 먼저 물어보는 질문이다. 아~ 답답하다. 나도 연애하고 싶다. 근사한 남자친구 만들어서 알콩달콩 연애가 하고 싶은데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친한 친구들은 다 가고 심지어 후배들도 다 보냈다. 받은 부케만 6개다. 내 빵살 친구는 두 번 결혼해서 두 번 다 부케를 받았다. 나는 왜 연애를 못하는 것일까?
오랫동안 아주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던 내게 운명과도 같이 ‘달콤한 연애’가 시작됐다. 작년 2월 소개팅으로 그 남자와의 로맨스가 시작됐다. 큰 키에 훤칠한 외모가 돋보이던 근사한 남자가 나타났다. 저녁시간에 약속장소를 커피숍으로 정한 건 마음에 안 들었지만 첫인상 때문에 그 정도는 봐줄 수 있었다. 갑자기 남자가 질문한다. “저녁은 드셨나요?” 이 남자 그걸 질문이라고 하다니... 직장에서 마치고 바로 왔는데 저녁은 무슨 저녁... 이렇게 말하고 싶었으나, “아니요... 괜찮아요” 라고 대답했다. 저녁을 안 먹었다는 얘기에 당황한 그는 “그럼 치즈케익 드실래요?” 허걱... 나 치즈케익 싫어하는데... “저는 치즈케익을 못 먹어요” 좀 더 당황한 그의 표정이 보인다.
“그럼 옆에 쌀국수집 있는데 쌀국수 드실래요?” 이 남자 갈수록 태산이다. 내가 싫어하는 메뉴만 얘기한다. “죄송한데... 제가 쌀국수도 못 먹어요” 당황한 남자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내 눈치만 보고 있다. “배고플텐데 괜찮으세요?” 나는 애써 웃으면서 말한다. “저는 괜찮으니까 신경쓰지 마세요” 배고픈 걸 걱정하는 사람이 약속장소를 커피숍으로 잡을까? 어이없어 말이 안 나온다. 이 남자 소개팅이 처음은 아닐 텐데... 센스가 없어도 너무 없다.
주문한 차가 나오고 이런 저런 얘기들이 오고갔다. 처음엔 별로 말이 없던 남자가 점점 말이 많아진다. 시계는 10시를 넘어가고, 졸린 눈을 억지로 부릅뜨고 있다. 무슨 할 말이 이리도 많을까? 밥도 안사주고 너무 하다. 소개시켜 준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서 품위를 지켜야했다. 웃어주고, 리액션도 해주고... 아~ 소개팅 힘들다. 아직도 눈치를 못 채고 이야기 삼매경에 빠져서 주저리주저리 얘기를 한다. 이 남자 내가 맘에 들어서 오래 있고 싶은 걸까? 11시 반이 넘어서 드디어 일어났다. 밖에는 싸릿 눈이 내리고 있었다. 우리의 첫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시대에 2G폰을 쓰는 남자, 3분이상의 통화를 싫어하는 남자, 밤 10시면 자야 되는 남자, 혼자 쉬고 노는 걸 좋아하는 남자, 결혼에 대한 생각은 있지만, 아직은 부담스러운 남자, 이 남자가 바로 내 남자친구이다. 늦은 나이에 알콩달콩 연애를 꿈꿨지만, 난 남자친구를 이해해주는 너그러운 엄마 같은 여자친구가 되었다. 누가 사랑을 달콤하다고 했는가? 사랑은 인내하고 또 인내해야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모습 그대로 인정해 주고, 그 사람과 발걸음을 맞추어 나가야 하는 법을 이제는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벌써 일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나는 남자친구가 참 좋다. 관심 없어 보이고 표현도 잘 못하는 남자가 뭐가 그리 좋을까? 추운 겨울날 직장에서 늦게 집에 가는 날이면 가끔 나를 데리러 온다. 내가 추울까봐 나를 데리러 오는 그 마음 씀씀이에 감동받는다. 내 남자친구는 잘 세공되어진 보석이 아니다. 거칠고 볼품없는 원석이다. 원석을 하나하나 다듬고 손질하는 과정가운데 세공사는 원석에 대한 애착이 생긴다, 원석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강하게 자리 잡게 된다. 때론 원석의 거친 부분이 나를 아프게도 하지만 그게 원석의 매력이 아닐까?
첫댓글 앗, 깨알같은 남친 자랑? ㅎㅎ 아, 좋다
김기현~ 오랜 솔로생활 청산하고 깨 좀 볶아보려구요ㅎㅎㅎ
이런 글 뒤에 그저께 같은 글이 나오리라고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