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2,1-14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여러 가지 비유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1 말씀하셨다.
2 “하늘 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3 그는 종들을 보내어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을 불러오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오려고 하지 않았다.
4 그래서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렇게 일렀다.
‘초대받은 이들에게, ′내가 잔칫상을 이미 차렸소.
황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준비를 마쳤으니,
어서 혼인 잔치에 오시오.′하고 말하여라.’
5 그러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떤 자는 밭으로 가고 어떤 자는 장사하러 갔다.
6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죽였다.
7 임금은 진노하였다.
그래서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자들을 없애고
그들의 고을을 불살라 버렸다.
8 그러고 나서 종들에게 말하였다.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는데 초대받은 자들은 마땅하지 않구나.
9 그러니 고을 어귀로 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10 그래서 그 종들은 거리에 나가
악한 사람 선한 사람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 데려왔다.
잔칫방은 손님들로 가득 찼다.
11 임금이 손님들을 둘러보려고 들어왔다가,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 하나를 보고,
12 ‘친구여, 그대는 혼인 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 하고 물으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13 그러자 임금이 하인들에게 말하였다.
‘이자의 손과 발을 묶어서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14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걸음마를 멈춘다는 말은 인간이 되기를 포기한다는 말과 같다
세례를 받고 보통 1년 정도 뒤에 견진성사를 받습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다며
견진성사를 미루기도 합니다. 세례와 견진을 마치 별개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례받으면 견진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례 예식에 이미 이마에 기름을 바르는 견진성사 예식이 들어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이것을 설명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임금은 아드님의 혼인 잔치에 아무나 초대합니다.
처음 초대했던 이들은 오려 하지 않았습니다. 우선은 이스라엘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세례를 받으려 하지 않고 그분을 죽였습니다. 이에 이방인들이 초대받게 됩니다.
그러나 혼인 잔치에 초대받아 세례를 받은 이들 가운데서도 쫓겨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혼인 예복을 갖추지 않은 사람입니다. 혼인하는 날 잠옷 바람으로 왔다면 그것이 혼인 준비가
안 된 것을 증명해줍니다. 옷은 그 자리에 합당한 준비와 노력을 했음을 알려주는 표징입니다.
혼인은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는 성체성사를 의미합니다. 그 성체성사에 초대받아 온 사람들은
세례받은 이들입니다. 세례받은 이들은 자신이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었음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몸만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능력도 하나가 되었음을 믿어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처럼 예수님이 물 위를 걸으면 자신도 뛰어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믿음이 혼인 예식에 참여하게 합니다.
그러나 기어 다니는 아기가 자기도 부모처럼 두 발로 걸을 수 있다고 믿는다고 바로 두 발로
걸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과의 오랜 싸움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견진의 과정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건너는 세례를 받고 40년의 견진을 거칩니다.
그들은 이전의 파라오를 섬기기 위해 노예살이했던 본성인 소유욕, 성욕, 지배욕을 포기하고
청빈과 정결과 겸손의 열매를 맺는 자신과의 싸움을 평생 해야만 했습니다.
이것을 하지 않는다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준비가 안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사악의 신부를 찾으라고 종을 하란 땅에 보낸 일이 있습니다.
그때 그 부르심에 응답한 여인이 레베카입니다. 레베카는 착한 여인이었고 그래서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었지만, 또한 종이 주는 옷과 장신구로 몸을 꾸며야 했습니다.
이사악은 레베카의 얼굴을 몰랐지만, 아버지 아브라함이 준 옷과 예물은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를 자기 처소로 맞아들입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의 종이 선물한 옷과 장신구는
성령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나왔는데 피는 세례를 주며
물은 견진을 상징합니다.
세례를 통하여 죄를 끊을 결심을 하고 견진성사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하나 되기에
합당한 옷을 입습니다. 이 과정 안에서 수없는 넘어짐이 발생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광야에서 뱀에 물렸습니다.
파라오의 종살이하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하느님께 불평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에 그들에게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방법을 알려주시기 위해 하느님은 당신 아드님을 상징하는
구리뱀을 장대에 달아 그들이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그들도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만 부활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음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덴젤 워싱턴은 “앞으로 넘어지라”라고 말합니다. 대학에서 퇴학당하고 군대에 들어가려고
생각하며 어머니 미장원에서 앉아 있을 때 한 손님이 종이에 이런 말을 적어줍니다.
“소년이여, 넌 세계를 돌아다닐 거야. 그리고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거야.”
덴젤 워싱턴은 이 말을 믿었습니다. 그러면 달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이 이루어질 때까지
수없이 넘어졌습니다. 하지만 그 끝을 의심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되었습니다.
목적지를 정하는 것은 세례와 같습니다. 그리고 수없이 넘어지고 일어서는 견진의 과정을 거치며
자신이 세례받은 사람임을 증명합니다. 그 다음은 자신에게 그러한 믿음을 준 이와 결국 하나가
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체성사입니다.
같은 죄로 수천 번 고해성사하십시오. 이것이 세례받았음을 증명하는 것이고 혼인 예복을 만들어
입는 견진성사를 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걸음마를 멈춘 아기는 인간이 되기를 포기한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