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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의 본의(本意)는 무상(無上)이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무상중(無上中)의 극무상(極無上)이니라.
이 묘법(妙法)을 가리켜 무상보취(無上寶聚)라고 설(說)하셨느니라, 보취(寶聚)란 삼세(三世)의 제불(諸佛)의 만행만선(萬行萬善)의 제바라밀(諸波羅蜜)의 보(寶)를 모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이 무상보취(無上寶聚)를 신로(辛勞)도 없고 행공(行功)도 없이 일언(一言)으로 수취(受取)하는 신심(信心)이며, 불구자득(不求自得)이란 이것이니라
적문(迹門)에는 이승작불(二乘作佛)·본문(本門)에는 구원실성(久遠實成) 이것을 가리켜 극리(極理)라고 하느니라. 그러나 이것도 아직 극리(極理)는 아니로다. 적문(迹門)에서의 극리(極理)의 문(文)은 제불지혜(諸佛智慧) 심심무량(甚深無量)의 문(文)이 이것이니라. 그 까닭은 이 문(文)을 받아서 문구(文句)의 삼(三)에 가로되, 종(縱)으로 여리(如理)의 오저(奧底)를 꿰뚫고 횡(橫)으로 법계(法界)의 변제(邊際)까지 달(達)한다고 석(釋)하였다. 그런데 본문(本門)의 극리(極理)란 여래비밀(如來秘密) 신통지력(神通之力)의 문(文)이 이것이니라. 결국(結局) 니치렌(日蓮)의 의(意)에 가로되, 법화경(法華經)의 극리(極理)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이것이니라. 일체(一切)의 공덕법문(功德法門)·석존(釋尊)의 인행과덕(因行果德)의 이법(二法)·삼세시방(三世十方)의 제불(諸佛)의 수인감과(修因感果)·법화경(法華經)의 문문구구(文文句句)의 공덕(功德)을 취합(聚合)하여 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로 하셨느니라. 이로써 석(釋)에 가로되, 통틀어 일경(一經)을 결(結)함에 오직 사(四)뿐이로다. 그 추병(樞柄)을 집어서 이를 수여(授與)함이라 운운(云云). 상행보살(上行菩薩)에게 수여(授與)하시는 제목(題目) 이외(以外)에 법화경(法華經)의 극리(極理)는 없느니라 운운(云云).제목 : 석존(釋尊)의 인행과덕(因行果德)의 이법(二法)은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에 구족(具足)하였다. 우리들이 이 오자(五字)를 수지(受持)하면 자연(自然)히 그의 인과(因果)의 공덕(功德)을 물려주시느니라.
결국(結局) 니치렌(日蓮)의 의(意)에 가로되, 법화경(法華經)의 극리(極理)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이것이니라.
일체(一切)의 공덕법문(功德法門)·석존(釋尊)의 인행과덕(因行果德)의 이법(二法)·삼세시방(三世十方)의 제불(諸佛)의 수인감과(修因感果)·법화경(法華經)의 문문구구(文文句句)의 공덕(功德)을 취합(聚合)하여 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로 하셨느니라.
이로써 석(釋)에 가로되, 통틀어 일경(一經)을 결(結)함에 오직 사(四)뿐이로다.
그 추병(樞柄)을 집어서 이를 수여(授與)함이라 운운(云云). 상행보살(上行菩薩)에게 수여(授與)하시는 제목(題目) 이외(以外)에 법화경(法華經)의 극리(極理)는 없느니라 운운(云云).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의 본의(本意)는 무상(無上)이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무상중(無上中)의 극무상(極無上)이니라.
이 묘법(妙法)을 가리켜 무상보취(無上寶聚)라고 설(說)하셨느니라, 보취(寶聚)란 삼세(三世)의 제불(諸佛)의 만행만선(萬行萬善)의 제바라밀(諸波羅蜜)의 보(寶)를 모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이 무상보취(無上寶聚)를 신로(辛勞)도 없고 행공(行功)도 없이 일언(一言)으로 수취(受取)하는 신심(信心)이며, 불구자득(不求自得)이란 이것이니라
《 본문 어서말씀 》
적문(迹門)에는 이승작불(二乘作佛)·본문(本門)에는 구원실성(久遠實成) 이것을 가리켜 극리(極理)라고 하느니라. 그러나 이것도 아직 극리(極理)는 아니로다. 적문(迹門)에서의 극리(極理)의 문(文)은 제불지혜(諸佛智慧) 심심무량(甚深無量)의 문(文)이 이것이니라. 그 까닭은 이 문(文)을 받아서 문구(文句)의 삼(三)에 가로되, 종(縱)으로 여리(如理)의 오저(奧底)를 꿰뚫고 횡(橫)으로 법계(法界)의 변제(邊際)까지 달(達)한다고 석(釋)하였다. 그런데 본문(本門)의 극리(極理)란 여래비밀(如來秘密) 신통지력(神通之力)의 문(文)이 이것이니라. 결국(結局) 니치렌(日蓮)의 의(意)에 가로되, 법화경(法華經)의 극리(極理)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이것이니라. 일체(一切)의 공덕법문(功德法門)·석존(釋尊)의 인행과덕(因行果德)의 이법(二法)·삼세시방(三世十方)의 제불(諸佛)의 수인감과(修因感果)·법화경(法華經)의 문문구구(文文句句)의 공덕(功德)을 취합(聚合)하여 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로 하셨느니라. 이로써 석(釋)에 가로되, 통틀어 일경(一經)을 결(結)함에 오직 사(四)뿐이로다. 그 추병(樞柄)을 집어서 이를 수여(授與)함이라 운운(云云). 상행보살(上行菩薩)에게 수여(授與)하시는 제목(題目) 이외(以外)에 법화경(法華經)의 극리(極理)는 없느니라 운운(云云). <중략>
석존(釋尊)의 인행과덕(因行果德)의 이법(二法)은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에 구족(具足)하였다. 우리들이 이 오자(五字)를 수지(受持)하면 자연(自然)히 그의 인과(因果)의 공덕(功德)을 물려주시느니라. 사대성문(四大聲聞)의 영해(領解)에 가로되 「무상보취(無上寶聚)·불구자득(不求自得)」 운운(云云). 우리들의 기심(己心)의 성문계(聲聞界)니라. 「나와 여(如)히 동등(同等)케 하여 다름이 없노라. 나의 옛날의 소원(所願)과 같이 지금은 이미 만족(滿足)하였으니, 일체중생(一切衆生)을 화(化)하여 모두 불도(佛道)에 들어가게 하노라」 묘각(妙覺)의 석존(釋尊)은 우리들의 혈육(血肉)이니라. 인과(因果)의 공덕(功德)은 골수(骨髓)가 아니겠느뇨.
관심의 본존초(觀心本尊抄) 사도에서 52세에 술작 244, 246쪽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의 본의(本意)는 무상(無上)이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무상중(無上中)의 극무상(極無上)이니라. 이 묘법(妙法)을 가리켜 무상보취(無上寶聚)라고 설(說)하셨느니라, 보취(寶聚)란 삼세(三世)의 제불(諸佛)의 만행만선(萬行萬善)의 제바라밀(諸波羅蜜)의 보(寶)를 모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이 무상보취(無上寶聚)를 신로(辛勞)도 없고 행공(行功)도 없이 일언(一言)으로 수취(受取)하는 신심(信心)이며, 불구자득(不求自得)이란 이것이니라, 자(自)의 자(字)는 십계(十界)이며, 십계(十界) 각각(各各)이 득(得)하느니라, 제법실상(諸法實相) 이것이니라, 그러한 까닭으로 이 문(文)은 묘각(妙覺)의 석존(釋尊)은 우리들 중생(衆生)의 골육(骨肉)이니 깊이 깊이 이것을 생각할지어다 운운(云云).
어의구전(御義口傳) 미노부에서 57세에 술작 727쪽제목 : 석가불(釋迦佛)은 나를 무량(無量)의 진보(珍寶)로써 억겁(億劫) 동안 공양(供養)함 보다는·말대(末代)의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하루일지라도 공양(供養)하는 공덕(功德)은 백천만억배(百千萬億倍) 뛰어나리라
법화경(法華經)의 법사품(法師品)에는 이어일겁중(而於一劫中)이라고 하여, 일겁(一劫) 동안 석가불(釋迦佛)을 종종(種種)으로 공양(供養)한 사람의 공덕(功德)과, 말대(末代)의 법화경(法華經) 행자(行者)를 수유(須臾)라도 공양(供養)한 공덕(功德)과 비교(比較)하건대, 그 복(福)이 또한 그보다 더하다고 하여, 법화경(法華經) 행자(行者)를 공양(供養)하는 공덕(功德)이 훌륭하니라. 이것을 묘락대사(妙樂大師)가 석(釋)하여 가로되 「공양(供養)하는 일이 있는 자(者)는 복(福)이 십호(十號)보다 더하다」라고 운운(云云). 그러므로 부처를 공양(供養)하는 공덕(功德)보다도 뛰어나므로 부처가 되신다는 것은 의심(疑心)이 없느니라.
일겁(一劫)동안 교주석존(敎主釋尊)을 공양(供養)해 드리는 것 보다도 말대(末代)의 천지(淺智)한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로서 상하(上下) 만인(萬人)에게 미움받아 아사지경(餓死地境)의 비구등(比丘等)을 공양(供養)하는 공덕(功德)이 더 뛰어 나리라
《 본문 어서말씀 》
부법장경(付法藏經)이라고 하는 경(經)에는, 모래떡을 부처에게 공양(供養)해 드린 동자(童子)는, 백년(百年)이 지나서 일염부제(一閻浮提)의 사분(四分)의 일(一)의 왕(王)이 되었는데 소위(所謂) 아육대왕(阿育大王)이니라. 법화경(法華經)의 법사품(法師品)에는 이어일겁중(而於一劫中)이라고 하여, 일겁(一劫) 동안 석가불(釋迦佛)을 종종(種種)으로 공양(供養)한 사람의 공덕(功德)과, 말대(末代)의 법화경(法華經) 행자(行者)를 수유(須臾)라도 공양(供養)한 공덕(功德)과 비교(比較)하건대, 그 복(福)이 또한 그보다 더하다고 하여, 법화경(法華經) 행자(行者)를 공양(供養)하는 공덕(功德)이 훌륭하니라. 이것을 묘락대사(妙樂大師)가 석(釋)하여 가로되 「공양(供養)하는 일이 있는 자(者)는 복(福)이 십호(十號)보다 더하다」라고 운운(云云). 그러므로 부처를 공양(供養)하는 공덕(功德)보다도 뛰어나므로 부처가 되신다는 것은 의심(疑心)이 없느니라.
다카하시전답서(高橋殿答) 미노부에서 54세에 술작 1457쪽
덕승동자(德勝童子)는 부처에게 흙떡을 바치고서 아육대왕(阿育大王)으로 태어나 남염부제(南閻浮提)를 거의 통치(統治)했다고 들었는데, 흙떡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부처가 존귀(尊貴)하시기 때문에 이렇게 뛰어난 과보(果報)를 얻었지요. 그러나 석가불(釋迦佛)은 나를 무량(無量)의 진보(珍寶)로써 억겁(億劫) 동안 공양(供養)함 보다는·말대(末代)의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하루일지라도 공양(供養)하는 공덕(功德)은 백천만억배(百千萬億倍) 뛰어나리라고 설(說)하셨는데 ,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마음에 간직하고 수년(數年) 동안이나 공양(供養)하신 것은 진귀(珍貴)한 마음씨로다. 금언(金言)과 같다면 틀림없이 후생(後生)은 영산정토(靈山淨土)에 태어나실 뛰어난 과보(果報)로다.
난조전답서(南條殿答書) 미노부에서 60세에 술작 1578쪽
석가불(釋迦佛)의 혼백(魂魄)이 바꾸어 들어간 사람은 이 경(經)을 믿는다고 쓰였으니·물에 달의 그림자가 들어가면 물이 맑아지듯이·마음의 물에 교주석존(敎主釋尊)의 달의 그림자가 들어가신 것일까 하고 미덥게 생각되나이다. 법화경(法華經)의 제사법사품(第四法師品)에 가로되 「사람이 있어서 불도(佛道)를 구(求)하여 일겁(一劫)동안 합장(合掌)하고 나의 앞에서 무수(無數)의 게(偈)로써 찬탄(讚歎)하리라, 이 찬불(讚佛)에 연유(緣由)하는 고(故)로 무량(無量)의 공덕(功德)을 얻으리라, 지경자(持經者)를 탄미(歎美)함은 그 복(福) 또한 그보다 더 하리라」 등(等) 운운(云云). 문(文)의 의(意)는 일겁(一劫)동안 교주석존(敎主釋尊)을 공양(供養)해 드리는 것 보다도 말대(末代)의 천지(淺智)한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로서 상하(上下) 만인(萬人)에게 미움받아 아사지경(餓死地境)의 비구등(比丘等)을 공양(供養)하는 공덕(功德)이 더 뛰어 나리라고 하는 경문(經文)이니라.
마쓰노전어소식(松野殿御消息) 미노부에서 55세에 술작 1379쪽범부(凡夫)는 체(體)의 삼신(三身)으로서 본불(本佛)인 것이며 부처는 용(用)의 삼신(三身)으로서 적불(迹佛)이니라.
그러므로 석가불(釋迦佛)은 우리들 중생(衆生)을 위해서는 주사친(主師親)의 삼덕(三德)을 갖추셨다고 생각하였으나 그런 것이 아니라, 도리어 부처에게 삼덕(三德)을 갖게 해 드린 것은 범부(凡夫)이니라,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제목 : 과거(過去)의 인(因)을 알려고 하면 그 현재(現在)의 과(果)를 보라 , 미래(未來)의 과(果)를 알려고 하면 그 현재(現在)의 인(因)을 보라
순차생(順次生)에 반드시 지옥(地獄)에 떨어질 자(者)는 중죄(重罪)를 지을지라도 현벌(現罰)이 없으니 일천제인(一闡提人)이 이것이니라.
대열반(大涅槃)의 빛이 일체중생(一切衆生)의 모공(毛孔)에 들어갑니다
※ 참고하면 도움될 유튜브 영상 ※
https://youtu.be/AbU2yvxvPLs?si=caeg9yxDmMeU9nNA
《 본문 어서말씀 》
심지관경(心地觀經)에 가로되 「 과거(過去)의 인(因)을 알려고 하면 그 현재(現在)의 과(果)를 보라 , 미래(未來)의 과(果)를 알려고 하면 그 현재(現在)의 인(因)을 보라」등(等)운운(云云), 불경품(不輕品)에 가로되 「그 죄(罪)를 필(畢)하고 나서」 등(等)운운(云云). 불경보살(不輕菩薩)은 과거(過去)에 법화경(法華經)을 비방(誹謗)하신 죄(罪)가 몸에 있는 고(故)로 와석(瓦石)을 당했다고 보여진다. 또 순차생(順次生)에 반드시 지옥(地獄)에 떨어질 자(者)는 중죄(重罪)를 지을지라도 현벌(現罰)이 없으니 일천제인(一闡提人)이 이것이니라. 열반경(涅槃經)에 가로되 「가섭보살(迦葉菩薩)이 부처에게 말씀드리되, 세존(世尊)이시여, 부처의 소설(所說)과 여(如)히 대열반(大涅槃)의 빛이 일체중생(一切衆生)의 모공(毛孔)에 들어갑니다」 등(等)운운(云云).
개목초(開目抄) 사도에서 51세에 술작 231쪽참고하세요.
오직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만 봉창(奉唱)하면 멸(滅)하지 않는 죄(罪)가 있겠는가, 오지 않는 복(福)이 있겠는가. 진실(眞實)이고 심심(甚深)하니 이를 신수(信受)할지어다.
성우문답초(聖愚問答抄) 가마쿠라에서 44세에 술작 497쪽"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의 본의(本意)는 무상(無上)이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무상중(無上中)의 극무상(極無上)이니라. 이 묘법(妙法)을 가리켜 무상보취(無上寶聚)라고 설(說)하셨느니라, 보취(寶聚)란 삼세(三世)의 제불(諸佛)의 만행만선(萬行萬善)의 제바라밀(諸波羅蜜)의 보(寶)를 모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이 무상보취(無上寶聚)를 신로(辛勞)도 없고 행공(行功)도 없이 일언(一言)으로 수취(受取)하는 신심(信心)이며, 불구자득(不求自得)이란 이것이니라." 어의구전 727쪽
"처음으로 나의 마음이 본래(本來)의 부처라고 아는 것을 즉(卽) 대환희(大歡喜)라고 이름한다,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환희중(歡喜中)의 대환희(大歡喜)이니라."
어의구전 788쪽
"그러므로 한 번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면, 일체(一切)의 불(佛)·일체(一切)의 법(法)·일체(一切)의 보살(菩薩)·일체(一切)의 성문(聲聞)·일체(一切)의 범왕(梵王)·제석(帝釋)·염마(閻魔)·법왕(法王)·일월(日月)·중성(衆星)·천신(天神)·지신(地神)·내지(乃至)·지옥(地獄)·아귀(餓鬼)·축생(畜生)·수라(修羅)·인천(人天)·일체중생(一切衆生)의 심중(心中)의 불성(佛性)을 오직 한 마디로 불러 나타내시는 공덕(功德)은 무량무변(無量無邊)하니라. 나의 기심(己心)의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를 본존(本尊)으로 숭앙(崇仰)하고, 나의 기심(己心) 중(中)의 불성(佛性)·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고 불리어서 나타나심을 부처라고 하느니라. 비유컨대 새장 속의 새가 울면 하늘을 나는 새가 모이면 새장 속의 새도 나가려고 함과 같으니라. 입으로 묘법(妙法)을 봉창하면 나의 몸의 불성(佛性)도 불리어서 반드시 나타나시고, 범왕(梵王)·제석(帝釋)의 불성(佛性)은 불리어서 우리들을 지키시고, 불보살(佛菩薩)의 불성(佛性)은 불리어서 기뻐하심이라."
법화초심성불초 557쪽 제목 : 단언컨대 앞으로 모든 종교는 사라지고 오직 남묘호렌게쿄 창제행위만이 남게 될 것입니다.
그 선구자들이 바로 우리들이고 스스로 환희 중의 대환희의 위대한 생명경애를 열어가면서 색심(몸과 마음)과 의정(주체인 자신과 환경)에 걸쳐서 영원히 최극.최상으로 존재해가게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모든 종교는 반드시 사라집니다.
특히 화려하게 장식되고 과대 포장된 종교들의 민낯이 속속들이 드러나게 되고 오직 진리 즉 법칙인 묘법만이 남게 됩니다.
대우주근원의 생명주체인 묘호렌게쿄에 귀명.귀의.경지명합.함개상응하는 행위만이 스스로를 환희 중의 대환희의 우주대의 생명으로 열어가게 되는 유일한 비법을 전인류가 실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각각의 주체자들의 대환희의 생명열림현상에 따라 지구촌의 모든 존재 즉 물질과 비물질, 유정의 생명들과 무정의 모든 존재들에 영향을 주고 또 받으면서 자연히 평화낙토가 되고 일체의 중생들(존재하는 유.무정 모든 것들)이 대환희의 상태로 공생.공존.상존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래 유튜브 영상이 긴 내용이지만 무수히 언급하고 있는 실체는 바로 남묘호렌게쿄에 대한 설명임을 아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묘호렌게 즉 지.수.화.풍 그리고 공간.융합.결합.음성.소리 즉 쿄
양자역학 원자 창조주 신 부처..
우리들 스스로가 창조주들이자 개척자들이고 부처님들이며 세상을 구하는 선구자들 즉 인류의 구원자들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깨닫게 되는 깃점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올바르고 제대로된 남묘호렌게쿄 제목 봉창을 통해 대우주 근원의 실상을 도현해나타낸 대어본존님과 어본불 니치렌대성인님과 경지명합 함개상응 감응도교로 하나되어 본인묘의 즉신성불의 신심을 실천해가는 것이 스스로의 생명과 더불어 주변의 모든 무수한 환경.존재들 까지도 최상.최극의 상태로 빛나도록 함께 상존하며 함께 행복하게 존재해가게 되는 것입니다.
《 참고할 어서말씀들과 유튜브 영상 》
일체(一切)의 법(法)은 모두 이는 불법(佛法)이라고 알고 나면 교훈(敎訓)해야 할 선지식(善知識)도 필요없고 생각하는 마음, 말하는 말, 행(行)하는 행위(行爲), 거동(擧動)이란 거동(擧動), 행주좌와(行住坐臥)의 사위의(四威儀) 소작(所作)은 모두 부처의 마음과 화합(和合)해서 일체(一體)이므로, 죄과(罪過)도 없고, 장애(障碍)도 없는 자재(自在)의 몸이 되는데, 이를 자행(自行)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자재(自在)인 자행(自行)의 행(行)을 버리고 흔적도 없는 무명망상(無明妄想)인 벽사(僻思)의 마음에 주(住)하여 삼세(三世)의 제불(諸佛)의 교훈(敎訓)을 배반(背反)하므로 어두움에서 어두움으로 들어가, 영구(永久)히 불법(佛法)을 배반(背反)하는 것을 슬퍼하고 슬퍼할지니라. 지금 되돌려서 생각을 바르게 하여 깨달음에 돌아가면 즉신성불(卽身成佛)은 자신(自身) 이외에는 없다고 알았노라.
삼세제불총감문교상폐립三世諸佛總勘文敎相廢立) 미노부에서 58세에 술작 570쪽
지금 아부쓰상인(阿佛上人) 의 일신(一身)은 지수화풍공(地水火風空)의 오대(五大)이며, 이 오대(五大)는 제목(題目)의 오자(五字)이니라. 그러므로 아부쓰보(阿佛房)가 바로 보탑(寶塔)이고 보탑(寶塔)이 바로 아부쓰보(阿佛房)이며 이것 이외(以外)의 재각(才覺)은 무익(無益)하니라 . 문(聞)·신(信)·계(戒)·정(定)·진(進)·사(捨)·참(慚)의 칠보(七寶)로써 장식한 보탑(寶塔)이니라. 다보여래(多寶如來)의 보탑(寶塔)을 공양(供養)하신다고 생각하지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자신(自身)을 공양(供養)하시는 것이며 자신(自身)이 또한 삼신즉일(三身卽一)의 본각(本覺)의 여래(如來)이니라. 이렇게 믿으시고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 봉창(奉唱)하시라. 이곳이 바로 보탑(寶塔)의 주처(住處)이니라. 경(經)에 가로되 「법화경(法華經)을 설(說)하는 일이 있는 곳에는 나의 이 보탑(寶塔)이 그 앞에 용현(涌現)함」이란 이것이니라. 너무나 존귀(尊貴)하시므로 보탑(寶塔)을 써서 나타내어 드리느니라, 자식이 아니면 물려 주지 말것이며 신심(信心) 강성(强盛)한 자(者)가 아니면 보이지 말지어다. 출세(出世)의 본회(本懷)란 이것이니라.
아부쓰보어서(阿佛房御書) 사도에서 51세에 술작 1304쪽
어찌 기원(祈願)의 성취(成就)가 늦으리요. 대지(大地)를 가리켜서 빗나갈지라도 허공(虛空)을 동여매는 자(者)는 있을지라도·조수(潮水)의 간만(干滿)이 없는 일은 있을지라도, 해는 서(西)쪽에서 돋을지라도,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의 기원(祈願)이 성취(成就)되지 않는 일은 있을 수 없느니라.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모든 보살(菩薩)·인천(人天)·팔부(八部) 등(等)·이성(二聖)·이천(二天)·십나찰(十羅刹) 등(等)이 천(千)에 하나라도 와서 수호(守護)하시지 않는 일이 있다면 위로는 석가제불(釋迦諸佛)을 업신여기고 아래로는 구계(九界)를 속이는 죄가 되리라. 행자(行者)는 확실히 부실(不實)할지라도 지혜(智慧)는 어리석을지라도 몸은 부정(不淨)할지라도, 계덕(戒德)은 갖추지 않았을지라도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른다면 반드시 수호(守護)하시리라. 주머니가 더럽다고 하여 금(金)을 버리지 말지니라. 이란(伊蘭)을 미워하면 전단(栴檀)은 있을 수 없느니라. 계곡(溪谷)의 연못을 부정(不淨)하다고 싫어 한다면 연(蓮)꽃은 취(取)하지 못할 것이며 행자(行者)를 퇴박 하신다면 서원(誓願)을 깨뜨리심이라. 정상(正像)이 이미 지나 버렸으니 지계(持戒)는 시중(市中)의 호랑이와 같고 지자(智者)는 인각(麟角)보다도 희귀(稀貴)하리라. 달이 뜨기 전(前)에는 등(燈)불을 의지할 것이며 보주(寶珠)가 없는 곳에는 금은(金銀)도 보배(寶貝)로다. 백오(白烏)의 은(恩)을 흑오(黑烏)에게 갚고 성승(聖僧)의 은(恩)을 범승(凡僧)에게 갚을지니라. 속히 속히 이생(利生)을 주십사 하고 강성(强盛)히 기원(祈願)한다면 어찌 기원(祈願)이 성취(成就)되지 않으리요.
기도초(祈禱抄) 사도에서 51세에 술작 1351~2쪽
오직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만 봉창(奉唱)하면 멸(滅)하지 않는 죄(罪)가 있겠는가, 오지 않는 복(福)이 있겠는가. 진실(眞實)이고 심심(甚深)하니 이를 신수(信受)할지어다.
성우문답초(聖愚問答抄) 가마쿠라에서 44세에 술작 497쪽
일념(一念)에 억겁(億劫)의 신로(辛勞)를 다하면 본래(本來) 무작(無作)의 삼신(三身)이 염념(念念)에 일어나느니라,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정진행(精進行)이니라.
어의구전(御義口傳) 미노부에서 57세에 술작 790쪽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사자후(師子吼)와 같으니, 어떠한 병(病)인들 장해(障害)를 할 손가, 귀자모신(鬼子母神)·십나찰녀(十羅刹女)는 법화경(法華經)의 제목(題目)을 수지(受持)한 자를 수호(守護)하리라고 쓰였느니라. 행(幸)은 애염(愛染)과 같고 복(福)은 비사문(毘沙門)과 같이 되리라 , 어떠한 곳에서 놀고 장난쳐도 탈이 없을 것이며, 유행(遊行)하여 두려움이 없음은 마치 사자왕(師子王)과 같으리라. 십나찰녀(十羅刹女) 중(中)에서도 고제녀(皐諦女)의 수호(守護)가 깊을 것이니라. 오직 신심(信心)에 달렸느니라. 검(劍)이라도 부진(不進)한 사람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다. 법화경(法華經)의 검(劍)은 신심(信心)이 강성한 사람만이 소용(所用)되는 것이며, 범에 날개가 돋힌 격이니라.
교오전답서(經王殿答書) 사도에서 52세에 술작 1124쪽
동서남북(東西南北)·팔방(八方)· 및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의 외(外)·사백만억나유타(四百萬億那由佗)의 국토(國土)에 시방(十方)의 제불(諸佛)이 잇따라와서 충만(充滿)하시었다, 하늘에는 별과 같이·땅에는 도마(稻麻)와 같이 열(列)지어 계시며,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수호(守護)하시는 것을 비유하면 대왕(大王)의 태자(太子)를 모든 신하(臣下)가 수호(守護)하는것과 같다. 단(但) 사천왕(四天王)의 동류(同類)가 수호(守護)하여 주시는 것도 황송한 일인데, 일체(一切)의 사천왕(四天王)·일체(一切)의 성수(星宿)·일체(一切)의 일월(日月)·제석(帝釋)·범천(梵天) 등(等)이 수호(守護)하시니 만족(滿足)해야 할 일이니라. 게다가 일체(一切)의 이승(二乘)·일체(一切)의 보살(菩薩)·도솔내원(兜卒內院)의 미륵보살(彌勒菩薩)·가라타산(伽羅陀山)의 지장(地藏)·보타락산(補陀落山)의 관세음(觀世音)·청량산(淸凉山)의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 등(等)·각각(各各) 권속(眷屬)을 구족(具足)하여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수호(守護)해 주심으로써 만족(滿足)해야 할 것인데·또한 황송하게도 석가(釋迦)·다보(多寶)·시방(十方)의 제불(諸佛)이 친(親)히 자진(自進)해서 내림(來臨)하시어·주야(晝夜) 십이시(十二時)동안 수호(守護)해 주심에 대한 황송함은 말로 다하지 못하노라.
우에노전모친답서(上野殿母親答書) 미노부에서 59세에 술작 1570쪽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나무(南無)란 범어(梵語)이며 여기서는 귀명(歸命)이라 하느니라. 인법(人法)이 있으니 인(人)이란 석존(釋尊)을 받들어 귀명(歸命)하고 법(法)이란 법화경(法華經)을 받들어 귀명(歸命)함이라. 또 귀(歸)라 함은 적문불변진여(迹門不變眞如)의 이(理)에 귀의(歸依)함이며 명(命)이란 본문수연진여(本門隨緣眞如)의 지(智)에 의거(依據)함이라. 귀명(歸命)이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석(釋)에 가로되, 수연불변(隨緣不變)·일념적조(一念寂照)라고, 또 귀(歸)란 우리들의 색법(色法)이고 명(命)이란 우리들의 심법(心法)이며 색심불이(色心不二)임을 일극(一極)이라고 하느니라. 석(釋)에 가로되 일극(一極)에 귀(歸)하게 하는 고(故)로 불승(佛乘)이라 한다라고. 또 가로되,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나무(南無)란 범어(梵語)이고·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는 한어(漢語)이며, 범한(梵漢) 공시(共時)에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하느니라. 또 가로되 범어(梵語)로는 살달마(薩達磨)·분다리가(芬陀梨伽)·소다람(蘇多覽)이라 하며, 여기서는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 하느니라, 살(薩)은 묘(妙)이고 달마(達磨)는 호(法)이며 분다리가(芬陀梨伽)는 렌게(蓮華)이고 소다람(蘇多覽)은 쿄(經)이니라. 구자(九字)는 구존(九尊)의 불체(佛體)이며, 구계즉불계(九界卽佛界)의 표시(表示)이니라. 묘(妙)란 법성(法性)이고 호(法)란 무명(無明)이며 무명(無明) 법성(法性)이 일체(一體)임을 묘호(妙法)라 하느니라. 렌게(蓮華)란 인과(因果)의 이법(二法)이고, 이것 또한 인과일체(因果一體)이니라. 쿄(經)란 일체중생(一切衆生)의 언어(言語) 음성(音聲)을 쿄(經)라고 하느니라. 석(釋)에 가로되, 성불사(聲佛事)를 함을 이름하여 쿄(經)라 한다고, 혹(或)은 삼세상항(三世常恒)임을 쿄(經)라고 하느니라. 법계(法界)는 묘호(妙法)이고 법계(法界)는 렌게(蓮華)이며 법계(法界)는 쿄(經)니라. 렌게(蓮華)란 팔엽구존(八葉九尊)의 불체(佛體)이니라, 차근차근히 이를 생각할지어다, 이상(已上).
어의구전(御義口傳) 미노부에서 57세에 술작 708쪽
https://youtu.be/HeoR6rlkSBc?si=zSJNYyT3wsIrnwbH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Nam Myoho Renge Kyo) 정확하게 부르기
※ 아래 어서말씀 처럼 이 사바세계는 이근득도(耳根得道) 즉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Nam Myoho Renge Kyo) 소리를 귀로 들음으로써 득도할 수 있기에 제목을 정확하게 부를 수 있게 항상 점검하면서 용맹정진하십시다 ※
"부처가 되는 법화경(法華經)을 귀로 듣는다면 이를 종자(種子)로 해서 반드시 부처가 되느니라."
법화초심성불초 552쪽
"이 사바세계(娑婆世界)는 이근득도(耳根得道)의 나라이며 이전(以前)에 말했듯이 당지신토(當知身土)라고 운운(云云)" 일념삼천법문 415쪽
"제목(題目)을 봉창(奉唱)하는 소리는 시방세계(十方世界)에 닿지 않는 곳이 없느니라."
어강문서 808쪽
"나의 기심(己心) 중(中)의 불성(佛性)·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고 불리어서 나타나심을 부처라고 하느니라. 비유컨대 새장 속의 새가 울면 하늘을 나는 새가 모이면 새장 속의 새도 나가려고 함과 같으니라. 입으로 묘법(妙法)을 봉창하면 나의 몸의 불성(佛性)도 불리어서 반드시 나타나시고, 범왕(梵王)·제석(帝釋)의 불성(佛性)은 불리어서 우리들을 지키시고, 불보살(佛菩薩)의 불성(佛性)은 불리어서 기뻐하심이라."
법화초심성불초 557쪽
어떠한 불가능도 가능하게 하는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대어본존님의 보호(이름)이기에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를 정확하고 힘차게 부를 때 부르는 사람의 정성과 간절함이 가득 담긴 그 마음(일념)이 고스란히 대어본존님께 전달되어 즉각 반응하시게 됩니다.
대어본존님라는 대경을 향해 제목을 부르지만 실은 본인의 생명 깊은 곳 즉 구식심왕진여의 도(읍)에 원래부터 구족되어(갖춰져) 있는 환희 중의 대환희의 불계의 생명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강렬하고 정확하고 간절하게 불려지는 바로 그 순간 솟아나게(용출.용현하게) 되어 그 생명 그대로 그 즉시로 성불(개불:부처의 생명으로 열림)하게 될 뿐만아니라, 삼세시방(과거 현재 미래, 사방 팔방 상하 십방향)의 제불보살(모든 부처님들과 보살님들), 제천선신(대범천왕, 제석천왕, 대일천왕, 대월천왕, 대명성천왕 등) 등등 일체의 유정(동식물) 무정(돌 물 등 각종 원소로 구성된 물질과 비물질 등)에 본래 구족되어 있든 불계의 생명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단 한마디로 불러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위대한 드라마를 연출해내는 장엄한 의식은 어떠한 언어로써로도 표현해낼 수 없는 대우주 전체를 단번에 대변혁해 낼 수 있는 강력한 힘(불력.법력)의 발현이자 위대한 행위이고 그게 바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를 제대로 바르고 강력하게 부르는 순간인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생명 가장 깊은 내면으로 부터 환희 중의 대환희의 불계의 생명을 열 뿐만아니라 자신의 생명 활동과 뗄레야 뗄 수 없는(의정불이) 유.무정의 일체 환경도 함께 즉시 대환희로 생명의 빛을 발하게 할 수 있는 비법이 바로 남묘호렌게교(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는 행위인 것입니다.
하여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를 부를 때 "일념(一念)에 억겁(億劫)의 신로(辛勞)를 다하면 본래(本來) 무작(無作)의 삼신(三身)이 염념(念念)에 일어나느니라,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정진행(精進行)이니라."(어의구전 790쪽)란 어본불 니치렌대성인님의 어서말씀대로 순수하고 겸허하고 겸손한 마음 자세로 감사함의 깊이를 더하면서 진지하게 제목을 부른다면 본래(本來) 무작(無作)의 삼신(三身)이 염념(念念)에 일어나듯이 즉신으로 성불하게 되고 일체를 원하는 방향으로 변혁시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1.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제목 부르는 연습 : 적당한 목소리 톤으로 창제 속도를 느리게 하여 또박또박 발음하면서 부르고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를 때 마다 정말 감사합니다라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간절히 부른다.
2.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창제하는 속도를 빨리 하면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정확하게 발음하고 있는 지를 수시로 점검하여 본인의 일념이 가장 잘 서는 속도로 제목을 부르고 불러서 대어본존님 즉 대우주에 편만되어 있고 자신의 보탑으로 자리잡고 있는 불계의 생명이 반응하여 용출하여 자신을 장식할 뿐만 아니라 환경 즉 이 사회와 지구촌과 더 나아가 전우주에 걸쳐서 최극의 선한 반향을 불러키고 환희 중의 대환희의 불계의 생명으로 변혁시킬 수 있게 부르는 것입니다.
3. 때로는 조용한 골방에서 불도 끄고 눈도 감고 오직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부르는 소리에 집중하면서 작은 목소리 ~ 큰 목소리로 다양하게 불러보거나 양쪽 귀를 막고 불러보거나 머리 ~ 가슴 까지 덮을 수 있는 큰통을 이용하여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를 불러보면서 제목 소리의 위대함을 점검해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공연장 스피커 바로 앞에서 강렬한 음파를 듣는 것 처럼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는 순간이 목 가슴 등이 반응하는 것을 확인해보는 것도 좋겠지요) 4. 본인에게 맞는 목소리(크기)와 속도로 행주좌와 어떤 장소와 어떤 환경에서도 확신에 차서 즐겁게 불러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제목(題目)의 오자(五字)는 체(體)와 같고 소리와 같은 것이니라, 제목(題目)을 봉창(奉唱)하는 소리는 시방세계(十方世界)에 닿지 않는 곳이 없느니라. 우리들의 작은 소리라 할지라도 제목(題目)이라는 대음(大音)에 넣어서 봉창(奉唱)하므로 일대삼천계(一大三千界)에 도달(到達)하지 않는 곳이 없다. 비유(譬喩)컨대 소음(小音)이라도 조개껍질에 넣어서 불면 멀리 울리는 것과 같고, 손의 소리는 작지만 북을 치면 멀리 울리는 것과 같다. 일념삼천(一念三千)의 대사(大事)인 법문(法門)이 이것이니라." 어강문서 808쪽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의 본의(本意)는 무상(無上)이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무상중(無上中)의 극무상(極無上)이니라. 이 묘법(妙法)을 가리켜 무상보취(無上寶聚)라고 설(說)하셨느니라, 보취(寶聚)란 삼세(三世)의 제불(諸佛)의 만행만선(萬行萬善)의 제바라밀(諸波羅蜜)의 보(寶)를 모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이 무상보취(無上寶聚)를 신로(辛勞)도 없고 행공(行功)도 없이 일언(一言)으로 수취(受取)하는 신심(信心)이며, 불구자득(不求自得)이란 이것이니라." 어의구전 727쪽
"처음으로 나의 마음이 본래(本來)의 부처라고 아는 것을 즉(卽) 대환희(大歡喜)라고 이름한다,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환희중(歡喜中)의 대환희(大歡喜)이니라."
어의구전 788쪽
"그러므로 한 번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면, 일체(一切)의 불(佛)·일체(一切)의 법(法)·일체(一切)의 보살(菩薩)·일체(一切)의 성문(聲聞)·일체(一切)의 범왕(梵王)·제석(帝釋)·염마(閻魔)·법왕(法王)·일월(日月)·중성(衆星)·천신(天神)·지신(地神)·내지(乃至)·지옥(地獄)·아귀(餓鬼)·축생(畜生)·수라(修羅)·인천(人天)·일체중생(一切衆生)의 심중(心中)의 불성(佛性)을 오직 한 마디로 불러 나타내시는 공덕(功德)은 무량무변(無量無邊)하니라. 나의 기심(己心)의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를 본존(本尊)으로 숭앙(崇仰)하고, 나의 기심(己心) 중(中)의 불성(佛性)·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고 불리어서 나타나심을 부처라고 하느니라. 비유컨대 새장 속의 새가 울면 하늘을 나는 새가 모이면 새장 속의 새도 나가려고 함과 같으니라. 입으로 묘법(妙法)을 봉창하면 나의 몸의 불성(佛性)도 불리어서 반드시 나타나시고, 범왕(梵王)·제석(帝釋)의 불성(佛性)은 불리어서 우리들을 지키시고, 불보살(佛菩薩)의 불성(佛性)은 불리어서 기뻐하심이라."
법화초심성불초 557쪽
제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Nam Myoho Renge Kyo)를 올바르게 불러가자고 거듭해서 말씀 올리는 이유는 짐작하시고 계신대로입니다.
어본불 니치렌대성인님께서 목숨을 걸고 1253년 4월 28일 입종선언을 하시기 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을 갖고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Nam Myoho Renge Kyo)를 부르셨을 지 특히 한달 전인 3월 28일 부터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Nam Myoho Renge Kyo)를 입정안국의 민중구제라는 대의를 갖고 봉창하실 때와 이후 수많은 대난 속에서 창제하신 그 순간 순간의 일념을 황송하게도 함께한다는 마음자세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Nam Myoho Renge Kyo)를 일념(一念)에 억겁(億劫)의 신로(辛勞)를 다해서 봉창해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47년여 동안 신심을 하면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Nam Myoho Renge Kyo)를 미세하게 다르게 부르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다는데 놀라곤 하였는데,
난묘호렌게쿄, 난모호렌게쿄, 난묘호렌게교..
남모호렌게쿄, 남모호렌게교..
남묘호랑게쿄, 남묘호랑게교..
남묘오렌게쿄, 남묘오렌게교..
남먀호렌게쿄, 남먀호렌게교, 남마호렌게교..
남묘호렌데교, 남묘호렌데도, 남묘호렌데툐, 남묘호렌데죠..
남묘호렌게교, 남묘호렌게이교, 남묘호렌게이쿄.. 하는 등 예전 창가학회에서 신심할 때 일부 대간부나 신심을 오래하신 분들 중에서도 이상하게 발음하시든 생각이 많이 납니다.
※일련정종 총본산의 대어본존님과 니찌렌대성인님을 비롯하여 역대의 예하님의 법체의 혈맥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명리명문과 입지를 위해 철저히 배신하고, 재가신도들이 당연히 행해야 할 외호를 하기는 커녕 오히려 창가학회원 전원을 총동원하여 온갖 비방과 악의에 찬 공격을 감행하고 있는 대방법자 불쌍한 이케다씨의 이상한 제목소리※
유튜브에 올라온 것은 최근이지만 불벌을 받아서 지금은 치매가 악화되어 어떤 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사람구실도 하지 못하는 비참하게 늙은 중병환자(개인적으로 일본 전수상을 통해 확인한 내용임)가 된 불쌍한 이케다란 사람과 그를 추종했던 사람들의 비참한 말로와 지금도 앞장서서 총본산을 공격하며 대방법을 저지르고 있는 창가학회원들의 안타까운 현실을 생각하며 니치뇨예하님께서 신년사에서 말씀해주신 절복의 의미를 깊이 새기고 절복전의 제일선에 설 것을 각오하게 됩니다.
이 이케다씨의 이상한 제목소리를 따라하려고 예전 모 전이사장은 교회 목사들의 이상한 쉰소리와 같은 음성으로 제목을 부르던 모습과 음성이 생생하네요.
또 뇌졸증으로 반신불수가 된 모 전이사장도 이케다씨의 이 제목소리를 흉내내며 남묘호렌데도 난노호렌데도 난묘호렌데됴 난노호렌데됴..등으로 이상하게 발음하던 음성이 귓전에 생생합니다.
https://youtu.be/Zt7GoEkQiy0
*얼마 전에 서울포교소에서 활동하시고 계신 탈회자 신도분께 보내드렸는데, 이 내용을 창가학회 간부에게 보냈다고 하길래 곧 지워지겠구나 하고 아쉬워했는데 글을 쓰면서 확인해보니 실제로 지워진 상태네요.
*직접 들어보시면 섬찟 섬찟 놀라시게 될 것이고, 제가 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Nam Myoho Renge Kyo)를 정확하게 제대로 부르시라고 거듭 말씀드리는지를 아시게 됐을텐데 많이 아쉽네요.
혹시나 하고 다른 유튜브 체널을 검색해보니 비슷한게 있어서 올립니다.
https://youtu.be/R3p-65aNfjQ
한번 들어보시지요.
이 유튜브는 삭제된 유튜브 보다 음질이 많이 좋지않네요.
난노호렌게교 난뇨호렌데교 난노호렌데도 난노호렌게요옷~ 난노호렌게오옷~ 난노호렌게도옷~ 난노호렌게교옷~ ...
거의 대부분의 제목소리를 이케다 본인만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Nam Myoho Renge Kyo)라고 단 한마디도 제대로 정확하게 부르지 못하고 남묘호렌게쿄 음의 높낮이도 너무 이상하여 기겁을 할 정도입니다.
또 신도분들 중에도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다가 어느 순간 남묘호렌게교라고 부르거나 특히 창제속도를 빨리 하면서 남묘호렌게교가 아닌 남묘호렌게라고 부르는 경우를 생각보다 많이 접하게 되다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 망설이다가 글을 올리게 된 것입니다.
또 가끔 어떤 분은 제목을 부를 때 염불하듯 하거나 이상한 노래하듯 음의 높낮이를 특이하게 하시는 분도 계시고, 본인 스스로도 힘들어 하면서 너무 고성으로 창제하시거나, 평소 목소리는 좋은데 제목만 부르면 거칠고 쉰 목소리(일부 목사들이 내는 특이한 목소리)로 창제하시는 분 등등..
암튼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Nam Myoho Renge Kyo)라고 또박또박 부르고 있는지를 계속 체크하면서 제대로된 창제를 실천해서 자신의 신력과 행력으로 대어본존님의 위대한 불력과 법력의 위력을 체득하시기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아래 유튜브 두편은 우리 일련정종에서 한시간 창제하는 내용인데 창제속도가 다르니 참고하세요.
https://youtu.be/p2F488BV3oA
https://youtu.be/oipw4LLsdSM
저도 창제할 때 정확한 음과 올바른 일념으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Nam Myoho Renge Kyo)를 제대로 부르고 있는지 철저히 점검하면서 창제의 시간을 늘리고 행학의 이도를 제대로 행하면서 용맹정진해나갈 각오입니다.
감사합니다.제목 : 1273년 7월 8일(음력) 사도 유배지에서 도현하신 시도지(맨 처음도현) 대만다라 대어본존님의 상모 제일 위에 도현되어 있는 약인유병(若人有病) 득문시경(得聞是經) 병즉소멸(病卽消滅) 불로불사(不老不死)에 대하여일체중생(一切衆生)·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는 이외(以外)의 유락(遊樂)은 없느니라. 경(經)에 가로되 「중생소유락(衆生所遊樂)」 운운(云云). 이글월·어찌 자수법락(自受法樂)이 아니겠느뇨. 중생(衆生) 중에 귀하(貴下)가 빠지시겠느뇨, 소(所)란 일염부제(一閻浮提)이며 일본국(日本國)은 염부제(閻浮提) 내(內)이니라, 유락(遊樂)이란 우리들의 색심(色心) 의정(依正) 함께 일념삼천(一念三千)·자수용신(自受用身)의 부처가 아니겠느뇨, 법화경(法華經)을 수지(受持)해 받드는 이외(以外)에 유락(遊樂)은 없으며 현세안온(現世安穩)·후생선처(後生善處)란 이것이니라. 다만 세간(世間)의 유난(留難)이 닥치더라도 문제(問題)삼지 말지어다. 현인(賢人)·성인(聖人)도 이 일은 피(避)할 수가 없다 <중략>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시라. 고(苦)는 고(苦)라고 깨닫고 낙(樂)은 낙(樂)이라고 열어서 고락(苦樂) 함께 아울러 생각하여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고 계시라, 이 어찌 자수법락(自受法樂)이 아니겠느뇨, 더욱더 강성(强盛)한 신력(信力)을 다하실지어다, 공공근언(恐恐謹言).
시조깅고전답서(四條金吾殿答書) 미노부에서 55세에 술작 1143쪽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시라. 고(苦)는 고(苦)라고 깨닫고 낙(樂)은 낙(樂)이라고 열어서 고락(苦樂) 함께 아울러 생각하여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고 계시라, 이 어찌 자수법락(自受法樂)이 아니겠느뇨, 더욱더 강성(强盛)한 신력(信力)을 다하실지어다, 공공근언(恐恐謹言).
시조깅고전답서(四條金吾殿答書) 미노부에서 55세에 술작 1143쪽어떠한 병법(兵法)보다도 법화경(法華經)의 병법(兵法)을 쓰실지어다. 「제여원적(諸餘怨敵)·개실최멸(皆悉摧滅)」의 금언(金言)은 헛되지 않으리라. 병법(兵法) 검형(劍形)의 대사(大事)도 이 묘법(妙法)으로부터 나왔느니라, 깊이 신심(信心)을 취(取)하시라, 결코 겁이 많아서는 불가능(不可能)하니라. 공공근언(恐恐謹言).
시조깅고전답서(四條金五殿答書) 미노부에서 58세에 술작 1192~3쪽어찌 기원(祈願)의 성취(成就)가 늦으리요. 대지(大地)를 가리켜서 빗나갈지라도 허공(虛空)을 동여매는 자(者)는 있을지라도·조수(潮水)의 간만(干滿)이 없는 일은 있을지라도, 해는 서(西)쪽에서 돋을지라도,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의 기원(祈願)이 성취(成就)되지 않는 일은 있을 수 없느니라.
<중략> 속히 속히 이생(利生)을 주십사 하고 강성(强盛)히 기원(祈願)한다면 어찌 기원(祈願)이 성취(成就)되지 않으리요.
기도초(祈禱抄) 사도에서 51세에 술작 1351~2쪽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의 본의(本意)는 무상(無上)이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무상중(無上中)의 극무상(極無上)이니라. 이 묘법(妙法)을 가리켜 무상보취(無上寶聚)라고 설(說)하셨느니라, 보취(寶聚)란 삼세(三世)의 제불(諸佛)의 만행만선(萬行萬善)의 제바라밀(諸波羅蜜)의 보(寶)를 모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이 무상보취(無上寶聚)를 신로(辛勞)도 없고 행공(行功)도 없이 일언(一言)으로 수취(受取)하는 신심(信心)이며, 불구자득(不求自得)이란 이것이니라, 이 니치렌(日蓮)은 수제(首題)의 오자(五字)를 그대에게 수여(授與)하니, 법화경(法華經) 수지(受持)의 자(者)를 수호(守護)하는 것은 의심(疑心)할 바 없느니라. 마리지천(摩利支天)도 법화경(法華經)을 가지고 일체중생(一切衆生)을 구제(救濟)하시니, 「임병투자개진열재전(臨兵鬪者皆陣列在前)」의 문(文)도 법화경(法華經)으로부터 나왔느니라. 「약설속간경서(若說俗間經書) 치세어언(治世語言) 자생업등(資生業等) 개순정법(皆順正法)」이라고 함은 이것이니라. 이것을 보더라도 더욱더 강성(强盛)하게 대신력(大信力)을 내시라. 자기 운명(運命)이 다하고 나서, 제천(諸天)의 수호(守護)가 없다고 하여 원망(怨望)하는 일이 없을지어다.
마사카도(將門)는 무장(武將)으로서의 이름을 떨치고 병법(兵法)의 대사(大事)를 궁구(窮究)하였으나, 왕명(王命)에는 패(敗)하였으며, 번쾌(樊噲)·장량(張良)도 소용(所用)이 없었으니, 다만 마음만이 중요(重要)하니라 , 아무리 니치렌(日蓮)이 기원(祈願)을 한다 해도 불신(不信)한다면, 젖은 부싯깃을 대고 부시를 치는 것과 같이 될 것이니, 더욱 면려(勉勵)하여 강성(强盛)하게 신력(信力)을 다 내도록 하시라. 지난 번의 존명(存命)은 불가사의(不可思議)하다고 생각하시라, 어떠한 병법(兵法)보다도 법화경(法華經)의 병법(兵法)을 쓰실지어다. 「제여원적(諸餘怨敵)·개실최멸(皆悉摧滅)」의 금언(金言)은 헛되지 않으리라. 병법(兵法) 검형(劍形)의 대사(大事)도 이 묘법(妙法)으로부터 나왔느니라, 깊이 신심(信心)을 취(取)하시라, 결코 겁이 많아서는 불가능(不可能)하니라. 공공근언(恐恐謹言).
시조깅고전답서(四條金五殿答書) 미노부에서 58세에 술작 1192~3쪽수지(受持)하는 법(法)이 제일(第一)이라면 수지(受持)한 사람도 따라서 제일(第一)이 되느니라.
그렇다면 즉 그 사람을 헐뜯음은 그 법(法)을 헐뜯는 것이며 그 자식(子息)을 천시(賤視)함은 즉(卽) 그 부모(父母)를 천시(賤視)하는 것이로다. 법화경(法華經)의 제목(題目)은 일체경(一切經)의 혼(魂)·일체경(一切經)의 안목(眼目)이니라.
법화경(法華經)은 등(燈)불과 같고 행자(行者)는 기름과 같으며, 단나(檀那)는 기름과 같고 행자(行者)는 등(燈)불과 같다.
법화경(法華經)은 오미(五味)의 주(主)와 같으니라.
법화경(法華經)을 一대(代)의 의(意)라고 함은 제목(題目)이라고 쓰셨느니라. 이것으로써 알지어다, 법화경(法華經)의 제목(題目)은 일체경(一切經)의 혼(魂)·일체경(一切經)의 안목(眼目)이니라.구원실성(久遠實成)의 석존(釋尊)과 개성불도(皆成佛道)의 법화경(法華經)과 우리들 중생(衆生)의 셋은 전(全)혀 차별(差別)이 없다고 깨달아서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바를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의 혈맥(血脈)이라고 하느니라.
이 일은 다만 니치렌(日蓮)의 제자(弟子) 단나(檀那) 등(等)의 간요(肝要)이며, 법화경(法華經)을 가진다고 함은 이것이로다.대저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란 일체중생(一切衆生)의 불성(佛性)이며 불성(佛性)이란 법성(法性)이고 법성(法性)이란 보리(菩提)이니라. 소위(所謂) 석가(釋迦)·다보(多寶)·시방(十方)의 제불(諸佛)·상행(上行)·무변행(無邊行) 등(等)·보현(普賢)·문수(文殊)·사리불(舍利弗)·목련(目連) 등(等), 대범천왕(大梵天王)·석제환인(釋提桓因)·일월(月) 명성(明星) 북두(北斗) 칠성(七星) 이십팔수(二十八宿) 무량(無量)의 제성(諸星)·천중(天衆)·지류(地類) 용신(龍神)·팔부(八部)·인천(人天)·대회(大會)·염마법왕(閻魔法王)·상(上)은 비상(非想)의 구름 위로부터 하(下)는 나락(那落)의 불길 바닥까지 모든 일체중생(一切衆生)이 갖추고 있는 바의 불성(佛性)을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고 이름하느니라. 그러므로 한 번 이 수제(首題)를 봉창(奉唱)하면 일체중생(一切衆生)의 불성(佛性)이 모두 불리어서 여기에 모일 때 자신(自身)의 법성(法性)의 법보응(法報應)의 삼신(三身)이 함께 이끌려서 현출(顯出)하는 것을 성불(成佛)이라고 하느니라. 예(例)컨대 새장 속에 있는 새가 울 때, 하늘을 나는 많은 새가 동시(同時)에 모이는데 이를 보고 새장 속의 새도 나가려고 함과 같으니라.
성우문답초(聖愚問答抄) 가마쿠라에서 44세에 술작 498쪽열반경(涅槃經)의 七에 가로되 「마치 제미(諸味) 중(中)에서 젖이 가장 제일(第一)인 것과 같음」 운운. 유미(乳味)를 다리면 낙미(酪味)가 되고, 낙미(酪味)를 다리면 내지(乃至) 제호미(醍醐味)로 되며, 제호미(醍醐味)는 오미(五味) 중(中)의 제일(第一)이니라. 법문(法門)으로써 오미(五味)에 비유하면 유가(儒家)의 삼천(三千)·외도(外道)의 십팔대경(十八大經)은 중미(衆味)와 같으며, 아함경(阿含經)은 제호미(醍醐味)이니라. 아함경(阿含經)은 유미(乳味)와 같고, 관경(觀經) 등(等)의 일체(一切)의 방등부(方等部)의 경(經)은 낙미(酪味)와 같다. 일체(一切)의 반야경(般若經)은 생소미(生蘇味)·화엄경(華嚴經)은 숙소미(熟蘇味)·무량의경(無量義經)과 법화경(法華經)과 열반경(涅槃經)은 제호(醍醐)와 같으며, 또한 열반경(涅槃經)은 제호(醍醐)와 같고, 법화경(法華經)은 오미(五味)의 주(主)와 같으니라. <중략>
제경(諸經)은 오미(五味)·법화경(法華經)은 오미(五味)의 주(主)라고 하는 법문(法門)은 본문(本門)의 법문(法門)이로다. 이 법문(法門)은 천태(天台)·묘락(妙樂)이 대략 쓰셨지만 분명(分明)하지 않으므로 학자(學者)의 아는 바가 적다. 이 석(釋)에 약논교지(若論敎旨)라고 쓰여져 있음은, 법화경(法華經)의 제목(題目)을 교지(敎旨)라고 쓰셨느니라, 개권(開權)이라고 함은 오자(五字) 중(中)의 화(華)의 일자(一字)이며, 현원(顯遠)이라고 쓰여져 있음은 오자(五字) 중(中)의 연(蓮)의 一자(字)이고, 독득묘명(獨得妙名)이라고 쓰여져 있음은 묘(妙)의 一자(字)이니라. 의재어차(意在於此)라고 쓰여져 있음은, 법화경(法華經)을 一대(代)의 의(意)라고 함은 제목(題目)이라고 쓰셨느니라. 이것으로써 알지어다, 법화경(法華經)의 제목(題目)은 일체경(一切經)의 혼(魂)·일체경(一切經)의 안목(眼目)이니라.
소야전답서(曾谷殿答書) 미노부에서 58세에 술작 1059~1060쪽지금 되돌려서 생각을 바르게 하여 깨달음에 돌아가면 즉신성불(卽身成佛)은 자신(自身) 이외에는 없다고 알았노라. 나의 마음의 거울과 부처의 마음의 거울과는, 오직 일경(一鏡)이라 할지라도 우리들은 이면(裏面)을 향(向)하여 나의 성(性)의 이(理)를 보지 못하므로 무명(無明)이라 하고, 여래(如來)는 표면(表面)을 향(向)하여 나의 성(性)의 이(理)를 보셨느니라. 고(故)로 명(明)과 무명(無明)은 그 체(體)가 오직 一이니라. 거울은 하나의 거울이라 해도 향(向)하는 방법(方法)에 따라 명매(明昧)의 차별(差別)이 있다 . 거울은 이면(裏面)이 있다 해도 표면(表面)의 장애(障碍)로 되지 않으며, 다만 향(向)하는 방법(方法)에 의(依)해서 득실(得失)의 둘이 있으니, 상즉융통(相卽融通)하여 일법(一法)의 이의(二義)니라. 화타(化他)의 법문(法門)은 거울의 이면(裏面)을 향(向)함과 같고, 자행(自行)의 관심(觀心)은 거울의 표면(表面)을 향(向)함과 같으니, 화타(化他)의 때의 거울도 자행(自行)의 때의 거울도 나의 심성(心性)의 거울은 오직 하나로서 다름이 없다. 거울을 즉신(卽身)에 비유(譬喩)하고, 표면(表面)을 향(向)함을 성불(成佛)에 비유(譬喩)하며, 이면(裏面)을 향(向)함을 중생(衆生)에 비유(譬喩)함이라. 거울에 이면(裏面)이 있음을 성악(性惡)을 단절(斷絶)하지 않음에 비유(譬喩)하고, 이면(裏面)을 향(向)할 때·표면(表面)의 덕(德)이 없음을 화타(化他)의 공덕(功德)에 비유(譬喩)하며, 중생(衆生)의 불성(佛性)이 나타나지 않음에 비유(譬喩)하느니라.
삼세제불총감문교상폐립(三世諸佛總勘文敎相廢立) 미노부에서 58세에 술작 570쪽
또 중생(衆生)의 마음이 더러워지면 토(土)도 더러워지고 마음이 깨끗하면 토(土)도 청정(淸淨)하다고 해서 정토(淨土)라 하고 예토(穢土)라 함도 토(土)에 둘의 차이(差異)가 없으며, 오직 우리들의 마음의 선악(善惡)에 의(依)한다고 쓰여 있다. 중생(衆生)이라 함도 부처라 함도 또한 이와 같으니 미혹(迷惑)할 때는 중생(衆生)이라 이름하고 깨달을 때는 부처라 이름했느니라. 비유컨대 암경(闇鏡)도 닦으면 옥(玉)으로 보이는 것과 같다. 지금(只今)도 일념무명(一念無明)의 미심(迷心)은 닦지 않은 거울이며, 이를 닦으면 반드시 법성진여(法性眞如)의 명경(明鏡)이 되느니라 . 깊이 신심(信心)을 일으켜 일야조모(日夜朝暮)로 또한 게으름 없이 닦을지어다. 어떻게 닦는가 하면 오직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함을 이를 닦는다고 하느니라. 대저 묘(妙)란 무슨 뜻이뇨. 오직 나의 일념(一念)의 마음이 불가사의(不可思議)함을 묘(妙)라고 하며 불가사의(不可思議)란 마음도 미치지 못하고 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즉 일어나는 바의 일념(一念)의 마음을 찾아보면 있다고 말하려 하면 색(色)도 질(質)도 없고, 또한 없다고 말하려 하면 갖가지로 마음이 일어나니, 유(有)라고 생각할 수도 없고 무(無)라고 생각할 수도 없느니라. 유무(有無)의 두말도 미치지 못하고 유무(有無)의 두 마음도 미치지 못하며, 유무(有無)가 아니면서도 또한 유무(有無)에 두루 미치어 중도일실(中道一實)의 묘체(妙體)로서 불가사의(不可思議)함을 묘(妙)라고 이름하고, 이 묘(妙)한 마음을 이름하여 법(法)이라고도 하느니라. 이 법문(法門)의 불가사의(不可思議)를 나타냄에 비유(譬喩)를 사법(事法)으로 표현(表現)하여 연화(蓮華)라 이름함이라. 일심(一心)을 묘(妙)라고 안다면 또한 전환(轉換)해서 여심(餘心)도 묘법(妙法)이라고 하는 바를 묘경(妙經)이라고 하느니라. 그러므로 즉 선악(善惡)에 따라서 일어나고 일어나는 바의 염심(念心)의 당체(當體)를 가리켜서 이는 묘법(妙法)의 체(體)라고 설(說)해 말씀하신 경왕(經王)이므로 성불(成佛)의 직도(直道)라고 하느니라. 이 뜻을 깊이 믿고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고 부르면 일생성불(一生成佛)은 결코 의심할 바 없느니라. 그러므로 경문(經文)에는 「나의 멸도(滅度)의 후(後)에 있어서 응당히 이 경(經)을 수지(受持)할지어다·이 사람은 불도(佛道)에 있어서·결정(決定)코 의심(疑心)할 바 없느니라」고 설(說)했느니라. 결코 의심을 하지 말지어다. 황공(惶恐)하오. 일생성불(一生成佛)의 신심(信心)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일생성불초(一生成佛抄) 가마쿠라에서 34세에 술작 384쪽
석가여래(釋迦如來)의 말법(末法)에 세상(世上)이 혼란(混亂)할 때 왕신(王臣)과 만민(萬民)이 마음을 하나로 해서 한 사람의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적시(敵視)할 때·이 행자(行者)가 한발(旱颰) 때의 소수(小水)에 사는 물고기·만인(萬人)에게 에워 싸인 노루와 같이 되었을 때, 한 사람이 있어서·심방(尋訪)하는 사람은 생신(生身)의 교주(敎主) 석존(釋尊)을 일겁(一劫)동안·삼업상응(三業相應)해서 공양(供養)해 드리는 것보다 더욱 공덕(功德)이 뛰어났다는 것이 여래(如來)의 금언(金言)에 분명(分明)하니라. 해는 혁혁(赫赫)하고 달은 명명(明明)하도다·법화경(法華經)의 문자(文字)는 혁혁(赫赫)·명명(明明)하고, 명명(明明)·혁혁(赫赫)하도다. 밝은 거울에 얼굴을 비추고 맑은 물에 달이 비치는 것과 같으니라.
난조전답서(南條殿答書) 미노부에서 55세에 술작 1529쪽
오직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만 봉창(奉唱)하면 멸(滅)하지 않는 죄(罪)가 있겠는가, 오지 않는 복(福)이 있겠는가. 진실(眞實)이고 심심(甚深)하니 이를 신수(信受)할지어다.
성우문답초(聖愚問答抄) 가마쿠라에서 44세에 술작 497쪽
말법(末法)에 들어와서 법화경(法華經)을 수지(受持)하는 남녀(男女)의 모습 이외(以外)에 보탑(寶塔)은 없느니라. 만약 그렇다면 귀천상하(貴賤上下)를 가리지 않고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는 자신(自身)이 보탑(寶塔)이고 자신(自身)이 또한 다보여래(多寶如來)이니라.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 이외(以外)에 보탑(寶塔)은 없으며, 법화경(法華經)의 제목(題目)이 보탑(寶塔)이고 보탑(寶塔)이 또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지금 아부쓰상인(阿佛上人) 의 일신(一身)은 지수화풍공(地水火風空)의 오대(五大)이며, 이 오대(五大)는 제목(題目)의 오자(五字)이니라. 그러므로 아부쓰보(阿佛房)가 바로 보탑(寶塔)이고 보탑(寶塔)이 바로 아부쓰보(阿佛房)이며 이것 이외(以外)의 재각(才覺)은 무익(無益)하니라.
아부쓰보어서(阿佛房御書) 사도에서 51세에 술작 1304쪽중생(衆生)의 마음이 더러워지면 토(土)도 더러워지고 마음이 깨끗하면 토(土)도 청정(淸淨)하다고 해서 정토(淨土)라 하고 예토(穢土)라 함도 토(土)에 둘의 차이(差異)가 없으며, 오직 우리들의 마음의 선악(善惡)에 의(依)한다고 쓰여 있다. 중생(衆生)이라 함도 부처라 함도 또한 이와 같으니 미혹(迷惑)할 때는 중생(衆生)이라 이름하고 깨달을 때는 부처라 이름했느니라. 비유컨대 암경(闇鏡)도 닦으면 옥(玉)으로 보이는 것과 같다. 지금(只今)도 일념무명(一念無明)의 미심(迷心)은 닦지 않은 거울이며, 이를 닦으면 반드시 법성진여(法性眞如)의 명경(明鏡)이 되느니라 . 깊이 신심(信心)을 일으켜 일야조모(日夜朝暮)로 또한 게으름 없이 닦을지어다. 어떻게 닦는가 하면 오직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함을 이를 닦는다고 하느니라.니치렌(日蓮)의 자비(慈悲)가 광대(曠大)하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만년외(萬年外)·미래(未來)까지도 유포(流布)하리라. 일본국(日本國)의 일체중생(一切衆生)의 맹목(盲目)을 여는 공덕(功德)이 있으며, 무간지옥(無間地獄)의 길을 막았느니라. 이 공덕(功德)은 전교(傳敎)·천태(天台)보다도 초과(超過)하고 용수(龍樹)·가섭(迦葉)보다도 뛰어났느니라. 극락백년(極樂百年)의 수행(修行)은 예토(穢土)의 일일(一日)의 공덕(功德)에 미치지 못하고, 정상이천년(正像二千年)의 홍통(弘通)은 말법(末法)의 일시(一時)만 못하니라. 이는 오로지 니치렌(日蓮)의 지혜(智慧)가 뛰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때가 그렇게 시킬 뿐이로다. 봄은 꽃이 피고 가을은 과실(菓實)을 맺고,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추운데, 때가 그렇게 만드는 것이 아니겠느뇨.
「 나의 멸도후(滅度後)·후(後)의 오백세중(五百歲中)에 광선유포(廣宣流布)하여 염부제(閻浮提)에 있어서 단절(斷切)하여, 악마(惡魔)·마민(魔民) 여러 천룡(天龍)·야차(夜叉)·구반다(鳩槃茶) 등(等)에게 그 기회를 득(得)하게 함이 없으리라 」 등(等)운운(云云).
보은초(報恩抄) 미노부에서 55세에 술작 329쪽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는 신심(信心)에 퇴전(退轉)이 없고 몸에 사친(詐親) 없이·일체(一切) 법화경(法華經)에 그 몸을 맡기고 금언(金言)과 같이 수행(修行)하면 틀림없이 후생(後生)은 말할 것도 없고, 금생(今生)도 식재연명(息災延命)하여 승묘(勝妙)의 대과보(大果報)를 얻어 광선유포(廣宣流布)의 대원(大願)마저도 성취(成就)할 것이니라 .
기도경송장(祈禱經送狀) 사도에서 52세에 술작 1357쪽
마침내 법화경(法華經)의 광선유포(廣宣流布)가 나타나서 천하(天下) 일동(一同)으로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로 될 것이니 「수지도량(隨至道場) 환욕친근(還欲親近)」이것이니라.
어의구전(御義口傳) 미노부에서 57세에 술작 73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