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그러나 시대 상황은 그런 슬픔과 외로움, 그리고 순연한 희생의 각오를 다지고 있기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윤동주는 동경과 경도의 대학으로 유학길을 떠납니다. 향학에의 의욕은 끝이 없는 것이고요. 그런데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장애가 가로놓여 있었습니다. 일본으로 가려면 배를 타야 하는데, 도항하기 위해서는 도항 증명서가 필요합니다. 당시 조선 이름으로는 도항 증명서가 발급되지 않았습니다. 창씨개명을 강요당한 것이지요. 일본행을 포기해야 하느냐 어쩌느냐의 고민 속에서, 그는 창씨개명을 미루고 미루던 그는 '참회록'을 씁니다.
'참회록'에서 그는, 자신의 처지를 망한 "왕조의 유물"처럼 여깁니다. 나라가 망한 다음에, 개인의 존명도 보존할 수 없게 된 처지, 그러면서 유학을 선택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만 24년 1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고 자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탄으로 그치고 살아갈 순 없는 일, 그 어느 즐거운 날을 고대하면서,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든가"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그 어느 즐거운 날"을 꿈꾸고 있습니다. 그냥 꿈꾸는 게 아니라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는 일상적 노력의 다짐과 함께 말입니다.
'참회록'의 초고를 보면, 그의 번민과 관심, 의지를 역력히 볼 수 있습니다. 아래 낙서가 어지럽게 널려 있는데, 시인의 내면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지요. "시인의 생"이란 말도 있고, "생존/생활"이란 말도 있습니다. 산다는 게 무엇이냐, 시를 쓴다는 게 무엇이냐는 실존적 번민에 잠못 이루는 정경이 선합니다. 그중 결정적인 것은 "도항/도항 증명"이란 말입니다. '참회록'의 직접적인 동기가 도항과 창씨개명을 둘러싼 고민에서 비롯됨을 시사해 주는 것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