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달 사이 전국에서 가장 집값이 많이 오른 경기도 과천시. 이곳 아파트 매매가는 서울 강남을 앞질러 전국 최고 수준이다. 부동산 정보업체인 부동산114에 따르면 13일 현재 과천의 평당 매매가는 평균 3409만원으로 강남구(3327만원)를 웃돌았다.
지난 9월 과천 지역 아파트들의 재건축 추진 기대감에서 촉발한 집값 상승은 이후 서울 전역을 비롯해 수도권 전체로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 대한민국 집값 폭등의 진원지 과천의 부동산 중개업소에서는 지금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오마이뉴스>는 13일 과천 아파트 중에서도 가격이 가장 많이 오른 주공 2단지 복합상가 내 있는 오렌지부동산컨설팅 박강호 대표의 하루 일과를 따라가 봤다.
[오전 8시 30분] "밤새 얼마나 올랐지?" 시세표를 외워라
▲ 과천 아파트 중에서도 가격이 가장 많이 오른 주공2단지.
ⓒ2006 오마이뉴스 김연기
▲ 박씨가 출근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주변 시세 파악하기다.
ⓒ2006 오마이뉴스
과천 별양동에 살고 있는 박씨가 사무실에 도착하는 시간은 오전 8시 30분. 사무실 문을 여는 시간은 10시지만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많다. 박씨가 출근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주변 시세 파악하기. 꼭 주식시장 개장을 앞두고 간밤의 미국시장 주가추이와 기업정보를 살펴보는 증권사 펀드매니저와 닮아 있었다.
일반적으로 시세 파악에는 국민은행 부동산 데이타나 부동산 정보업체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이용하지만 박씨는 이를 보지 않는다. 대신 중개업소들이 직접 올려놓은 시세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중개업자 전용 시세표'를 본다. 여기에는 각 중개업소가 보유한 모든 물량의 따끈따끈한 시세가 상세히 나와 있다.
"다른 데서 보는 정보는 이곳 지역 시세보다 많이 늦어요. 제가 보는 건 중개업소에서 바로 전날 올려놓기 때문에 현 시세를 가장 정확히 반영하죠. 손님이 와서 시세를 물어보면 바로 답이 나와야 해요. 보통 여기에 오는 사람들은 단골이 아닌 이상 한 곳에만 들르지 않고 수십 군데를 돌아다녀요. 손님이 물었을 때 얼버무리면 금방 표가 나죠."
그러나 박씨가 즐겨보는 이 시세정보에서도 가끔 문제가 발생한다. 간혹 정보를 악용하는 중개업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박씨가 과천 주공 2단지 3층 16평짜리 아파트를 9억원에 올려놓았다고 치자. 이를 본 다른 중개업자가 그 집을 찾아가 '5000만원을 더 줄 테니 자기한테 맡겨라'고 한다. 이 경우 하나의 아파트를 놓고 다른 가격이 올라오게 된다.
같은 아파트인데도 서로 다른 가격이 나와 있을 경우 당연히 더 높은 가격을 적어놓은 쪽이 이 같은 '편법'을 쓴 중개업소들이다. 문제는 이 같은 편법 때문에 아파트 가격에 거품이 낀다는 데 있다. 그래서 박씨는 이런 편법을 쓰는 중개업소와는 보통 정보공유를 하지 않는다.
[오전 10시]"3단지 입주권이 숨어있는 보물이에요."
▲ 박씨가 과천 재건축 단지에 들어설 아파트 조감도를 배경으로 최근 시세 등을 고객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2006 오마이뉴스 김연기
오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 첫 손님이 박씨 사무실을 찾았다.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주부 2명이 아이 둘을 업고 들어왔다. 과천 주공 7단지에 살고 있다는 이들은 이미 '오를 만큼 오른' 주공단지 아파트보다는 과천 인근의 땅에 관심을 보였다.
"투자 금액을 5억원 정도 생각하고 있는데요. 이 돈으로 주공단지를 더 사고 싶지만 너무 많이 오른 것 같아요. 다른 곳은 어떤가요?" (A주부)
"사실 지금은 너무 올라서 다른 지역에 비해 이곳에 대한 경계심리가 큽니다. 일단 정부 발표를 앞두고 보합세 유지하다가 다시 뛸 가능성이 높아요. 주공단지가 많이 오르긴 했는데 그래도 3단지는 아직 저평가 돼 있어요. 지금 산다고 해도 누가 때려 죽어도 손해 안 보는 곳이 바로 3단지에요." (박씨)
이들은 지식정보타운에 대해서도 문의를 했다. 과천시는 과천 갈현·문원동 일대 개발제한구역 조정 가능지 50만평에 8000억원을 들여 2009년 과천 지식정보타운 'EGR-클러스터' 조성 사업을 시작해 2011년 완공할 계획이다.
"지금 지식정보타운에 땅을 사놓으면 그곳에 짓는 아파트 분양을 받을 수 있나요?" (B주부)
"그건 도박이에요. 그곳에 아파트가 들어서는 건 맞지만 정확히 어디인지는 아직 알 수 없어요. 지금 사놓더라도 그곳이 아파트단지로 수용되면 대박이 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크게 손해 볼 수 있어요. 별로 추천해 주고 싶지는 않네요." (박씨)
상담 도중에도 여러 차례 전화가 걸려왔다. 대부분 주공단지 시세에 대한 문의였다. 수화기 사이로 6단지 18평형과 25평과 2단지에 대해 문의하는 소리가 들렸다. 박씨는 "6단지는 18평형이 8억원에 1개 나와 있지만 나머지는 물량이 없다"고 말했다.
주부 2명이 사무실 문을 나서기 무섭게 이번에는 중년 부부가 들어왔다. 강남에서 왔다는 이들은 10억원 전후에서 투자처를 물색하고 있었다. 여전히 주공단지에 관심이 높았다.
"과천이 계속 오른다고 해서 와봤어요. 강남대체 신도시도 이쪽에 세워질 거라고 하는데, 지금 살만한 게 있나요?" (손님)
"워낙에 언론에서 떠드는 바람에 이곳에 대한 경계심리가 큰 게 사실이지만 숨겨진 보물이 있기는 해요. 지금 재건축이 진행되는 3단지 입주권이 보물 중 하나죠. 3단지 33평대는 올초에 비해 2억원 정도밖에 안 올랐어요. 다른 데는 한두 달 새 3억원이나 올랐잖아요. 33평이면 9억5000만원에서 10억원 사이면 가능합니다." (박씨)
"3단지 매물이 있나요?" (손님)
"3단지 입주권은 아직은 매물이 남아 있어요." (박씨)
"지금 잡는 게 낫나요? 아니면 정부 대책 보면서 연말에 사는 게 낫나요?" (손님)
"무조건 지금 당장이 좋아요. 하루에도 최소 몇백씩 뛰니까 지금 사야 돈버는 거에요." (박씨)
이들 부부를 보면서 요즘 맞벌이 부부들 사이에서는 "맞벌이 대신 집 보러 다닐 걸" 한다는 푸념이 떠돈다는 말이 떠올랐다.
[오후 1시] 재건축이 한창 진행중인 3단지 가봤더니...
▲ 박씨 사무실에서 200m 거리에 있는 3단지 재건축 현장은 땅 다지기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철골 구조물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2006 오마이뉴스
오후 1시 대한민국에서 집값이 가장 많이 오른 땅 과천이 가을비로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박씨는 "3단지 재건축 현장을 살펴봐야 겠다"며 우산을 들고 현장으로 향했다. 박씨 사무실에서 200m 거리에 있는 3단지 재건축 현장은 땅 다지기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철골 구조물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과천 시내 주공아파트 단지는 모두 12개다. 이 가운데 3단지와 11단지가 재건축이 진행중이다. 과천의 상승세도 이 지역 아파트들의 재건축 추진 기대감에서 출발했다. 특히 지난 9월 2단지가 세 번째로 예비 안전 진단을 통과하면서 다른 단지로 가격 오름세가 번졌다. 여기에 재건축 여파가 사그라질 무렵인 10월 말엔 정부의 신도시 발언이 꺼져가는 불씨에 기름을 부었다.
박씨는 먼저 재건축조합 사무실을 찾았다. 이곳에서 만난 김기원 조합 총무이사는 "내년 4월부터 11단지가 입주하고 내후년 3월 3단지가 입주할 때쯤 되면 이곳 시세가 또 한번 들썩거리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김 이사는 3단지가 왜 주공단지 중에서 저평가 돼 있는지에 대해서도 길게 설명했다. "송파 신도시가 결코 강남 수요를 대체하지 못할 겁니다. 이 곳에 재건축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나면 5년 안에 과천이 강남을 대체할 겁니다. 3단지만 해도 33평 이상 중대형이 2500세대나 들어와요. 5년 후면 평당 5000만원도 호가할 겁니다." 이 대목에서 여전히 과천 집값이 현재진행형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후 6시] 며칠을 실랑이하다 순식간에 거래가 터지다
▲ 사무실을 찾아온 고객들에게 최근 시세를 설명하는 박씨.
ⓒ2006 오마이뉴스 김연기
박씨는 일요일인 전날에도 사무실에 하루 종일 머물러 있었다. 거래 성사에 와 있는 계약건 때문이었다. 살려는 사람과 팔려는 사람 모두 있지만 막판에 매도자가 팔기를 꺼려하면서 계약이 늦어지고 있었다. 매도자가 일요일에 전화를 하기로 했지만 결국 매도자로부터 연락은 없었다.
"매도자는 3단지 재건축 입주권 33평을 9억5000만원에 내놓았어요. 이 가격에 사겠다는 매수자도 나타났죠. 거의 매매 계약 단계까지 갔지만 갑자기 매도자가 생각을 바꿨어요. 3000만원 정도 더 받을 생각에서죠. 사려는 쪽에서 먼저 전화를 하면 돈을 더 준다고 보면 돼요. 결국 이러면 3000만원이 또 뛰는 거에요."
결국 매수자가 매도자 측에 먼저 전화를 걸었다. 이는 매도자가 원하는 가격대로 해주겠다는 암묵적 동의나 다름없었다. 오후 6시가 조금 넘은 시간 사무실에 매수자와 매도자가 도착했다. 이 둘과 박씨가 마주앉아 다시 흥정을 시작했다. 말문은 박씨가 열었다.
"사장님, 그러지 말고 이번 기회에 파시죠? 다른 데 가보셔면 아시겠지만 9억5000만원이면 적지 않게 쳐준 겁니다." (박씨)
"글쎄요. 지금 안 팔더라도 산다는 사람이 널여 있어요." (매도자)
"얼마 정도 더 쳐주면 될까요?" (매수자)
그 순간 몸이 단 매수자가 입고 있던 점퍼 안주머니에서 현찰을 꺼내들었다. 만원짜리 지폐 2000만원이었다. 매수자가 2000만원을 더 얹어 주겠다며 그 자리에서 돈을 꺼내 든 것이다. 견물생심이라고 했던가. 잠시 머뭇거리던 매도자가 입을 열었다. "계약합시다."
매매가 성사된 이후로도 중개업자인 박씨가 해야 할 일이 많다. 중도금이 잘 들어가는지를 꼼꼼히 살펴야 하고 최종적으로 잔금 납부 때까지 '관리'를 해야 한다. 또 재건축조합에 가서 조합원 지위변경을 하고, 시공사에서 하는 명의변경도 박씨의 몫이다.
이 곳에 있다보니 집값이 순식간에 몇천만원 움직이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결국 시세는 이렇게 올라가고 있었다.
박씨는 저녁 7시가 넘은 뒤 사무실 문을 잠그고 2단지 복합상가 내 있는 다른 중개업소를 돌기 시작했다. 새로 올라온 매물 정보를 교환하고 시세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박씨의 하루 일과도 이 일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부동산 중개업자인 박씨의 일과를 지켜보면서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파트값에 어떻게 거품이 끼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집주인이 매물을 거둬들이면 자연스럽게 호가가 높아졌고 여기에 어쩌다 거래가 성사되면 이게 곧 시세로 굳어졌다.
과천시내 12개단지 가운데 이제 막 재건축을 시작한 단지는 3단지와 11단지 2개뿐이다. 앞으로 2개 단지씩 묶어서 재건축을 하게 된다. 이 지역에서 재건축이 모두 마무리 되려면 최소 10년 이상이 소요된다. 매번 재건축이 진행될 때 마다 이곳 집값도 들썩일 게 뻔하다. 물론 최근처럼 정부의 어설픈 신도시 개발론이 기름을 붇는 다면 이 지역 부동산 가격은 또 다시 활활 타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