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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을 훼방하는 교리는 아무리 내용이 그럴듯하고 사람들이 보기에 도덕적으로 보여도 말씀이 증거하는 생명으로 인도하지 않는다면 이단적인 교리라고 말하지 않을수 없다.
이러한 이유로 말씀의 영적 전투를 불가피하게 벌일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구원론이다.
구원론은 포용과 타협이 없다.
위의 게시글 주제를 다루다 보면 구원론에 대한 여러 관점을 생각할수 있다.
죄 자백은 구원탈락을 주장하는 무기이기 때문이다.
구원 받은자의 삶 속에서의 죄 자백 을 먼저 거론하는 것이 단순하고 명료해서 이 구절을 선호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요일1:9)
위의 말씀처럼 죄를 자백 하면 그리스도의 피가 죄 를 사하실 것이요 라고 회개(죄 자백)의 조건부 구원을 주장하고 구원탈락의 좋은 무기로 이 구절을 사용하는 것이다.
얼핏 그런 의미로 쓰여져 있는것 같아도 자세히 묵상 해보면 문자 그대로의 해석보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구원 받은후의 죄 까지 이미 사해놓은 죄를 자백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더 합당하다는 것을 말씀을 좀 더 묵상하면 알게 될 것이다.
거듭난 자 그리스도인의 죄자백은 구원 받은후의 죄를 사함 받기 위해 죄의 자백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십자가의 구속으로 사함받은 죄에 대한 자백이다.
무슨 뜻이냐 하면 구원 받은후 지을 죄 까지 십자가에서 피의 구속으로 이미 사해 놓으셨다는 뜻이다.
이것이 무슨 말인지 문자대로 해석해야 한다고 무조건 우기지 말고 문맥과 의미도 잘 생각해야 한다.
요1서 1장 7절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이 말씀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이 말씀도 빛가운데 행해야 보혈로 죄사함 받을수 있다는 말인가?
만약 그렇다면 이거야 말로 행위 구원으로 이단이 될 것이다.
문자 그대로 읽으면 그렇게 해석 되는것 같지만 그 의미는 예수의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셨기 때문에 그 은혜를 아는 자는 빛 가운데 행하라 즉,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라 라고 이해하는 것이 국어 이해력이 조금만 있는 사람 이라면 쉽게 알수 있을 것이다.
말씀은 문맥과 의도와 의미를 잘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요1서 1장9절 말씀은 죄를 자백하면 사해주고 자백 안하면 사하지 않고 하는 조건부적인 죄 자백에 대한 죄 사함이 아니라는 말이다.
만약 조건부 자백이라면 우리는 대충 죄를 자백하면 사함 받겠지라고 생각하겠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어설프게 넘어 가시는 분이 아니다.
완벽히 죄를 자백해야 한다.!
완벽한 죄자백은 불가능하다.
기억 못하는 죄도 있고 그 내용을 하나 하나 다 자백 할수도 없고 사실 몸으로 짓는것 뿐만 아니라 마음속의 죄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자백해야 되기 때문이다.
성경은 항상 마음속의 것을 다룬다.
예수께서 오셔서 새 계명으로 율법보다 강한 마음속의 죄까지 들추신다.
그 이유는 우리가 꼼짝없이 두손 들고 은혜로 갈수 밖에 없게 하기 위해서이다.
죄 자백 문제에 있어 그들은 어설픈 죄 자백으로 죄 자백이라는 말씀의 구절을 붙들고 스스로의 구원에 안심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완벽한 죄자백을 요구한다.우리는 절대로 완벽한 죄 자백을 해서 죄를 다시 사함 받을수 없다!
완벽한 죄 자백은 우리가 자백할 죄 까지도 십자가에서 이미 사해 놓으셨다는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미 사해 놓으신 죄를 자백하는 것이다!
우리가 구원 받을때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았다 하는 것은 내가 태어 나기도 전에 이천년 전에 이미 나의 죄를 사해 놓으셨다는것을 곰곰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일부의 죄만 사해 놓으신 것이 아니라 모든 죄를 영원히 사하셨다는 것을 알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완벽하다!
방금 인용한 요한1서 1장7절 말씀 에서도 <<예수의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라고 하지 않으신가?
<<모든 죄>>를 사하셨다
그것도 과거 현재 미래의 죄를 영원히 사하셨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9:12)
이것이 히브리서의 영원한 속죄의 의미이다.
또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자들을 완벽하게 온전케 하셨다.
온전케 하셨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피가 완전히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를 보고 완벽한 의인으로 여겨 주신다는 말이다.
이것을 받아 들이는 것이 믿음이다.
구원을 얻었다는 것이 뭔가?
믿음으로 얻었다는 것인데 십자가의 구속을 받아들이는 것에는 다 이의가 없을 것이다.
죄를 자백하면 사함 받는다는 말씀은 역으로 자백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사함 못 받는다는 뜻이다.
자백을 제대로 하지못해 죄를 사함 받지 못하면 거듭났어도 지옥불에 들어간다는 얘기가 아닌가?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피의 효력이 완전히 적용 되려면 죄의 자백, 죄가 호리라도 남지 않게 완전히 자백해야 보혈로 완전히 사함 받을수 있다는 뜻이다.
말씀을 구렁이 담 넘어 가듯이 넘어 가서는 안된다.
완벽하게 죄자백할 자신이 있는가?자신없으면 지옥불로 갈것이다.
구원이 죄 자백으로 좌우 되는게 아니라는 말이다
죄자백으로 죄사함 받고 구원을 이루려는자는 그리스도를 또 십자가에 못박고 있는 자 이다.
이미 죄 자백을 하기전에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서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까지 사함 받았다는 것을 깨닫기 힘든가?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모두 사하셨다.
요한1서 1장7절 말씀과 마태복음12장31절 말씀을 다시보라!
"모든죄"를 사하심을 얻되 <<이 세상 모든 죄 마음의 죄>>까지 우리가 태어나기전 이천년전에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영원히 사하셨다.
<<태어나기도 전에>>
사실 과거 현재 미래를 말할 필요가 없다.
태어나기 전인데 과거 현재 미래를 따질 필요가 있는가?
곰곰히 생각해보고 깨닫기를 바란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의 모든 죄를 영원히 사하셨다는 의미를 알아야 한다.
영원은 끝이 없는 시간!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완전히 의롭게 하셨다.
그리스도의 피를 보시고 우리를 완벽한 의인으로 여겨 주신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보혈의 효력과 깊이가 그렇게 얕아 보이는가?
보혈의 효력과 깊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사랑처럼 온 우주보다도 넓고 깊다.
하나님은 항상 완벽을 요구하신다.
완벽한 의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하나님을 만날수 없다.
.그것은 우리의 어떠한 노력도 하나님의 완벽을 충족할수 없다는것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이며 완벽의 요구를 충족할수 있는것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피 만이 충족 할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심으로 구원은 오직 은혜이며 하나님의 선물이며 조건부 선물이 아니라 이 세상 어떤 것과도 바꿀수 없는 가장 귀한 영원한 생명 이라는 보석을 거져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하시고 날마다 찬미 하지 않을수 없게 만드신다.
선물은 거저주시는 것이다.
일단 선물은 한번 주고 나면 상대방 행동이 마음에 안든다고 다시 뺏는 경우는 세상 사람도 하지 않는다.
하물며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주신 선물을 도로 뺏앗아 갈수 있겠는가?
우리가 구원받고나서도 죄를 자백하게 하심은 우리가 죄를 자백함으로 은혜로 이끄시기 위함이다.
죄를 모두 자백하면 그리스도의 피가 죄를 사해주신다는 뜻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이미 영원히 사한 죄를 그리스도인의 삶속에서 죄를 고백함으로 하나님과 교통하게 되고 은혜로 더 이끄시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교통의 관계성이 더욱 깊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마음속으로 날마다 즐거워하며 그 영광을 찬미하는 것이다.
이것이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다.
나의 겉사람은 죄를 사랑하고 나의 속사람은 죄를 미워하고 내 속의 새로운 피조물 새 생명은 하나님의 의를 사랑한다.
이 의는 우리를 단번에 거룩하게 만드신 그 의를 말한다.
말씀을 통해 내 마음속의 모든 죄 를 들추어내고 오직 은혜로만 가는것도 중요하지만 나의 죄를 들추어낸 그 말씀이 또한 그 말씀을 순종하기를 요구하신다는 것을 모르고 모든 말씀을 죄만 들추는 것으로 잘못 오해하여 무조건 행위구원론자라고 지적하는 것은 자신도 말씀의 잘못된 편견에 빠져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말씀을 죄를 들추는 말씀으로만 적용해서는 안된다.
교훈의 말씀은 우리의 삶에 적용해야 하며 순종해야 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3:16)
이 말씀은 문자 그대로 이해해야 한다.
이 말씀도 죄를 들추고 우리는 할수 없다라는 방식으로 이해하면서 말씀을 순종하려는 사람을 행위 구원자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말씀을 순종한다는 것은 방향성을 말한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말씀을 해석할때 문맥에 따라, 문자대로, 상징으로, 반어법적으로, 등등, 말씀의 의도와 맥락에 따라 해석해야 한다.
무조건 한쪽으로만 치우쳐서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죄를 자백 해야 할까?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하면 된다.
매일매일하든 뭉덩거려하든 내 마음속에 성령의 이끌림으로 하면 된다.
횟수와 지은 죄를 잊어먹지 않고 일일히 자백하는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내 마음속에 죄의 법을 섬기는 내 모습을 주님앞에 자백하는 것이다.
그러한 나의 겉사람의 죄된 모습을 새 계명이 우리의 마음속의 죄 까지 샅샅이 들추어 내지만 동시에 새 계명은 우리에게 말씀대로 살며 순종하는 삶을 살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새계명이 죄만 들추는거라 말하는 사람은 이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율법과 새 계명이 같다고 주장한다.
율법과 새 계명은 다르다.
율법과 새 계명은 죄를 드러내고 깨닫게 하는면은 같지만 율법은 우리가 율법을 도저히 지킬수 없는 죄인임을 깨닫게 하여 그리스도에게 인도한다.
그리고 구원을 얻게한다.
새계명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에게 마음속의 죄까지 들추어 내어 완벽한 죄덩어리임을 깨닫게 하시고 은혜로 이끄신다.
그 은혜는 사랑의 영이신 성령께서 내 마음에 이상한 신비적인 체험을 경험하게 하시는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역사 하시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나의 겉 사람은 변할수 없고 죄만 나오는 죄의 법을 섬기지만 사랑의 성령이 내주하는 속 사람은 하나님을 찬미하며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며 순종하는 것이다.
새 계명은 우리의 죄를 들추는 동시에 지켜야 하는 법이다.
새 계명을 지킨다는 의미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십자가의 대속을 믿고 죄사함 받고 의롭다함 얻어 구원을 받았다.
거듭나고서도 대속을 믿어 죄사함 받고 의롭다함 얻은 그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간다.
그리스도인의 삶도 구원 얻을때의 믿음을 근거로만 하나님과 교통 할수 있다.
어쨓든 구원얻는 믿음으로만 주장하는 사람들은 구원과 상관없는 성령을 좆는 믿음을 얘기하면 들어보지도 않고 행위 구원자라고 규정하는 과오를 범하고 있다.
또 한 부류는 성령께서 우리속에서 구원을 이루어가는 믿음을 주장하는 분들이 있는데 구원 얻고나서 행위는 도리로서 하는거라 말했다가 빌립보 말씀으로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고 했다가 일관성 없이 왔다갔다 헤메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 분들은 고위험군에 속한 분들이라는 생각이든다 .
다시 말하지만 성경의 모든 말씀을 죄를 지적하는 말씀으로 해석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물론 그 의도는 잘 알고 있다.
어쨓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교훈과 순종의 말씀조차 죄를 지적하는 말씀으로 규정하고 교훈과 순종의 말씀을 액면대로 받아들이면 행위구원자라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라는 것이다.
새 계명은 새 생명이 순종한다.
새 생명은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을 의미한다.
새 계명을 지킨다는 의미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순종한다는 의미이다.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것이 아니다.
믿는자는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이것은 행위구원과 전혀 상관없다.
우리속의 겉사람은 새계명 즉,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을 도저히 할수없는 존재이다.
우리가 거듭날때 성령을 받았다..
우리가 십자가의 구속(대속)의 피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늘에 소망둔자로 구원을 받았다.
우리안에 사랑의 영이신 성령이 내주하신다.
이 새로운 생명이 성령에 이끌려 사랑의 향기를 나타내는 것이다.
성령은 사랑의 영이시이기 때문에 성령을 순종하면 나의 속사람은 사랑이 나타날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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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공감합니다.
제 생각을 덧붙이자면,, 덧붙여도 되겠지요?
요일1:5~10절 말씀중 어둠에 행하면~(6절) 빛에 행하면~(7절) 이 말은 우리의 선한 외적인 착한 행동이나 도덕 윤리적인 .거룩한 행함을 말하는것이 아니에요.
5절에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이 말씀을 보면 알수 있어요.
벧전2:9 이 말씀에도 나오지요.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두운데서 불러내여: 생명이 없는 곳,하나님을 떠난곳에서 불러내어,,---빛에 들어가게:생명으로 들어가게,즉 주님을 믿음으로 주님께 속하게~
요일말씀에서 어둠에 행하면 ~ 말씀은 예수님께 속하지 않는 것을 말하고 , 빛가운데 행하면~ 하나님께 속함.즉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며 높이는 것이에요.
8절-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빛가운데 주님을 믿으면서도 우리가 여전히 죄가 있는 육신
육신의 사람이란 뜻이에요
요일1:5~10에서 말하는 어둠과 빛은 행함으로 나오는 달라짐을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죄가 단순히 행동 겉모습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에요.
거듭 말하지만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며 살지 말라는 말이 아니에요
성화라는 교리도 외적인 행동의 달라짐이나 변화를 말하는데, 성화교리가 일반교회에서 말하는 것처럼 맞다면, 지금 기독교 역사에서 이렇게 기독교인들이 욕을 먹는 일은 없겠지요.
ㅎㅎ
제 게시글이 외적인 행동 변화로 써여져 있나요?
그건 아닌데요
제글 다시 봐야 겠네요
그런 의도로 쓴 내용은 없습니다
어떤 내용인지 구체적으로 지적하면 좋겠습니다
복음에 합당한 삶 말인가요?
아니면 성령으로 나타나는 사랑 말인가요?
@이아다 님 글과 상관없이 제가 그냥 요일1:6~10절 말씀을 내 생각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쓴 댓글입니다.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괜히 덧붙였나봐요. ㅎㅎ
@물놀이
아 그러세요
물놀이님이 덧 붙인 글 공감합니다
좋은 댓글 감사 드려요
아, 그런 뜻이 아니고요. 글은 잘 읽었습니다. 죄자백글은 공감이 많이 갑니다.
다른 글에 요일말씀으로 서로 오감이 있어서요. 요일 말씀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댓글을 단것입니다.
요일6~10절까지요.
제 글이 그런 부분이 있는가? 하는 말입니다
혹시 자백글에 공감 안 되는 부분 지적해 주세요
@이아다 네. 다시 읽어보고 공감안가는 부분 있는지 찾아볼게요.
@물놀이
약간 모호한 부분이 있을겁니다
그러나 물놀이님과 거의 같은 의도일겁니다
방향성의 의미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물놀이
앞으로 지적도 해 주시고 좋은 견해 부탁드려요
ㅎㅎ
@이아다 https://cafe.daum.net/Christian-Network/Q9Yo/2689 ◀ 이것을 잘 읽어보세요!
다시 꼼꼼히 읽어봤는데 지적할 것이 없네요. ㅎㅎ
"보혈의 효력과 깊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사랑처럼 온 우주보다도 넓고 깊다"
이 말이 참 은혜가 되네요. 주님이 십자가에서 희생제물로서 행하신 그 대속의 의미를 더 깊이 새기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ㅎㅎ
공감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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