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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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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당 조정육의 그림과 인생 스크랩 낡은 집에 담긴 그리운 기억,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이었나?-오래된 집 그리는 문영미
무진당 추천 0 조회 232 11.11.03 18:16 댓글 8
게시글 본문내용

 

 

14.낡은 집에 담긴 그리운 기억,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이었나?

                                                                                  - ‘오래된 집’ 그리는 문영미

 

 

4년 전 경남 합천의 해인사에 갔을 때였습니다. 절 입구에서 할머니 한 분이 다가오더니 손을 잡아끕니다. 백반 잘하는 전문 식당으로 안내하겠다고 했습니다. 8월 땡볕이 이글거리는 한낮이라 만사가 귀찮았지만, 팔 순 가까운 할머니가 겨우 두 사람에게 백반을 팔아보겠다고 땀을 뻘뻘 흘리며 앞장서는데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도로를 건너고 비탈길을 돌아 온 몸이 땀에 젖을 때까지 따라가기를 20여분. 도착한 집은 전문식당이 아니라 민박집이었습니다.

 

한옥집을 개조하여 천막으로 차양을 댄 민박집은 식당을 겸하고 있었습니다. 첫눈에 봐도 여고시절 수학여행 갔을 때 숙박했던 여관처럼 낡고 초라했습니다. 안내를 마친 할머니는 왔던 길을 다시 부지런히 내려갔습니다. 점심 시간이 끝나기 전에 빨리 손님 한 명이라도 더 끌고 와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할머니는 평생 고생해서 모은 돈으로 그 집을 인수했다고 합니다. 세를 얻어 민박집을 하면서 자식들 넷을 학교 보내느라 허리가 휘도록 일한 결과였습니다. 이제 자식들 다 출가시키고 가게까지 인수했으니 늘그막에는 돈 걱정안하고 살아보나 했는데 의외의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해인사로 들어가는 길이 할머니네 가게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아래쪽으로 나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일행이 20여분이나 비탈길을 걸어 올라온 사연이었습니다. 새로 뚫린 길 앞의 가게에는 호재였으나 길이 없어져버린 골짜기 쪽의 가게에는 악재였습니다. 생계를 위협할만큼 치명적인 악재였습니다. 더구나 할머니처럼 대출을 받아 가게를 인수한 사람에게는 이자도 감당하기 힘든 절망이었습니다.

 

우리가 그 날 첫손님인 듯 넓은 식당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밥을 다 먹을 때까지 다음 손님은 오지 않았습니다. 음식은 맛이 없었고 선풍기에서 나오는 바람은 뜨거웠습니다. 밥을 날라다 준 아낙네는 우리 일행이 일어설 때까지 우울한 표정으로 카운터에 앉아 있었습니다. 오래지 않아 이 집도 사라지겠구나 싶었는데 2년 후에 다시 가 보니 민박집 대신 깨끗한 현대식 모텔이 들어서 있었습니다.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 그 할머니는 어떻게 되었을까 알 길이 없었습니다. 무심한 여행객에게는 그저 낡은 집이 헐리고 새 건물이 들어선 것에 불과한 현상이겠지만 그 곳에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어떤 의미였을 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족보를 알 수 없는 집

 

문영미, <신영민박>, Oil on canvas, 53x45.5cm, 2011

 

 

문영미의 <신영민박>을 보는 순간 4년 전의 해인사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림 속의 민박집은 필요에 의해 방을 늘리고 슬레이트 지붕을 얹어 원래의 집 모습을 완전히 상실했습니다. 처음 집을 지을 때의 설계도는 그 집에 사는 사람에 의해 멋대로 변경되어 전혀 다른 집이 되었습니다. 시멘트로 단장한 1층 외관이 민박집을 하기에는 너무 초라해 보였을까요? ‘신영민박’이라 적힌 2층 쪽방 뒤에는 지붕을 비스듬히 얹은 두 개의 방을 좌우 대칭으로 배치하였습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산뜻함과 안정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도록 신경 좀 쓴 구조입니다. 그렇다 하여 이 집에서 풍겨 나오는 생래적인 촌스러움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족보를 알 수 없는 설계도 속에 싸구려 건축 자재가 합해진 국적 불명의 양옥집은 아무리 곱게 봐도 아마추어가 대충 지은 날림주택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고색창연한 글씨체는 어떤가요? 시골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이런 자유분방한 집 앞에서 건축의 3요소인 구조, 기능, 미가 적절히 조화되었는가를 묻는 것은 세상 물정 모르는 학삐리의 현학적인 허세입니다. 예술성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는 집입니다. 서울을 벗어나 조금만 외곽으로 빠지면 이렇게 페인트가 잔뜩 묻은 개축된 민박집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문 닫은 가게, Oil on canvas, 91x116.8cm, 2011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집

꼭 이런 집이었습니다. 아니, 집이라기보다는 가게라고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입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엄마 따라 서울에 가게 되었는데 큰집 오빠 집을 들렀습니다. 그 오빠가 사는 집이 꼭 <문 닫은 가게> 같았습니다. 전라도 광주에서 서울까지 무슨 일 때문에 올라가게 되었는 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빠 집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방 한 칸에 구멍 가게가 딸린 오빠 집은 상업과 주거가 한 곳에서 이루어지는 집이었습니다.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는 시골 사람이 서울에 올라와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생활방편이 이런 식의 집이었을 것입니다. 신길동 허름한 주택가 골목을 한참을 들어간 후에야 도착한 그 가게 집에는 다섯 식구가 살고 있었습니다. 살림살이가 얼마나 힘들었던지 올케 언니 얼굴에는 기미가 잔뜩 뒤덮여 있었습니다. 그런 좁은 집에 친정식구도 아닌 시작은어머니와 혹까지 붙어 왔는데 올케는 우리 엄마와 저를 진심으로 반겼습니다. 그날 밤, 장정 두 사람이 눕기에도 좁은 방에서 일곱 사람이 잠을 잤습니다. 전혀 좁은 줄 모르고 불편함 없이 달콤하게 잤습니다. 아침에는 올케언니가 끓여진 동태찌개로 밥을 먹고 든든한 마음으로 기차를 타고 광주로 내려갔습니다. 벌써 30년도 넘은 오래전의 일입니다. 그 때 따뜻한 추억을 준 그 가겟집은 지금 어떻게 됐을까요? 아마 깨끗이 닦여진 후 아파트가 들어서 있을 것입니다. 기적처럼 지금까지 남아 있다면 도로변에 새로 들어선 깔끔한 대형마트에 밀려 그림에서처럼 셔터문을 내리고 문을 닫았을 것입니다.

 

삼청동, Oil on canvas, 53x45.5cm, 2011.

 

낡은 집에 담아야 할 것은

전후 개발시대에 마구잡이로 지어진 집들은 남루하고 초라하여 전혀 아름답지 않았습니다. 춥고 소음도 심하고 안정성에도 문제가 많았습니다. 생활수준이 높아지자 가장 먼저 집이 변했습니다. ‘못사는 사람들의 집들’은 드러나서는 안 될 치부처럼 폐기처분되고 재개발이 진행되었습니다. 치부가 사라진 자리에는 싸구려 집 대신 반듯반듯하고 세련된 아파트가 들어섰습니다. ‘집장수’가 순전히 돈을 벌기 위해 지은 집 대신 ‘집주인’의 취향이 반영된 예술적인 집들도 세워졌습니다. 건축가의 혼이 담긴 집 앞에서 무명 인부가 지은 낡은 집은 어서 빨리 사라져야 할 부끄러움이었습니다.

 

그런데 낡은 집이 사라지면서 집과 함께 축적된 중첩된 시간도 사라졌습니다.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따라 우리 할머니 세대부터 전해 내려 오던 이야기도 전설 속에 묻혔습니다. 좁은 집에서 변변치 않은 수입으로 자식들을 기르고 입히고 교육시켰던 가장의 노고와 역사도 흔적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문영미는 재개발과 도시화 과정에서 버려지고 용도 변경된 낡은 집을 그리는 작가입니다. 서민 냄새가 풀풀 풍겨 돈이 생기면 미련 없이 버리고 떠나고 싶은 오래된 집을 그립니다. 버리고 떠난 사람이나 남겨진 사람이나 어느 누구도 귀하게 생각하지 않는 그런 ‘값 없는 집’을 문영미는 오래도록 응시하며 붓을 듭니다. 그러면서 묻습니다. 정말 좋은 집은 어떤 집인가? 정말 행복한 집은 어떤 집인가, 하고. 작가는 집을 그리면서 건축적인 구조나 경제적인 가치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보다는 집이라는 겉모습 속에 담긴 내용이 무엇인 지 묻습니다. 화려하고 고급스런 집이든, 촌스럽고 허름한 집이든 외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집 속에 사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좁은 방 안에서 일곱 명이 잠을 자면서도 웃을 수 있었던 시간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오직 먹고 사는 것만이 중요했던 세대.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몸을 사리지 않고 일하느라 예술 같은 집은 꿈조차 꿀 수 없었던 부모님 세대. 자신의 노후 같은 것은 그림조차 그릴 수 없었던 부모님 세대가 낡은 집에서 키워주었던 꿈과 희망과 따뜻함을 기억하자는 것입니다.

 

<삼청동>은 우리 부모님 세대가 격렬한 삶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 가정을 지키고 적응해왔는 지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버리고 싶어도 버려서는 안될 사람이 있습니다. 보고 싶어도 만나서는 안 될 사람이 있습니다. 집도 마찬가지입니다. 낡았지만 떠날 수 없는 집. 불편하지만 벗어날 수 없는 집이 있습니다. <삼청동>은 그런 전형적인 예를 보여주는 집입니다. 팔작지붕은 분명 한옥인데 몸체는 완전히 개조되었습니다. 사는 사람의 필요에 따라 벽돌을 쌓고 타일을 올리고 창문에 시트지를 붙이면서 개조된 집은 한옥반 양옥반으로 애매해져버렸습니다. 과장적으로 올린 처마선을 따라 비받이가 벽을 가로 지릅니다. 비받이 안쪽에 부착된 도시가스 배관과 전기계량기와 수도계량기는 이 낡은 집에서 겪어야 했던 변화를 보여줍니다.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장작에 불을 붙여 가마솥에 밥을 해 먹던 집이었습니다. 그런 집에 전기가 들어오고 가스가 설치되고 수돗물이 쏟아졌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뒤엉켜 있는 이 집은, 힘들었지만 훌륭하게 변화의 시간을 수용한 우리 부모님의 자화상에 다름 아닙니다. 떠날 수 없는 사람이 자신의 삶터를 어떻게 지켜왔는 지를 보여주는 서사시입니다. 그러므로 문영미는 낡은 집을 그리는 작가가 아닙니다. 그 집에 담긴 이야기를 그리는 작가입니다.

 

 

사람의 삶을 보듬는 집, 우리 집.

누구나 사람들은 멋진 집에서 살기를 꿈꿉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살기를 희망합니다. 그러나 꿈은 쉽게 현실로 치환되지 않습니다. 전원에 내려가 텃밭이 달린 황토집에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요? 통유리 밖으로 펼쳐지는 앞산의 사계절을 보면서 살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마음은 언제나 그 곳에 가 있어도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쉽게 결단을 내릴 수 없는 것이 우리들의 삶입니다. 꿈은 그림 같은 집이지만 현실은 허름한 집입니다. 답답한 아파트입니다. 그래도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공간이야말로 귀하고 소중한 곳입니다. 문영미의 낡은 집이 들려주는 이야기였습니다.(/조정육)

 

*이 글은 『주간조선』2179호(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002179100031&ctcd=C09)에 실린 글을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V.A. - 바위고개 | 음악을 들으려면 원본보기를 클릭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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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11.04 00:40

    첫댓글 문영미 그림 속 집들에 어둠이 내리면(^^), 황인숙 시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야옹이들이
    어슬렁 거리며 나타날 것 같아요! 식탁이 아닌 둥그런 상에서 대가족이 옹기 종기 모여 앉아
    밥을 맛있게 먹고 있는 모습을 그려봅니다. 소중하고 애틋한 숨결이 서려 있을 오래된 집의 서정...
    이야기가 담긴 집 그림을 감상하며, 오늘 오후 산책길에 만난 어르신들의 주름진 얼굴에
    피어오르던 웃음처럼 따뜻하고 소중한 추억에 잠겨봅니다.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 작성자 11.11.04 06:47

    오래 전부터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감동을 많이 받았어요.
    문영미 작가 작품 속에 워낙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 작가론을 쓰라면 100장도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도 글을 쓰면서 옛날 생각이 참 많이 났던 그림이었어요.
    본각장님도 추억 많이 생각나시지요?

  • 11.11.04 06:28

    60년대 십구공탄 한장 찍어 올려 가는 성북동 고갯마루의 루삥을 덮은 천막촌에서도 미래를 향한 희망이 숨쉬고 있었지요 70년대 들어서니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모두 다 헐려서 나가고 지금은 서울에서 유명한 부자들의 집단 거주지처럼 변했고요 ㅎㅎ 추억할수 있는 과거가 있음은 즐거운 일입니다 무진당님의 좋은 글과 그림과 작가의 이야기 고맙습니다()()()

  • 작성자 11.11.04 06:48

    행복은 화려한 집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어요. 글 쓰면서 옛 생각에 잠기고 또 글 쓰다 옛생각하고...글쓰는 시간보다 생각에 잠긴 시간이 더 많은 글이었어요.참 좋은 작품입니다.

  • 11.11.04 08:11

    30년전 시집와 살던 용산철도관사 생각이 납니다.ㅎㅎ세월이 지나며 헐려 번듯한 아파트가 자리를 대신하고 있지요.
    대문앞에 삼삼오오모여 이야기나누며 웃을수 있던 그 시절이 그리운 아침입니다.정겨운그림에 머리가 가슴이 끄덕여집니다.()

  • 작성자 11.11.04 08:58

    옛날 생각 해 보시라고 그 구실로 글을 한 번 올려봤습니다. ㅎㅎㅎ 옛날 떠올리시면서 행복하세요~

  • 그동안 무심함으로 그져 스쳐 지나던 길가 민박집..

    오늘은 해남 대흥사 단풍 맞으러 가는 길에 절 주변 <민박>이라는 팻말이 보이는데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겠지만 무진당님 글 이후 오늘은 <민박>이라는 팻말이 눈에 들어옵니다 ㅎㅎ

  • 작성자 11.11.05 07:21

    맞아요. 그림을 보고 나면 그저 무심한 풍경들이 새삼스럽게 눈에 들어오지요.
    작품에서 받는 감동이 아마 그럴 거예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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