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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8장 1-11절. 체포당하시는 예수님
1. 예수님께서는 마가의 다락방에서 나와서,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거기서 군병들에게 체포되어서, 제사장의 법정에서 재판을 받으십니다.
2. 오늘은 예수님께서 체포되신 것이 힘이 없어서 체포되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체포되신 사실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베드로를 위해서 죽음의 길을 가고 계시는데,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는 장면을 살펴볼 것입니다.
3. 오늘 설교의 제목은 <우리를 위해 체포당하시는 예수님>입니다.
1-11절.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자진하여 체포당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1절.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저편으로 나가시니 거기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다.
새번역: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신 뒤에,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골짜기 건너편으로 가셨다. 거기에는 동산이 하나 있었는데, 예수와 그 제자들이 거기에 들어가셨다.
현대인의 성경: 예수님은 기도를 마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골짜기를 건너 맞은편에 있는 동산으로 들어가셨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 예수께서 이 말씀들을 하신 후에, 그의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계곡으로 가셨는데, 이곳에 정원이 있고, 이곳으로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과 들어가셨다. (When Jesus had spoken these words, He went forth with His disciples over the ravine of the Kidron, where there was a garden, in which He entered with His disciples.)
New International Version: 예수께서 기도를 마치시고, 그의 제자들과 함께 떠나서 기드론 골짜기로 건너가셨다. 그 반대편에 정원이 있었는데,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그곳으로 가셨다. (When he had finished praying, Jesus left with his disciples and crossed the Kidron Valley. On the other side there was a garden, and he and his disciples went into it.)
New Living Translation: 예수께서 이것들을 말씀하신 후에, 그의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골짜기를 건너서 감람산 숲으로 들어가셨다. (After saying these things, Jesus crossed the Kidron Valley with his disciples and entered a grove of olive trees. )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저편으로 나가시니
Ταῦτα εἰπὼν, Ἰησοῦς ἐξῆλθεν σὺν τοῖς μαθηταῖς αὐτοῦ πέραν τοῦ χειμάρρου τῶν Κέδρων
these words having said, Jesus went out with the disciples his beyond the winter stream of the Kidron
‘말씀하시고’(εἰπὼν)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said) 과거에 확실하게 말씀하신 사실을 가리킵니다.
‘나가시니’란 단어(ἐξῆλθεν)는 부정과거로서(went out) 단호하게 나가신 것을 가리키고, 원형(ἐξέρχομαι)은 ‘나가다’(go out)란 뜻입니다.
‘시내’란 단어(χειμάρρου)는 ‘겨울 우기에만 흐르는 시내’(brook flowing in winter)를 가리킵니다.
거기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다.
ὅπου ἦν κῆπος, εἰς ὃν εἰσῆλθεν αὐτὸς καὶ οἱ μαθηταὶ αὐτοῦ.
where there was being garden, in which He entered He and the disciples his.
‘있는데’(ἦν)는 미완료과거로서(there was being) 과거부터 쭉 있어온 것을 가리킵니다.
‘들어가시다’란 단어(εἰσῆλθεν)는 부정과거형으로서(He entered) 단호하게 들어가셨다 뜻이고, 이 단어는 ‘나가다’란 단어(ἐξῆλθεν)와 접두어만 다릅니다.
1. 예수님께서는 긴 다락방 강화(요 14-17장)를 마치시고, 열한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를 건너서 감란산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셨습니다.
지금은 이 기드론 시내가 말라 있지만, 당시에는 물이 졸졸 흘렸는데, 부근에 숲이 우거져서 그 시냇물이 검게 보여서 ‘기드론’(검음)이라는 말로 불렀습니다.
2. 예수님께서 기드론 시내를 건너서 감람산 동산으로 가신 곳은 ‘겟세마네’로서(막 14:32) 이곳에서 감란 열매를 빻아서 기름을 짰기 때문에, ‘기름짜는 곳’이란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2절. 거기는 예수께서 제자들과 가끔 모이시는 곳이므로 예수를 파는 유다도 그곳을 알더라.
새번역: 예수가 그 제자들과 함께 거기서 여러 번 모이셨으므로, 예수를 넘겨줄 유다도 그 곳을 알고 있었다.
현대인의 성경: 거기는 예수님이 제자들과 가끔 모이던 곳이어서 그분을 팔아넘기려는 유다도 알고 있었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 이제 예수를 배신한 유다도 그 장소를 알았는데, 이는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과 함께 거기서 종종 만났기 때문이다. (Now Judas also, who was betraying Him, knew the place, for Jesus had often met there with His disciples.)
English Standard Version: 이제 예수를 배신했던 유다도 그 장소를 알았는데, 이는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과 함께 거기서 종종 만났기 때문이다. (Now Judas, who betrayed him, also knew the place, for Jesus often met there with his disciples.)
New International Version: 이제 예수를 배신했던 유다가 그 장소를 알았는데, 이것은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과 함께 거기서 종종 만났었기 때문이다. (Now Judas, who betrayed him, knew the place, because Jesus had often met there with his disciples.)
예수를 파는 유다도 그곳을 알더라.
ᾔδει δὲ καὶ Ἰούδας, ὁ παραδιδοὺς αὐτὸν, τὸν τόπον
knew now also Judas, who was delivering Him, the place
‘알더라’란 단어(ᾔδει)는 대과거형(pluperfect)으로서 훨씬 더 과거에 이미 알고 있었다(had known)이란 뜻입니다.
‘파는’이란 단어(παραδιδοὺς)는 현재분사형이고, ‘넘겨주다, 배신하다’(to hand over, to deliver over, to betray)란 뜻이어서, 유다가 예수님을 지금 넘겨주고(배신하고) 있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팔다’란 뜻은 없습니다. 영어역본은 모두 ‘배신하다’(betray)로 번역했습니다.
거기는 예수께서 제자들과 가끔 모이시는 곳이므로
ὅτι πολλάκις συνήχθη Ἰησοῦς ἐκεῖ μετὰ τῶν μαθητῶν αὐτοῦ
because often gathered together Jesus there with the disciples his
‘가끔’이라는 단어(πολλάκις)는 ‘종종, 여러 번, 자주’(often, many times, frequently)란 뜻입니다. 우리나라 번역에 가끔이라고 번역한 것은 ‘자주’로 고쳐야 하겠습니다. (새번역에는 ‘여러 번’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모이시는’이란 단어(συνήχθη)는 부정과거형 수동태이고, 원형(συνάγω)은 ‘함께 가다’(come together) 수동태는 ‘모이다’ (pass. gather together)는 뜻입니다.
1. 이 겟세마네라는 장소는 예수님이 평상시에 제자들과 함께 종종 모이셔서, 말씀을 가르치시기도 하고, 기도도 하시던 곳이었습니다.
2. 그런데 가룟 유다도 그곳을 알았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유다가 이곳으로 자신을 잡으러 오실 것을 아시면서도 일부러 인류 구원의 대속적 죽음을 죽으시려고 그곳으로 가신 놀라운 사랑을 보여주시는 장면입니다.
3. 우리는 지난 주간에 연합구역 예배 시간에 예수님의 생애에 대한 영상물을 관람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마치 예수님의 마지막 생애를 보는 듯한 장면들이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바로 전날 밤에, 예루살렘 성안의 서남쪽에 있는 마가의 다락방을 떠나서, 성벽 동쪽 문인 미문을 통해 성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거기서 기드론 골짜기를 건너시고, 동쪽의 감람산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감람산 속에 원래 올리브기름 짜는 곳인 겟세마네라는 곳으로 가셔서,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셨습니다.
이곳은 예수님이 가끔 제자들과 함께 모여서 기도하시는 곳이므로, 예수님을 판 가롯 유다도 알고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고난을 앞두고 특별 기도를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4.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가롯 유다가 이곳으로 예수님을 잡으러 온다는 사실을 아시면서도, 피하지 않으시고, 이곳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피하지 않고, 우리를 위해 죄를 짊어지고, 고난과 죽음 당하시는 일을 영광스럽게 담당하기 위해서 기도하신 것입니다.
찬송가 143장. 웬 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 가셨나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나. 나 십자가 대할 때에 그 일이 고마워 내 얼굴 감히 못 들고 눈물 흘리도다.
3절. 유다가 군대와 및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하속들을 데리고 등과 홰와 병기를 가지고 그리로 오는지라.
새번역: 유다는 로마 군대 병정들과, 제사장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보낸 성전 경비병들을 데리고 그리로 갔다. 그들은 등불과 횃불과 무기를 들고 있었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 그런데 유다가 로마 보병대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관리들을 맞아서, 등불들과 횃불들과 무기들을 가지고 그리로 왔다. (Judas then, having received the Roman cohort and officers from the chief priests and the Pharisees, came there with lanterns and torches and weapons.)
New International Version: 그래서 유다가 군인들 파견대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는 관리들을 인도하여 그 동산으로 왔다. 그들은 횃불들과 등불들과 무기들을 가지고 왔다. (So Judas came to the garden, guiding a detachment of soldiers and some officials from the chief priests and the Pharisees. They were carrying torches, lanterns and weapons.)
New Living Translation: 지도적인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유다에게 로마군대의 파견단과 성전 경비병들을 유다에게 주어서 유다와 함께 왔다. 이제 그들이 불타는 횃불들과 등불들과 무기들을 가지고 감람수풀에 도착했다. (The leading priests and Pharisees had given Judas a contingent of Roman soldiers and Temple guards to accompany him. Now with blazing torches, lanterns, and weapons, they arrived at the olive grove. )
유다가 군대와 및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하속들을 데리고
ὁ οὖν Ἰούδας λαβὼν τὴν σπεῖραν καὶ ἐκ τῶν ἀρχιερέων καὶ ἐκ τῶν Φαρισαίων ὑπηρέτας
Therefore Judas having procured the cohort and from the chief priests and from the Pharisees officers
‘얻은’이란 단어가 원문에는 없고 그냥 ‘에게서’(ἐκ, from)으로만 되어 있는데, 번역상 넣은 것입니다.
‘데리고’란 단어(λαβὼν)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procured) 단호하게 데리고 오는 모습을 가리키고, 원형((λαμβάνω)은 ‘취하다, 받다, 얻다’(take, receive, obtain)는 뜻입니다.
등과 홰와 병기를 가지고 그리로 오는지라.
ἔρχεται ἐκεῖ μετὰ φανῶν καὶ λαμπάδων καὶ ὅπλων
comes there with lanterns and torches and weapons
‘등과 홰와 병기’가 원문에는 모두 복수로 되어 있어서, ‘등불들과 횃불들과 무기들’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오는지라’란 단어(ἔρχεται)는 현재형으로서 유다가 군병들과 무기들을 이끌고 ‘오고 있는’(comes) 생생한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1. 예수님의 제자 중에 배신자인 가룟 유다가 앞잡이가 되어 군병들과 성전 경비병들을 이끌고, 예수님을 체포하러 겟세마네 동산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전쟁 무기인 병기들을 들고 왔습니다.
2. 누가복음 22장 52절에는 제사장과 관원들과 장로들도 이 경비병들 가운데 있었습니다.
4절.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 가라사대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현대인의 성경: 예수님은 자기가 당할 모든 일을 아시고 앞으로 나오시며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하고 물으셨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 그래서 예수께서 그에게 다가오는 모든 것들을 아시고, 나아가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고 하셨다. (So Jesus, knowing all the things that were coming upon Him, went forth and said to them, "Whom do you seek?")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Ἰησοῦς οὖν εἰδὼς πάντα τὰ ἐρχόμενα ἐπ’ αὐτὸν
Jesus therefore having known all that coming upon Him
직역하면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자기에게 다가오는 모든 것을 아시고’란 뜻입니다.
‘다가오는’(ἐρχόμενα)은 현재분사로서(coming) 현재 다가오고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아시고’란 단어(εἰδὼς)는 완료분사형으로서 예수님께서 앞으로 당하실 일들을 이미 다 아시고, 완료된 상태를 가리킵니다. 원형(οἶδα)은 ‘알다, 인식하다, 음미하다, 기억하다’(know, be aware, perceive, appreciate, remember)는 뜻입니다.
나아가 가라사대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ἐξῆλθεν καὶ λέγει αὐτοῖς, Τίνα ζητεῖτε“
He went forth and says to them, Whom seek you?
‘나아가’란 단어(ἐξῆλθεν)는 부정과거로서(He went forth) 단호하게 나가시는 모습을 표현합니다.
‘가라사대’(λέγει)는 현재형으로서(says) 말씀하고 계신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찾느냐’란 단어(ζητεῖτε)는 현재형으로서(do you seek) 찾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찾다’(ζητέω)는 ‘찾다, 탐색하다, 요구하다, 요청하다’(to seek, search for, desire, require, demand)는 뜻입니다.
1. 예수님은 앞으로 당한 고난과 죽음을 미리 아시면서도 유다와 군병들 앞으로 나가셨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후에 백성들이 왕 삼으시려는 것을 피하신 주님께서는(요 6:15) 인류 대속을 위한 고난과 죽음을 향해서는 당당히 앞서 나가시는 모습입니다.
2. 이처럼 예수님이 자기를 체포하러 온 군병들에게 나아가신 것 바로 직전에 가룟 유다의 입맞춤이 있었습니다( 마 26:49-50).
5절.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가라사대 <내로라> 하시니라. 그를 파는 유다도 저희와 함께 섰더라.
새번역: 그들이 대답하였다. "나사렛 사람 예수요."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그 사람이다." 예수를 넘겨줄 유다도 그들과 함께 서 있었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 그들이 예수께 대답하기를 “나사렛 예수라”고 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그로다”고 했다. 그리고 예수를 배신하고 있는 유다도 그들과 함께 서 있었다. (They answered Him, "Jesus the Nazarene." He said to them, "I am He." And Judas also, who was betraying Him, was standing with them.)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ἀπεκρίθησαν αὐτῷ Ἰησοῦν τὸν Ναζωραῖον
They was answered him, Jesus of the Nazareth
‘대답하되’란 단어(ἀπεκρίθησαν)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they was answered) 단호하게 대답하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원형(ἀποκρίνομαι)는 ‘대답하다, 답변하다’(answer, reply)란 뜻입니다.
가라사대 내로라 하시니라.
λέγει αὐτοῖς, Ἐγώ εἰμι
He says to them, I I am
직역하면 ‘그분이 그들에게 말씀하기를, ‘내가 나다’라는 뜻입니다.
‘가라사대’(λέγει)는 현재형으로서(He says) 현재 말씀하고 계시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동사(εἰμι)는 현재형입니다(I am).
‘내로라’란 말은 유명한 ‘에고 에이미’(Ἐγώ εἰμι, I I am)인데, 이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을 가리키시는 자증언이었습니다.
즉 출애굽기 3장 14절에서 ‘나는 스스로 있는 자’(אֶֽהְיֶ֖ה אֲשֶׁ֣ר אֶֽהְיֶ֑ה: 야아웨 아쉐르 야아웨, Ἐγώ εἰμι ὁ ὤν: I am who I am)이라고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께서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을 표현하는 자증언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자증언은 요한복음에 여러 번 나와 있습니다.
요한복음 6:35. 나는 생명의 떡이다
요한복음 9:5. 나는 세상의 빛이다
요한복음 10:9. 나는 양의 문이다
요한복음 10:11. 나는 선한 목자다
요한복음 11:25.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요한복음 14:6.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요한복음 15:1. 나는 포도나무다
이외에도 예수님이 그리스도시고, 하나님이심을 증언하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4:26, 8:24, 28, 58),
그를 파는 유다도 저희와 함께 섰더라.
εἱστήκει δὲ καὶ Ἰούδας ὁ παραδιδοὺς αὐτὸν μετ’ αὐτῶν
Had been standing now and Judas who delivering up him with them
‘파는’이란 단어((παραδιδοὺς)는 현재분사(delivering up)로서 현재 팔아넘기고 있는 생생한 모습을 가리키고, 원형(παραδίδωμι)은 ‘넘겨주다, 배신하다’(to hand over, to deliver over, to betray)란 뜻입니다.
‘섰더라’는 단어(εἱστήκει)는 대과거(pluperfect) 분사로서(Had been standing) 이전부터 계속 서 있었던 것을 가리킵니다. 원형( ἵστημι)은 ‘서있다, 곁에 서있다, 여전히 서있다, 굳게 서있다’(stand, stand by, stand still; stand firm)는 뜻입니다.
1. 예수님께서는 도망가지 않으시고, 의연히 대처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은 자신을 잡으러 온 군병들에게 <내가 바로 예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 ‘내로라’란 말은 유명한 ‘에고 에이미’(Ἐγώ εἰμι, I I am)인데, 이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을 가리키시는 자증언이었습니다.
즉 출애굽기 3장 14절에서 ‘나는 스스로 있는 자’(אֶֽהְיֶ֖ה אֲשֶׁ֣ר אֶֽהְיֶ֑ה: 야아웨 아쉐르 야아웨, Ἐγώ εἰμι ὁ ὤν: I am who I am)이라고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께서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을 표현하는 자증언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자증언은 요한복음에 여러 번 나와 있습니다.
요한복음 6:35. 나는 생명의 떡이다
요한복음 9:5. 나는 세상의 빛이다
요한복음 10:9. 나는 양의 문이다
요한복음 10:11. 나는 선한 목자다
요한복음 11:25.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요한복음 14:6.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요한복음 15:1. 나는 포도나무다
이외에도 예수님이 그리스도시고, 하나님이심을 증언하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4:26, 8:24, 28, 58),
6절. 예수께서 저희에게 <내로라> 하실 때에, 그들이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지라.
새번역: 예수께서 그들에게 "내가 그 사람이다" 하고 말씀하시니, 그들은 뒤로 물러나서 땅에 쓰러졌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내가 그로다”고 말씀하셨을 때, 그들이 뒤로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졌다. (So when He said to them, "I am He," they drew back and fell to the ground.)
예수께서 저희에게 ‘내로라’ 하실 때에
ὡς οὖν εἶπεν αὐτοῖς, Ἐγώ εἰμι
when therefore He said to them, I I am
직역하면 ‘그러므로 내로라고 그분이 그들에게 말슴하셨을 때’란 뜻입니다.
‘말씀하셨을’이란 단어(εἶπεν)는 부정과거형으로서(He said) 단호하고 확실하게 말씀하신 것을 가리킵니다.
‘내로라’란 말씀(Ἐγώ εἰμι:I I am)은 앞에서 말한 대로 예수님이 그리스도시고 하나님이심을 나타내는 말씀이며, 예수님의 자증언(自證言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지라.
ἀπῆλθαν εἰς τὰ ὀπίσω καὶ ἔπεσαν χαμαί
they drew toward the back and fell to ground
‘물러가서’란 단어(ἀπῆλθαν)는 부정과거형(they drew)로서 갑자기 확 물러나는 것을 가리키고, 원형(ἀπέρχομαι)은 ‘물러가다, 떠나가다’(go away from, depart)란 뜻입니다.
‘엎드러지는지라’(ἔπεσαν)도 부정과거형(fell)으로서, 갑자기 확 엎으러지는 것을 가리키고, 원형(πίπτω)은 ‘떨어지다, 저주에 떨어지다, 자빠지다’( fall, fall under condemnation, fall prostrate)는 뜻입니다.
1. ‘내로라’란 말은 유명한 ‘에고 에이미’(Ἐγώ εἰμι, I I am)인데, 이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을 가리키시는 자증언이었습니다.
즉 출애굽기 3장 14절에서 ‘나는 스스로 있는 자’(אֶֽהְיֶ֖ה אֲשֶׁ֣ר אֶֽהְיֶ֑ה: 야아웨 아쉐르 야아웨, Ἐγώ εἰμι ὁ ὤν: I am who I am)이라고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께서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을 표현하는 자증언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자증언은 요한복음에 여러 번 나와 있습니다.
2. 예수님이 군병들에게 <내로라>고 말씀하실 때, 군병들이 물러가 땅에 엎드러졌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에, 물도 포도주로 변하고, 앉은뱅이도 고침 받고, 무서운 파도도 잔잔하고, 죽은 자도 살아나는데, 어찌 저들이 견딜 수 있겠습니까?
엘리야의 말 한마디에 군사 50명씩 100명이 불에 타 죽었습니다.
엘리사의 말 한마디에, 아람 군사 수만 명의 눈이 어두워졌습니다.
바울의 말 한마디에 엘루마가 눈봉사가 되어 두루 헤매였습니다.
3.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면, 열두 영(12영×6천 명=7만 2천 명) 더 되는 천사들을 대령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력으로 대항하지 않으시고, 우리들을 지옥에서 영생천국으로 구원하시려는 크신 사랑 때문에, 자발적으로 대속의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랑입니까? 할렐루야!
<찬송가143> 웬 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가셨나.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나. 내 지은 죄 다 지시고 못 박히셨으니 웬 일인가 웬 은혠가 그 사랑 크셔라.
7절. 이에 다시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신대, 저희가 말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새번역: 다시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셨다. "너희는 누구를 찾느냐?" 그들이 대답하였다. "나사렛 사람 예수요."
New American Standard Bible :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그들에게 묻기를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고 하셨다. 그리고 그들이 “나사렛 예수요”라고 말했다. (Therefore He again asked them, "Whom do you seek?" And they said, "Jesus the Nazarene.")
이에 다시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신대
πάλιν οὖν ἐπηρώτησεν αὐτούς, Τίνα ζητεῖτε:
Again therefore He questioned them, Whom do you seek
직역하면 ‘그러므로 그분이 그들에게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로 물으셨다’는 뜻입니다‘
‘물으신대’란 단어(ἐπηρώτησεν)는 부정과거형(He questioned)로서 단호하게 물으신 것을 가리키고, 원형(ἐπερωτάω)은 ‘묻다, 질문하다, 요구하다, 심문하다’(to inquire of, question, demand of, interrogate)는 뜻입니다.
‘찾느냐’란 단어(ζητεῖτε)는 현재형(do you seek)으로서 지금 찾고 있는 모습을 가리키고, 원형(ζητέω)은 ‘찾다, 탐구하다, 요구하다, 요청하다’(seek, search for, desire, require, demand)는 뜻입니다.
저희가 말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οἱ δὲ εἶπαν Ἰησοῦν τὸν Ναζωραῖον
And they said, Jesus the Nazarene
‘말하되’란 단어(εἶπαν)는 부정과거로서(they said) 단호하게 말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1. 말씀 한마디에 쓰러져 벌벌 떨었으니, 어찌 무서워서 예수님을 잡아가려고 힘을 쓸 수 있었겠습니까?
단지 예수님이 스스로 잡혀가셨다는 표현이 옳은 것입니다.
금 번 연합구역 예배 때 보신 대로, 사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께 <주여 누구시오니이까?> 물었을 때, 예수님이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고 하신 말씀을 듣고서, 꼬꾸라져 엎드리고, 회개하여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겟세마네 동산의 군병들은 예수님의 말씀 앞에 꼬꾸라졌으나, 회개하지 못하고, 벌벌 떨면서도 기어코 예수님을 잡아가려고 했습니다.
2. 회개할 줄 모르는 멸망하는 짐승 같은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죄가 있어서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소개받고도 회개할 줄 모르기 때문에 멸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죄가 생각나거든 즉시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언제나 예수님 모시고, 영생을 누리며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8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에게 내로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의 가는 것을 용납하라> 하시니,
새번역: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그 사람이라고 너희에게 이미 말하였다. 너희가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은 물러가게 하여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내가 그로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만일 너희가 나를 찾는다면, 이들이 자기 길을 가도록 하라”고 하셨다. (Jesus answered, "I told you that I am He; so if you seek Me, let these go their way,")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에게 내로라 하였으니
ἀπεκρίθη Ἰησοῦς, Εἶπον ὑμῖν ὅτι ἐγώ εἰμι
was answered Jesus, I told you that I I am
‘대답하시되’란 단어(ἀπεκρίθη)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was answered) 단호하게 대답하시는 모습을 가리키고, 원형(ἀποκρίνομαι)은 ‘대답하다, 답변하다’(answer, reply)는 뜻입니다.
‘내로라’란 말씀(Ἐγώ εἰμι)은 앞에서 말한 대로 예수님이 그리스도시고 하나님이심을 나타내는 말씀이며, 예수님의 자증언(自證言)이기도 합니다.
‘하였으니’란 단어(Εἶπον)는 부정과거형(I told)으로서 단호하게 말씀한 모습을 가리킵니다.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의 가는 것을 용납하라 하시니
εἰ οὖν ἐμὲ ζητεῖτε, ἄφετε τούτους ὑπάγειν
if therefore Me you seek, allow these to go away
직역하면 ‘그러므로 만일 너희가 나를 찾는다면, 이들을 가게 용납하라’는 뜻입니다.
‘찾거든’이란 단어(ζητεῖτε)는 현재형으로서(you seek) 현재 찾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용납하라’란 단어(ἄφετε)는 부정과거 명령형(allow)으로서 단호하게 용납하라는 뜻이고, 원형(ἀφίημι)는 ‘보내다, 내버려두다, 허락하다’(to send away, leave alone, permit)는 뜻입니다.
‘가는 것을’이란 단어(ὑπάγειν)는 현재 부정사형으로서(to go away) 계속 가는 모습을 가리키키고, 원형(ὑπάγω)은 ‘가다, 떠나가다’(go away, depart)는 뜻입니다.
1. 예수님은 두 번이나(5,7절) 저들에게 나사렛 예수를 찾는다는 것을 확인하신 후에, 열한 제자들이 가는 것을 용납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은 체포당하시는 위기에 처해 있으면서도 제자들을 도피시키는 선한 목자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삯꾼은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도망을 가지만,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서 목숨을 버린다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0:11-12.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2. ‘내로라’란 말은 유명한 ‘에고 에이미’(Ἐγώ εἰμι, I I am)인데, 이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을 가리키시는 자증언이었습니다.
즉 출애굽기 3장 14절에서 ‘나는 스스로 있는 자’(אֶֽהְיֶ֖ה אֲשֶׁ֣ר אֶֽהְיֶ֑ה: 야아웨 아쉐르 야아웨, Ἐγώ εἰμι ὁ ὤν: I am who I am)이라고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께서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을 표현하는 자증언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자증언은 요한복음에 여러 번 나와 있습니다.
요한복음 6:35. 나는 생명의 떡이다
요한복음 9:5. 나는 세상의 빛이다
요한복음 10:9. 나는 양의 문이다
요한복음 10:11. 나는 선한 목자다
요한복음 11:25.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요한복음 14:6.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요한복음 15:1. 나는 포도나무다
이외에도 예수님이 그리스도시고, 하나님이심을 증언하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4:26, 8:24, 28, 58),
9절.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새번역: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예수께서 전에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나는 한 사람도 잃지 않았습니다’ 하신 그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이것은 그가 말씀하시기를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신 자들 가운데 내가 하나도 잃지 않았습니다”고 그가 말씀하신 그 말씀을 이루려는 것이다. (to fulfill the word which He spoke, "Of those whom You have given Me I lost not one.")
New International Version: 이것은 “내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그들 중에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고 그가 말씀했던 그 말씀을 성취되게 하시려고 일어난 것이었다. (This happened so that the words he had spoken would be fulfilled: "I have not lost one of those you gave me.")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삽나이다
ὅτι Οὓς δέδωκάς μοι, οὐκ ἀπώλεσα ἐξ αὐτῶν οὐδένα
those whom you have given me, not I lost of them not one
직역하면 ‘당신이 나에게 주신 자들을 그들 중에 하나도 내가 잃지 않았습니다’란 뜻입니다.
‘주신’이란 단어(δέδωκάς)는 현재완료로서(you have given) 이미 주신 것을 가리키고, 원형(δίδωμι)은 ‘주다, 제공하다’(offer, give)란 뜻입니다.
‘하나도’란 단어(οὐδένα)는 ‘아무도 전혀’(no one, none, nothing)란 뜻이고, 앞의 ‘아니’(οὐκ)와 더불어 ‘전혀 하나도 잃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잃지’란 단어(ἀπώλεσα)는 부정과거형으로서(I lost) 과거에 완전히 잃어버린 것을 가리키고, 원형(ἀπόλλυμι)은 ‘멸망하다, 철저히 파괴하다, 죽이다, 잃다’(to destroy, destroy utterly, kill, lose)란 뜻입니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ἵνα πληρωθῇ ὁ λόγος ὃν εἶπεν
so that might be fulfilled the word which He spoke
직역하면 ‘그분이 말씀하신 그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려는 것’이란 뜻입니다.
‘응하게 하려’란 말(πληρωθῇ)은 부정과거형 가정법 수동태로서(might be fulfilled)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을 가정한 말이고, 원형(πληρόω)은 ‘가득하게 하다, 완성하다, 성취하다’(to make full, to complete, fulfill)는 뜻입니다.
1.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잡혀갈 터이니, 제자들은 도망가게 해달라고 요청하셨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제자들을 챙기시는 지극한 사랑의 모습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보호는 육신적인 보호만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영적인 구원을 보장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제자들을 챙기고 도피시키시는 모습은 요한복음 6장 39절에 이미 말씀하신 것이 이루어지게 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경 말씀은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대로 성취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성도님들도 성경 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재림과 세상의 종말과 최후의 심판과 부활 영생 천국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살아가실 때, 영생천국을 바라보고, 경건한 신앙생활 해가시기를 축원합니다!
10절. 이에 시몬 베드로가 검을 가졌는데, 이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새번역: 시몬 베드로가 칼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는 그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쪽 귀를 잘라버렸다. 그 종의 이름은 말고였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그 때 시몬 베드로가 칼 하나를 가졌는데, 그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그의 오른쪽 귀를 잘라버렸다: 그리고 그 종의 이름은 말고였다. (Simon Peter then, having a sword, drew it and struck the high priest's slave, and cut off his right ear; and the slave's name was Malchus.)
이에 시몬 베드로가 검을 가졌는데
Σίμων οὖν Πέτρος ἔχων μάχαιραν
Simon then Peter having a sword
‘가졌는데’란 단어( ἔχων)는 현재분사로서(having) 계속 가지고 있는 상태를 가리키고, 원형(ἔχων)은 ‘가지고 있다, 소유하다’(have, hold, possess)는 뜻입니다.
이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εἵλκυσεν αὐτὴν καὶ ἔπαισεν τὸν τοῦ ἀρχιερέως δοῦλον
he drew it and he struck the of the high priest slave
‘빼어’란 단어(εἵλκυσεν)는 부정과거형으로서(he drew) 단호하게 칼을 빼는 모습을 가리키고, 원형(ἑλκύω)은 ’빼다, 당기다‘(drag, draw, pull)는 뜻입니다.
‘쳐서’란 단어(ἔπαισεν)도 역시 부정과거형으로서(he struck) 단호하게 내리치는 모습을 가리키고, 원형(παίω)은 ‘때리다, 강타하다, 톡 쏘다’(strike, smite, sting)는 뜻입니다.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καὶ ἀπέκοψεν αὐτοῦ τὸ ὠτάριον τὸ δεξιόν
and he cut off his the ear the right
직역하면 ‘그의 오른쪽 귀를 잘랐다’는 뜻입니다.
‘베어버리니’란 단어(ἀπέκοψεν)는 역시 부정과거형으로서(he cut off) 본 절의 동사들은 모두 베드로가 급하고 단호하게 행동하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으며(단호하게 배어버리니), 원형(ἀποκόπτω)은 ‘강타하다, 베어버리다, 잘라서 떨어뜨리다’(smite, cut off, cut loose)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ἦν δὲ ὄνομα τῷ δούλῳ Μάλχος
Was being now of the name Malchus
동사(ἦν)는 미완료과거로서(was being) 그의 이름이 계속 말고였다는 뜻입니다.
1. 베드로가 말고의 귀를 베어버리는 장면은 공관복음서에도 모두 나타나지만, 베드로가 치고, 당한 자가 말고라는 것은 요한복음에만 나타납니다.
‘말고’란 히브리어로 ‘왕’(מֶלֶךְ)이란 뜻입니다.
2. 당시에 제자들은 칼 두 자루를 가졌는데(눅 22:38), 베드로가 말고를 친 이유는 ‘내가 주님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겠나이다’고 서약한 것을 성취시키려는 의도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말고의 오른쪽 귀가 잘려진 것은 베드로가 칼로 머리를 쳤을 것인데, 말고가 투구를 쓰고 있서 칼이 비켜나간 통에 귀가 잘렸을 것이라는 추측입니다.
11절.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검을 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 그러자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그 칼을 집에 꽂아라: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잔을 내가 마셔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셨다. (So Jesus said to Peter, "Put the sword into the sheath; the cup which the Father has given Me, shall I not drink it?" )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εἶπεν οὖν ὁ Ἰησοῦς τῷ Πέτρῳ
said therefore Jesus to the Peter
직역하면 ‘그러므로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는 뜻입니다.
‘이르시되’(εἶπεν)는 부정과거로서(said) 단호하게 말씀하신 모습을 가리킵니다.
검을 집에 꽂으라.
Βάλε τὴν μάχαιραν εἰς τὴν θήκην
Put the sword into the sheath
‘꽂으라’는 단어(Βάλε)는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put) 급하고 단호하게 쫒으라고 명령하신 말씀이고, 원형( βάλλω)은 ‘던진다, 내팽개친다’(to throw, cast)는 뜻입니다.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τὸ ποτήριον ὃ δέδωκέν μοι ὁ Πατήρ
the cup which has given Me the Father
‘주신’이란 단어(δέδωκέν)는 완료형으로서(has given) 이미 주신 상태를 가리키고, 원형(δίδωμι)은 ‘주다, 제공하다’( give, offer)란 뜻입니다.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οὐ μὴ πίω αὐτό
no not shall I drink it
‘마시지’란 단어(πίω)는 부정과거 가정법 동사로서(shall I drink) 단호하게 마시는 것을 가정한 말이고, 원형(πίνω)은 ‘마시다, 들이마시다’(drink, imbibe)는 뜻입니다.
1. 베드로는 무력으로 대항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검을 쓰는 자는 검으로 망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마 26:52).
그리고 예수님은 말고의 귀를 다시 붙여주셨습니다(눅 22:51).
그래서 베드로는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베어버리고서도 처벌을 받지 않았습니다.
2. 만일 이때, 베드로가 칼질을 잘하였더라면, 아마도 군병들을 다 죽였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당시에 군병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놀라 자빠져서, 무서워 벌벌 떨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칼을 집에 꽂으라(Βάλε: 집어던지라)고 하셨고, 베드로가 잘라버린 말고의 귀를 다시 붙여주셨습니다.
3. 이쯤 되었으면, 군병들과 경비병들과 가롯 유다는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회개했어야 합니다.
얼마든지 죽일 수 있는 상황에서, 모두 살려주었으므로, 무릎 꿇고 죄를 용서해달라고 회개하였어야 합니다.
그러나, 완악한 인생들은 자비하신 예수님 앞에서 회개할 줄 몰랐습니다.
<사람은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다>고 했습니다.
4. 베드로는 무력으로 예수님을 보호하고, 지상왕국을 이룩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무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주의 종들은 베드로처럼 무력이나 공권력이나 돈으로 주의 일을 하려고 하지 말고, 오직 기도하고, 성령 충만을 받아서, 성령의 능력으로 하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스가랴 4:6.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사도행전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5.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아버지께서 주신 잔’이란 인류 구원을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기도에서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지만, 이어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고 기도하신 대로,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실 것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 예수님은 얼마든지 고난과 죽음을 피할 수 있었지만, 우리들을 대신하여 고난과 죽음을 당하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6. 하나님의 아들이 어찌 더러운 인간들을 위해서 죽으셔야 했을까요?
<Cur Deos Homo?>(Why God became Man?)
<어찌하여 어찌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버림을 받아야 합니까?
<찬송가 143장>
웬 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가셨나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나
내 지은 죄 다 다 지시고, 못 박히셨으니
웬 일인가 웬 은혠가, 그 사랑 크셔라
7. 성경은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20:28.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
마태복음 9:13.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로마서 5:7-8. 의인을 위해서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8. 그렇습니다.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이 지옥 멸망으로 달려가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시고, 그 아들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를 대신 죽게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신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마치 부모가 자식이 물속에 빠져서 죽어가는 것을 차마보지 못해서, 자식을 건져주고 대신 죽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이 얼마든지 고난을 피할 수 있었는데도, 나를 위해서 십자가 고난을 당하신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늘 하나님의 크신 사랑 속에서 신앙생활에 충실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찬송가 404장>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다 형용 못하네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위에
죄 범한 영혼 구하려 그 아들 보내사
화목제로 삼으시고 죄 용서 하셨네
하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 다 못 하며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