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람나무 발표와 서울 중앙전도관(이만제단)
단비: 수정아, 천부교 역사를 배우면서 궁금한게 생겼는데 왜 하나님께서는 처음 이슬성신을 내리실 때부터 감람나무이심을 발표하지 않은거야?
감람나무이심을 발표
내가 처음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고 향기를 내리기 시작했을 때부터감람나무라고 했으면 감람나무의 증거는 서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100만에 이르는 사람들이 눈으로 이슬 같은
은혜를 보고 코로 향취를 맡은 다음에,교권주의자들과 목사들이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고 향기를 내린다 해서 나를 이단이라고 하여 증명까지 해 주었으므로, 내가 이슬 같은 은혜와
향기를 내린다는 것은 온 세상이 부인하지 못할 사실로 뚜렷이 드러난 것이다.
경전 제2부 2장 39절~40절
단비: 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도록 100만의 수가 이슬성신 은혜를 체험한 후 1956년부터 동방의 의인과 감람나무임을 증거하시기 시작한 것이구나.
수정: 기성교회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단이라고 규정하고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했어.
목사: 이슬같은 은혜를 내리고 향기를 내린다는 것은 성경에 없으니... 전도관은 이단이다.
단비: 그것이야말로 성경에 있는 감람나무의 증거잖아! 오히려 그들이 하나님을 증겅해 준 셈이야.
수정: 기성교회의 반발에도 성신의 역사는 더욱 놀라운 속도로 퍼져 가. 원효로 전도관을 개관한지 몇 개월이 안 되어
전국적으로 수 백 곳의 전도관이 세워지고 교인들은 수십 만 명으로 늘어났어. 원효로 전도관은 더 이상 밀려드는 신자들은 수용할 수 없었어. 그래서 1956년 7월부터 서울 청암동에 천부교
최초의 대형 교회를 짓기 시작해.
서울 중앙전도관(이만제단) 건설
[하나님께서는 잠시도 쉴 사이 없이 계속 지방순회를 하시고
토요일에 돌아오시면 먼저 이만제단 공사 현장에 오셔서
만면에 미소를 띈 인자한 모습으로 일일이 안수와 안찰로 한없는 은혜를 부어주심으로 더욱 열심히 봉사하는 수가 날이
갈수록 늘었고 건설 현장에서는 은혜와 향취 속에 찬송 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손선보 승사, 기장신앙촌
수정: 또 이만제단 건설 기간 중인 1956년 10월 16일부터
이틀간 서울 운동장에서 제 1회 전국 전도관 체육대회가 개최되기도 했어.
윤치영 씨 등 정부 고관들을 비롯하여 전국에서 수 만 명 교인들이 참석하는 대성황이었지.
드디어 10개월의 공사 끝에 1957년 4월 25일 서울 중앙 전도관이 개관돼.
단비: 우와!! 멋지당
그런데 왜 서울 중앙전도관을 이만제단이라고 부른거야?
수정: 2만 명이 예배드릴 수 있는 규모라 하여 이만제단이라고
불린거야.
단비: 2... 2만명??
수정: 외부의 어떤 도움도 없이 착공한지 1년도 채 안 되어서 완공한 서울중앙전도관은 교회 건물로는 물론이고 일반
건축물로서도 당시 국내 최대 규모였대.
첫댓글 아히ㅣ
잘보고갑니다
재밌었어요
평안한 밤 되세요 감사합니다
잘보고갑니다
잘보고갑니다~
잘 보고 가요
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