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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1일 성령강림절 후 열여덟째 주일예배를 드리겠습니다.
찬송 38장입니다.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하겠습니다.
찬송 40장입니다.
광고, 헌금, 기도입니다.
성경 계2:12-17절 (신401)입니다.
성가대 찬양입니다.
제목: 우리 교회에게 주신 말씀(3)
우리는 세례(결혼)를 통하여 살아 계신 주 예수와 한 몸(연합)이 되었습니다(1:16, 2:1, 요15:5). 주 예수와 우리 사이에 어떤 것(우상)들이 끼어들게 하면 안 됩니다. 이는 주 예수와 우리는 서로를 사랑(소유)하는 특별한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는 우리에 대하여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출20:3-5). 신4:23-24절입니다. “너희는 스스로 삼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와 세우신 언약을 잊지 말고 ...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오,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성도 여러분, 우리에 대한 주 예수의 질투 관점에서 오늘 본문(계2:12-17)을 살펴보면서, 오늘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그의 말씀을 듣기를 원합니다.
질투하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소유)하시는 주 예수는 버가모 교회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을 ‘좌우에 날 선 검을 가지신 이’(1:16)로 소개하십니다(12).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여기서 ‘검’은 주 예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히4:12).
‘좌우에 날선 검’은 로마인들에게 정치적 권력의 상징이었기에 주 예수가 자신을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로 소개하신 것은 땅의 임금들이 아니라 그가 그의 말씀으로 심판하시는 ‘땅의 임금들의 머리(주)이심’(1:5)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말씀)으로 열방(19:15)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19:20)들을 심판하실 것이며, 교회 안에서도 영적으로 음행하는 자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1. 버가모 교회에 대한 주 예수의 칭찬입니다(13).
주 예수는 버가모 교회의 사회적 환경을 잘 아십니다(13a).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서머나에서 북쪽으로 90km 정도 위에 있는 버가모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즉 사탄이 뚜렷하게 왕 노릇을 하는 도시였습니다. 버가모는 로마의 아시아 지방의 수도로서 아우구스투스 황제 신전을 아시아에서 최초로 건설한 황제숭배의 중심지였으며, 여러 이방 신을 섬기는 신전들이 있는 우상숭배의 도시였습니다.
‘버가모’란 이름 자체가 ‘공중의 권세 잡은 사탄과 결혼했다’라는 것을 보면, 주 예수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이라고 하실 정도로 버가모 교회는 사탄의 공격에 사면초가의 상황에 있었습니다.
그러한 환경에서도 그 교회는 주 예수의 이름을 굳게 잡았습니다(13b).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여기서 ‘내 이름’은 주 예수의 인격과 사역, 즉 그의 복음을 가리킵니다.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는다’라는 것은 주 예수를 그 교회의 ‘구주와 주님’으로 굳게 잡는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주 예수가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교회)을 꽉 잡고 계십니다(2:1). 버가모 교회도 그를 믿은 믿음을 버리기 매우 쉬운 상황에서도 그의 이름을 굳게 잡고 있었습니다. 특히 안디바는 죽기까지 그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고, 교회도 그의 죽음을 보고서도 그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습니다.
여기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로 번역되었는데, 원문에는 ‘나의 충성된 자, 나의 증인, 안디바’입니다. ‘나의’라는 소유격을 두 번 반복하여 ‘안디바’에 대한 주 예수의 애착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특히 ‘충성된 증인’이라는 주 예수의 자기소개(1:5)와 동일한 표현을 사용하여 그의 충성된 증인의 길을 신실하게 따라갔던 ‘안디바’를 모든 교회가 본받을 것을 암시합니다. 성도 여러분, 주 예수의 이름을 굳게 잡고 안디바와 같이 충성된 증인이 되시길 바랍니다.
2. 버가모 교회에 대한 주 예수의 책망입니다(14-15).
주 예수는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14a)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발람의 교훈이 무엇일까요? 14b절입니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발람은 많은 대가를 주겠다는 모압 왕 발락에게 그의 교훈을 주었고, 발락은 이스라엘이 우상의 제물을 먹고 행음하도록 걸림돌을 놓았습니다(민25:1-4).
‘행음’은 육체적 간음과 영적 간음(우상숭배)에 사용될 수 있는 데, 여기서 문맥상 ‘영적 간음(우상숭배)’을 의미합니다(2:20). 그러므로 ‘발람의 교훈’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우상숭배를 하게 하여 그의 심판을 초래하게 하는 교훈입니다.
이러한 ‘발람의 교훈’과 같은 거짓된 교훈이 바가모 교회에 있었습니다(15).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여기서 ‘지키다(크라테오)’라는 동사는 어떤 대상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이는 것으로 ‘나의 이름을 굳게 잡다’(13)에서 ‘잡다(크라테이스)’라는 동사와 동의어입니다.
‘니골라당의 교훈’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알 수 없지만, 발람의 교훈과 같이 버가모 교회 안에서 행음하게 하는 교훈일 것입니다. 자칭 사도라는 니골라당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드러낸 에베소 교회(2:2)와는 달리 버가모 교회는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니골라당의 교훈’으로 인하여 주 예수의 이름을 잡으면서 동시에 그와 그들 사이에 끼어든 어떤 것들을 굳게 잡았다, 즉 우상 숭배하였다는 것입니다.
외부적 죽음의 위협에도 안디바와 같이 주 예수의 이름을 굳게 잡고 그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던 버가모 교회 안에 쉽게 내적 타협하여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혼합주의 우상 숭배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소련 시대에는 순교와 투옥에도 불구하고 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킬 수 있었는데, 소련이 무너지고 자유로운 러시아가 되었을 때 서방의 선교사들이 가져온 돈 앞에서 주 예수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고 있다고 하신 어떤 러시아 교회 목사의 한탄에 답이 있습니다. 사탄의 직접적인 위협보다 간접적인 유혹을 이겨내기가 더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압 왕 발락이 신뢰할 정도로 국제적으로 유명한 하나님의 선지자였던 발람처럼 자신의 이익을 우선하는 자칭 사도라고 주장하는 니골라당을 절대 신뢰하여 그들의 교훈을 복음의 진리로 시험하지 않고 무조건 지키었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날도 발람이나 니골라당과 같이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는 많은 사역자가 있을 것입니다. 고후2:17절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성도 여러분, 대형교회의 목사라고 해서, 방송에 나오는 유명한 목사라고 해서, 무조건 따르지 말고 그들의 교훈과 그들의 동기(삶)를 복음의 진리로 반드시 시험하여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 예수와 우리 사이에 어느 것도 끼어들지 못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3. 주 예수는 버가모 교회에게 회개하라는 권면과 함께 경고하십니다(16).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여기 ‘속히 가서’는 그의 재림만이 아니라, 임박한 심판을 위한 그의 오심을 가리킵니다. 회개하면 이것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주 예수는 ‘너는 회개하라’라고 버가모 교회에게 회개를 명령하십니다. 이는 교회 안에 성도들은 서로 연결되어 주 예수의 하나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회개하지 않으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라고 경고하십니다(19:15).
발락의 제안으로 발람의 마음에 욕심이 생겼을 때 여호와의 사자가 칼로 발람을 죽이려(민22:23-33) 하셨고, 결국 그는 검으로 죽었습니다(민31:8, 수13:22).
이런 배경에서 주 예수는 니골라당의 교훈을 따르는 자들이 회개하지 않으면, ‘네게 속히 가서 그의 입의 검(말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라고 경고하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니골라당의 교훈’과 같은 거짓된 교훈으로 영적 간음에 빠져 있다면, 속히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 예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4. 주 예수는 귀 있는 자들 즉 이기는 자들에게 두 가지 약속을 하십니다(1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첫째는 ‘감추었던 만나’를 주겠다는 약속입니다(17b).
‘만나’는 원래 하나님이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것입니다. 여기서 ‘감추었던 만나’라고 하신 것은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주 예수의 복음과 예언의 말씀들)을 들을 수 있는 ‘귀 있는 자들, 즉 이기는 자들’에게만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감추었던 만나’를 주시겠다는 것은 주 예수의 자신, 곧 영생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요6:48-50절입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이처럼 ‘감추었던 만나’는 종말에 주 예수와 하나의 몸(연합)이 된 우리가 그와 함께 영생의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에서는 이것을 ‘성찬’을 통하여 주 예수와 연합되는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주 예수의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귀 있는 자, 즉 믿음으로 끝까지 인내하여 이기는 자인 우리는 주 예수와 영원히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것을 바라보지 말고 오직 우리와 연합하신 주 예수만을 앙망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는 ‘새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흰 돌’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17c).
‘흰 돌’은 일반적으로 무죄나 찬성투표와 관련이 있었고, ‘검은 돌’은 유죄를 의미했습니다. 또한, ‘흰 돌’은 가끔 특별한 상황에서 입장권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흰 돌’을 주시겠다는 것은 우상숭배를 거절한 성도들에게 내려졌던 세상의 유죄 판결을 뒤집어 무죄(의롭다 함) 판결을 의미하며, 그리고 어린 양의 혼인 잔치의 초대장을 가리킵니다(19:8-9).
주 예수는 ‘흰 돌’에 대해 설명하십니다(17C).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흰 돌’ 위에 기록된 ‘새 이름’은 누구를 지칭할까요? 어떤 이들은 주 예수의 이름이나 하나님의 이름을 가리킨다고 주장하며, 다른 이들은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는 성도의 이름을 지칭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두 견해가 다 옳다고 생각합니다. 서구 기독교 사회에서 결혼하면, 아내는 자신의 성을 버리고 남편의 성을 새롭게 가지게 된 것과 같이 성도들과 결혼(연합)한 주 예수의 이름이 곧 성도들의 새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22:3-4절입니다.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그러므로 ‘새 이름이 기록된 흰 돌’은 주 예수에게 결혼하여 그에게 속하게 되었다, 즉 그의 소유(아내)가 되는 새로운 지위를 상징합니다.
‘받은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다’라는 것은 아무나 그의 소유(아내)가 될 수 없으며, 오직 ‘새 이름이 기록된 흰 돌’을 받은 자만 영원히 살아 계신 주 예수와 결혼하여 그와의 독점적인 연합의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버가모 교회에게 주신 주 예수의 편지를 통하여 성령이 주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주 예수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우리는 그의 복음으로 주 예수와 연합되었으니, 버가모 교회와 같이 그의 이름을 굳게 잡으라, 즉 그를 믿는 믿음으로 죽기까지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칭 사도라 주장하는 ‘니골라당의 교훈’과 같은 거짓된 교훈으로 인하여 영적 간음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피를 흘리는 적색 순교보다 생활 속에서 백색 순교가 정말 어렵습니다. 성도 여러분, 어떤 유명한 사역자들로 알려졌어도 복음의 진리로 그들의 교훈과 동기를 반드시 시험하여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와 하나 된 주 예수의 이름을 굳게 잡고 끝까지 믿음으로 이기는 우리에게 주 예수는 자신과 우리와의 더욱 깊은 연합을 약속하십니다. ‘감추어진 만나’를 주시겠다는 것은 자신을 우리에게 주시겠다는 것이요, ‘새 이름인 주 예수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흰 돌’을 주시겠다는 것도 자신과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초대장, 즉 우리에게 자신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주 예수의 복음을 자주 들으며, 그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지켜서 이기는 자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 예수를 받아 그와의 더욱 깊은 교제(연합)를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찬송 314장을 부르시고 다같이 기도하며 축도로 예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