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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사를 꿈꾸며
이 홍사
줄 놈은 방법을 찾고 안 줄 놈은 핑계를 찾는다.
먼저 방법을 찾는 놈과 핑계를 찾는 놈을 구별하는 안목이 중요한 것이다.
번개의 말의 요지는 그것이었다.
어떻게 물건을 구하느냐의 내 질문의 답이었다. 핑계를 찾는 놈과 방법을 찾는 놈은 구별한다?
그건 더욱 난해한 답이었다.
어떻게 골동품을 수집하러 다니게 되었느냐는 물음에 번개는 입을 열었다.
“중고품이 만만하고 좋아. 일단 부담이 없잖아. 나는 여태 새것이라고는 가져본 적이 없어. 모두가 중고야. 말하자면 중고인생인 셈이지.”
번개가 핸들을 잡은 채 말했다.
“하하하. 인생에도 중고가 있나요?”
내가 슬쩍 거들었다.
“내가 가진 게 다 중고품이거든, 옷도 중고고, 차도 중고고, 새것이라곤 이렇게 나오면 사람들의 만남과 시간뿐이야.”
만남과 시간만 새것이다?
뭔지 모르지만, 의미가 담긴 말이다. 나는 고개를 주억여 주었다.
낡은 소형 화물차는 서행하고 있었다. 상주 은척을 거쳐 문경 쪽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마을마다 들러야 했기에 산업도로를 두고 구도로를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운전석까지 고물에 해당하는 중고품과 골동품 잔챙이들이 실려 조수석에 앉은 내가 다리를 뻗기도 불편할 지경이었다.
사람들은 이 양반을 두고 번개라고 불렀다.
번개!
이 양반을 처음 보는 사람도 번개라고 부른다. 자신이 직접 스프레이로 뿌렸는지 얼룩덜룩한 국방색으로 칠한 화물 탑차 적재함에 번개라고 크게 써놓고, 골동품을 싣고 팔도 유람이라는 글귀까지 써놓아 누가 보아도 골동품을 사러 다니는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도록 해놓았다.
이 양반을 처음 본 것은 김천 골동품 경매장에서였다. 아주 특이한 차림의 노인이라 눈길을 끌었다. 아니 노인이 아니라 초로의 사내였다. 육십 대 중후반으로 보이는데 몸피가 호리호리하고 작은 키에 콧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복장은 소련군의 복장이다. 오늘도 마찬가지지만, 허벅지가 넓은 바지에 허리띠를 매고 긴 가죽 장화를 신었다. 허리에 권총만 차지 않았을 뿐이지 영락없이 소련군 장교의 복장이었다. 머리는 정수리 부분만 길러서 묶고 나머지는 짧게 깎았는데 나이에 걸맞지 않게 발그스레한 물로 염색을 했다. 어디를 가나 시선을 끄는 복장이고 머리모양이다. 번개의 머리를 보고 있으면 텔레비전에 나오는 외국의 축구 선수 머리모양을 연상하게 한다.
저 나이에 저렇게 하고 싶을까?
저돌적인 자신감이 없으면 저런 머리나 복장을 절대 하지 못한다.
머리를 길러서 꽁지머리를 만들어도 자신만의 철학이나 아니면 아집이 엿보이는데 이런 차림을 하려면 세상 사람들의 이목은 무시할 정도로 배포가 있어야 한다. 남의 시선을 끄는 것은 복장이나 머리모양만이 아니었다. 번개를 처음 본 날, 골동품 경매장 앞 평상에서 점심을 먹는데 도시락이 눈길을 끌었다. 일반 플라스틱 도시락이 아니라 군용 반합이었다. 군용 반합에 밥을 담고 속 뚜껑에 반찬을 담아서 싸 온 것인데 그늘의 평상에 앉아서 천연덕스럽게 먹고 있었다. 경매장에 모인 장사치들은 모두 그를 알고 한마디씩 했다.
번개! 맛있게 자셔!
이 양반은 구김살 없이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손을 들어 보이고는 밥을 먹었다.
연구 대상이구나.
골동품 경매장에 갈 적마다 번개가 보였다. 경매장 입구에서 그의 차가 있나부터 살피는 게 버릇이 되었다. 국방색을 처발라 군용차량처럼 보이는 그의 차는 단박에 표시가 났다. 나는 그를 유심히 관찰했다. 어디서 수집했는지 옛날 물건을 매주 한 차씩 싣고 오는 것이다. 다른 장사치들은 그것을 두고, 번개! 나까마 많이 했네. 라고 했다.
나까마?
아마도 일본에서 들어온 말인지, 일제 강점기에 남은 말인지 모르겠지만, 마을을 돌아다니며 옛날 물건을 수집하는 행위를 뜻하는 말로 통용되는 모양인데 골동품상들은 모두 그렇게 불렀다. 정확한 뜻은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이해했다. 나는 번개와 친해지기 위해서 노력했다. 경매 중에 커피도 빼다 주고 그가 내놓은 물건도 장식을 할 만한 것은 낙찰을 받았다.
그렇게 친해지고 나서 번개 형님이라고 부르며 나까마를 나가면 꼭 좀 데리고 가라고 이 양반을 볼 때마다 부탁했다. 번개가 어떻게 물건을 구하는지 알고 싶었고, 동행하면서 이 양반을 연구하고 싶었다. 이렇게 기인을 보면 그를 연구하고 싶은 욕구를 제어할 수가 없다.
볼 때마다 부탁했는데 좀체 연결되지 않았다.
한 계절이 지나서야 나까마를 나가는데 같이 가겠느냐고 번개 형님이 먼저 물었다. 지난여름에 만났을 때부터 부탁했는데 늦가을이 된 오늘에서야 나까마를 나가는 번개의 차를 탈 수가 있었다.
어제 경매장에서 만나 또 얘기했더니, 지나가는 소리로 들었는데, 정 그러면 오늘 아침 아홉 시까지 김천의 무슨 아파트 뒤로 오라고 했다. 번개의 집이었다. 그 아파트가 집이 아니라 작은 아파트단지 바로 뒤의 동산 아래 있는, 오래되어 낡은 함석집이었다. 골목에 서 있는 차가 아니더라도 마당 안을 기웃거리니 번개의 집이 틀림이 없다 싶었다.
번개표구나!
집이 그랬다. 딱 보니 번개표였다. 골목에서 마당을 둘러보고 번개의 집을 제대로 찾아왔구나 싶었다. 마당과 뜰에는 갖가지 중고 물건들이 어지럽게 늘려 있었다. 얼른 보면 고물상을 방불케 하지만 마당에 쌓인 물건들은 제각각 따지면 가격이 높은 물건들이었다. 다듬잇돌부터 시작해서 맷돌, 달마상, 돌거북이, 돌부처 돌 종류가 마당에 있고 뜰에 있는 천막을 들추어보니 화초장부터 옛날 가구들이 쌓여 있었다. 번개는 보이지 않았다.
면전에서는 번개 형님이고 없을 때는 존칭은 싹 빼고 그냥 번개다.
나에게 번개는 그런 존재다. 번개의 이름을 모른다. 생각하니 그랬다. 잘 안다고 친하다고 생각했지만, 본명을 모르고 있었다.
“번개 형님 계십니까?”
소리 내어 불렀더니 왔느냐고 되물으며 대답은 했는데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안에 있는 화장실에 있었던 모양이다.
마당에 있는 물건을 구경하며 값이 얼마나 나가나, 속으로 매기고 있을 때 번개가 나왔다. 소련군 복장에 군용 반합이 양손에 들려 있었다. 두 개였다. 아침에 준비한 모양인데 하나는 분명히 내 몫이었다.
“무슨 점심을 준비하셨어요? 점심은 제가 사드리면 되는데?”
“모르는 소리! 시골로 다니면 먹을만한 식당이 없어.”
밖으로 나온 번개는 자신의 고물 화물차 뒤에 서 있는 내 승용차를 보더니, 저쪽 공터에 세우고 타라고 했다. 차를 공터로 옮기자 바로 출발이었다. 김천에서 상주까지는 산업도로를 타고 왔고 그다음부터 구도로를 타고 왔다.
오면서 한 이야기는 자신은 중고인생을 살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은척면 소재지를 지나자 바로 행정구역상 바로 문경시에 들어간다. 은척면에서 도랑을 하나 건넜을 뿐인데 행정구역이 완전히 달랐고 참 멀리 왔다는 기분이 들었다.
“여기서부터 훑어보지.”
번개가 차를 세운 곳은 돌에 내 고향 선곡리라고 쓰인 마을이었다. 아마도 농암면 선곡리인 모양이다. 차를 끌고 골목으로 들어가, 골동품을 삽니다, 하며 스피커를 틀고 돌아다닐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번개는 차를 동네 초입에 세웠다.
차에서 내려 적재함 탑의 문을 열고 작은 손수레를 꺼냈다. 작은 바퀴가 두 개가 달린 함석으로 된 작은 손수레였다. 그걸 끌고 앞장을 섰다. 마을 초입에 있는 한 집을 보고는 마땅치 않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고 좀 더 깊숙하게 골목으로 들어가더니 어느 집 앞에 손수레를 세우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아지매 계십니까?”
실례합니다. 계십니까? 대충 그런 식으로 주인을 찾는 법인데 번개는 주인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마치 아는 집에 온 것처럼 아지매를 찾았다. 부르는 방식부터 달랐다.
“누군고?”
대답하며 방문이 열리고 할머니 한 분이 앉아서 마당에 서 있는 희괴한 차림의 번개를 훑어보았다.
“신수가 훤한 아지매가 계시네. 마루 밑을 좀 둘러보러 왔습니다.”
공치사부터 먼저 늘어놓고 용건을 말했다.
“남의 마루 밑은 왜?”
“못 쓰는 물건이 있는지 보려고요.”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골동품을 사러 왔다면 방어막을 먼저 치고 절대로 물건을 내놓지 않는다고 했다. 골동품이 아니라 못 쓰는 물건이라고 하고 파고 들어가야 차단막을 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번개의 말을 들은 터라 마룻장 밑부터 살폈다. 옛날 농기구와 사기로 된 요강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번개는 마루 밑을 보면 그 집에 뭐가 어느 정도 있나 감이 잡힌다고 했다.
“바로 골동품의 보고寶庫에 해당하는 다락으로 올라갈 수는 없어. 마루 밑을 살피고, 있다 싶으면 노인의 심리를 자극하는 거지. 그게 전술이야.”
차를 타고 오면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번개는 마루 밑을 한눈에 보고 파악했는지 마루에 걸터앉아 방 안의 할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아지매 편찮으신 데는 없구요?”
얼른 보면 잘 아는 사람이 안부를 물으려고 찾아온 것만 같았다.
“이 나이에 왜 아픈 데가 없겠어.”
“내가 딱 보니까, 아지매 무릎이 안 좋겠구먼요.”
툇마루에 걸터앉은 내가 그 말을 듣고 다소 놀랐다. 어떻게 저렇게 넘겨짚을 수가 있을까?
방안에 삐딱하게 앉은 할머니는 그렇다고 했다. 무릎이 안 좋아도 동네 회관에 놀러도 가지 못한다고 했다.
“아지매! 제가 벌떡 일어설 수 있는 요술 파스를 좀 붙여드릴게요.”
번개는 일어서서 차가 있는 곳으로 나갔다. 나는 뭘 가지러 가는지 알고 있었다. 경매장에서 번개가 팔던 자석이 달린 파스를 가지러 가는 길이지 싶었다. 엄지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파스인데 중간에 자석이 붙어있어 통증을 느끼는 부위에 붙이면 통증을 완화 시켜주는 파스라고 했으며 오줌 줄기가 시원찮은 양반들은 배꼽 밑에 파스를 붙이면 소변을 시원하게 볼 수가 있는데, 효과가 좋다고 절대로 두 개나 세 개를 붙이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붙였다가는 변기가 남아나지 않는다고 해서 모두를 웃기곤 했던 파스다.
“어디서 왔소?”
방 안의 할머니는 마루에 걸터앉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저 양반은 김천에서 오고 저는 구미에서 왔습니다.”
“먼 데서 오셨구만.”
번개는 차에 가서 예의 그 파스와 초코파이를 한 통을 들고 돌아왔다. 번개는 스스럼없이 가죽 장화를 벗고 마루로 올라서서 방으로 들어갔다.
“아지매! 다리 걷어봐요. 내가 고쳐드릴게.”
번개는 다리를 걷은 할머니의 무릎을 주무르며 손가락을 꼭꼭 눌러보고는 아프다고 호소하는 부분에 파스를 붙여주었다. 그러면서 입으로는 할머니의 연세를 묻고 까칠한 내 새끼는 몇을 두었나, 어디에 살고 있느냐,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 할아버지는 언제 돌아가셨냐, 골동품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할머니의 신상에 관해 물었다.
희한하게도 할머니는 술술 대답했다.
“자식들 다 필요 없죠. 늙으면 그저 몸 성한 게 최고지요.”
결론은 그것이었다.
“말하는 걸 보니까, 자식보다 낫네.”
할머니는 무릎까지 치마를 걷고 번개에게 다리를 맡기고 하는 말이었다.
“아이구 시원타. 이렇게 해주는 이유가 뭐여?”
“아픈 할머니 좀 주물러 드리는데 이유가 어디 있어요?”
“골동품 사러 왔다고 혀. 쓸만한 물건은 다락에 있어. 올라가 보아. 나는 올라가지도 못해.”
할머니가 먼저 다락을 들먹였다.
“뭐가 있는지는 몰라도 못 쓰는 게 있으면 값은 후하게 쳐 드릴게요.”
그 말을 하고도 번개는 한참이나 다리를 더 주물러 드리고 초코파이를 드시라고 내밀고 일어서 다락으로 올라갔다. 번개가 다락에서 나를 불렀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 번개가 내주는 물건을 받아서 방바닥에 진열했다. 할머니는 그저 앉아서 보기만 했다. 다락에서 나온 것은 놋그릇 세 벌과 자리를 짜는 바디, 옛날 삼베를 짤 적에 쓰는, 나무로 된 북, 놋화로였다.
그걸 방바닥에 늘어놓자 번개는 내려왔다.
더는 없는 모양이었다.
“아지매! 우리는 못 쓰는 물건을 찾고 있는 거지. 이렇게 쓸 수 있는 물건은 찾지 않아요.”
“그게 무슨 소리야? 골동품 장사가 아닌가?”
“이 놋그릇은 자식들에게 물려주세요. 나머지는 별로 쓸 데가 없겠구만.”
번개는 놋그릇 세 벌은 자식들에게 물려주라고 하고 다른 물건은 지금 별로 쓸데가 없다고 하면서 놋그릇은 다시 다락에 올려놓았다.
“다른 장사치들이 오더라도 놋그릇은 절대로 팔지 말고 자식에게 물려주세요. 이렇게 짝이 맞는 물건은 구하기가 힘들어요.”
아하! 장사치라고 다 같은 장사치가 아니구나, 이래서 세상은 아름답고 살만한 것이 아닌가?
문득 그런 생각을 나는 했다.
그다음은 더 인간적이었다. 번개는 골동품값을 주겠노라고 했고 할머니는 못 쓰는 물건에 무슨 돈을 받느냐고 거절했다.
“아지매에게는 못 쓰는 물건이지만 우리에겐 상품입니다. 마땅히 그래야 마음이 편합니다.”
번개는 기어이 지폐를 몇 장을 방바닥에 던져놓고 물건을 손수레에 실었다. 마루 밑의 사기요강도 실었다.
“아지매 건강하세요.”
그렇게 인사를 던지고 골목 어귀의 차로 나와서 물건을 차에 싣는데 보니 놋화로가 탐이 났다. 골동품 경매장에 어지간히 다녔으니 저런 물건이면 대충 얼마쯤 나간다는 걸 나도 알고 있다.
물건을 차에 싣고 난 다음에 빈 수레를 끌고 이집 저집 기웃거리며 천천히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겨우 여남은 집이 사는 마을이었다.
번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다른 집에는 물건이 없다는 말이었다. 밖에서 보아도 감이 잡히는 모양이다.
그다음 동네로 갔다.
그 동네에서도 이집 저집 기웃거리며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동네 입구 정자에서 담배만 피우고 다음 동네로 갔다.
“집 밖에서 보기만 해도 물건이 있는지 없는지 압니까?”
나는 그저 신통하기만 했다.
“오래 하다 보면 보이는 법이야!”
“나까마가 올해 몇 년째입니까?”
“한 삼십 년 되었지. 그런데 이렇게 다니는 것을 나까마라고 하지 않아. 뭘 잘못 알고 있는 모양인데, 나까마는 이렇게 수집해서 상인에게 넘기는 가격을 나까마 시세라고 하고 이렇게 수집하러 다니는 것을 가이다시라고 하는 거야. 가이다시 시세와 나까마 시세에 현저한 차이가 있지. 다 일본 말인데 일제 강점기에서 남아 잔존하는 언어야.”
그렇구나, 내가 잘못 알았구나, 가이다시라는 말도 가끔 들어보았다.
“가이다시를 하시기 전에는 뭘 하셨어요?”
“그게 궁금해?”
번개는 콧수염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젊어서는 고물상을 했었지. 구미 공단의 공장을 상대로 철거를 하는 업체를 잡고 고물상을 했어. 크게 했는데 당시에 고물 시세가 참 좋았지. 리어카를 끌고 다니는 고물상이 아니었어. 도매금으로 사서 야적해 놓으면 올라가는 거야. 재미가 쏠쏠했지. 공장의 설비를 교체하는데 입찰을 받아서 직접 참여하기도 했고. 빚을 내서 잔뜩 쌓아놨을 때 유가 파동이 터지고 고물값이 바닥을 쳤지. 기울어지니 잡을 수가 없더라구. 그 바람에 고물상을 하던 땅까지 날아가고 마누라가 덜컥 죽은 거야.”
“어쩌다가요?”
“잠깐! 이 집은 좀 있어 보일 것 같은데 이 집을 들렀다가 얘기하지.”
빈 수레를 끌고 골목길을 걸으며 얘기하다가 어느 집으로 들어서서, 아지매 계시능교? 하며 서슴없이 뜨락으로 올라섰다. 이번에는 물건을 사는 방법이 지난 집과 사뭇 달랐다.
누구신고? 하며 방문을 열고 나온 아지매도 역시 할머니였다.
“아지매! 이제 제사를 지내지 않지요? 자식들은 교회에 나가고 마음은 짠한데 자식들이 반대해서 제사를 못 모시고?”
“어떻게 알았는고?”
“자고로 한 집에서 종교가 둘이면 안 된다니까. 세상이 험해서 자식들은 할렐루야~ 우리 서방님 제사도 못 모시고~ 마음은 짠한데~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자식이여~ 야속하다~”
번개는 마루에 걸터앉아 가락을 붙여 청승맞게 소리를 했다.
“내 마음을 어떻게 그리 잘 아시우?”
“아지매! 안 쓰는 제기 몽땅 내놓으시오. 팔아서 돈으로 써야지. 나중에 아들들이 주면 며느리가 귀신 붙었다고 쓰레기통에 처넣을 건데.”
“골동품 사러 다니는 사람들이우?”
“골동품을 사러 다니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아지매 같은 사람을 구제해주러 다니는 사람이지요. 며느리가 쓰레기통에 처넣기 전에 얼른 내놓으시오.”
아지매라고 불리는 할머니는 번개의 말에 순순히 따랐다. 그렇지 않아도 어떻게 처리할까, 골머리를 앓고 있던 물건이라고 하면서 나를 보고 건넌방으로 좀 들어오라고 했다. 나는 적잖이 놀랐다.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을 번개가 어떻게 알았으며 할머니의 마음을 읽었을까. 그저 신통하기만 했다. 신발을 벗고 마루로 올라가 건넌방에 들어가니 놋으로 된 제기가 대나무 광주리에 담겨 있었다. 그것을 한꺼번에 들지 못할 정도로 대나무 광주리가 허술했다.
두 번에 걸쳐 나누어서 마루에 내놓았다.
술잔부터 촛대, 향로까지 고스란히 다 있었다.
흥정은 간단했다. 번개가 얼마쯤 주고 샀을 거라고 했고 얼마를 쳐주겠다고 하니 할머니는 아쉬운 듯하면서도 그러라고 했다. 내가 대문 앞, 골목에 서 있는 손수레를 끌고 들어와서 물건을 다 실었다. 놋으로 만든 제기가 작은 손수레에 가득했다.
번개가 집을 딱 보고 자식들이 교회에 나가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무척이나 궁금했지만, 물을 짬이 없었다.
번개는 그 돈으로 교회에 헌금하지 말고 아지매 잡수시고 싶은 거 사서 잡수라고 당부하고는 그 집을 나섰다. 수집한 물건을 차에 싣고 그 마을을 빠져나와 개울을 따라 올라가다가 물가에 지어놓은 정자에서 점심을 먹자고 했다. 정자는 비어 있었다. 번개가 군용 반합을 차에서 꺼내며 한마디 했다.
“경치가 좋아 밥맛이 절로 나겠네.”
정말 그랬다. 소풍을 온 기분이었다. 맑은 물속에서 노니는 송사리 떼가 보일 정도로 물이 맑았다. 정말이지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이었다. 나에게 배당된 반합을 열어보니 속 뚜껑에 김치 몇 조각이 얹혀있었고 밥은 조밥이었다. 번개의 반합에는 무말랭이가 들어있었다. 반찬은 부실했지만, 조밥이 먹음직스러웠다.
번개는 깨작거리지 않고 식은밥 덩어리를 보란 듯이 젓가락으로 푹 퍼서 입이 미어지도록 먹었다. 나도 따라 했다. 정자에서 먹는 조밥은 별미였다. 허겁지겁 밥은 금세 다 먹었다. 밥을 먹고 나자 반합을 거두어 간 번개가 화물차 운전석에서 보온병을 꺼내 왔다. 커피였다.
“형수님께서 어떻게 돌아가셨나요? 아까 그 이야기를 하다가 말았지요.”
“보현보살이 왕림하신 거지.”
“보현보살요?”
유가 파동으로 고물값이 정말 고물값이 되고, 고물상이 넘어가고 땅이 넘어가고 한참 어지러울 적에 저녁 잘 먹고 거실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그대로 갔다는 것이었다. 뭘 물었는데 대답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어서 큰소리로 물었더니 역시 대답하지 않아서, 이 사람아 말을 좀 해, 하면서 건드리니 그대로 쓰러졌는데 숨이 멎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죽는 것을 불가에서는 보현보살이 다녀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참 거짓말 같더라구.”
장례를 치르고 나니 아이를 하나 가진 홀아비로서 빈손이었다고 했다.
“참 막막했지. 바닥이 없는 추락이었지.”
번개는 입맛을 쭉 다시고 말을 이었다.
나는 뭐라고 위로의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담배를 물고 그의 말을 기다렸다. 고물도 경매로 처분되어 싣고 간 썰렁한 고물상에 가보았더니 마음마저도 썰렁한데, 한쪽 구석에 고물이 안 되는 도자기가 몇 점이 굴러다니고 있었다고 했다. 아마도 유품을 정리해주던 고물 수집상 가져다 놓은 것인 모양인데 그게 눈에 들어오더라는 것이었다.
그 도자기를 차에 실었다는 것이었다.
거기까지 듣고 횡재했겠구나, 성급하게 넘겨짚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그걸 싣고는 잊어버리고 아들을 태우고 며칠을 돌아다니다가 골동품상이 보이길래 담뱃값이라도 하려고 팔아보려고 했더니 그게 꽤 값이 나갔다는 것이었다. 골동품상 주인이 감정하더니 조선 초기의 백자라며 어디서 났느냐고 묻더라는 것이다. 그때 번개처럼 머리를 스치는 것이 바로 번개였다고 했다.
번개?
“번개라는 이름으로 골동품을 배우자. 바로 번개야. 동생! 고물상이 어떻게 돈을 버는지 알아?”
번개가 콧수염을 쓰다듬으며 화제를 바꾸었다. 무슨 대답을 기다리고 던지는 질문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가만히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
“고물로는 현상 유지만 해. 땅으로 돈을 버는 거야. 도시 변두리에 허름한 땅을 사서 고물상을 하다 보면 도시가 팽창되고 지가가 올라가지. 그럼 그걸 팔아서 더 변두리 더 넓은 야적장을 사는 거야. 거기서 또 고물 장사를 하다 보면 도시가 또 커지는 거야. 땅값이 또 오르겠지. 그걸 서너 번 하면 갑부가 되는 거야. 그런데 그 꿈이 박살이 나고 보니 골동품이 눈에 들어오는 거였어.”
그래서 당장 타고 다니던 승용차를 처분하고 소형 화물차를 샀다는 것이다. 당시에 아들이 네 살이었는데 맡길 곳이 없어 유치원도 못 보내고 삼 년간 차에 태우고 골동품을 수집하러 다녔다고 했다.
“그때부터 혼자 사셨나요?”
“혼자 살기는? 아들과 둘이 살았지. 하하하.”
슬픔도 지나가면 아련한 추억이 된다고 했든가? 번개 형님의 얼굴에는 그림자가 없었다.
“아들은 출가를 시켰겠네요.”
아들은 지금 결혼해서 타이완에 있다고 했다. 대학을 다니다가 타이완으로 어학연수를 나가서 눌러앉았는데 거기서 결혼하고 타이완의 무역회사 한국어 담당으로 취직해서 눌러앉아서 자꾸 건너오라고 부른다고 했다. 물론 결혼은 타이완 처녀와 했는데 손자가 둘이라고 했으며 손자가 눈에 삼삼하다고 했다. 그 말을 하는 번개의 눈에는 번개답지 않게 혈연의 그리움이 묻어 있어 가벼운 연민이 일었다.
“어렵게 키운 아들인데 이젠 덕을 좀 보고 사는 것도 괜찮겠네요. 타이완으로 건너가시지요. 연세도 있고, 따뜻한 나라에서 말년을 편하게 보내면 좋을 터인데, 지금 글로벌시대가 아닙니까?”
모르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지금이 한없이 편하다고 했다. 말도 통하지 않는 그곳에 가서 집에만 갇혀 있는 것보다는 이렇게 돌아다니며 역마살을 풀고 사람을 만나는 게 그렇게 좋다고 하면서 이제는 돈의 노예에서 해방이 되었다고 했다. 벌리는 만큼 쓰면 된다고 마음을 먹으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고 했다. 이렇게 돌아다니다가 어디서 객사하면 그보다 더한 행운이 없는 것이고.
객사?
들어보니 섬찟했다.
“객사가 행운인가요?”
“생각하기에 따라서 다르지. 나는 객사를 꿈꾸며 이렇게 다니는 거야.”
이 복지국가에서 객사하면 장례를 깨끗하게 치러줄 것이고 죽는 날까지 돌아다닐 수가 있으니 그것보다 큰 행운이 어디 있나? 번개는 암보다 무서운 게 치매라고 했다. 치매에 걸려 불특정 다수를 고생시키는 것보다는 객사가 훨씬 아름다운 죽음이 된다는 주장이었다. 번개의 말을 듣고 있으니 자식의 무릎을 베고 눈을 감아야 한다는 내 보편정서가 무너지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번개는 한세상 잘 살았다고 했다. 출근 시간에 얽매여 본 적도 없고, 돈에 그렇게 갈증을 느낀 적도 없으며 마음을 비우니 이렇게 편하게 살고 있다고 했다. 돌이키니, 인간의 기억이란 자기가 편리한 대로 편집이 법이라고 했다. 그 옛날 막막했던 시절은 기억에서 사라졌는지 돌이키면 한세상 그런대로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는데 세상에 남은 중고품을 자신이 아니면 처리할 자가 있겠는가? 그 소임을 다하기 위해서 산다고 했다.
객사를 꿈꾸며 소임을 다하고 있다?
괴상한 논리였지만 토를 달거나 반박할 수가 없는 논리였다.
아, 이렇게 마음먹고 살 수도 있구나.
“그런데 아까 그 집이 제사를 지내지 않는 줄을 어떻게 알았어요? 저는 말씀하시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눈치 없기는, 그 눈치로 여태 어떻게 살았어?”
내 눈치를 타박하고 나서 번개는 설명했다. 그 동네는 교회가 없어. 그런데 대문 우편함 밑에 양철로 붙인 십자가를 보았다고 했다. 남의 집에 들어가면서 그런 것까지 보지 않을 수가 있나. 그 십자가는 서울의 어느 교회에서 단 성도의 집이라는 것이었다. 그 늙은 아지매가 서울까지 교회에 다닐 수는 없는 이치이고 자식들이 붙인 게 틀림이 없다는 걸 알았지. 그래서 넘겨짚은 것인데 정확히 맞아떨어진 것이지.
아, 그랬었구나.
번개는 남은 커피를 홀짝 마시고 일어섰다.
요 위에 있는 두 마을만 돌아보고 일찌감치 상주로 돌아 나가자고 했다. 그 마을을 지나면 충청도로 넘어가는 길이라고 했다.
“뜬금없이 상주는 왜요?”
내 질문에 번개는 오늘 저녁에 상주에서 골동품 경매가 있다고 했다. 일찌감치 가서 앞줄에 서야만 사람이 많을 적에 경매에 물건을 내놓을 수가 있다고 했다. 상주 경매장은 밤에 해서 그런지 이상하게 파장이 되면 사람이 빠지고 썰렁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객사를 꿈꾸며 상주로 갈까요?”
그 말을 하고 넘은 커피를 홀짝이고 일어서는데 내 안에서 객사를 꿈꾸며, 객사를 꿈꾸며, 라는 웅얼거림이 일고 있었다. 이 양반은 정말 객사를 행운으로 여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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