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마음의 소리]는 서사물이다. 무슨 개소리냐고 할지 모르지만 정말이다. 약 6년 전 마사루의 센스와 이나중의 황당함을 뛰어넘는다는 무시무시한 소개와 함께 등장한 이 만화는 매주 한 번도 쉬지 않고 독자들과 만났고, 그 과정 속에서 재기 넘치는 농담에 가까웠던 만화는 일종의 캐릭터 쇼가 되고, 내러티브로 웃음을 주는 현재에 이르렀다. 이처럼 독자를 웃기기 위한 방법은 계속 바뀌었지만 그 변화 자체가 이제는 [마음의 소리]라는 존재의 성장기가 되었다. 그 성장을 함께 한 이들에게 작가이자 주인공인 조석과 그 주위의 캐릭터들이 벌이는 황당무계한 소동극은 하나의 역사가 되었고, 이제 독자들은 애봉이와 조석의 연인 관계를 전제하고, 예수를 닮은 친구가 벌이는 이적에 놀라지 않는다. 지금의 웃음은 필연적으로 과거의 웃음과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다. [마음의 소리]가 성장하는 동안 본인 역시 30대가 된 조석 작가의 현재와 준비 중인 신작에 대한 이야기가 결국 지난 6년의 꾸준함으로 소급한 것은. 자신의 작품과 함께 프로페셔널한 만화가로 성장한 조석의 현재, 과거, 그리고 도래할 미래에 대하여.
인터뷰어: 최근 [마음의 소리] 외에 스토리 라인이 있는 신작을 준비하는 걸로 알고 있다.
조석: 단편을 하나 그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올해 네이버 웹툰에서 옴니버스로 연재되던 지구 종말 프로젝트를 같이 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얘기가 있어서 생각해봤는데 운석이 떨어지거나 핵전쟁 일어나는 건 다른 사람이 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우리집 개 행봉이가 돌아다니는 걸 보는데 쟤가 지금 보면 귀엽지만 나보다 열 배 이상 크면 무섭지 않을까 싶었다. 거기서 출발을 했는데 대형 개를 피해 도망 다니며 사는 설정은 좀 과한 거 같아 제한을 두고 싶었다. 그럼 우리가 평소 낚시해서 먹는 물고기가 커지면 어떨까. 심해어도 아닌 붕어나 메기 같은 물고기가 엄청 크면 무섭긴 하지만 걔들이 뭍으로 올 수는 없지 않나. 그렇게 우리 일상에서 단 한 가지만 달라졌는데 굉장히 이상해지는 세계관을 보여주고 싶어서 신작을 준비하게 됐다.
평소의 스타일과는 많이 다른 만큼 걱정이 있을 것도 같은데.
주위에선 다 말렸다. 동료 만화가들에게 이런 거 어떠냐고 하면 ‘물고기가 왜 무서워?’ 이런 반응이었다. 그래서 막 설득을 했지. 몸은 막 미끌미끌하고 눈은 이만한 붕어인데 무섭지 않느냐고. 하지만 다들 안 무섭다고 한다.
그런데도 시도하는 이유가 뭘까.
내가 하고 싶은 걸 그려서, 물고기가 뭐가 무섭냐고 하는 사람들에게 물고기가 무서울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는 느낌? 사실 처음 신작 준비한 게 축구만화 끝내기 전이다. 그땐 십대 독자 취향에 맞춰 그림도 좀 예쁘게 그려보고 내용도 십대가 좋아할 만한 걸로 고민했는데 어느 순간 내가 남을 흉내 내는 기분이 들었다. 글쎄, 그 작품을 계속 연구했으면 더 좋은 결과가 나왔을지는 모르겠지만 우선은 백퍼센트 내가 그리고 싶은 거, 내가 잘할 수 있는 걸 그리고 싶다.
내 만화로 남을 설득하는 재미가 있다
장르는 다르지만 자신이 잘하는 걸 그리겠다는 면에선 [마음의 소리]의 마음가짐 그대로일지도 모르겠다.
분명 [마음의 소리]도 내가 하고 싶어서 한 작품이긴 한데, 우연히 내가 하고 싶던 것과 독자가 원했던 거랑 일치해서 잘 된 거니 이게 성공 비결이라 할 수는 없겠지. 다만 늘 생각하는 건, 만화가는 자기가 잘 그리는 걸 해야 재밌는 걸 그릴 수 있다는 거다. [슬램덩크]가 잘됐다고 농구 만화를 그릴 게 아니라, 자기가 설거지를 정말 잘하면 설거지 만화를 그리는 게 맞다고 본다. 자기만의 정말 재밌는 설거지 만화를 그릴 테니까. 대중의 반응을 철저히 연구하면 백점짜리 시험지 같은 만화를 만들 수는 있겠지만 최고의 만화를 만들 수는 없을 거 같다. 사실 지금도 이걸 그리는 게 맞는지 좀 갈팡질팡하지만 우선은 어중간하게 고민하느니 한 번쯤은 우겨서 작품을 선보이고 독자의 반응을 보고 싶다.
사실 가장 걱정되는 건 주 2회 연재하는 상황에서 마감이 더해지는 게 물리적으로 가능할지다.
솔직히 [마음의 소리] 준비하는 시간도 엄청 늘어났다. 전에는 하루 콘티를 짜던 게 이틀이 됐고 이젠 거의 사흘 걸린다. 그림 그리는 것도 사흘 정도 걸리니 진짜 일주일이 부족하다. 물리적인 시간만 따지면 신작을 안 하는 게 맞다. [마음의 소리]가 아무리 자리를 잡았다고 해도 내가 눈 감고 그린 걸 사람들이 좋아해주진 않을 테니까. 그래서 신작을 하는 게 사치인가 싶을 때도 있다. 돈 많은 아저씨가 유명 기획사 가서 ‘나 노래 좋아하는데 음반 하나 냅시다’라고 하는 것처럼. 그럼에도 욕심을 좀 부리고 싶다. [마음의 소리]에서도 지난 화에 ‘이게 뭐야, 쉬었다 오시죠’라고 악플 달던 사람이 그 다음 화를 보고 ‘그래 이렇게 그리란 말이야’라고 할 때의 즐거움, 내 만화로 남을 설득하는 재미가 있다. 그런 게 지금 필요한 거 같다.
그런 동기 부여가 만화가 본인과 [마음의 소리]에도 도움이 될까.
무식하고 기계적인 방법일 수 있는데 만화도 어느 정도 훈련이라는 생각이 든다. 연재를 쉬어본 적이 없어서 모를 수도 있지만 쉬는 것보다는 매주 두 편씩 콘티를 짜면서 얻는 게 있다. 가령 전에는 한 편이 20컷을 넘기면 힘들어서 죽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축구만화 연재를 끝내고 [마음의 소리]에만 전념하니 이제는 30컷을 그려도 괜찮고 40컷을 그려도 괜찮다. 그렇기 때문에 신작을 할 때 힘들다고 [마음의 소리] 콘티를 대충하면 두 작품 다 망하는 거다. 지금 하는 만큼 신경을 써야 의미가 있지.
남의 조언이 자기 결정에 5할 이상 차지하면 안 되지 않을까
실제로 최근 [마음의 소리]는 컷 수도 엄청 늘어났고, 내용을 영상 매체처럼 풀어가는 연출도 좋아졌다. 그냥 컷을 그대로 시트콤 콘티로 써도 될 정도로.
아마 [마음의 소리]는 일곱 개 정도 다른 타이틀로 나눌 수 있을 거다. 늘 개그 방식이 바뀌니까. 요즘 같은 방식으로 하기 전에는, 가령 전경 시절 근무 나간 이야기를 할 때 근무를 나가서 뭘 사먹다 웃긴 일이 있고 방범을 돌다 웃긴 일이 있고 경찰서에 왔을 때 웃긴 일이 있는 식으로 스테이지를 나눠서 진행했다. 그러다 너무 같은 틀 안에서 돌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 새로운 걸 해보고 싶었다. 가장 해보고 싶은 건 대사 없이 진행하는 거였는데, 정말 시트콤 같은 상황이 하나 나오면 그렇게 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실수로 아버지 머리를 대머리로 만든 이후 벌어지는 상황들.
말하자면 이젠 컷 자체보다는 스토리 라인과 구성으로 웃음을 준다. 가령 치킨집 광고를 소재로 한 ‘나 TV 나왔어’ 편은 복선을 깔고 컷을 재배치해 웃음을 준다.
그게 요즘 방식으로 바뀐 첫 에피소드일 거다. 전엔 나 혼자 정해 놓은 룰이 있었는데 가령 조석이 길을 걷다 바나나를 밟고 넘어지는 6컷 짜리 에피소드가 있으면 그 중 3컷은 웃겨야 한다는 거였다. 그렇게 하려면 사실 내용은 말이 안 된다. 가장 이해가 빠른 건 5컷이 설명을 하고 1컷이 웃기는 거겠지. 요즘 방식이 좀 그런 거 같다. 사실 전부터 가장 많이 듣던 지적이 이야기의 내러티브에 대한 거였는데 그때마다 개그 만화에 무슨 내러티브야, 이랬다. 그러다 ‘나 TV 나왔어’ 반응이 좋으니까 역시 이야기는 내러티브지 이러고 있다. (웃음) 나 스스로 못났다고 생각하는 게 항상 남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이야기를 해줘도 이해가 안 되면 안 받아들인다.
신작을 준비하는 것도 그렇고 일종의 고집인데 그게 창작에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만약 그 사람들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지금도 그 사람들 조언이 아니면 만화를 못 그릴 수 있다. 남의 조언이 자기 결정에 5할 이상 비중을 차지하면 나중엔 아무 것도 스스로 못하지 않을까. 그래서 개인적으로 작품에 대해 고집을 부리고 일 진행을 이기적으로 하고, 남을 질투하는 성격은 만화가로서 남겨놔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고집과 이기심, 질투도 좀 현명하게 부려야지. 전엔 남들한테 이 이야기가 재밌는지 안 재밌는지 정말 잔인하게 평가해달라고 한 다음에 정말로 잔인하게 평가하면 속으로 ‘잔인한 새끼’ 이랬다. (웃음) 남을 질투할 때도 이젠 좀 더 긍정적으로 내가 열심히 해서 따라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자기 주관을 가지고 쉬지 않고 훈련하듯 만화를 그리기에 600화가 훨씬 넘은 지금도 평균 이상의 웃음이 가능한 거 같다.
어떤 전제가 깔린다. 그냥 재밌어요, 재미없어요, 라고 하는 게 아니라 ‘660화가 넘었는데 아직도 이런 얘기를 하다니’라고 말한다. 요즘 내 만화 장르가 ‘개그’가 아닌 ‘열심’ 혹은 ‘부지런’이 된 거 같단 말을 자주 하는데 그런 전제가 깔려서 더 좋게 재밌게 봐주는 게 있다. 이러다 만약 이번 주는 쉬겠다고 하면 그때부턴 좀 달라질 거 같긴 하고. 사실 500회 때 쉬었어야 했는데 타이밍을 놓쳤다.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언제 많이 하나.
오늘도 몇 번 했지. (웃음) 콘티를 짜러 밖에 나갔는데 아무 생각이 안 난다. 오늘 밤부터 그려야 하는데. 그러면 지금 당장 담당자에게 전화를 해서 앞으로 쉰다고 해야 할까 생각한다. 그러다 또 스르륵 콘티가 나오면 역시 이 일은 참 할 만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고. 매번 그런 감정이 반복된다. 그리고 이 스트레스는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다.
마감을 지키는 게 독자에 대한 예의
연재를 쉬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휴재에 대한 유혹은 있지 않나.
유혹이라 말할 수 없는 게, 만약 담당자가 너는 오늘부터 언터쳐블이니까 매일 쉬라고 하더라도 못 쉴 거다. 현실의 끈은 담당자와 연결되어 있지만 안 보이는 실질적인 끈은 독자와 연결되어 있으니까. 내가 담당자가 쉬라고 해서 쉰다고 한다고 ‘아, 그렇구나’ 하며 돌아갈 사람 없지 않나. 미친놈이라고 그러지.
독자와의 관계가 마감을 지키는 힘인 걸까.
근면 성실한 사람은 분명 아니다. 다만 내가 이기적이더라도 사람들이 보는 만화를 그리는데 그들에게는 예의를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안 쉬고 마감을 지키는 게 예의 같다. 만화만 재밌으면 됐지 마감 지키는 게 뭐가 중요하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만화의 재미가 왜 꼭 내용의 재미라고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그건 잘난 척 아닐까. 만화가 재밌는 건 만화를 보는 사람이 재밌어 하니까 재밌는 거고, 매주 화요일 금요일에 늘 같은 시간에 올라온다는 것도 독자로서 만화를 보는 즐거움이다. 그저 만화 내용 뿐 아니라 관련된 모든 걸 열심히 해야 재밌어질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건 조회수를 비롯해 성과가 있어야 하는 일인데 원하는 만큼의 결과가 안 나오고 후회가 들면 스트레스는 엄청나다. 그 스트레스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마감을 꼬박꼬박 지키고 최선을 다해 후회를 남기지 않는 거다.
앞서 콘티를 짤 때의 스트레스를 말했는데 그것과 작품에 후회를 남기며 받는 스트레스 중 뭐가 더 클까.
후자가 훨씬 크지. 콘티가 안 나오는 건 어쨌든 내가 해내면 되는 건데, 만화를 대충 그려 보내놓고 반응이 안 좋다고 실망하는 건 굉장히 한심해 보이지 않나. 실제로 그러던 시절도 있다. 되게 슬럼프일 때 담당자가 오락을 좀 줄여보는 건 어떠냐고 하는데 그 말이 정말 싫은 거다. 이 나이에 학교 선생님한테 들을 얘기나 듣고 있고. 그러면서 또 오락을 하고 있는 거다. 그땐 정말 오락하는 틈틈이 만화를 그렸지. 내가 나의 전성기는 오락하던 시절이라고 하는 게, 그때 만화가 재밌어서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조상님이 도왔구나 싶다.
지금은 일 외에 관심 가는 일이 없는 건가.
그렇게 말하기 어려운 게, 요즘은 이걸 일이라고 생각 안 해서 재밌는 게 있다. 난 참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있구나 싶다. 돈 버는 건 정말 중요한 건데, 내 일은 돈을 벌면서 뭔가 남길 수 있다는 생각. 사실 전에는 작가들이 만화 그리는 게 재밌다는 말을 할 때 ‘뭐가 재밌어’ 이랬는데 요즘은 이런 기분이 드니까 이럴 때 허송세월 보내지 말고 신작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하는 거다.
그럼 이 좋은 직업으로 이루고 싶은 게 있나.
히트 타이틀이 많은 만화가가 되면 좋겠는데 그건 그냥 희망사항이지 목표는 아니다. 지금은 초등학교 때 [마음의 소리]를 보던 애가 지금 내 나이 쯤 됐을 때도 내가 재밌게 이 만화를 연재하는 게 목표다. 그만큼 이 작품은 내게 중요하다. 아니, 중요하다는 말로는 이 만화가 섭섭해 하겠지. 무척 소중하다. 자칫 정말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던 사람인데 저 작품 덕에 어디 가서 거드름도 피우지 않나. 한 때 남들이 욕한다고 나도 내 만화를 욕하고, 어떨 땐 돈이 들어오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생각한 적도 있는데, 나이 앞에 3이란 숫자가 붙고 보니까 내 20대가 여기에 다 있더라. 당장은 [마음의 소리]를 잘 끌고 나가는 게 1번이다. 더는 빠져 나가는 캐릭터 없이.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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