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시작되면 나는 어린 모들이 자라는 논의 풍경을 살필 수 있어 설렌다. 마을 주변에는 모내기를 준비하는 논들이 넓게 펼쳐진다. 말랑말랑하게 다듬어 놓은 논바닥에는 물이 고이고, 잘 버무려진 흙 위로 며칠 지나지 않아 어린 모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심어진다. 대대로 농부의 딸로 살아온 나는 모심기를 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일로 여기셨던 부모님의 영향 때문인지, 모 포기 하나하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각별하다.
혼자 독립되어 자신의 터전에 심어진 어린 모는 갓난아이처럼 작은 바람에도 몸을 가누지 못하고 가늘게 흔들린다. 그 모습이 어찌나 앙증스러운지 눈을 떼지 못하고 바라보기를 즐겼다.
물속에 잠긴 모는 헤엄치듯 바둥거리며 여린 몸을 지탱한다. 혼자 견디는 시기가 지나면 뿌리를 내리고 땅심을 얻는다. 그 힘으로 포기를 키우고, 제법 스스로 버틸 만큼 자라면 바람과 맞서는 힘도 커진다. 바람이 벼 사이를 뚫고 지나가도 몸을 단단히 버티고 있다. 이 시기를 바라보며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었을까, 씩씩하게 자라는 모습에 격려의 눈길을 보낸다.
나는 넓은 길을 두고도 벼들이 자라는 논길로 한사코 다니기를 즐겼다. 벼들과 이야기라도 나누듯 눈길을 두고 걷다가 신발이 미끄러져 논으로 들어가 버린 적도 있다. 신발 한 짝이 진흙탕을 뒤집어쓴 날도 있었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벼와 엉킨 일이어서 웃음이 났다.
어느 시기가 되면 벼가 튼튼하게 자랄 준비를 해야 한다며 논의 물을 말린다. 벼를 적절하게 자라게 했던 물은 물꼬를 통해 빠져나간다. 마른 논의 벼들은 씩씩하게 몸을 키우며 나름의 힘을 길러 단단한 모습으로 성장한다. 제법 의젓한 소년을 마주한 기분이다.
벼 포기가 강한 바람에도 견딜 만큼 자라면 다시 논에 물을 넣는다. 물이 논으로 스며드는 모습이 마치 벼의 목을 축여주는 것 같다.
농부는 수시로 벼들을 살피며 물을 가득 채웠다가 다시 빼기를 반복한다. 그동안 푸른 벼에는 윤기가 잘잘 흐른다. 그 모습이 결혼 적령기를 앞둔 총각 같다. 늘 지켜보아 온 나는 개화기를 눈앞에 두고 있음을 헤아린다.
그 무렵 논길을 걸으며 벼들을 바라보면 푸른 기운이 온몸으로 전해지는 듯하다. 푸른빛을 가득 머금은 벼는 작은 꽃을 피우고 알곡을 맺는다. 떡가루처럼 작고 미미해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보인다. 들판은 시샘하듯 빼곡하게 벼꽃을 피워 올리고, 벼들은 작은 꽃을 달고 고개를 내민다. 가지런히 줄을 맞춰 가득 들어찬 모습은 마치 군대의 훈련 생도들 같다.
살이 타들어 갈 듯 뜨거운 햇볕 아래서 벼들은 기름기가 차오른 낱알이 되어간다. 덥다고 요란을 떠는 어린아이들에게 어른들은 이런 날이라야 벼가 제대로 익어가는 법이라고 했다. 부모님은 벼의 결실이 우리의 생명줄을 이어주는 일이니 힘들어도 사람들이 참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사람의 더위보다 벼가 여물어 가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듯했다.
어느 해는 이상기후로 시원하고 구름 낀 날들이 이어졌다. 벼가 제대로 생육하지 못해 수확량이 미약했다. 덜 여문 벼에서 나온 쌀은 밥의 찰기가 떨어져 제대로 된 밥을 먹지 못한 때도 있었다. 그때 나는 햇볕과 바람, 비와 물이 모두 벼에는 생명을 키우는 힘이라는 것을 새삼 알았다.
가을이 접어들면 들판의 노랗게 익어가는 벼들은 감쪽같이 푸른 옷을 벗어버린다. 벼들이 익어가는 들판에는 제법 찬 기운을 머금은 바람이 스친다. 풀숲에 가면 숲의 냄새가 나듯 벼가 익어가는 냄새도 있다. 그 냄새는 풀 냄새처럼 코끝을 간질이며 포근하게 다가온다.
노랗게 익어가는 황금 들판에는 새들이 떼를 지어 날아든다. 한꺼번에 몰려다니며 한참을 눌러앉아 낟알을 쪼아대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입으로 새를 쫓는 소리를 낸다. 조잘거리며 푸드덕 날아가는 녀석들을 보며, 한 집 벼만 많이 먹으면 되겠느냐고 타박하면서도 속으로는 새들의 편을 들어준다.
가을바람이 싸늘해질 무렵이면 어느새 황금 들판은 벼들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잘 여문 벼들은 농부의 손에 거두어지고, 텅 비어버린 들판을 바람이 씽 하고 훑고 지나간다.
벼살이도 사람살이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강보에 싸인 아기일 때는 눈을 뜨는 것조차 힘겨워한다. 부모의 손길에서 자라가는 모습을 온 가족이 지켜보며 감격하고 환호한다. 비척이며 걸음마를 떼고, 스스로 가방을 메고 학교에 다니는 과정은 벼가 땅심을 얻고 홀로 서는 시기와 닮았다.
흔들거리는 사춘기를 지나 일정한 교육과정을 거치며 자신의 자아를 찾아가는 성장기도 벼가 바람을 견디며 제 몸을 키우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 부모는 아이의 표정 하나에도 마음이 두근거렸다. 한편으로는 잘 자라는 것 같아 대견하다가도 자녀가 좌절하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미어졌다.
그 시절이 언제였던가 싶게 자녀들은 어느새 자라 자신들의 둥지를 찾아 떠났다.
나는 지극한 애정으로 지켜보았던 벼의 수확이 끝난 빈 들판에 서 있다.
그 무성했던 들판의 기운이 허전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자녀들의 성장에 매달려 정신없이 살았다. 언젠가 맞닥뜨릴 빈 들판의 허전함에 대해서는 미처 대비할 틈이 없었다.
세월이 가면 존재하는 것들은 이렇게 제 갈 길을 가는 모양이다. 나 역시 그렇게 부모 곁을 떠나왔겠구나. 흐르는 물처럼 서로의 길을 비켜 가며 살아가는 것이다.
자녀들에게 불편한 부모가 되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인터넷에 올라온 ‘자녀들이 오지 않는 이유’라든가 ‘며느리에게 하지 말아야 할 것들’ 같은 글을 나는 유심히 읽는다.
그러겠네. 조심해야 하겠네.
자녀들이 오지 않는 것마저 부모의 잘못 때문이라는 글을 읽으며 가만히 마음을 정리해 본다.
지금 빈자리의 허전함도 괜찮다. 내 아이들이 각자의 가정을 이루고 엄마 아빠가 되어 애틋하게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지. 더 이상 바라는 것은 욕심이라고 나를 다독인다.
이제는 평온한 마음으로 지켜보아야겠다. 자녀들이 저마다의 가정에서 자기 몫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벼가 익으면 제 논을 떠나 농부의 품으로 돌아가듯, 자녀들도 때가 되면 부모의 품을 떠나 자기 삶의 자리로 가는 것이리라.
수확이 끝난 빈 들판에도 다시 봄은 올 것이다.
나도 이제 빈 들판을 바라보며 떠나간 것들을 서운해하기보다, 잘 여물어 제 몫의 삶을 살아가는 것에 감사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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