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는 상갓집에 가지 않는다
수암 박경열
시골 이장님의 방송
오늘 누가 돌아가시었습니다
이틀 후가 출상이라니 가보실 분들은
어디 병원으로 가보세요.
한다.
후배가 지병으로 그토록 고생하더니
모친께서 늘 저놈이 나 먼저 죽어야
할 텐데 걱정이다. 늘 말씀 하시더니
팔순 다된 노모의 심정을 생각하니 가슴이
쑤셔옵니다
그런 후배가 세상을 하직하였으니
마음은 아프지만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고민해 보았는데 답은 하나입니다
당연히 문상하여 잔을 올리고
후배야!
너는 효자다
참깨가 익어가면서
700평 넓은 밭의 참깨를 베고 마르고
비 오면 비설거지를 하면서 날 좋아지면
다시 널기를 반복하며 새벽 헤드라이트를
켜고 또 밤 되기 전까지 고된 행군을 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비둘기이지요
50여 마리나 되는 비둘기가 매일 와서 발로
핥고 입으로 쪼며 배불리 먹는 걸 보니
참으로 답답합니다
옆의 밭들도 똑같고요
할 수 없이 검정 망을 비싸게 지불하여
500m를 구입했죠
그래도 다 덮을 수 없어 빈틈만 보이면
수십 마리의 만찬장이 되어 버립니다
꽹과리를 두들겨도 잠시 떴다가 비웃고 다시
자리에 앉아 버리는 두꺼운 민낯에
혀를 내두를 뿐이죠
그런데 갑자기 난리가 났습니다
피곤하여 늦잠을 자고 7:00에 도착하였더니 비둘기가 한 마리도 안 보이는 거예요
이런 경우를 해가 서쪽에서 뜬다고 하는가?
그런데 깨를 털려고 검정 망을 벗기는 순간
뭐가 툭하고 떨어지는 겁니다
유심히 보니 비둘기 사체더라고요
평소 곤충도 좋아하여 손에 올려 보기도
하고 새들이 우연히 잡히면 한참 장난을 치다가 놓아주던 성격이라 비둘기를 유심히
관찰하였더니 비둘기 배가 터진 겁니다
너무 과식한 거지요
하루 종일 사람이 있든 말든 퍼먹더니 사달이 난 거지요
동부 육군에 살면서 느낀 건데 논이 있는
지역 비둘기는 식사 패턴이 일정합니다
동트면 논으로 나가 양을 채우면 해 뜨면
보금자리 대나무 숲으로 돌아갑니다
오후에도 해지기 전 두세 시간이 먹이
활동 시간입니다
그건 철칙이더라고요
반면 밭이 주로인 여수 율촌면 지역은
참깨 들깨 콩 옥수수 돈부와 녹두 등 먹을
거리가 너무 다양합니다
이 지역 비둘기는 하루 종일 부리를 쉬지
않습니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논 주변 비둘기는 양심과 신사적이지만
밭 지역에 사는 비둘기는 돼지 아니면
배가 소만 한 것 같아요
욕심 많은 돼지 같지요
많이 놀랐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한점은 동료 비둘기가 죽은 후의 행동입니다
이틀 동안 비둘기 한 마리를 볼 수가 없어요
와!
사람과 비둘기가 이렇게 다른가?
마을에 사는 비둘기는 암수 두 마리가
평화롭고 행복하게 먹이 활동을 합니다
구역이 있어 침범도 하지 않고 구역
나눠서 먹이 활동을 하거든요
무척 평화롭게 보여 깨를 말려도 얼마나
주워 먹겠나 싶어 놔둡니다
그런데 단체 비둘기는 아마도 지휘자가
있는 듯 해요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데 서너 마리가
먼저 정탐해 보고 이상 없으면 우르르
몰려옵니다
그런 무법자들이 친 동료 죽음을 보고
이런 행동을 하다니요
모두 수확한 깨를 일부러 검정망을 안 씌우고 널어놓아 보았습니다
3일째도 비둘기는 한 마리도 눈에 띄지
않습니다
대단한 통솔력이다
IMF 때 금모으기 보다 대단하다
태안 기름 유출 때 보다 대단하다
물론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했지만
동료 한 마리의 죽음 앞에 이토록
일사불란할 수 있다니 비둘기 지도자에게
왕관을 씌워 주고 싶네요.
4일째 되는 날 드디어 비둘기가 나타났습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참깨는 작황이 좋아 24 말을 수확하였고
당근 마켓에서 반나절 만에 동이 났습니다.
첫댓글 올려주신 옥고에 즐감하고 갑니다
편하신 시간이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