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손의 장어*
최윤정
우주의 하루를 살았다
하늘은 가장자리가 부서져 내렸지만 둥긂을 포기하지 않았다
바람은 어디서 불어오는가,를 생각하는데 오전을 보내고
구름 귀퉁이를 기어가다 미끄러진 지렁이를 잡아먹는 동안
느루 내리는 비처럼 은사시나무의 오후가 지나갔다
고함치듯 뛰어다니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
무지막지하게 지붕을 덮어버린 꽃잎이나 잠깐
흘러들어온 냄새에 온 정신이 홀리기도 했지만
그것이 시간의 다른 얼굴이라면 나는 잠시 시간을 사랑했던 것
나의 하루는 길어서 이미 사라진 시간의 꽁무니 뒤로
수만 마리의 새가 부리를 비비며 날아갔다
나뭇잎 한 장이 만든 그늘 아래 고개를 묻고
어쩐지 경건한 마음으로 어제를 떠올리는 건
기도 없이는 할 수 없는 일, 손 대신 온몸을 모은다
찰나에도 떴다 지는 별과 무시로 바뀌는 바람의 온도
둥글고 긴 허공을 이해하는 동안 귀돌에 새겨진 시간들
새가 떠난 나뭇가지처럼, 나뭇가지 그림자를 부풀리며 지는 해처럼
돌아보면 침묵같이 아득한 하루를 살았다
*1859년 당시 8살이었던 사무엘 닐손이 우물에 던진 후, 2014년 8월 죽은 것이 발견될 때까지 155년 이상을 살았다는 뱀장어.
― 2014년 〈김유정신인문학상〉 시 당선작
최윤정
경주출생.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청소년교육과 졸업. 행단 동인. 2010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 수필부문 당선. 2011 천강문학상 수필부문 우수상 수상. 울산공업센터지정50주년기념공모전 소설부문 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